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목구멍에서 불이 났다.

도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것만으로도 칼날이 성대를 긁는 느낌이었다. 손을 뻗어 침대 옆 탁자 위의 물컵을 집어 들었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날것의 통증만 선명해졌다.

일어나려고 상체를 세우는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왔다.

“컥…….”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기침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갈라진 숨소리만 새어나왔다. 도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병원에서 보낸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김영훈 이비인후과] 정도하님, 오늘 오전 10시 검진 예약 있습니다. 성대 내시경 촬영 예정이오니 금식 유지해주십시오.

시계를 확인했다. 7시 42분.

병원 가기 전에 회사에 들러야 했다. 오늘도 콘서트였다. 어제보다 더 큰 규모였다. 2만 석. 도하는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었다. 시현에게 보낼 메시지를 타이핑했다.

[정도하] 오늘 리허설 2시부터입니다. 그 전에 인이어 채널 테스트 한 번만 하시겠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 너머로 어젯밤 대기실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시현의 이빨이 목에 박히는 감각. 숨이 막혀 신음조차 내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오르가즘 직전에 시현이 귀에 속삭였던 말.

‘이 목소리가 내 거였으면 좋겠다.’

도하는 눈을 감았다 뜨며 메시지를 전송했다. 답장은 3초 만에 왔다.

[서시현] 바로 갈게. 거기 있어.

짧았다. 거기 있어. 그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도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목에 난 멍이 선명했다. 시현의 입술이 빨아들인 자국이 쇄골 위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누르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멍든 피부 아래로 성대가 울렸다. 도하는 셔츠 칼라를 최대한 올렸다. 그래도 가려지지 않는 부분은 파운데이션으로 덮었다.

***

숙소를 나서기 전에 시현이 문을 두드렸다. 노크도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문을 세 번 친 뒤 바로 손잡이를 돌렸다. 도하는 현관에 서서 구두 끈을 매다가 고개를 들었다.

“리허설 장소에서 뵙기로…….”

“목소리.”

시현이 도하의 말을 잘랐다. 현관 등 아래서 시현의 얼굴은 반쯤 그늘져 있었다. 눈동자만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시현은 한 걸음 다가서더니 도하의 턱을 손가락으로 받쳐 올렸다.

“말해봐.”

“……뭐라고요.”

도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는 낮고, 음절 끝마다 바람이 새는 잡음이 섞여 있었다. 시현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좋네.”

시현의 엄지손가락이 도하의 입술을 스쳤다.

“오늘 무대. 진짜 중요해. 알지?”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의 손가락이 입술에서 목으로 내려왔다. 칼라를 젖히자 숨겨둔 멍이 드러났다. 시현은 그 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어제 자신이 남긴 자국을 확인하는 손길이었다.

“아파?”

“……괜찮습니다.”

“거짓말.”

시현은 손가락으로 멍을 눌렀다. 도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통증이 성대까지 타고 올라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날카롭게 찔렀다. 시현은 그 반응을 지켜보며 손을 뗐다.

“오늘 하루만 더 버텨. 무대 끝나면 병원 같이 가줄게.”

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현이 모르는 사실. 병원 예약은 이미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검진 결과는 아마도 시현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내용일 가능성이 컸다.

***

소속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수빈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하를 보자마자 눈썹이 올라갔다.

“야, 너 목소리 왜 이래?”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감기? 어제까진 괜찮았잖아.”

수빈이 다가서며 도하의 얼굴을 살폈다. 이 친화력 좋은 로드 매니저는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 대신 손에 쥐고 있던 텀블러를 건넸다.

“꿀차야. 내가 타왔어. 마셔.”

“감사합니다.”

도하가 텀블러를 받아 드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도하 씨.”

한지우였다. 도하의 직속 상사이자 이 소속사의 수석 매니저. 그녀는 팔짱을 끼고 도하를 훑어보는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 콘서트 매뉴얼 다시 확인했어요?”

“네. 인이어 채널은 이미 세팅 완료했고, 비상용 백업 라인도 점검했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한지우의 시선이 도하의 목에 멈췄다. 칼라로 가려지지 않은 멍의 끝자락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가, 시선을 거두며 덧붙였다.

“……오늘 무대. 실수 없어야 해요.”

도하는 고개를 숙였다. 한지우가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시현 씨 컨디션이 너한테 달려 있다는 거. 너도 알지?”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리허설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도하는 콘솔 박스에 앉아 인이어 채널을 체크했다. 무대 위에서 시현이 안무 팀과 동선을 맞추는 동안, 도하는 마이크를 켜고 목소리를 불어넣었다.

“채널 테스트합니다. 들리세요?”

인이어 너머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잠겨 있었다. 바람 빠진 벨로우즈 같은, 망가진 악기 같은 소리였다. 그런데도 시현은 무대 위에서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잘 들려.’

그 입 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도하는 계속해서 시현의 귀에 말을 걸었다. 동선을 안내하고, 템포를 체크하고, 호흡 타이밍을 불어넣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목소리는 거의 숨소리에 가까워졌다. 도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성대가 물리적으로 망가져 가고 있었다. 점막이 붓고, 성대 주름이 제대로 접히지 않는 감각이 손에 잡힐 듯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시현이 콘솔 박스로 내려왔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숨은 아직 가쁘게 들렸다. 시현은 도하의 옆에 서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척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무대 끝나고. 대기실.”

도하는 고개를 들었다. 시현의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지만, 시선의 초점은 화면 너머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일정 확인해볼게요.”

“아니.”

시현이 몸을 돌렸다. 땀에 젖은 팔이 도하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오라고.”

***

콘서트는 오후 6시에 시작됐다.

2만 명의 함성은 공연장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시현이 무대 중앙으로 올라서자 조명이 한 점으로 집중됐다. 도하는 콘솔 박스에서 헤드셋을 쓰고 인이어 채널을 열었다.

“자, 시작합니다. 첫 곡은 인트로부터 템포 느리게 가져가세요. 카메라 3번 잡히면 웃을 타이밍입니다.”

도하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현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인이어 너머로 전해지는 갈라진 숨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고, 미소 지었다. 도하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걸 느끼며 계속 말을 이었다.

“다음 소절, 고음 올리기 전에 심호흡…… 지금, 지금 하세요.”

시현이 무대 위에서 숨을 들이쉬었다. 고음이 터져 나왔다. 완벽했다.

“잘했어요. 다음 블록, 팬 서비스 타임. 왼쪽 스탠딩 석 먼저……”

도하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갔다. 말을 할 때마다 성대가 긁히는 게 느껴졌다. 통증은 이제 익숙해졌다. 오히려 그 통증이 도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시현을 위해 목소리를 소모한다는 사실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 무대에 필수적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착각이 도하를 붙들고 있었다.

두 시간의 콘서트가 끝났을 때, 도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어도 공기만 새어나왔다. 성대가 완전히 닫혀 버린 것 같았다. 도하는 헤드셋을 벗고 콘솔 박스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귀가 먹먹했다. 2만 명의 함성이 빠져나간 공연장은 적막했고, 그 적막 속에서 도하의 목구멍은 불타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시현이었다.

[서시현] 대기실. 지금.

***

대기실 문을 열자, 시현은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샤워를 마친 듯 머리칼은 젖어 있었고, 검은 티셔츠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도하가 들어서자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문 잠가.”

도하는 뒤돌아 문을 잠갔다. 철컥.

잠금 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대기실 안은 조용했다. 공조 장치의 낮은 기계음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바닥에 짓눌러 놓고 있었다.

시현이 손짓했다. 오라는 뜻이었다.

도하는 소파 앞으로 걸어갔다. 입을 열어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움직일 뿐 아무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시현은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말 못해?”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의 손이 올라와 도하의 손목을 잡았다. 잡아당기자 도하의 몸이 소파 위로 쓰러지듯 기울었다. 시현은 도하의 몸을 받아내며 소파 등받이 쪽으로 밀었다. 도하의 등이 쿠션에 닿았다.

“이런 목소리도 내 거니까 좋아.”

시현이 도하의 목에 손가락을 얹었다. 멍이 든 자리를 따라 손끝이 움직였다. 도하는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좁아진 성대 사이를 억지로 통과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시현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감았다.

“또 내줘. 그 소리.”

도하가 숨을 내쉬었다. 갈라진 숨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시현은 그 소리에 맞춰 도하의 목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쇄골을 따라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 턱 밑을 스쳤다.

“오늘은 네가 말 못하게 해줄게.”

시현이 도하의 티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천천히. 단추가 풀릴 때마다 도하의 가슴이 드러났다. 시현은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병을 집어 들었다. 윤활제였다. 대기실 구급함에 비치된 의료용 젤이었지만, 시현은 아무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었다.

차가운 젤이 도하의 목에 닿았다.

시현은 손가락으로 젤을 펴 바르며 도하의 목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이 성대가 위치한 부위를 따라 천천히 원을 그렸다. 압력이 가해질 때마다 도하의 목 안쪽에서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아파?”

시현이 물었다. 도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눈을 감았다. 시현의 손가락이 목에서 내려와 쇄골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다. 젤이 묻은 손끝이 유두를 스쳤다. 도하의 몸이 움찔했다.

“여긴 아프지 않네.”

시현은 도하의 반응을 확인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젤이 체온에 데워지며 미끄러움이 더해졌다. 시현은 한 손으로 도하의 가슴을 애무하면서 다른 손으로 자신의 바지를 풀었다.

도하는 눈을 떴다. 시현의 성기가 이미 단단하게 발기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스며 나와 있었다. 시현은 무릎으로 도하의 허벅지를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오늘은 입도 필요 없어.”

시현이 도하의 바지를 벗겼다. 속옷까지 한 번에 내렸다. 도하의 성기도 반쯤 발기해 있었다. 시현은 거기에는 손을 대지 않고, 대신 윤활제를 손에 덜어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그리고 도하의 엉덩이 아래에 쿠션을 받쳐 넣었다.

“숨만 쉬어. 그걸로 충분하니까.”

시현의 성기 끝이 도하의 항문에 닿았다. 차가운 젤과 뜨거운 체온이 동시에 느껴졌다. 도하는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시현이 허리를 밀어 넣었다.

“……!”

도하의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닫혀 있어 비명조차 공기만 새어나왔다. 시현의 성기가 천천히 도하의 내벽을 밀어 넣으며 들어왔다. 꽉 조이는 압력이 시현의 성기 전체를 감쌌다.

“좋아…… 이 느낌.”

시현은 허리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성기 전체가 도하의 몸 속으로 사라졌다. 도하는 손으로 소파 쿠션을 움켜잡았다.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계속 새어나왔다. 그 소리가 시현을 흥분시키는 게 보였다. 시현의 눈동자가 확장되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말 못하는 너. 내 거 같아서 좋아.”

시현이 허리를 빼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 시현의 성기가 도하의 전립선을 스칠 때마다 도하의 허리가 들썩였다. 신음소리를 내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신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만 빠르게 들락거렸다.

시현은 도하의 상태를 즐기는 듯했다. 한 손으로 도하의 입을 막았다. 손바닥이 입술과 코를 반쯤 가렸다.

“숨소리도 내 거야. 다 내 꺼.”

시현의 허리 움직임이 빨라졌다. 젤과 체액이 섞여 찰박거리는 소리가 대기실에 울렸다. 시현의 성기가 도하의 내벽을 마찰할 때마다 도하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입이 막힌 채로, 목소리를 잃은 채로, 도하는 시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배당하는 감각이, 오히려 도하를 더 깊은 쾌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말할 수 없다는 것. 저항할 수 없다는 것. 시현의 소유물처럼 다뤄지는 것. 그 모든 것이 도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결핍을 건드렸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유욕. 그 욕망이 시현에게 지배당하는 이 순간에 기묘하게 충족되고 있었다.

시현이 도하의 목에 입술을 가져갔다. 멍이 든 자리를 혀로 핥았다. 도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시현은 그 떨림을 느끼며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이 목소리…….”

시현이 속삭였다. 숨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도하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 목소리가 내 거였으면 좋겠다.”

도하의 눈이 커졌다.

시현의 손가락이 도하의 목에 난 상처를 더듬었다. 어제 자신이 이빨로 남긴 자국. 거기에 입술을 대고 시현이 중얼거렸다.

“완전히 내 꺼. 네가 내는 모든 소리. 네 목숨 붙은 이 목소리. 전부.”

도하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오르가즘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성기가 만져지지도 않았는데, 전립선을 계속 자극당한 탓에 도하는 사정했다. 흰 액체가 도하의 배 위로 뿌려졌다. 동시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통증이 쑤셨다. 쾌락과 고통이 뒤엉켜 도하의 의식을 잠식했다.

시현은 도하가 절정에 달하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몇 번 더 허리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도하의 몸 깊숙한 곳에 사정했다. 뜨거운 액체가 도하의 내벽을 채우는 감각이 느껴졌다.

잠시 후, 시현은 천천히 성기를 빼냈다. 정액이 도하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현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도하의 입술에 발랐다.

“맛봐.”

도하는 입술을 열었다. 손가락을 빨았다. 짜고 쓴 맛이 혀에 퍼졌다. 시현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넌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네.”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고, 몸은 아직 오르가즘의 여운에 떨리고 있었다. 시현은 도하의 옆에 누워 손을 뻗어 도하의 목을 감쌌다. 손바닥이 성대가 위치한 부위를 완전히 덮었다.

“이거. 영원히 내 거였으면 좋겠다.”

시현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서와는 전혀 다른 톤이었다. 낮고, 집요하고, 어두운 욕망이 배어 있었다. 도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계약이 아니다.

이건 집착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집착에 중독되고 있다.

***

병원 검진은 예정대로 오전 10시에 이루어졌다.

도하는 시현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병원을 찾았다. 성대 내시경 촬영은 15분 정도 걸렸다. 국소 마취된 상태로 내시경 튜브가 코를 통해 목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침묵했다. 도하는 그 침묵이 진단보다 더 무서웠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에 앉았을 때, 의사의 표정은 무거웠다.

“정도하 씨.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의사가 모니터를 돌려 도하에게 보여줬다. 성대 내시경 이미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도하의 성대는 정상적인 분홍빛이 아니라 짙은 붉은색으로 부풀어 있었다. 성대 주름 가장자리에는 작은 결절이 여러 개 보였다.

“성대 점막이 심하게 부었고, 양쪽 성대에 결절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지금처럼 성대를 혹사하면…….”

의사가 말을 멈췄다. 도하는 침착하게 물었다.

“영구적 손상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최소 3주간은 절대적 음성 휴식이 필요합니다.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속삭임조차 성대에 무리를 줍니다. 만약 이걸 무시하고 계속 목소리를 사용하시면, 성대 주름이 섬유화되어 영구적인 음성 장애가 올 수 있습니다.”

도하는 의사의 말을 고스란히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눌렀다. 의사가 처방전을 건넸다.

“소염제와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처방해드릴게요. 그리고…….”

의사가 도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직업이 매니저라고 하셨죠? 무대 관련 일이면 목소리를 많이 쓰실 텐데…… 당분간은 절대 안 됩니다. 이대로 가면 정말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도하는 처방전을 받아 쥐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알겠습니다.”

***

병원을 나서며 도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시현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가 있었다. 오늘 저녁 콘서트 스케줄 확인 메시지. 그런데 문자를 타이핑하는 대신, 도하는 병원 처방전을 가방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시현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어떻게 될까. 시현은 아마도 망설일 것이다. 무대를 포기할까. 그럴 리 없었다. 시현은 무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도하의 목소리를 포기할까. 그럴 리도 없었다. 시현은 이미 도하의 목소리에 중독되어 있었다.

결국 시현이 선택할 것은 하나였다. 도하의 목소리가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용하는 것. 그리고 도하는…… 아마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도하는 스마트폰을 열고 시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도하] 오늘 저녁 콘서트, 인이어 세팅 완료했습니다.

거짓말. 병원 검진 결과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저녁 콘서트 전, 대기실에서 시현이 도하에게 작은 케이스를 건넸다.

“이게 뭐죠.”

도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시현은 케이스를 열어 보였다. 안에는 맞춤형 인이어가 들어 있었다. 일반 공연용 인이어보다 훨씬 작고, 살구색이라 귀에 꽂아도 거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새로 맞췄어. 네 전용.”

“……제 전용이요?”

“무대 밖에서도 이거 끼고 있어.”

시현은 도하의 손을 잡아 인이어를 쥐여주었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 목소리 들을 수 있게.”

도하는 인이어를 내려다봤다. 작은 기계 장치 하나가 자신을 시현에게 묶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건 족쇄가 아니라 탯줄일지도 몰랐다. 잘라내면 둘 다 죽는. 그런.

“부담스러워?”

시현이 물었다. 도하는 고개를 들었다. 시현의 눈은 평온해 보였지만, 그 평온함 아래에 불안이 숨어 있었다. 도하가 거절할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

“……아닙니다.”

도하는 인이어를 손에 쥐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에 박혔다. 시현은 도하의 대답을 듣고서야 미소를 지었다. 안심했다는 듯한 미소였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꽂아.”

도하는 인이어를 오른쪽 귀에 꽂았다. 순간, 외부 소리가 차단됐다. 대기실의 공조 장치 소리도, 복도 너머 스태프들의 발소리도, 모든 것이 멀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시현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들려?”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도하의 손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무대 밖에서도. 오직 내 목소리만 들어.”

***

그날 밤, 콘서트가 끝나고 모든 스태프가 철수한 공연장.

도하는 홀로 대기실 복도를 걷고 있었다. 목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마저 마비된 것 같았다. 아니면 너무 심한 통증에 몸이 적응해버린 걸지도 몰랐다.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도하는 걸음을 멈췄다.

화장실 입구에서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긴 생머리. 완벽한 메이크업. 짙은 립스틱. 유리아였다. 그녀는 도하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어머.”

유리아가 다가왔다.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렸다. 그녀는 도하의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 완전히 망가졌네?”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시현 오빠가 너 때문에 망가질까 봐 걱정돼.”

유리아의 손이 올라와 도하의 목을 스쳤다. 시현이 남긴 멍 바로 위를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

“너랑 있으면…… 오빠가 불쌍해지잖아. 약해지고.”

유리아는 도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예전엔 안 그랬어. 나랑 있을 땐 완벽했지. 무대도, 사생활도. 그런데 너는…… 오빠를 망가뜨리기만 하잖아.”

도하는 숨을 들이켰다.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유리아는 한 걸음 물러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분명히 적의를 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확신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곧 알게 될 거야. 네가 오빠 옆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유리아가 돌아섰다. 하이힐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져 갔다. 도하는 그 자리에 서서 유리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오른쪽 귀에 꽂힌 인이어가 조용히 노이즈를 내고 있었다.

아직 시현은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시현은 또 요구할 것이다. 목소리를. 언제나처럼. 도하의 모든 것을.

도하는 인이어를 만지며 생각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집착을 끊을 수 없다.

아니, 끊고 싶지 않다.

병원 처방전은 아직 가방 속에 있었다. 의사의 경고는 귓가에 남아 있었다. 유리아의 협박은 피부를 핥고 지나갔다. 그 모든 위협 속에서도, 도하는 시현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이어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연결을 알리는 낮은 비프음.

그리고 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야.”

도하는 눈을 감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현에게는 숨소리만으로도 전부 전해질 테니까.

“듣고 있어?”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이어 너머로 시현이 낮게 웃었다.

“오늘 밤. 호텔로 와.”

도하의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유일한 대답이었다.

시현은 그 소리를 듣고 숨을 들이켰다. 마치 그 숨소리마저 삼키려는 듯이.

“기다릴게.”

인이어가 끊겼다. 적막.

도하는 복도에 홀로 서서, 조용히 목을 감쌌다.

내일이면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영원히.

그래도.

그래도 그는, 오늘 밤 시현에게로 갈 것이다.

그것이 계약이니까.

아니, 계약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어둡고 깊은 어떤 것.

중독.

서로를 망가뜨리는 중독.

도하는 복도를 걸어나갔다.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벽에 달라붙었다. 공연장 밖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시현이 보낸 호텔 주소가 떠 있었다.

도하는 택시를 불렀다. 목적지를 입력했다.

비가 창문을 때렸다. 와이퍼가 시야를 닦아낼 때마다 번지는 빗방울 사이로, 도하는 자신의 목을 감싼 손을 내려다봤다.

목소리.

그것만이 자신의 전부였다.

그리고 시현은 이미 그것을 가져갔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지키는 일과, 그것을 바치는 일 사이에서 갈라지는 심장뿐이었다.

택시가 빗속을 달렸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다. 도하는 뒷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무대가 끝나야 진짜가 시작된다.

그리고 진짜는, 언제나 새벽 세 시에 찾아온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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