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TV가 켜진 순간, 도하는 자신의 이름이 뉴스 자막으로 뜨는 걸 봤다.
"톱스타 S씨, 신입 매니저와 부적절한 관계로 컨디션 난조... 소속사 내부 제보."
유리아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도하는 알았다. 그 여자가 결국 칼을 뽑았다. 익명의 제보자 뒤에 숨어서, 마치 시현을 걱정하는 양 포장해서.
"도하 씨, 잠김."
한지우 수석 매니저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평소보다 딱딱한 어조.
도하는 목을 감쌌다. 붕대 아래 피부가 욱신거렸다. 어젯밤 시현이 입술로 빨아올린 자리가 아직도 뜨거웠다. 그 자리 위로 시현의 손가락이 올라갔던 감촉. 숨이 막힐 듯 조여들던—
"도하 씨!"
한지우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로 김대표의 그림자가 보였다.
"뉴스 봤어요? 지금 회사 홍보팀 난리 났어요. 시현이 컨디션 문제로 공연 취소할 거라는 루머까지 돌고 있고."
김대표가 입을 열었다.
"정도하 씨, 솔직히 말해요. 시현이랑 무슨 관계요?"
도하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굳은 듯이 잠겨 있었다. 겨우 입 모양으로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냉소적이었다.
"시현이 저 매니저 아니면 무대 안 선다며? 그게 무슨 뜻이야?"
한지우의 질문.
도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야?"
시현이었다. 그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며 도하를 자기 뒤로 밀어 넣었다. 떨리는 손이 도하의 허리를 짚었다.
"시현아, 너 왜 여기—"
"도하 건드리지 마."
시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김대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뉴스 못 봤어? 지금 네 이름이랑 매니저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야. '부적절한 관계'라는 표현이 붙어서."
"그래서?"
"그래서? 시현아, 네 이미지에 타격이 가고 있어. 콘서트 티켓 환불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야."
김대표가 도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매니저 교체. 그리고 법적 대응으로 깔끔하게 매듭짓는 거."
대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도하는 시현의 등 뒤에서 숨을 죽였다. 자신의 목에서 나는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시현의 등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싫어."
시현이 말했다.
"시현아—"
"도하는 내가 선택한 매니저야.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한지우가 끼어들었다.
"시현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도하 씨 목 상태도 심각하잖아. 어제 병원에서 무슨 소리 들었는지 알아? 성대 결절 진행 중이래. 이대로 가면 영구 손상이야.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계속 매니저 일을—"
"그럼 내가 무대 안 서면 돼."
정적.
김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고?"
"도하 없으면 무대 안 선다고."
시현이 고개를 돌려 도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이상할 만큼 맑았다. 마치 오랫동안 참았던 말을 드디어 꺼내는 사람처럼.
"너 미쳤어? 네 커리어가 걸린 문제야!"
김대표가 소리쳤다.
"커리어?"
시현이 비웃었다.
"그 커리어, 도하가 없으면 애초에 불가능했어. 내가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 알아? 도하가 인이어로 내 이름을 불러줬어. 도하가 숨 쉬는 소리로 나를 진정시켰어. 도하가 내 귀에—"
"시현!"
한지우가 말렸다. 너무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현은 멈추지 않았다.
"도하가 아니면 안 돼. 다른 누구도 대체 못 해. 그러니까 교체고 뭐고 없어."
김대표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알겠어.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그가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이번 주 금요일 기자회견이야. 유리아가 주최하는 거. 거기서 '시현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니저의 실태'를 폭로하겠대. 알아서 판단해."
문이 닫혔다.
대기실에 둘만 남았다.
도하의 다리가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그를 시현이 붙잡았다. 익숙한 손길이 허리를 감싸고, 익숙한 체온이 등 뒤에서 밀려왔다.
"도하야."
시현이 속삭였다.
도하는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찢어질 듯 아팠다. 겨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나... 이제 그만둘게.'
시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 없으면... 너 무대 못 서잖아. 그런데 지금 나... 말도 못 해. 계속 이러면 네가 망가져. 유리아가 널—'
"입 닥쳐."
시현이 도하의 어깨를 돌려 자길 보게 했다.
"네 목소리 없으면 무대 못 서? 그게 뭐 어쨌다고."
도하의 눈이 커졌다.
"내가 무대 때문에 너랑 계약한 줄 알아?"
시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구분할 수 없는 떨림.
"너였어. 네 목소리가 아니라 너. 네가 내 귀에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내 온몸이 반응했어. 네가 나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었어. 그런데 목소리가 망가졌다고 떠나? 내가 허락할 것 같아?"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야. 나는 네 발목을 잡는 존재야. 유리아의 말이 맞았어. 나는 너를 망가뜨리는—
"거짓말하지 마."
시현이 도하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네가 진짜 무서워하는 건 목소리 잃는 게 아니잖아. 목소리 잃으면 내가 널 버릴까 봐 무서운 거잖아."
들켰다.
도하의 숨이 멎었다.
시현의 엄지가 도하의 눈물을 닦아내렸다.
"바보야. 네 목소리가 아니어도 나는 너야. 네 숨소리, 네 심장 뛰는 소리, 네 피부에서 나는 냄새,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시현의 입술이 도하의 목에 닿았다.
붕대 위로.
뜨거운 혀가 거즈를 핥았다. 소독약 냄새와 피 비린내 사이로 도하의 체취가 배어나왔다. 시현은 그 냄새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붕대를 풀었다.
드러난 목.
어젯밤 멍자국이 선명했다. 시현이 입술로 빨아올린 자국. 손가락으로 조른 자국. 폭력과 소유의 경계가 흐려진 흔적.
"아파?"
시현이 물었다.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아팠다. 삼키기만 해도 칼로 긁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시현의 혀가 그 위를 핥을 때마다 통증은 다른 감각으로 바뀌었다. 따뜻하고, 간지럽고, 전류처럼 찌릿찔릿한.
"거짓말. 아프잖아."
시현이 도하의 멱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살짝만 조였는데도 도하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샜다.
"하지만 이건 내가 낸 상처니까... 내가 치료해야지."
시현의 혀가 멍자국 하나하나를 따라 움직였다. 빨갛게 부어오른 피부 위로 침이 번지고, 그 위로 뜨거운 숨결이 스며들었다. 도하는 숨을 참았다. 시현의 입술이 목젖 아래 움푹 팬 부분에 닿을 때마다 하복부가 저릿하게 수축했다.
"싫으면 밀어내."
시현이 속삭였다.
"지금 밀어내면 멈출게."
도하는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시현의 셔츠를 잡아당겼다.
시현이 낮게 웃었다.
"역시 너도 나랑 똑같아."
그가 도하의 옷을 벗겼다. 단추가 뜯겨 나갔다. 찬 공기에 노출된 젖꼭지가 곧바로 경직됐다. 시현은 엎드려 혀로 그 작은 돌기를 굴렸다. 한쪽을 핥는 동안 손가락은 다른 쪽을 비볐다. 도하의 등이 바닥에 닿기 전에 시현이 깔고 있던 점퍼를 밑에 펼쳤다.
"추우면 안 되니까."
그 말과 동시에 뜨거운 입술이 배꼽 아래로 내려갔다.
도하는 자신의 바지가 벗겨지는 걸 느꼈다. 팬티까지 한 번에 내려갔다. 발기된 성기가 시현의 뺨에 닿았다. 시현은 잠시 그걸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벌려 귀두를 삼켰다.
"읏..."
도하의 목에서 찢어진 신음이 샜다.
성대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쾌락이 통증을 덮었다. 시현의 혀가 요도를 핥고, 입술이 귀두를 감싸고, 손가락이 고환을 굴렸다. 도하는 허리를 들었다. 더 깊이 넣고 싶어서. 시현이 그걸 읽고 고개를 더 숙였다. 성기가 목구멍까지 밀려들어갔다.
질식할 것 같은데도 시현은 멈추지 않았다.
도하의 허벅지가 떨렸다. 사정감이 배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시현은 그 직전에 입을 뗐다. 침과 투명한 액체가 입술에 줄기를 그렸다.
"아직 안 돼."
시현이 자신의 바지를 내렸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가 튀어나왔다. 귀두가 붉게 달아올라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위에 있어 봐."
도하는 놀랐다. 지금까지 시현은 항상 주도하는 쪽이었다. 강제로 눕히고, 다리를 벌리고, 들어오는 쪽. 도하는 받아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 시현은 바닥에 누워 도하를 자기 위로 끌어올렸다.
"와."
시현이 도하의 엉덩이를 잡았다. 손가락이 항문 주변을 문질렀다. 아직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액과 윤활제가 마르지 않은 입구가 손가락을 삼켰다.
"아까워서 씻지도 않았어?"
시현의 목소리가 걸쭉하게 가라앉았다.
도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이었다. 어젯밤 도망치듯 나왔지만, 몸 안에 남아 있는 시현의 흔적을 씻어내지 못했다. 씻고 싶지 않았다.
"대답."
시현이 도하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잡았다.
도하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입 모양으로 답했다.
'씻기 싫었어.'
시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성기가 도하의 항문을 밀고 들어왔다.
"아...!"
도하의 목에서 터져 나온 신음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성대가 찢어지는 고통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동시에 직장 벽을 가득 채우는 단단한 감각이 모든 생각을 지워버렸다.
시현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위로, 아래로. 깊이 들어왔다가 느리게 빠져나갔다. 귀두가 전립선을 스칠 때마다 도하의 허벅지가 경련했다.
"네 목소리..."
시현이 도하의 목에 손을 얹었다.
"지금 엄청 쉬었어. 아파?"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현이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거짓말. 아프지. 네 목, 이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아플 거야. 삼키는 것도 힘들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시현의 허리 움직임이 멈추지 않은 채 계속됐다. 깊고 느리게. 마치 도하의 내부를 확인하듯.
"하지만 나는... 네 목소리가 망가져도 상관없어."
도하의 눈이 커졌다.
"네가 내 곁에만 있으면 돼. 말 못 해도 돼. 숨소리만 내줘. 그걸로 충분해."
시현이 상체를 일으켜 도하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가슴이 밀착됐다. 심장이 서로의 갈비뼈를 두드렸다.
"무대 따위 상관없어."
시현이 도하의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없으면 아무 의미 없어."
그 말에 도하의 몸이 무너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시현은 그런 도하의 목에 귀를 대고, 찢긴 성대 사이로 새어나오는 울음과 신음을 들었다. 마치 그 소리를 삼키려는 듯이 입을 맞추고, 핥고, 빨아들였다.
"미안해."
시현이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떠나지 마."
허리가 빨라졌다. 깊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도하의 항문이 시현의 성기를 물었다. 근육이 경련하며 조였다. 시현이 신음했다.
"가지 마. 내 옆에 있어. 영원히."
도하는 대답 대신 시현의 등을 끌어안았다. 손톱이 등을 파고들었다. 시현의 살갗이 찢어지고, 땀과 피가 섞였다.
서로의 결핍이 맞닿는 순간이었다.
시현은 자신의 공포를 채워줄 목소리가 필요했고, 도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뒤틀린 욕망이 지금, 이 바닥에서, 몸을 섞으며 비로소 하나로 엮이고 있었다.
사정은 거의 동시에 찾아왔다.
시현이 도하의 직장 깊숙이 정액을 쏟아냈다. 따뜻한 액체가 배 안을 가득 채우는 감각. 도하도 시현의 배 위에 정액을 흘렸다. 하얀 액체가 복근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시현의 성기가 아직 도하의 몸 안에 박혀 있었다.
"도하야."
시현이 불렀다.
도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목이 너무 아파서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이제부터 무대 밖에서도... 내 말 들을 거지?"
도하는 깜빡였다.
"이 계약... 이제 끝이야."
시현이 천천히 도하의 몸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대신 새로운 규칙. 무대 밖에서는 네가 내 거야. 무대 위에선 내가 네 거고."
시현의 손이 도하의 목을 감쌌다. 상처투성이의 피부 위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네 목소리, 나한테 줘. 망가질 때까지. 그리고 망가진 다음에도—"
그때 대기실 TV가 저절로 켜졌다.
리모컨이 눌린 것도 아닌데.
화면 가득히 뉴스 속보가 떴다.
[속보] 가수 유리아, 금일 오후 8시 긴급 기자회견... "톱스타 S씨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니저의 실태 폭로 예정"
시현의 손이 멈췄다.
도하의 목에서 손을 떼고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TV가 산산조각 났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어졌다.
하지만 자막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하의 망막에, 시현의 눈동자에, 그 문장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매니저의 실태 폭로 예정.'
시현이 이를 갈았다.
"유리아... 네가 끝까지 이렇게 나온다면..."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도하는 망가진 목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현은 그 입 모양을 읽었다.
'하지 마. 제발.'
시현은 도하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너는 가만히 있어. 이번엔 내가 지킬 차례야."
그 말과 함께 대기실 문이 열렸다.
한지우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시현아! 유리아가 방금 기자회견 시간을 당겼어! 한 시간 뒤야!"
시현이 천천히 일어났다. 벗겨진 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바라봤다.
"한 시간이면 충분해."
"뭐 하게?"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앉아 있는 도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같이 가."
도하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났다. 몸 안에 남아 있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현은 그걸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도하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내 거라는 걸... 모두에게 보여줄 시간이야."
한지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현아, 무슨 생각이야? 설마—"
시현이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더 이상 숨기지 않는, 모든 걸 드러내는 웃음.
"무대가 끝나야 진짜가 시작된다고 했잖아."
그가 도하의 손을 잡았다.
"이제부턴 무대 밖에서도, 내 목소리를 들어줘."
도하는 시현의 손을 마주 잡았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답은 필요 없었다.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산산조각 난 TV의 잔해만이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