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크로포드가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라일라의 마력 회로가 먼저 반응했다. 척추를 따라 전율이 타고 올라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검은 벨벳 드레스가 바닥을 스치며 그녀가 걸어올 때마다 라일라의 손끝이 저릿하게 마비되어 갔다. 은발은 정교한 올림머리로 틀어올려졌고, 목에는 별모양 사파이어 펜던트가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라일라는 계단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에단 하트포드 경.”
이사벨라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부드러워서 오히려 응접실 구석까지 닿았다. 그녀는 마치 주인처럼 팔을 벌리며 다가갔다. 그 움직임에 라일라의 마력 회로가 다시 한 번 불쾌하게 진동했다. 이질적인 마력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 자신의 마력핵을 은근히 압박해왔다.
“계약혼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인사라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낮의 에단이 벽난로 앞에서 몸을 돌렸다. 검은 기사단장 예복, 완벽하게 여며진 단추, 왼쪽 가슴에는 황혼 기사단의 황금 문장.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무표정했다.
“크로포드 경. 예고 없이 방문하다니.”
“예고가 필요한 사이였나요, 우리?”
이사벨라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에단은 3초쯤 망설이다 그 손을 잡았다. 입가에 억지로 붙인 미소가 보였다. 라일라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이사벨라의 마력이 에단의 손등 위로 은밀하게 스며드는 게 보였다. 그녀는 에단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고위 마법사였다. 백탑의 의회 의원이자, 제국 황실의 마법 자문관. 그리고 에단의 옛 약혼녀.
“라일라 이스테반 씨.”
이사벨라의 시선이 계단 위로 향했다. 미소는 여전했지만 눈빛은 달랐다. 해부하듯 천천히 라일라의 얼굴을 훑는 눈. 그녀가 라일라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 약간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무엇보다 목덜미에 남은 붉은 자국을 포착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밤새 마력 조율을 하셨나 보군요. 피곤해 보여요.”
라일라는 턱을 치켜들며 이사벨라의 시선을 마주받았다. 시야 가장자리가 순간적으로 일렁이며 흐려졌다. 마력 회로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탓이었다. 손끝이 저릿하게 마비되어 손톱으로 손바닥을 찔러도 감각이 무뎠다. 이 여자는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이 목의 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로포드 경.”
라일라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하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마력이 발끝에서 바닥으로 스며들며 미세한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러였다. 이사벨라 앞에서 약해 보일 생각은 없었다.
“걱정이죠. 당연히.”
이사벨라가 품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열자 안에는 은빛 브로치가 놓여 있었다. 중앙의 마력석 주변으로 고대 룬 문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력 안정화 브로치예요. 백탑에서 연구 중인 최신 마법 도구인데, 마력 폭주가 임박한 마법사들에게 특히 효과가 좋다고 하더군요.”
라일라의 눈이 브로치에 새겨진 룬 문자를 더듬었다. 순환, 전이, 그리고 속박. 세 개의 룬이 삼각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마력의 흐름을 안정화시키는 게 아니라, 마력을 외부로 빼내는 회로였다.
“과분한 선물이네요.”
“당신의 마력 폭주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백탑의 원로분들이.”
이사벨라가 브로치를 집어 라일라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라일라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자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착용을 도와드릴까요?”
“됐습니다.”
라일라는 브로치를 받아 손바닥에 올렸다. 닿는 순간 룬 문자가 미세하게 빛났다. 역시 속박 마법이다. 이걸 착용하면 내 마력은 안정되는 게 아니라 이사벨라에게 흘러들어갈 것이다.
“고맙게 간직하죠.”
라일라는 브로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마커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는 절대 몸에 지니지 않을 것이다.
이사벨라의 시선이 잠시 브로치가 사라진 주머니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에단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라일라에게 보여준 위장된 호의는 사라지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오래된 소유권을 주장하는 눈빛.
“에단 경, 잠시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황혼 기사단의 마나 중독 치료 현황에 대해 보고드릴 게 있어서요.”
에단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라일라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재로 가지.”
둘이 나란히 서재로 향하는 뒷모습을 라일라는 응접실 한가운데 서서 바라보았다. 이사벨라의 검은 드레스가 에단의 검은 예복 옆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마치 원래 그 자리가 그녀의 것인 양.
라일라의 손이 저도 모르게 가슴께로 올라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질투라는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위장에 뜨거운 쇳덩이가 얹힌 것 같은 감각. 손끝이 저리고 마력 회로가 불쾌하게 진동했다.
계약서 1조. ‘갑과 을의 관계는 순수한 마력 조율을 위한 의료 행위에 국한된다.’
그걸 내가 왜 잊은 거지.
라일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찔렀다. 이성은 계약의 조항을 반복했지만, 가슴속에서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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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에 위치한 서재 문이 닫혔다.
라일라는 자신의 발이 서재 쪽으로 향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신경을 잠식했다. 그녀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마력을 억제하며 숨을 죽였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라, 자네가 정말 보고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
에단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물론 아니죠. 라일라 이스테반의 마력 폭주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이사벨라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당신의 마나 중독도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그녀와의 마력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죠.”
“그건 내 일이다.”
“아니요, 제국 전체의 일이에요. 황혼 기사단장이 마나 중독으로 쓰러지면 북부 변경의 방어선에 구멍이 뚫려요. 당신도 알죠?”
침묵.
“백탑은 대체 마법사를 보내겠다고 제안했어요. 라일라 이스테반보다 더 경험 많고 안정적인 마력 조율사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에요.”
라일라의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 마력 회로가 폭주 직전의 경고음을 울리며 손끝의 마비가 팔목까지 번져올랐다.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식어가며 감각이 사라졌다.
“거절하지.”
에단의 대답은 예상보다 빨랐다. 너무 빨랐다. 그 목소리가 라일라의 귀에 닿자, 마비가 멈칫했다.
“왜죠? 그녀의 마력은 불안정하고, 당신은 그녀와 접촉할 때마다 마력 오염이 심해지고 있어요. 이건 내가 직접 확인한——”
“거절했다.”
에단의 목소리가 단호함을 넘어 분노 직전까지 올라갔다. 라일라는 그런 낮의 에단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사벨라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당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함께 기사단 훈련을 받을 때도, 내가 백탑의 의원이 되고 나서도 당신은 항상 이성적인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
“그만.”
“당신 목에 난 자국, 내가 못 봤을 거라 생각했나요? 그 마녀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크로포드 경.”
에단이 그녀의 성을 불렀다. 정확히 그 순간, 서재 안의 마력이 급격히 위축되는 게 라일라의 감각에도 느껴졌다.
“내 계약자에 대한 모욕은 삼가 주시지.”
라일라는 벽에 기댄 채 입을 틀어막았다.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봐서였다. 계약자. 그 단어가 에단의 입에서 나왔다. 이사벨라 앞에서. 옛 약혼녀 앞에서. 손끝의 마비가 서서히 풀리며 감각이 돌아왔다.
서재 문이 열렸다. 이사벨라가 먼저 걸어나왔다. 그녀는 복도에 서 있는 라일라를 보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 대신 차갑게 식은 분노가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당신의 마력이 에단 경을 좀먹고 있어요.”
그녀가 라일라의 귀에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와 속삭였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당신이겠죠. 타인의 욕망을 읽는 자여.”
라일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그런 그녀의 침묵을 확인하고는 입가를 비틀며 저택 현관으로 걸어갔다.
서재 문가에 에단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라일라는 알았다. 숨소리가 평소보다 거칠었다. 오른손 검지가 예복 옆선을 따라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를 강하게 억누를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라일라.”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사벨라 경은……”
“알아요.”
라일라는 그의 말을 자르며 돌아섰다.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계약서에 따라 행동하시면 됩니다. 기사님. 저는 그저 마력 조율 도구일 뿐이니까.”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차갑게 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라며 복도를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돌바닥에 울렸다. 뒤에서 에단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라일라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가슴속이 불타고 있었다. 질투, 분노,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유욕.
그녀는 달렸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향하는 내내 마력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마력 회로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마력 폭주의 전조 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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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라일라는 마력 조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밤의 에단을 피해 침실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손바닥에는 아직도 이사벨라에게서 받은 브로치의 차가운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슴속에는 낮 동안 억누르지 못한 감정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저런 얼굴을 보일 수 있다니.
이사벨라와 서재에서 마주 앉아 있던 에단을 떠올리자 손끝이 저렸다. 이건 계약 위반도, 마력 폭주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내가 원했다.
문을 열었다.
마력 조율실 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벽난로의 붉은 불빛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그 앞에 밤의 에단이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오늘은 도망치지 않는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다. 하지만 라일라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 걸음, 두 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마력 조율실의 문이 뒤에서 저절로 닫혔다.
“라일라.”
밤의 에단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눈동자가 벽난로 불빛을 받아 녹은 금처럼 빛났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그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라일라는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냄새가 폐를 채웠다. 철과 가죽,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은은한 마력의 잔향.
“오늘은 내가 당신을 원합니다, 기사님.”
라일라는 손을 뻗어 그의 예복 깃을 잡았다. 검은 천이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락거렸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계약서엔 없던 조항이지만.”
밤의 에단의 숨소리가 불규칙해졌다. 그의 손이 라일라의 허리께로 올라오려다가 멈칫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맹수 같은 집요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마치 처음으로 길들여지는 짐승처럼 굳어 있었다.
“당신…… 오늘 무슨 일이 있었지.”
“상관없어요.”
라일라는 그의 옷깃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에단의 상체가 그녀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녀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거칠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주도하는 입맞춤이었다. 혀가 그의 입술을 열고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의 입 안은 뜨거웠고, 마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라일라는 그의 혀를 빨아들이며 한 손으로 그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읏……”
밤의 에단의 목구멍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황한 소리였다.
라일라는 입술을 떼지 않은 채 그의 예복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단추, 두 번째, 세 번째. 검은 예복 아래로 그의 단단한 가슴이 드러났다. 벽난로 불빛이 근육의 굴곡을 따라 그림자를 만들었다.
“라일라, 잠시……”
“싫어요.”
그녀는 그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손바닥이 닿은 피부가 뜨거웠다. 그와 동시에 환영이 스쳤다. 이사벨라와 함께 서 있던 낮의 에단의 뒷모습. 자신을 향해 돌아서지 않던 그 무표정한 얼굴.
라일라는 이를 악물고 에단의 몸을 벽난로 옆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평소라면 그가 그녀를 구속구로 묶고 던졌을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그를 밀어붙였다. 에단의 무릎 뒤가 침대 모서리에 닿자 그는 균형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오늘 당신은……”
라일라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치마가 그의 허벅지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의 손목을 잡아 침대 시트 위로 밀어붙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밤의 에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마력이 그의 몸에서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라일라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의 목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목덜미, 쇄골, 가슴 중앙의 흉터.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입술과 혀로 그의 피부를 핥았다. 짠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하아……”
에단의 입에서 처음으로 억제되지 않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의 손이 라일라의 허리를 잡으려고 움직였다. 그녀는 즉시 그의 손목을 다시 세게 눌렀다.
“움직이지 마요.”
명령이었다.
밤의 에단의 온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나타난 감정은 욕망이 아니었다. 복종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적 없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복종.
그 순간, 라일라의 마력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의식 표면을 스쳤다. 그리고 보았다. 밤의 에단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환영을. 낮의 자신이 그녀를 밀어내고, 차갑게 대하고, 계약의 틀 안에 가두려 할 때마다 밤의 그는 그 낮의 자신을 증오해왔다. 낮의 에단이 지키려는 모든 규율과 명예가, 사실은 그녀를 향한 욕망을 감추기 위한 비겁한 방패라고 여겨왔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스스로 다가와 명령할 때, 그는 마침내 그 방패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한다면, 모든 통제권을 넘기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유일한 해방이었다.
라일라는 그의 바지를 풀었다. 이미 단단해진 성기가 천 위로 드러났다. 귀두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투명한 액체가 끝에서 조금 배어나와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귀두를 감싸쥐자, 그의 복부 근육이 그녀의 손길에 맞춰 경련하듯 수축했다.
“으……읏……”
에단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허벅지가 긴장으로 떨렸다. 라일라는 그의 반응을 내려다보며 속옷을 벗고 그의 위에 올라탔다. 이미 질 안은 젖어 있었다. 아니, 낮부터 계속 젖어 있었다. 이사벨라를 본 순간부터, 에단이 그녀를 ‘계약자’라고 부른 순간부터.
“당신……”
밤의 에단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의 눈이 그녀의 질과 자신의 성기 사이를 오갔다.
라일라는 대답 대신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성기의 끝이 질 입구에 닿았다. 뜨거웠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한 번에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읏……!”
질벽이 성기를 빈틈없이 감쌌다. 평소보다 깊고, 뜨겁고, 강렬했다. 그녀가 주도하는 삽입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그녀의 속도, 그녀의 깊이, 그녀의 리듬.
라일라는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질 내부의 주름이 성기를 따라 움직이며 마찰했다. 애액이 섞여 점점 더 미끄러워졌고, 물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
“하아…… 하아……”
라일라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속도를 높였다. 골반이 그의 허벅지에 부딪칠 때마다 피부가 찰싹이는 소리가 났다. 질 깊은 곳이 짜릿하게 조여들었다.
에단의 성기가 질벽을 벌리고 더 깊이 들어왔다. 귀두가 자궁 입구를 건드릴 때마다 쾌락이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손을 짚고 리듬을 더 빠르게 가져갔다.
밤의 에단은 그녀의 아래에서 숨을 헐떡였다. 그의 손이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등의 흉터가 불빛에 반짝였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어떤 표정보다 무방비했다. 복부 근육이 그녀의 리듬에 맞춰 경련하듯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고, 허벅지 안쪽의 힘줄이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라일라…… 제발……”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간절함 그 자체였다. 애원에 가까웠다. 그의 성기가 질 안에서 맥동치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가 라일라의 심장을 찔렀다. 그녀는 상체를 숙여 그의 입술을 덮쳤다. 혀를 밀어 넣으며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질이 경련하듯 수축했다. 클리토리스가 그의 골반 뼈에 눌리며 강한 자극을 일으켰다. 그의 거친 음모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스칠 때마다 짜릿한 전류가 허리춤을 타고 번져갔다.
“으으…… 하……!”
라일라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오르가즘이 물밀듯 밀려왔다. 질벽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성기를 조였다. 애액이 분출하듯 흘러나와 그의 하복부를 적셨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밤의 에단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의 성기가 질 안에서 맥동했고, 이내 뜨거운 정액이 그녀의 질 깊숙한 곳을 채웠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질벽을 따라 정액이 흘러내리는 감각이 생생했다. 그의 고환까지 경련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녀 안으로 쏟아부었다.
라일라는 그의 위에 쓰러졌다. 가쁜 숨이 그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땀이 섞인 피부가 서로 달라붙었다. 벽난로 장작 타는 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마력 조율실을 채웠다.
잠시 후, 밤의 에단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낮의 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거요.”
라일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벽난로 불빛을 받아 녹은 금처럼 반짝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광대뼈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당신을 원하는 게 부끄럽지 않소. 내 모든 욕망이 당신을 향해 있다는 걸, 나는 자랑스러워하오.”
라일라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그의 심장이 벽난로 소리보다 크게 울리고 있었다.
---
아침.
라일라는 눈을 떴다. 마력 조율실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밤의 에단은 사라지고, 대신 식어버린 벽난로 재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질 아래쪽이 욱신거렸고, 허벅지 안쪽에는 마른 정액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력은 안정적이었다. 아니, 안정적을 넘어서 전보다 더 강력하게 흐르고 있었다.
옷을 수습하고 마력 조율실 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세라핀 경이었다.
그녀의 은빛 갑옷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그녀는 라일라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구겨진 옷, 그리고 무엇보다 목에 새로 생긴 붉은 자국을 훑어보았다.
“역시.”
세라핀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당신은 위험한 마녀야.”
그녀가 한 걸음 다가섰다. 갑옷이 금속성 마찰음을 냈다.
“에단 경에게서 마법의 흔적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썩은 꿀 냄새 같은 불쾌한 마력이야. 피부를 기어가는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그분의 마나를 잠식하고 있어.”
라일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계약된 마력 조율의——”
“계약.”
세라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의 손이 검자루로 움직였다.
“내일 정오까지 계약을 파기해. 그렇지 않으면——”
칼집에서 검이 반쯤 빠져나왔다.
“강제로라도 끊어내겠어.”
세라핀의 눈은 광신적인 신념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라일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분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