릴로

기자회견장의 형광등이 도하의 눈을 찔렀다.

피맛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성대가 타들어가는 느낌. 한 마디 한 마디가 유리 조각을 삼키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도하는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렸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내가…… 시현 씨를 지켰습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 기자들의 술렁임. 유리아가 단상 옆에서 입을 벌린 채 굳었다. 그녀가 준비해 온 모든 증거와 폭로 시나리오는 도하의 이 한 마디에 무력화됐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도하가 천천히 돌아섰다.

입구에 시현이 서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넥타이는 풀어헤친 채.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시현이 단상으로 뛰어올랐다. 도하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아 바닥에 내던졌다. 쾅 하는 소리가 앰프를 타고 울렸다.

“이딴 게 뭔데.”

시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진동. 도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 목소리, 이딴 데 써서 망가뜨리라고 한 거 아니야.”

도하는 웃으려 했다. 하지만 성대에서 피가 올라왔다. 입술 사이로 붉은 실이 흘렀다. 시현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병원. 당장.”

시현이 도하를 안아 올렸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폭발적으로 터졌다. 한지우가 달려와 기자들을 막았다. 이수빈이 구급차를 불렀다. 유리아는 단상 구석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도하는 시현의 품에 안겨 천장의 형광등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제 진짜로 아무 말도 못 하겠구나.

그리고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

**3주 후, 병원 옥상**

바람이 차가웠다. 도하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여몄다. 성대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영구 손상은 피했지만, 의사는 분명히 말했다.

*이제 예전처럼 말할 순 없습니다. 특히 장시간 발성은 불가능합니다.*

시현이 옆에 서서 도하의 손을 잡았다.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손. 떨리고 있었다.

“오늘 콘서트야.”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붕대가 감겨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시현의 손가락이 도하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네 목소리 없이 처음 서는 무대다.”

도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현이 고개를 숙여 도하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댔다. 숨이 섞일 만큼 가까운 거리. 시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무서워.”

처음 듣는 고백이었다. 도하의 눈이 커졌다. 시현이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목소리 없으면 무대 공포증 다시 올까 봐. 겁나.”

시현의 손이 도하의 목으로 올라왔다. 붕대 위로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스쳤다. 그 촉감이 떨렸다.

“이 목소리가 내 거였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도하의 호흡이 멈췄다. 4화 대기실에서 시현이 했던 말. 그때는 소름 끼칠 만큼 집요한 소유욕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현의 눈에 서린 건 두려움과 간절함이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어.”

시현의 엄지가 도하의 붕대를 따라 내려갔다. 목젖이 움직이는 부분, 상처가 아문 자리, 피부가 얇아진 성대 바깥쪽까지.

“네 목소리가 내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현이 숨을 들이쉬었다.

“네가 내 거였으면 좋겠어.”

바람이 불었다. 도하의 스카프가 펄럭였다. 시현의 손이 스카프를 붙잡았다. 풀리는 천 사이로 도하의 목이 드러났다. 수술 자국. 붉은 선. 그리고 5화에서 시현이 손으로 조른 멍 자리까지.

시현은 그 자국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내가 상처 줬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너 망가뜨렸는데.”

도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시현은 도하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이제 말 안 해도 돼.”

시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내가 다 들을게.”

---

**도하의 집, 그날 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시현이 도하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시현의 손이 도하의 스카프를 풀었다. 천천히, 천 조각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도하의 목이 드러났다. 수술 자국. 멍 자국. 그리고 수많은 감정의 흔적들.

시현이 무릎을 꿇었다.

도하의 눈이 커졌다.

“서 있을 수 있겠어.”

시현의 입술이 도하의 목에 닿았다. 붕대 자국이 시작되는 쇄골 위를 혀로 쓸었다. 도하의 어깨가 떨렸다. 신음이 나오려는 순간, 도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잘했어.”

시현이 속삭였다. 그의 손이 도하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단추가 떨어질 때마다 시현의 입술이 드러난 피부를 따라 내려갔다. 가슴 중앙의 뼈, 갈비뼈의 곡선, 배꼽 주변의 얇은 피부.

도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성대가 아닌 근육이, 피부가, 심장이 반응하고 있었다. 시현은 그 떨림을 입술로 읽었다. 마치 점자라도 읽는 듯 한 곳 한 곳에 입을 맞췄다.

침대까지 가는 동안 옷이 벗겨졌다. 시현의 손이 도하의 허리띠를 풀었다. 금속 버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 그리고 바지가 벗겨지며 천이 살갗을 스치는 소리.

도하는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시현이 그 위로 올라왔다. 그의 손이 도하의 목 옆을 짚었다. 붕대 자국 바로 옆. 숨통을 조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

“이제부턴 네 신호로 해.”

시현의 입술이 도하의 귓바퀴에 닿았다.

“숨소리로 말해. 심장 소리로 말해.”

도하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시현은 그 움직임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갈비뼈가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는 리듬. 그 위로 심장이 두드리는 진동. 시현은 눈을 감았다.

“지금 네 심장, 엄청 빠르다.”

도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소리 대신 손을 뻗어 시현의 등짝을 긁었다. 짧은 손톱이 살갗에 닿는 순간 시현의 몸이 떨렸다.

“아직 더 듣고 싶은데.”

시현의 손이 도하의 가슴을 타고 내려갔다. 갈비뼈의 끝, 허리의 곡선, 골반뼈의 돌출부. 손가락이 닿는 모든 부위에서 도하의 근육이 반응했다. 수축과 이완. 떨림과 경련. 시현은 그걸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도하의 성기가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 나왔다. 시현의 손가락이 그 액체를 찍어 도하의 배 위에 문질렀다. 미끈거리는 감촉이 피부 위로 번졌다.

“이것도 네 목소리야.”

시현이 도하의 아랫배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배꼽 아래, 음모가 시작되는 경계선. 시현의 혀가 그 선을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도하의 허리가 들썩였다. 입술 사이로 아주 작은 숨소리가 샜다.

“더 들려줘.”

시현의 입이 도하의 성기를 삼켰다.

도하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목소리 대신 손이 시현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시현은 천천히, 한 번에 조금씩 도하의 성기를 입 안 깊숙이 받아들였다. 혀로 귀두 밑의 홈을 핥았다. 포피를 젖히고 드러난 점막을 입술로 감쌌다.

도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갈비뼈가 부서질 것 같은 진동. 시현은 그 소리를 도하의 배에 댄 손바닥으로 들었다. 쿵쿵쿵쿵. 규칙적이지만 점점 빨라지는 타악기.

시현의 혀가 요도구를 비집었다. 짭짤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 도하의 허벅지 안쪽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시현은 그 경련을 자신의 뺨으로 느꼈다. 근육이 수축하며 딱딱해지는 감촉.

도하의 손이 시현의 어깨를 잡았다. 입 모양으로만 무언가를 말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시현이 입을 성기에서 떼고 얼굴을 들었다.

“뭐라고 했어.”

도하는 숨을 몰아쉬며 입술만 움직였다.

*미안해.*

시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 목소리로 널 만족시킬 수 없어서.*

다음 순간, 시현이 도하의 입술을 덮쳤다.

거칠고 깊은 키스. 도하의 입안에서 자신의 체액 맛이 섞여 돌았다. 시현의 혀가 도하의 입천장을 쓸고, 잇몸을 핥고, 혀 안쪽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도하는 그 혀를 빨았다. 목소리 대신 입술과 혀와 치아로 답했다.

시현이 입술을 떼고 도하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댔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한 거, 너 들었어.”

도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현이 그 눈물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너 방금 사랑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알았어.*

도하의 입 모양이 물었다. 시현이 웃었다. 눈물이 섞인 쓴 미소였다.

“네 입술이 그렇게 말했어.”

시현의 손가락이 도하의 항문 주변을 쓸었다. 근육이 긴장하며 손가락을 밀어내려 했다. 시현은 천천히, 조금씩 압력을 가했다. 손가락 끝이 괄약근을 밀고 들어갔다. 도하의 항문이 시현의 손가락을 단단히 물었다.

“여기도 목소리가 있네.”

시현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안쪽 벽을 누르고, 빼고, 방향을 틀어 다른 부위를 자극했다. 도하의 항문이 반응했다. 수축과 이완. 손가락을 더 깊이 빨아들이려는 움직임. 시현은 그 리듬을 읽었다.

두 번째 손가락이 들어갔다. 도하의 입이 벌어졌다. 목소리 없이 비명이 새어 나오려는 순간, 시현이 도하의 목에 입을 맞췄다. 붕대 자국 위로 입술이 닿았다.

“쉬이이. 내가 듣고 있어.”

손가락이 안쪽에서 구부러졌다. 전립선을 찾았다. 살짝 눌렀다. 도하의 온몸이 쥐가 난 듯 경직됐다. 성기에서 투명한 액체가 한 번에 쏟아졌다. 시현의 배 위로 흘러내렸다.

“여기가 네 진짜 목소리야.”

시현이 손가락으로 전립선을 계속 자극하며 속삭였다. 도하의 눈이 뒤집혔다. 눈물과 침과 정액이 뒤섞여 얼굴과 몸을 적셨다. 시현은 그 모든 체액을 손과 입술과 혀로 읽었다.

“네가 지금 얼마나 느끼는지 다 들려.”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대신 시현의 성기가 항문 입구에 닿았다. 귀두가 괄약근을 밀었다. 도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현이 도하의 턱을 잡았다.

“입술 풀어. 거기서도 네 소리 들려야 하니까.”

도하는 입술을 풀었다. 떨리는 숨결이 방 안에 퍼졌다. 시현은 그 숨소리에 맞춰 천천히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귀두가 첫 번째 저항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도하의 항문이 시현의 성기를 물었다. 시현은 허리를 멈췄다.

“더.”

도하의 입 모양이 말했다. 시현이 웃었다.

“명령은 네가 다 하네.”

허리를 더 밀었다. 성기 전체가 도하의 직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점막이 성기를 감싸는 촉감. 체온이 성기로 전해지는 온기. 시현은 눈을 감고 그 감각에 집중했다.

도하의 항문이 시현의 성기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근육이 수축할 때마다 성기 뿌리까지 압박이 느껴졌다. 시현은 도하의 심장 박동에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쿵, 하고 심장이 뛸 때 삽입. 쿵, 하고 다음 박동에서 인출.

도하의 손이 시현의 등을 긁었다. 더 빨리, 더 깊이, 라는 신호. 시현은 속도를 높였다. 침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두 사람의 살이 부딪히는 소리. 피부가 마찰하며 나는 젖은 소리. 그리고 도하의 입술 사이로 새는 숨소리.

이 모든 게 음악이었다.

시현은 이제야 깨달았다. 도하의 목소리는 단순히 성대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도하의 온몸이 목소리였다. 뛰는 심장도, 떨리는 근육도, 흐르는 체액도, 수축하는 항문도. 그 모든 게 하나의 언어였다.

“나 듣고 있어.”

시현이 도하의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다 들려.”

허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도하의 항문이 시현의 성기를 더 강하게 조였다. 전립선이 귀두에 닿을 때마다 도하의 성기가 힘없이 허공에서 떨렸다. 사정이 임박한 징후였다.

시현은 손을 뻗어 도하의 성기를 잡았다. 손가락으로 귀두를 감싸고, 엄지로 요도구를 문질렀다. 동시에 허리를 깊숙이 밀어 넣어 귀두로 전립선을 압박했다.

도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목소리 없는 절규.

대신 온몸이 폭발했다. 도하의 성기에서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시현의 손과 배, 가슴까지 하얀 액체가 튀었다. 동시에 항문이 시현의 성기를 격렬하게 조였다. 경련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시현은 그 경련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정했다. 도하의 직장 안으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들어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성기가 수축하며 정액을 토해낼 때마다 시현은 도하의 목에 입술을 댔다.

“이제 이 목소리 안에 내가 살게.”

시현의 입술이 도하의 목에 빨갛게 키스 마크를 남겼다. 수술 자국 바로 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새기듯.

도하는 눈물을 흘리며 시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래, 여기서 살아.*

입 모양으로만 대답했다. 시현은 그 입술을 읽고, 다시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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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더블유엔터 대표실**

김대표의 책상 위로 서류 뭉치가 내던져졌다.

“계약 파기라고?”

시현이 책상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목에 스카프를 두른 도하가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도하 없으면 나도 없어.”

김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네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난 3주 동안 스캔들 수습하느라 회사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유리아가 퍼뜨린 소문, 기자회견 사태, 네 팬덤 분열. 이제 겨우 좀 진정됐는데 너 지금 뭐, 계약 파기?”

“도하를 자르라는 조건은 못 받아들여요.”

김대표가 소리쳤다.

“정도하 씨는 이미 성대가 망가져서 매니저 업무도 제대로 못 해. 회사가 봐줄 이유가 없어.”

도하의 손이 살짝 떨렸다. 시현이 그 손을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꼈다. 김대표의 눈이 그 손에서 멈췄다.

“난 도하랑 같이 있을 겁니다.”

시현의 목소리가 침착했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가 아닌, 진심이 담긴 낮은 톤.

“도하가 매니저를 못 하면 내가 매니저를 할게요. 도하가 말을 못 하면 내가 말할게요. 무대도, 도하 없이 설 수 있어요.”

“무대 공포증은 어떻게 하고.”

“오늘 콘서트로 증명할 겁니다.”

김대표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미쳤어. 둘 다 미쳤어.”

“계약서는 변호사 보내세요.”

시현이 돌아섰다. 도하의 손을 잡은 채로 문으로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김대표가 말했다.

“유리아, 오늘부로 퇴출이야.”

시현이 멈춰 섰다.

“증거 불충분으로 기자회견 무산되고, 과거 계약 위반 사항들 다 터졌어. 회사도 더 이상 못 덮어줘.”

도하가 시현을 돌아봤다. 시현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단지 눈가가 살짝 떨렸다.

“됐어요.”

그 말만 남기고 문이 닫혔다.

---

**그날 밤, 콘서트장**

1만 석 규모의 공연장이 꽉 찼다. 스캔들 이후 첫 콘서트. 팬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응원봉을 든 팬과 등을 돌린 팬. 함성과 야유가 뒤섞였다.

무대 뒤, 대기실.

시현이 거울 앞에 섰다. 검은 슈트에 반짝이는 액세서리. 완벽한 톱스타의 모습. 하지만 인이어는 귀에 꽂혀 있지 않았다. 대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도하가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터틀넥이 목의 붕대를 감추고 있었다. 손에는 수첩과 펜. 작게 휘갈겨 쓴 글씨를 찢어 시현에게 건넸다.

*무서워?*

시현이 웃었다.

“존나 무서워.”

*내가 객석에 있을게. 맨 앞줄.*

“알아.”

시현이 도하의 손을 잡아 자신의 심장 위에 올렸다.

“뛰는 거 느껴져.”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의 손이 도하의 목으로 올라갔다. 스카프 너머로 수술 자국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네가 내 거라는 것만 기억해.”

도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입 모양으로 말했다.

*네 거야.*

시현이 도하의 이마에 키스했다.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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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열렸다.

조명이 시현을 비추는 순간, 공연장이 술렁였다. 인이어를 끼지 않은 톱스타의 모습에 팬들이 웅성거렸다. 시현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서시현입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대 공포증의 전조 증상. 손끝이 차가워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시현은 객석 맨 앞줄을 봤다.

도하가 거기 앉아 있었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두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짚은 채.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나 듣고 있어.*

시현의 호흡이 안정됐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인이어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하는 거기 있었다. 그 존재 자체가 소리였다.

시현이 노래를 시작했다.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팬들의 함성이 작아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인이어 없는 톱스타의 라이브는 완벽했다. 음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도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현은 노래를 부르며 도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모든 가사가 도하에게 하는 말이었다. 존재 자체가 되는 법, 목소리 없이 말하는 법, 상처를 끌어안는 법.

마지막 곡이 끝났다.

시현이 마이크를 내렸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1만 명의 침묵.

시현이 손을 뻗었다. 맨 앞줄의 도하를 향해.

“이제부턴.”

마이크 없이 말했다. 입 모양으로만.

“무대 위에서도, 아래서도 함께야.”

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현이 웃었다. 무대 위의 카리스마도, 가공된 미소도 아닌. 처음으로 보여주는 진짜 웃음이었다.

도하가 손을 뻗었다. 시현의 손을 잡았다.

객석의 조명이 켜졌다. 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손이 맞잡힌 채 빛 속에 서 있었다.

무대가 끝났다.

진짜가 시작됐다.

---

**이후, 도하의 집**

새벽 3시.

도하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시현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도하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치 놓치면 사라질까 봐 두려운 듯이.

도하는 조용히 손을 빼냈다. 침대 옆 탁자 위의 수첩을 집었다. 펜으로 천천히 글씨를 썼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

*시현아.*

*나는 너에게 목소리를 주고, 너는 나에게 목소리가 되어 주었어.*

*이게 계약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

도하는 펜을 내려놓았다. 수첩을 덮었다.

시현의 눈이 떠졌다.

“뭐 썼어.”

도하가 수첩을 들어 보였다. 시현이 읽었다. 읽고, 오래 침묵했다.

“나도.”

시현이 도하의 목에 입을 맞췄다. 키스 마크가 아직 남아 있었다. 붉은 자국 위로 입술이 닿았다.

“네가 내 거라서, 나는 이제 무대가 무섭지 않아.”

도하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시현은 그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대신 자기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의 눈물이 섞여 베개를 적셨다.

새벽 3시, 모든 소리가 잠든 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침묵 속에서 가장 큰 소리를 들었다.

무대가 끝나야 진짜가 시작된다.

그리고 진짜는, 침묵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울렸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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