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슴 한복판이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갔다.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에 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타인의 욕망을 읽을 때마다 조금씩 망가져온 마력 회로가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고,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아닌 마력핵이 불타는 것 같았다.

"라일라!"

마커스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접촉. 또 다른 접촉. 또 다른 욕망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올까 봐 두려웠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마커스의 연구실 천장이 어른거렸다. 마력 측정석이 붉게 빛나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수치가 임계점을 넘었어요. 라일라, 이대로라면..."

"알아."

마력 폭주. 내 능력의 대가였다. 타인의 원초적 욕망을 읽는 그 능력은 매번 접촉할 때마다 상대의 더러운 환상을 내 마력 회로에 주입했다. 그리고 그 오염은 서서히 축적되어 결국 나를 죽일 것이다. 마커스의 계산으로는 한 달. 길어야 두 달이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마커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이 내게서 도망치듯 흔들렸다.

"말해."

"순결 마력 축적 상태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환경... 그러니까, 마력 조율이 가능한 상대와의 계약혼이 필요해요."

나는 그의 말을 자르듯 손을 들었다.

"계약혼?"

"백탑의 규정에도 없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마력 폭주 위기의 마법사가 순결을 유지하며 마나 중독자의 마력 회로를 정화하는 계약. 서로에게 유일한 치료제인 셈이죠."

마커스가 말을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황혼 기사단장이에요. 에단 하트포드. 그가 마나 중독 말기예요. 그리고 당신이 유일하게 치료 가능한 마법사고요."

웃음이 새어나왔다. 황혼 기사단. 마법을 불순하고 통제 불가능한 힘이라 경멸하는 그 무리들의 수장이라니.

"왜 하필 그 남자지?"

"그의 마나 중독 수치가 당신의 마력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해요. 마치..."

"마치?"

마커스가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요."

황혼 기사단 본부는 내 예상보다도 더 차가운 곳이었다.

회색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벽은 햇빛조차 차갑게 반사했고, 복도를 지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그들의 시선이 내 등 뒤에 꽂혔다. 마법사에 대한 경계와 적의가 노골적으로 묻어나는 시선들.

"이쪽입니다."

부관이라는 여성 기사가 나를 안내했다. 세라핀 경. 그녀의 눈빛에는 단순한 경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녀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며 걸었다.

에단 하트포드의 서재는 기사단의 차가운 분위기와는 또 달랐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제본 상태가 완벽한 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어두운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계약서 검토를 위한 필기구들이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만이 유일하게 이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 앞에 그가 서 있었다.

에단 하트포드.

제국 최강의 기사라는 수식어가 실감 나지 않을 만큼, 그는 창백하고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남자였다. 어두운 금발은 정확히 빗어 넘겨져 이마를 드러냈고, 푸른 눈동자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깊고 투명했다. 그 눈빛이 나를 향해 돌아왔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췄다.

"라일라 이스테반 님."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악의도 호의도 없는, 철저히 중립적인 음색.

"에단 하트포드 경."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가 앉으라는 의자에 자리 잡았고, 그가 내 맞은편에 앉을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다. 금욕과 절제의 살아있는 화신이라는 평판이 이해되었다.

"계약 조건을 확인하겠습니다."

에단이 서류를 펼쳤다. 그의 손가락이 계약서 위를 천천히 훑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 검을 쥐기에 완벽해 보이는 그 손이 서류를 다루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관능적이었다.

"순결 조항과 최소 접촉 원칙."

그가 조용히 읽었다.

"을은 갑의 마력 조율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접촉만을 허용하며, 계약 기간 중 순결을 유지할 의무를 진다. 접촉 범위는 상호 합의 하에..."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아마도 자신의 말을 끊는 사람은 처음 봤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마나 중독을 치료할 수 있어요. 당신은 내 마력 폭주를 막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고요. 감정이나...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순수한 거래예요."

에단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시선이 내 얼굴을 천천히 훑고 지나갈 때,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 남자에게는 뭔가가 있다. 내 능력이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이 완벽한 가면 아래, 무언가 어둡고 위험한 것이 웅크리고 있다는 걸.

"동의합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에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벽난로의 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었다.

"왜 저입니까? 황혼 기사단장과의 계약혼은 당신에게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불리한 선택일 텐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마커스가 말한 대로, 당신의 마나 중독 수치가 내 마력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해서? 그건 너무 운명론적인 대답이었다.

"당신에게서는 욕망이 느껴지지 않아서요."

내 대답에 에단의 입가에 미묘한 경련이 스쳤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가운, 그런 반응.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순간적으로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혼란일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인지한 듯한, 미세한 동요. 그의 왼손이 책상 아래에서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내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어조였다. 마치 스스로에게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렇다면 계약에 서명하죠."

그가 책상으로 돌아와 펜을 내밀었다. 나는 펜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서재 한구석 책장 아래 놓인 무언가에 내 시선이 멎었다.

낡은 가죽 일기장이었다.

표지가 해지고 가장자리가 닳은 그 일기장은 이 완벽하게 정리된 공간에서 유일하게 흐트러진 물건이었다. 바람에 페이지가 살짝 펼쳐졌고, 나는 거기에 적힌 문구를 읽었다.

'오늘도 나는 그를 죽였다. 태양이 뜨면 나는 다시 죄를 잊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지만, 이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 서명할 때 스쳤던 그 짧은 접촉, 거기서 폭발했던 환영의 잔상이 다시 떠올랐다. 침대 위에 묶여 신음하던 내 모습, 내 목을 조르며 거칠게 몰아붙이던 그의 얼굴. '그를 죽였다'는 그 말이, 조금 전 환영 속에서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그 남자와 겹쳐졌다. 그가 매일 밤 죽이는 '그'가 혹시 지금의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척추를 타고 기어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목을 감쌌다. 그의 손가락이 기도를 압박하던 감각이 아직도 피부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서명하시죠."

에단의 목소리가 내 생각을 잘랐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펜을 받아들었다. 계약서 위에 내 이름을 쓰는 동안, 내 손이 떨리지 않기를 바랐다.

라일라 이스테반.

서명이 끝나고 펜을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에단이 계약서를 받아 들며 손을 뻗었고, 그의 손가락이 내 손등에 스쳤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접촉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마치 번개가 내 척추를 타고 내리꽂히는 것 같은 감각이 나를 강타했다.

"아...!"

내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릎이 풀려 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한 나를 에단이 붙잡았다. 그의 손이 내 팔을 감싸쥐었고, 그 접촉이 더 큰 감각의 폭풍을 몰고 왔다.

쾌락과 고통이 동시에 몰아쳤다.

마치 온몸의 신경이 한꺼번에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복부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터져 나와 내 마력 회로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유두가 옷 안에서 딱딱하게 경직되었고, 질 깊숙한 곳에서 묘한 경련이 시작되었다.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걸 느꼈다.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에단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서재가 사라지고, 다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둡고 습한 방. 벽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고, 촛불이 일렁이며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내가 있었다.

나였다. 완전히 벌거벗은 채, 팔이 머리 위로 묶여 침대에 눕혀진 내 모습.

그리고 그 위에 에단이 있었다.

그의 손이 내 목을 감싸쥐었다. 단단한 손가락이 내 기도를 압박하며 숨을 조여왔다. 질식할 듯한 압박감과 함께, 그의 다른 손이 내 가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손바닥이 내 유방을 압박하며 쥐어짜듯 움직였고, 엄지손가락이 유두를 비틀었다.

"읏...!"

환영 속의 내가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현실의 나도 같은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너무 생생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그의 숨소리가, 그가 내뿜는 열기가 모두 실제처럼 느껴졌다.

에단의 손이 내 허벅지를 벌렸다. 그의 손가락이 내 질 입구를 더듬으며 애액을 확인했다.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는 그곳을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벌렸다. 손가락 두 개가 아무 저항 없이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질벽이 이물감에 경련하며 손가락을 조여왔다. 그는 잠시 손가락을 깊숙이 박아 넣은 채 멈췄다. 내 안의 열기와 촉촉함이 그의 손가락을 감싸는 걸 음미하는 듯했다.

"계약서에는 없던 접촉이군요."

환영 속의 에단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과 전혀 달랐다. 차가운 금욕 대신, 불타는 집착과 소유욕이 가득한 음성이었다.

그가 갑자기 내 몸을 뒤집었다. 묶인 손목이 꼬이며 어깨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 나는 엎드린 자세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고, 그의 손이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무릎으로만 몸을 지탱한 채, 나는 그에게 가장 은밀한 곳을 완전히 노출했다. 애액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자세가 더 솔직하군."

그의 손가락이 다시 질 입구를 스쳤다. 뒤에서 들어오는 손길에 나는 침대 시트를 물어뜯었다. 손가락이 다시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엎드린 자세에서는 손가락이 더 깊이 닿았다. 그의 손가락이 질벽 상단의 부풀어 오른 가장 민감한 곳을 긁을 때마다, 내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날카로운 쾌감이 척추를 타고 치솟았고, 질 안쪽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그의 손가락을 물었다.

"제발... 제발 더...!"

내가 애원하자, 그가 낮게 웃었다.

"더? 이걸 더 달라고?"

그가 내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손가락에는 투명한 애액이 실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의 성기 끝이 뒤에서 내 질 입구에 닿았다. 단단하고 뜨거운 그것이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엎드린 자세는 삽입을 더 깊고 강렬하게 만들었다. 질벽이 찢어질 듯 팽창하며 그를 받아들이는 압박감이 아랫배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성기 표면에 솟은 혈관 하나하나가 내 안쪽을 긁고 지나가는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아, 아...!"

그가 내 엉덩이를 붙잡고 한 번에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 깊었다. 자궁 입구까지 닿을 것 같은 충만감에 질벽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는 잠시 멈춰 내 안에서 맥박 치는 자신의 성기를 느끼게 했다.

"계약이고 뭐고... 넌 처음부터 내 거였어."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그의 성기가 더 빠르게, 더 깊게 나를 찔렀다. 마찰할 때마다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넘쳤고, 젖은 살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가 내 목덜미를 한 손으로 짓누르며 상체를 침대에 밀착시켰다. 그의 골반이 내 엉덩이를 때릴 때마다, 음핵이 침대 시트에 쓸리며 이중의 쾌감이 나를 덮쳤다.

"내 거야. 네 안의 모든 것이, 네 숨소리 하나까지."

그의 손이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뒤로 잡아당겼다. 목이 꺾이며 시야가 천장을 향했다. 그의 성기가 각도를 바꿔 질벽의 새로운 곳을 마찰했다. 나는 다가오는 절정을 느끼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질벽이 그의 성기를 더 세게 조여왔고, 애액이 분수처럼 흘러나와 침대 시트를 적셨다.

"가... 가고 있어...!"

절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 환영이 산산조각났다.

나는 서재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속옷은 완전히 젖어 있었고, 하복부는 여전히 경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린 애액이 스타킹을 적셨다. 스타킹에 밴 애액이 식어가며 끈적이는 감촉에 치욕이 치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꽉 조였고, 그 마찰에 젖은 음순이 서로 미끄러지며 또 한 번 작은 경련이 일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질 안쪽이 씰룩거렸다.

이건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내 마력 회로가 그의 마나와 공명하면서, 그의 무의식에 잠복한 욕망이 직접 내 신경계에 전사된 것이다. 마치 그의 환상이 내 몸을 빌려 현실이 된 것처럼. 속옷이 젖고 질이 경련하는 건 환영이 내 뇌를 속인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 내 신체가 오르가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마력 조율은 이렇게 서로의 마나와 육체를 직접 연결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계약서에 서명한 지 채 1분도 안 되어 그의 환상 속에서 절정했다.

에단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방금 전 내가 목격한 환영을 그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 완벽한 무표정.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미세한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듯, 그의 시선이 내 떨리는 손끝과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쓸고 지나갔다. 서명 후 펜을 내려놓는 그의 손이 평소보다 0.5초 느렸다. 손가락이 펜을 놓는 순간, 검지가 미세하게 떨렸다가 곧바로 멈췄다. 그 작은 지연은 금방 사라졌지만, 완벽한 통제 속에서도 무언가 삐져나온 듯한 신경질적인 균열이었다.

"괜찮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지도, 그렇다고 무시하는 냉담함도 없었다. 그저 의무적인 질문일 뿐.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입술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나는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섰다. 책상 모서리를 붙잡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내 스타킹에 밴 젖은 자국에 닿지 않도록 치마를 내렸지만, 이미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오늘부터 당신은 이 저택에 머물게 됩니다."

에단이 계약서를 정리하며 말했다.

"마력 조율실은 별관에 있습니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곳에서 조율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금 전 환영이 아직도 내 몸속에 남아 있었다. 그가 내 목을 조르던 감촉, 그가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충만감, 그가 내뿜던 뜨거운 숨결.

그리고 그가 했던 말. '넌 처음부터 내 거였어.'

"한 가지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에단이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섰지만, 등 뒤에는 이미 책장이 있었다.

"밤에는 절대 혼자 마력 조율실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곳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내 심장이 다시 한 번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말투에는 무언가 단호하면서도 어두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마치 자신 안에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이해합니다."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서재를 나와 내 침실로 향했다.

밤이 찾아왔다.

나는 침실 창가에 서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벽난로의 불빛만이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스타킹은 벗어던졌지만, 속옷은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없었다. 질 입구가 아직도 씰룩거리며 방금 전 환영의 잔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남자에게서 도망쳐야 한다. 환영은 분명 경고였다. 낮의 에단이 감춘 밤의 얼굴, 그 집착과 폭력성. 계약서에 서명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이런 환영을 본다는 건,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는 전조였다. 도망쳐야 해. 계약을 파기하고, 마커스에게 다른 방법을 찾아 달라고...

그런데 왜.

왜 내 몸은 아직도 그 환영을 더 원하는 걸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 사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젖은 속옷 너머로 손끝이 닿자, 질 입구가 반사적으로 수축하며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그가 내 안에서 맥박 치던 충만감, 목을 조르며 속삭이던 낮은 음성, '내 거야'라는 말 한마디에 내 안이 반응했던 그 순간.

나는 속옷을 벗겨냈다. 젖은 천이 음순에서 떨어지며 차가운 공기가 닿자, 질 입구가 다시 한 번 씰룩거렸다. 손가락이 애액에 젖어 미끄러지듯 질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내 손가락은 그의 것보다 가늘고 짧았지만, 그가 내 안에서 휘젓던 감각을 흉내 내듯 천천히 구부렸다. 질벽이 손가락을 더 원한다는 듯 경련을 반복했다. 나는 다른 손으로 음핵을 문지르며 손가락의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그의 환영이 내 안에 남긴 잔상이 손가락 끝에서 되살아났다. 그 거친 손길, 내 목을 조르며 속삭이던 그 집착. 나는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 넣으며 신음했다.

"에단...!"

그의 이름이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남자의 환영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만지고 있다. 공포와 매혹이 뒤섞여 내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해야 하는데, 동시에 그 거친 손길이 다시 내 몸을 휘감기를 바라고 있었다. 손가락이 질벽을 더 빠르게 마찰했고, 다른 손이 음핵을 더 세게 압박했다. 쾌락이 척추를 타고 치솟았다. 죄책감과 쾌락이 뒤엉켜 내 안에서 폭발했다. 이게 마력 조율의 부작용일까, 아니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 걸까. 질벽이 손가락을 격렬하게 조여왔고, 애액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넘쳤다. 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절정에 몸을 떨었다.

숨이 가빠졌다. 손가락을 천천히 빼내자, 투명한 액체가 실처럼 늘어졌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혼란에 빠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지만 몸은 여전히 더 원하고 있었다. 질 입구가 아직도 씰룩거리며 또 다른 삽입을 갈망하고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력 조율실은 별관에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복도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 곳.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새 속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이미 다시 젖어들고 있었다. 걷는 걸음마다 음순이 서로 미끄러지며 자극을 주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 저택에서, 이 계약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젖은 몸뚱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발은 이미 복도를 가로질러 마력 조율실로 향하고 있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촛불 몇 개만이 간신히 길을 밝히고 있었다. 내 발소리만이 돌바닥에 울렸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력 조율실로 향하는 문이 점점 가까워졌다. 문틈으로 붉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빨라졌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머릿속을 스쳤지만, 내 손은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문고리까지 손가락이 닿기 직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폐를 채웠다. 손끝이 금속에 닿았다.

그리고 들려왔다.

"드디어 왔군요, 나의 계약자."

낮과는 전혀 다른, 관능적이고 위험한 에단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질 깊숙한 곳이 반사적으로 조여들었다. 아까 그 환영 속에서 절정을 향해 나를 몰아붙이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젖은 속옷이 차갑게 식어 허벅지 안쪽을 간질였고, 유두는 이미 옷 위로 드러날 만큼 딱딱하게 서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이 문 너머에는 낮의 에단이 아닌, 환영 속에서 내 목을 조르고 내 안을 가득 채우던 그 남자가 있다. 지금 돌아서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마커스에게 다른 방법을 찾아 달라고 매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 마력 폭주는? 두 달 안에 죽을 거라는 예언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문을 열지 않고서는 평생 알 수 없을 이 떨림. 이 공포와 똑같은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기대. 환영 속에서 느꼈던 그 충만감이 실제라면 어떨까. 그 거친 손길이, 내 목을 조르며 속삭이던 그 집착이, 실제로 내 몸에 닿는다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내 발목을 붙잡는 동시에, 그 문을 열고 싶다는 충동이 내 손목을 밀어붙였다. 두 힘이 내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고, 그 긴장 속에서 내 심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위험을 알면서도 위험을 원하고 있다.

나는 벽에서 손을 떼고, 떨리는 손을 문고리로 뻗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한 번만 돌리면, 이 너머에 그가 있다. 낮의 차가운 에단이 아니라, 내 목을 조르고 내 안을 가득 채우던 그 남자가. 내 손가락이 문고리를 감아쥐었다.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문이 안쪽에서부터 거칠게 열렸다.

어둠 속에서 에단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뜨겁고 단단한 손아귀가 내 맥박을 틀어쥐었다.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의 다른 손이 내 허리를 감아 단번에 방 안으로 나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의 숨결이 이미 내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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