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법정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박지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304호 재심 법정. 이 공간은 13년의 무죄를 인정받거나, 혹은 그 억울함을 영원히 매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법관 이상훈이 판사석에 앉았고, 검사 김민석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지현은 의뢰인 석에 자신의 파일을 펼쳤다. 준호는 이 법정에 없었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공석이었다.

"재심 청구인 박지현 변호사의 증거 제출을 진행하겠습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법정의 침묵을 깨뜨렸다.

박지현은 일어섰다. 준비한 슬라이드를 재판 화면에 띄웠다. 첫 번째 장면: 13년 전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지문의 공식 기록. 채취 날짜, 시간, 채취자 서명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법원께 제출하는 증거는 고인 이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당시 현장 지문 채취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13년 전 경찰청이 법정에 제출한 공식 증거와 중요한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지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명확했다. 검사 김민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음 슬라이드가 나타났다. 두 개의 지문 채취 기록을 나란히 배치한 것이었다. 공식 기록에는 '8월 14일 오후 3시 경찰 법의학센터에서 채취'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기록은 '8월 12일 오전 11시 현장에서 채취'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틀의 차이. 시간대의 차이. 채취 장소의 차이.

"이 모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의학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법의학 전문가 정용재 교수가 증인석으로 나왔다. 40대 중반의 침착한 인물로, 대학교수로서의 무게감이 있었다. 박지현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13년 전 당시 기술 수준으로 8월 12일에 채취한 지문을 8월 14일에 채취한 것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정용재 교수는 자료를 들었다. 법정 화면에 두 가지 지문 채취 방식이 나타났다. 습식 방법과 건식 방법.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당시 현장 채취에는 건식 방법만이 사용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식 기록에 기재된 방식은 습식 방법의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식 방법으로는 이렇게 선명한 지문 이미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후속 처리 과정에서 채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법관 이상훈의 눈이 움직였다.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정용재 교수는 계속했다.

"더 중요한 것은 지문의 화학적 성질입니다. 인간의 지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산화됩니다. 8월 12일에 채취된 지문이라면 13년이 지난 지금 이 정도 산화 상태를 보여야 합니다."

그는 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지문 샘플을 들었다. 그것과 공식 기록의 지문 이미지를 비교했다.

"고인의 유품에 보존된 기록은 12일 채취와 일치합니다. 산화 정도, 색상, 지문의 윤곽 모두 말입니다. 반면 공식 증거로 제출된 지문은 14일 이후, 그것도 습식 처리 이후의 특성을 명확히 보이고 있습니다."

박지현은 한 발 물러섰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다음 질문이 치명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증거 위조는 우발적인 실수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조직적인 것일까요?"

정용재 교수는 잠깐 침묵했다. 법정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것은 조직적입니다. 채취 방식의 변경, 날짜의 조작, 화학적 처리까지 모두 의도된 것입니다. 우발적 실수로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이 지문을 현장에서 수집한 후, 법의학센터에서 의도적으로 처리하고 날짜를 조작했습니다."

검사 김민석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증인이 추측성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판사 이상훈이 고개를 들었다.

"증인은 객관적 사실만 진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법정의 공기는 변했다. 판사의 눈이 검사를 향했고, 그 시선은 의심으로 가득 찼다. 검사는 기록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박지현은 서진우를 바라봤다. 후배 변호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입술은 팽팽하게 다물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표정이었다. 박지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 순간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잃을 것이 무엇인지.

다음 증거는 당시 수사 기록이었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의 공식 기록. 박지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원본 기록과, 법정에 제출된 기록을 비교했다.

"법원께서 보시는 왼쪽이 당시 공식 수사 기록이고, 오른쪽이 13년 전 법정에 제출된 증거입니다. 같은 사건인데 내용이 다릅니다."

박지현의 펜이 화면을 짚었다.

"현장 도착 시간이 다릅니다. 공식 기록에는 오전 10시 47분이라고 되어 있는데, 법정 증거는 오전 10시 32분입니다. 15분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검사가 다시 일어섰다.

"이의 있습니다. 그것은 행정적 오류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이 오류를 지적하지 않으셨나요?"

박지현의 질문이 검사를 향했다. 법관이 검사를 바라봤다. 검사는 입을 다물었다.

"이 15분의 차이는 현장 도착 시간뿐 아니라 초기 증거 수집 절차 전체를 변경합니다. 현장 보존 상태, 증거 채취 순서, 증거 보관 기록까지 모두 달라집니다. 공식 기록에서는 경찰관 A가 현장을 보존했다고 되어 있는데, 법정 증거에는 경찰관 B가 보존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박지현이 한 발 더 들어갔다.

"이는 단순한 오류가 아닙니다. 이는 수사 기록의 조작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증거 보관의 연속성—증거의 무결성을 증명하는 핵심 요소—이 깨집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증거 보관 기록 자체가 위조되었다는 점입니다."

검사 김민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판사 이상훈은 말없이 기록을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의심이 아니었다. 거의 분노에 가까웠다.

법정이 5분간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13년이 흘렀다.

박지현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것이 맞다. 이것이 증거다. 이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가 등을 통해 들어왔다. 차갑고, 예리한 감각. 경고 같은 것. 이 순간 이상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법원 앞에서의 시선 교환. '국무회의 참석'이라는 말. 경찰청 국장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실.

서진우가 박지현의 팔을 가볍게 쳤다. 눈을 마주쳤다. 후배의 눈빛이 흔들렸다. 같은 감각. 승리와 함께 들어오는 그림자.

"법정은 오후 3시에 재개하겠습니다."

판사의 선언이 내려졌다.

복도로 나온 박지현과 서진우는 말없이 걸었다. 창밖으로는 서울 종로의 오후 햇빛이 흘러들었다. 밝고 명확한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 속에서도 그림자는 있었다.

"지현 선배."

서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증거들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우리는 이겼다는 거죠?"

박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옆을 바라봤다. 로비에 앉아 있는 사람들. 법원 직원들. 그리고 뒷편, 복도의 구석에 서 있는 남자. 검은 정장의, 얼굴이 굳은 남자.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 이상민이었다.

박지현의 눈이 그와 마주쳤다. 이상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박지현을 바라봤다.

박지현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박지현의 목소리가 낮았다.

"증거가 인정되는 것과 그것이 실제 정의로 이어지는 것은 다르다."

오후 법정이 재개되었을 때, 검사는 준비된 반박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판사는 검사의 반박을 들었지만, 눈은 증거 자료에 고정되어 있었다.

"현 단계에서 제출된 증거들의 신빙성 검증이 필요합니다. 다음 기일은 1주일 후로 정하겠습니다. 그 사이 법원에서 증거 감정을 의뢰하겠습니다."

판사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것은 박지현의 증거들이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검증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경찰청의 증거 위조가 공식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뜻이었다.

"다음 기일은 2024년 11월 8일입니다."

법정을 나간 박지현과 서진우는 이미 해가 중천인 서울 거리를 걸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13년의 시간이 한 주일로 응축되어 법정에서 펼쳐졌다.

사무실로 돌아간 박지현은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려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멈춰 있었다.

밤 8시. 사무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밤 10시. 박지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밤 11시 30분. 문이 열렸다.

경찰청 국장 이상민이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두 명의 경찰이 함께였다.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박지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변호사 박지현."

이상민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그것은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웠다.

"우리가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법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공식 채널이 아닌 면담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박지현의 목소리가 고요했다.

이상민이 한 발 더 들어갔다. 그의 얼굴이 형광등 아래에서 더욱 각지게 보였다.

"당신이 법정에서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서입니다. 그 증거들의 출처와 신빙성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이 있으시면 법정에서 제기하시면 됩니다."

"그 증거들이 정말 13년 전 것일까요? 혹은 최근에 위조된 것은 아닐까요?"

박지현의 눈이 움직였다.

"고인의 유품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청에 신고했습니다."

"신고했지만,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상민이 박지현의 책상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책상 위의 파일을 짚었다.

"당신은 이미 법정에서 충분히 발언했습니다. 고인도 없고, 더 이상의 발언은 고인을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고인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박지현의 호흡이 멈췄다.

"당신의 사무실, 당신의 의뢰인들, 당신의 미래. 모두 보호될 것입니다. 당신이 이 사건에서 물러나면 말입니다."

이상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계속 진행한다면, 우리는 법정에서 당신의 증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증거의 출처, 채취 과정, 보관 기록—모든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당신이 제시한 증거 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경찰 두 명이 박지현의 양옆에 섰다. 움직임은 없었지만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이상민이 손을 책상에서 떨어냈다.

"다시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나갔다. 사무실의 문이 닫혔다. 박지현은 여전히 서 있었다. 호흡이 가빴다.

밤이 더 깊어졌다. 서울 종로의 밤거리는 한적했다. 박지현은 의자에 앉았다. 이것이 뭐 하는 짓인가. 법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건가, 아니면 법 밖의 권력과 싸우고 있는 건가.

13년. 이준호는 13년을 옥중에서 버텼다. 재심 청구 직전에 죽었다. 심장마비. 공식 발표는 그것이었다. 박지현은 준호의 유품을 다시 펼쳤다. 법의학 감정 기록, 수사 파일, 그리고 준호가 남긴 메모. 손글씨로 적힌 날짜들. 13년 동안 준호가 기록해온 것들. 모든 것이 이 재심 청구를 위한 것이었다.

박지현은 화면을 켰다. 검색창에 글자를 쳤다.

'13년 전 이준호 사건 당시 경찰청 청장.'

그 인물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인물의 현재 직책.

청와대 국정자문관.

박지현은 멈췄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 얹혀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13년 동안 아무도 이 사건을 다시 열지 않은 이유. 왜 모든 증거가 그토록 체계적으로 조작되었는지. 왜 이상민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이것은 단순한 경찰의 증거 위조가 아니었다.

이것은 국가 권력의 문제였다.

박지현은 화면을 껐다.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나갔다. 밤거리는 여전히 한적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박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법정의 싸움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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