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문고리를 잡는 순간, 손바닥에 맺힌 식은땀이 놋쇠를 미끄럽게 만들었다.

복도는 이미 그의 영역이었다. 낮에는 엄격한 대리석의 빛을 반사하던 벽이, 지금은 벽난로 너머 스며든 붉은 그림자로 숨을 쉬고 있었다. 공기마저 달랐다. 타오르는 장작의 연기와 와인처럼 진한 향수,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집짐승의 사향 같은 체취.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그 냄새만으로도 피부가 바짝 긴장했다.

*가지 말라 했잖아.*

낮의 에단이 서재에서 건넨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건 경고라기보다 예언에 가까웠다. 그가 내가 이 문을 열 것을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그렇다면 이건 선택이 아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절차일 뿐.

문을 열었다.

어둠이 밀려들어 내 어깨를 감쌌다. 실내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벽난로는 이글거렸지만 불빛은 방 전체를 밝히지 않고 중앙의 침대만을 의도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진홍빛 벨벳 커튼이 사방을 둘러쳐 창문을 완전히 가렸고, 촛대는 단 하나, 침대 옆 탁자 위에서만 꺼질 듯 깜박였다.

그리고 침대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

에단 하트포드. 하지만 낮에 봤던 그가 아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금발은 흐트러져 이마를 덮었고, 기사단 제복은 벗어 던진 채 검은 셔츠의 단추를 절반만 채웠다. 쇄골 아래로 드러난 근육의 선이 불빛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가 깊게 파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눈이었다. 낮의 에단이 얼음처럼 투명한 회색 눈동자로 자신을 철저히 차단했다면, 지금 나를 응시하는 그 눈은 공복의 맹수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마력 조율 시간이군요.”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느릿했다. 낮의 건조하고 정중한 어조가 아니라, 내 이름을 혀로 굴리기라도 하는 듯한 감촉이 담겨 있었다.

“10시입니다. 정확하시네요, 라일라 이스테반.”

내 이름을 부르는 방식마저 달랐다. ‘이스테반 양’이라는 딱딱한 호칭 대신, 성과 이름 사이에 의도적인 공백을 두는 발음. 마치 내 존재를 한 글자씩 음미하는 것 같았다.

“계약서에 명시된 접촉 범위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나는 냉정을 가장하며 한 걸음 들어섰다. 등 뒤에서 문이 저절로 닫혔다. 마력에 의한 폐쇄가 아니었다. 단지 이 방의 공기가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계약서.”

그가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조차 낮과는 전혀 달랐다. 검은 벨벳이 살결을 스치듯 부드럽고 위험한 진동.

“당신은 계약서의 모든 조항을 읽었다고 생각합니까?”

“서명하기 전에 검토했습니다.”

“아니.”

그가 침대 기둥에서 몸을 떼고 한 걸음 다가왔다. 불과 2미터. 그 짧은 거리 안에서도 그의 움직임은 포식자의 고요함을 닮았다. 장화 굽이 나무 바닥을 짚을 때마다 마루가 미세하게 삐걱였고, 그 소리가 내 척추를 타고 올랐다.

“당신은 *낮의 내가* 보여준 계약서만 읽었을 뿐입니다.”

한 걸음 더.

“밤의 조항은, 읽지 않았을 테니까.”

그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 손가락은 길고 마디가 굵었으며, 검지와 중지 안쪽에는 오랜 검술 훈련으로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 손이 내 뺨을 향해 느리게 다가왔다.

피해야 했다. 한 번의 접촉만으로도 어떤 환영이 밀려올지 알면서도, 내 몸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내 안의 마력 회로와 이미 공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접근이 아니었다. 마력과 마력의 충돌 직전의 전율.

“계약서 제7조 3항.”

그의 손가락이 내 뺨에 닿기 직전, 1센티미터 앞에서 멈췄다. 숨결이 손등을 스치는 거리.

“‘을은 갑의 마력 조율을 위해 야간 일정 시간을 마력 조율실에서 보내야 하며, 이때 갑은 을의 요청이 없어도 필요한 접촉을 개시할 수 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런 조항은 없었습니다.”

“있었죠.”

그의 손가락이 마침내 내 턱밑에 닿았다. 접촉은 가벼웠다. 깃털을 스치듯 살짝. 그러나 그 순간, 내 마력 회로 전체가 불타올랐다.

환영이 쏟아져 들어왔다.

*침대. 이 방의 침대. 내 손목을 붉은 비단 끈으로 머리 위로 묶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흩어져 있다. 그가 내 허벅지를 벌리고 무릎 사이로 파고든다. 입술이 내 귓불을 스치며 “움직이지 마, 조율 중이니까”라고 속삭인다. 그의 혀가 내 쇄골을 핥고, 손가락이 내 속옷을 찢어내듯 벗기고——*

“아……!”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환영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의 욕망이었다. 밤의 에단이 나에게 품은 구체적이고 집요한 환상.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 마력 회로에 직접 유입되어 과부하를 일으켰다. 쾌락이 먼저였다. 클리토리스가 갑자기 노출된 것처럼 예민해지고, 질 안쪽이 허공에 경련했다. 속옷이 순식간에 젖어 허벅지 안쪽으로 애액이 흘러내리는 감각. 동시에 고통이 찾아왔다. 마력 회로가 타인의 욕망이라는 이물질에 오염되며 타는 듯한 작열감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이미 접촉은 시작됐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턱밑에서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쇄골의 오목한 부분을 지나 맥박이 뛰는 목젖 언저리를 스치자, 또 다른 환영이 밀려들었다.

*그가 내 목을 한 손으로 감싸 쥐고, 살짝 조인다. 숨이 막히는 고통과 함께, 질이 젖어드는 전율. “당신의 마력이 나를 원하고 있어.” 그의 엄지가 내 아랫입술을 벌리고——*

“그만……!”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쳐내려 했지만, 손바닥이 셔츠 너머 단단한 흉근에 닿자 오히려 더 깊은 환영이 폭발했다.

*그가 내 위에 엎드려, 내 가슴을 거칠게 움켜쥔다.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비틀자 통증과 함께 젖꼭지가 딱딱하게 발기한다. “읍…… 하……!” 내 입에서 의미를 잃은 소리가 샌다. 그의 성기가 내 허벅지 안쪽을 문지른다. 두껍고 단단한 열기. 귀두가 질 입구를 비집고——*

“으아악!”

비명이었다. 쾌락의 비명인지 고통의 절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무릎이 완전히 꺾여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차가운 나무 마루의 감촉이 젖은 속옷 너머로 전해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폐가 공기를 거부했다. 그의 환영에 오염된 마력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모든 신경 말단을 강제로 발기시켰다.

그런데.

동시에,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력 폭주의 임계점이 오히려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마력 폭주를 막기 위해 타인의 접촉을 차단하고 순결한 마력 축적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욕망이라는 가장 농밀한 오염원에 노출된 지금, 내 마력 회로는 오히려 안정되고 있었다. 과부하로 인한 쾌락과 고통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마치 폭풍의 눈처럼 정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게 무슨…….*

머리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가, 나는 마지막 환영을 똑바로 마주했다.

*내가 침대에 묶인 채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눈물과 침으로 얼룩진 얼굴, 발기한 유두,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질 입구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그가 내 다리를 더 벌리며 자신의 성기를 질 안으로 밀어 넣는다. 충만감과 함께 터져 나오는 내 신음. 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삽입, 질벽을 쓸어내리는 귀두의 감촉, 점점 빨라지는 속도——*

“하……아……”

이제 더 이상 신음인지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루 바닥에 엎드린 채 경련했다. 질이 강하게 수축하며 오르가즘 직전의 예비 경련을 반복했다. 애액이 속옷을 완전히 적셔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렸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젖은 블라우스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절정은 오지 않았다. 그의 환영이 나를 절정 직전까지 몰아붙이고서, 거기서 멈췄다. 마치 의도적으로.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내 쾌락의 해소를 유보시켰다.

“보셨군요.”

그가 무릎을 굽혀 내 시선 높이로 내려왔다. 흐트러진 금발 사이로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입술에 걸린 미소는 만족감이라기보다 굶주림에 가까웠다.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것들을.”

“이건…… 계약 위반입니다……”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 숨이 차서 문장이 끊겼다.

“아니죠.”

그가 손을 내밀어 내 턱을 받쳐 들었다. 엄지로 아랫입술을 쓸어내리자,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 흔들렸다.

“이것이 바로 계약의 핵심입니다. 당신은 내 마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마력 조율을 해야 하고, 나는…….”

그의 엄지가 내 입술을 벌리고 살짝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혀끝이 그의 손가락 굳은살에 닿았다. 짠맛과 희미한 피비린내.

“나는 당신의 마력 폭주를 막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마력을 오염시켜야 하니까.”

그가 손가락을 내 입에서 천천히 빼내며 일어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와,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군요.”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낮아졌다.

“환영만으로는 조율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력 회로가 증명하고 있죠. 절정에 닿지 못한 채 안정되다니,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그가 허리를 굽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저항할 틈도 없이 몸이 침대 쪽으로 끌려갔다.

“계약서 제7조 3항을 다시 읽어보시죠. ‘필요한 접촉’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마력 상태를 보건대…….”

그가 나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봤다. 충혈된 눈동자가 불빛 아래서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무슨…….”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사단장의 무릎이 마루 바닥에 닿는 순간, 권력의 역전이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내 치마를 걷어 올리자, 그 착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환영 속에서 당신은 이미 내 성기를 받아들였죠.”

그의 손가락이 내 허벅지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젖은 속옷 너머로 질 입구의 열기가 손끝에 전해졌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실제로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몸이에요.”

그가 속옷을 옆으로 젖혔다. 차가운 공기가 축축하게 젖은 음부에 닿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왼손이 내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아 벌렸다.

“움직이지 마. 조율 중이니까.”

환영 속에서 들었던 똑같은 대사. 하지만 지금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클리토리스에 직접 닿았다.

“아, 안 돼……!”

그의 혀가 음핵을 핥았다. 환영이 아닌 실제 감각이 척추를 타고 뇌수를 찔렀다. 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의 혀는 굳은살 박힌 손가락과 달리 부드럽고 뜨거웠다. 클리토리스의 꼭대기를 빙글빙글 돌다가, 이내 음핵 전체를 입에 넣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으, 으아……!”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 환영이 아닌 실제 쾌락이 마력 회로를 타고 폭주했다. 질 안쪽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애액을 쏟아냈다. 그의 혀가 음핵을 놓지 않은 채, 손가락 하나가 질 입구를 밀고 들어왔다.

“질벽이 이미 경련하고 있군요.”

그가 혀를 떼고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천천히 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첫 마디, 둘째 마디, 그리고 굳은살 박힌 검지 전체가 질벽을 쓸어내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환영에서 본 대로예요. 내 성기를 삼킬 준비가 된 질이군.”

“그만…… 제발…….”

내 입술이 애원을 토해냈지만, 질은 정직하게 그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다. 질벽이 이물질을 감싸 쥐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의 손가락이 출렁이는 애액 속에서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고 깊게. 마치 실제 성교를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아, 아아……!”

손가락이 질벽의 거친 부분을 스칠 때마다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내 반응을 읽으며 손가락의 각도를 조정했다. 검지와 중지가 함께 삽입되자 질 입구가 이완되며 그를 받아들였다. 두 개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교차하며 벌어지고, 질벽을 문지르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조율을 계속합니다.”

그의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동시에 자극했다. 질 안의 손가락과 음핵 위의 엄지가 리듬을 맞춰 움직이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숨소리만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절정에 도달하세요. 그래야 마력 회로가 완전히 안정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었다. 동시에 질 안의 손가락이 속도를 높였다. 젖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퍽퍽, 질벽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이 애액을 휘저을 때마다 음란한 소리가 났다. 그의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가, 가요…… 아, 아아아악!”

오르가즘이 터져 나왔다. 질이 그의 손가락을 강하게 조이며 경련했다. 애액이 손바닥을 적셨다. 시야가 하얗게 질끈 묶이고, 마력 회로 전체가 폭발하듯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폭주가 아니었다. 완전한 해소. 절정과 함께 마력이 안정되는 역설적인 감각.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모를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침대 위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빠져나왔다.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을 그가 들어 올려, 내 눈앞에서 혀로 핥았다.

“첫 조율은 성공이군요.”

그가 일어서며 촛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음 조율에서는 더 직접적인 접촉이 필요할 거예요.”

그의 시선이 내 벌어진 허벅지 사이, 아직 경련하는 질 입구에 머물렀다.

“내 성기가 당신의 질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진정한 조율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촛불을 입김으로 껐다.

어둠이 삼켰다.

나는 침대 위에 쓰러진 채, 어둠 속에서 신음처럼 독백을 흘렸다. 질 입구가 아직도 씰룩이며 그의 손가락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 스스로 음핵을 문지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지만, 손끝이 닿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다음 조율.* 그가 허락하지 않은 쾌락은 내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마치 내 육체가 이미 그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그의 환영이 남긴 잔상이 아직도 내 마력 회로를 맴돌고 있었다. *다음 조율.* 그 말이 단순한 예고가 아니라 약속처럼 들렸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고. 그 생각만으로도 질이 다시 수축하고,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나는 그의 허락 없이 스스로를 만지는 대신, 그의 약속을 반추했다. 마치 그 약속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전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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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커튼을 뚫고 눈꺼풀을 찔렀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젯밤 어떻게 내 방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자 어깨에서 이불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준 것이다.

*밤의 에단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무의식중에 기어 들어온 건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마력 회로의 상태를 진단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임계점까지 치솟았던 마력 수치가 거의 정상 범위로 돌아와 있었다. 마력 폭주 직전의 불안정한 파동 대신, 차분하고 규칙적인 맥동이 회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의 혀와 손가락에 오염되어서.

그의 실제 접촉에 절정으로 무너져서.

그 결과가 이것이다.

문득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라봤다. 어젯밤 그의 가슴을 밀쳐내려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던 그 손. 아직도 손바닥 안쪽에 그의 심장 박동이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 성기가 당신의 질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진정한 조율의 완성입니다.”*

밤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귓가에 다시 울렸다.

그 말을 떠올리자, 질 안쪽이 반사적으로 경련했다. 어젯밤 그의 손가락이 쓸어내린 질벽이 기억을 따라 수축했다. 애액이 새어 나와 허벅지 안쪽을 적셨다. 속옷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다리를 오므렸다. 손이 무의식중에 아랫배로 내려갔다.

*다음 조율.*

그의 성기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하자, 클리토리스가 욱신거렸다. 손가락이 속옷 위로 음핵을 스쳤다. 어젯밤 그의 혀가 핥았던 바로 그 자리.

*안 돼. 이건 그의 허락 없이…….*

그러나 동시에, 그의 ‘다음 조율’이라는 약속이 내 안에서 불씨처럼 타올랐다. 그의 허락 없이 스스로를 만지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그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다림 자체가 더 깊은 쾌락의 예감으로 질을 적셨다. 나는 손가락을 속옷 안으로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이건 그의 허락 없이 하는 게 아니야. 그의 약속을 미리 맛보는 것뿐이야.*

그러나 손가락이 질 입구에 닿자, 마력 회로가 갑자기 작열했다. 그의 마력이 내 안에서 반응했다. 마치 밤의 에단이 내 안에 심어놓은 감시자라도 되는 듯, 내 손가락은 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경련했다. 대신 나는 클리토리스만을 문지르며 그의 이름을 입 속으로 삼켰다.

“에단…….”

자신의 손가락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의 성기가 아닌 내 손가락은 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마력 회로가 거부했다. 오직 그의 접촉만을 허락하도록 이미 길들여진 몸이었다. 그가 남긴 불씨는 내 손으로는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문 밖에서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스테반 양. 일어나셨습니까.”

낮의 에단이었다. 차갑고 정확한 어조. 밤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듯이.

나는 황급히 손가락을 빼내고 옷을 정리했다. 젖은 손가락을 이불에 닦으며 숨을 가다듬었다.

“잠깐만요.”

문을 열었다. 그가 완벽한 기사단 제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금발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겼고, 장갑 낀 두 손은 등을 향해 정중히 모았다. 회색 눈동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투명했다.

그러나 그 눈이 내 얼굴을 훑는 순간, 미세한 동요가 스쳤다. 장갑 아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가죽이 손등을 따라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호흡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거칠어졌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폐가 더 많은 공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당신에게서 내 마력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아주…… 짙게.”

심장이 멎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밤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손길로 나를 만졌는지, 그의 혀와 손가락이 내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지금 이 남자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장갑 아래 굳어진 손가락, 미세하게 빨라진 호흡, 그리고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눈빛. 낮의 에단은 밤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육체는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내 몸에 스며든 그의 마력이 낮의 그를 향해 공명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이,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깊은 공포로 밀어 넣었다.

“마력 조율을…… 했을 뿐입니다.”

겨우 대답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어젯밤 절정의 잔재가 아랫배를 뜨겁게 데우고, 젖은 속옷이 허벅지 안쪽에 달라붙는 감촉이 되살아났다. 질 안쪽이 아직도 그의 손가락을 기억하며 씰룩였다. 마력 회로가 낮의 그를 인식하자마자 반응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마력 회로가 낮의 에단에게도 반응하며 작열감을 일으켰다. 마치 밤의 에단이 내 안에 심어놓은 불씨가, 낮의 그를 보자 타오르는 듯했다. 질벽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애액을 쏟아냈다. 그것은 쾌락이면서 동시에 고통이었다. 낮의 에단의 마력과 밤의 에단이 남긴 흔적이 내 안에서 충돌하며 마법적 작열감을 일으켰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요.”

내 손가락이 무의식중에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방금 전 내 손가락이 내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있었고, 지금도 그 손끝은 젖어 있었다. 그의 마력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를 때마다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마치 밤의 그가 내 안에 남기고 간 불씨가 낮의 그를 보자 다시 타오르는 듯했다. 질 안쪽이 마력 회로를 따라 작열하며 경련했다. 밤의 에단에게 길들여진 내 몸이 낮의 그를 알아보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 장갑 낀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잠시 내려가 내 치마 앞자락에 머물렀다. 혹시 젖은 흔적이라도 보인 걸까. 나는 숨을 멈췄다.

“계약서에 없는 접촉은 없었습니까.”

그 질문은 기사단장의 공식적인 확인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 어딘가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불안이 스며 있었다. 마치 밤의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짐작이라도 하듯이. 그의 장갑 낀 손가락이 다시 한 번 굳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려는 움직임을 억누르는 듯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그 순간, 질 안쪽이 기억을 따라 격렬하게 경련했다. 밤의 그가 내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던 감촉, 클리토리스를 핥던 혀의 촉감, 그리고 절정의 순간——그 모든 것이 스치자 애액이 새어 나와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동시에 마력 회로가 낮의 에단에게 반응하며 작열감을 일으켰다. 마치 내 몸이 거짓말을 벌하듯, 혹은 낮의 그에게 진실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듯. 나는 치마 속으로 다리를 살짝 오므렸다. 젖은 허벅지 안쪽이 서로 미끄러졌다. 낮의 에단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의 그가 내 안에 남긴 흔적을 감추려 애썼다.

계약서에는 이미 모든 접촉이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읽지 못했을 뿐. 밤의 조항을, 낮의 그가 애초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에단이 내 대답을 들으며 미간을 좁혔다. 그의 입술이 무언가 더 묻기 위해 열렸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세라핀 경이었다. 기사단 부관은 아침부터 완전무장을 한 채,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장님. 백탑에서 긴급 전령이 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를 향한 경계로 날이 서 있었다.

“크로포드 경께서 오늘 오후, 직접 저택을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이사벨라.

그 이름이 공기를 얼렸다. 나는 그 순간, 창밖에서 스치던 이상한 기척을 떠올렸다. 새벽녘, 복도 끝에서 느껴졌던 미세한 마력의 파동. 낯선 누군가가 이 저택의 경계를 엿보고 있었다는 예감. 그 파동이 지금 이사벨라의 이름과 함께 선명한 위협으로 응집되었다.

에단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다시 완벽한 기사단장의 가면으로 돌아갔다.

“알겠습니다. 이스테반 양,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죠.”

그가 돌아서며 한 번 더 나를 돌아봤다. 회색 눈동자가 내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 어젯밤 밤의 에단이 엄지로 쓸어내린 정확히 그 자리였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동안, 내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그의 시선만으로도 밤의 접촉이 재현되는 듯했다.

문이 닫히고, 나는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아직도 그의 마력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밤의 에단의 욕망이, 낮의 에단의 불안이, 그리고 곧 들이닥칠 이사벨라의 위협이.

그의 마력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때마다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마치 내 몸속 깊은 곳에 밤의 그가 불씨를 남겨두고 간 것처럼, 낮의 에단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계약서엔 없던 온도가, 이미 내 마력 회로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밤이 오면, 그 불씨는 더 큰 불길이 되어 나를 집어삼킬 터였다.

*“내 성기가 당신의 질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진정한 조율의 완성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랫배를 감쌌다.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질 안쪽이 마력 회로의 작열감과 함께 경련했다. 밤의 그가 약속한 ‘다음 조율’을 기다리는 내 몸은 이미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반응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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