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치소의 회수실
구치소의 회수실은 회백색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형광등의 허연 빛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박지현은 창구 너머의 사무원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준호 수용자의 유품입니다."
사무원이 밀어낸 상자는 생각보다 작았다. 30센티미터도 안 될 길이의 종이 상자. 13년의 인생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박지현은 상자를 받아들었다. 무게가 거의 없었다.
"신원 확인 서명 부탁드립니다."
펜을 집었다. 어제 오후 2시까지만 해도 준호는 살아 있었다. 재심 청구서를 검토했을 때 준호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했다. 그런데 지금 준호는 없었다. 어제 밤 어딘가에서, 갑자기.
서명을 끝내고 상자를 안았다. 정말 그렇게 갑자기 죽을 수 있는 걸까. 심장마비? 자살? 타살?
공식 발표는 '급성 심부전'이었다. 하지만 박지현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 상자 개봉
사무실로 돌아온 박지현은 책상 위에 상자를 놨다. 손으로 밀었다 당겼다 반복했다. 열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테이프를 벗겨냈다. 망가진 손톱 끝이 따끔거렸다. 상자가 열렸다.
냄새가 나왔다. 옥중의 냄새. 곰팡이와 소독약이 뒤섞인, 13년을 압축한 냄새.
상자 안에는 옷들이 있었다. 회색 수용자복 세 벌. 하나는 색이 바래 거의 흰색에 가까웠다. 양말 다섯 켤레. 속옷 세 장. 모두 얇고 낡았다. 박지현은 천천히 꺼냈다. 13년을 이 천들이 함께했다.
검은 표지의 수첩이 있었다. 일기장인 듯했다. 박지현은 그것을 들었다. 표지는 반들거렸다. 손으로 많이 만져져서.
속지를 펼쳤다. 1페이지부터 준호의 필체가 가득 찼다. 작고 정교한 글씨. 1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옥에 들어온 그 첫날부터.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갔다. 날짜는 이틀 전이었다. 2월 14일.
*'박변호사님께,*
*법정에 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박변호사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제 일기장을 정리해주세요. 다 읽어주세요. 그리고 상자를 잘 봐주세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글씨가 거기서 끝났다. 마지막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
박지현은 페이지를 다시 넘겼다. 빈 페이지들이 나왔다. 그 사이에 뭔가 끼워져 있었다. 종이 한 장. 손글씨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상자 밑바닥을 보세요.'*
박지현의 몸이 굳었다. 책상을 밀어내고 일어섰다. 상자를 들었다. 밑바닥을 봤다.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갈색 테이프로 여러 겹 붙어 있었다. 박지현은 손톱으로 테이프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손톱이 또 부러졌다. 상관없었다.
밑바닥이 드러났다. 그 아래에 또 다른 층이 있었다. 박지현은 밑바닥 자체를 들어올렸다. 나무 판이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 문서들이 있었다.
노란 종이들. 손으로 많이 만져져서 구겨진 문서들. 위에는 경찰청 인장이 찍혀 있었다. 박지현은 첫 번째 문서를 들었다.
*'현장 지문 채취 기록'*
상단에 사건 번호가 있었다. 박지현이 알고 있는 그 사건 번호. 채취 일시가 적혀 있었다. 2011년 3월 15일 오전 10시 32분.
박지현은 공식 증거 기록을 떠올렸다. 채취 일시는 2011년 3월 14일 오후 7시였다.
하루가 차이 났다.
박지현은 다음 문서를 들었다. 현장 사진이었다. 공식 기록에는 없는 사진들. 사진의 뒷면에는 손글씨로 메모가 있었다. 준호의 필체였다.
*'이 사진은 공식 기록에 없습니다.'*
다음 사진.
*'현장에는 저를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음 사진.
*'그들이 만들었습니다.'*
박지현은 책상에 나머지 문서들을 쏟아냈다. 종이가 흩어졌다. 하나씩 집어 들었다.
현장 지도. 위에 준호의 필기가 있었다. '이곳에서 지문이 나올 수 없습니다.'
증거 수집 일지. 여러 곳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시간이 맞지 않는 부분들. 준호는 13년 동안 이것들을 모았다. 옥중에서, 면회자도 거의 없이, 오로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박지현은 의자에 무너졌다. 준호는 이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심을 기다렸다. 박지현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밤 죽었다.
단 하루 전에.
# 밤을 새우며
박지현은 일어났다. 사무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창밖을 봤다. 서울 시내의 회색 건물들이 보였다. 모두가 같은 높이였다. 모두가 같은 색깔이었다.
박지현은 책상으로 돌아왔다. 증거들을 다시 모았다.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현장의 사진이었다. 벽에 묻은 혈흔. 그 옆에 준호의 글씨로 메모가 있었다.
*'저는 여기 없었습니다.'*
박지현의 눈이 따뜻해졌다. 눈물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13년 동안 억울함을 견딘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이 증거들이었다. 준호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박지현에게 맡겼다.
박지현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서진우를 불렀다.
"사무실로 와."
"선배, 뭐가 어—"
"지금 바로 와."
박지현은 전화를 끊었다. 증거들을 다시 정렬했다. 사진, 문서, 기록들. 모두를 년대순으로 정렬했다. 그 사이에서 모순들이 떠올랐다. 공식 기록과 맞지 않는 시간들. 채취 일시가 다른 지문 기록들.
13년 전의 수사팀은 이것들을 무시했다. 또는 모르고 있었다. 또는 알고도 무시했다.
박지현은 창밖을 다시 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후 4시였다. 내일 오후 2시에 이상민을 만난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 당시 수사를 지휘한 사람.
박지현은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재심청구서를 열었다. 1차 작성본. 아직 제출되지 않은 것. 박지현은 그것을 지웠다. 새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재심청구 이유: 새로운 증거 제출'*
*'피고인 이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13년 전 현장 지문 채취 기록이, 공식 기록과 상이한 시점을 나타냄.'*
*'상기 증거는 당시 경찰 수사팀의 증거 조작 가능성을 시사함.'*
박지현은 멈췄다. 이 문장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했다. 경찰청을 상대로 한 고발. 검사를 상대로 한 도전.
내일 오후 2시에 이상민을 만난다. 그는 뭔가를 말할 것이다. 아마도 제안일 것이다. 아마도 협박일 것이다.
박지현은 다시 타이핑했다.
*'피고인의 명예 회복과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본 변호사는 재심을 청구합니다.'*
저장했다.
서진우가 들어왔을 때, 박지현은 모든 증거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선배... 이게 뭐야?"
"준호가 남긴 거야."
"어... 어떻게?"
박지현은 일어났다. 서진우의 어깨를 잡았다.
"내일 오후 2시에 이상민을 만나기 전에, 이 모든 게 법정에서 증명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증명한다고? 선배, 이건..."
"증거 조작이야. 명백한 증거 조작이야."
서진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선배, 이걸 법정에 내면... 경찰청이..."
"알아. 알고 있어."
박지현은 증거들을 다시 모았다. 준호의 필체가 보였다. 옥중의 손글씨. 13년을 견딘 손이 쓴 글씨.
"이상민이 내일 뭘 말할지 모르지. 하지만 상관없어. 이미 모든 게 결정됐어."
"뭐가요?"
"법정으로 간다는 거야. 준호를 위해서."
창밖으로 해가 완전히 졌다. 밤이 내려왔다. 서울 시내의 불빛들이 켜졌다. 그 불빛들 사이로, 법원 건물이 보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박지현은 증거들을 상자에 다시 넣었다. 조심스럽게. 준호가 13년 동안 보관했던 것처럼.
"선배."
서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이겨야 해. 반드시."
박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호는 이미 졌다. 13년을 졌다.
하지만 진실은 남아 있다.
박지현은 상자의 밑바닥을 다시 봤다. 준호가 남긴 메모가 보였다.
*'상자 밑바닥을 보세요.'*
그 아래에, 또 다른 메모가 있었다. 매우 작은 글씨.
*'당신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박지현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상자를 닫았다.
# 밤샘 작업
밤이 깊어갈수록 박지현의 사무실 불빛은 더 밝아졌다. 형광등 아래 준호의 유품들이 하나둘 펼쳐졌다. 낡은 일기장, 지문 채취 기록, 현장 사진들. 그리고 상자 밑바닥에서 나온 문서 더미.
박지현은 돋보기를 들었다. 지문 채취 기록의 날짜를 확인했다.
"2011년 3월 15일 오전 10시 32분..."
공식 기록에는 "2011년 3월 14일 오후 7시"라고 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하루 반이 넘는 시간 차이. 그 시간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박지현은 준호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해당 날짜의 기록을 찾았다.
*"경찰이 다시 왔다. 현장 사진을 더 원한다고 했다. 이상하다. 이미 증거 채취는 끝났는데. 당시 형사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빠진 게 있다는 표정이었다."*
박지현은 그 글귀를 읽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시간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지문이 없었던 증거물에 지문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지문을 준호의 것으로 위조했을까.
박지현은 일어섰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증거 조작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법정에서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증거의 수집 과정이 합법적이어야 하고, 증거 자체가 진정성을 입증해야 했다.
서진우가 들어왔다. 시간은 새벽 2시였다.
"선배, 자고 있어야지. 내일..."
"못 자. 봐."
박지현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13년 전 사건 기록이 떠 있었다. 범행 도구로 적힌 흉기의 지문 기록. 그리고 준호가 남긴 수기.
*"내 지문이 나올 수 없는 곳에서 내 지문이 나왔다."*
"이게 뭐야?" 서진우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당시 경찰 조서에는 준호가 범행 도구를 직접 만졌다고 했어. 그런데 준호의 증언은 달라. 그는 그 흉기를 본 적도 없다고 했어."
"그럼..."
"증거 조작이야. 확실해. 13년이 지난 지금도 기록이 남아 있어. 시간 기록, 채취 위치, 지문 분석 결과. 모든 게 맞지 않아."
박지현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으로 나갔다. 서울의 밤거리가 내려다보였다. 한강 너머 남산이 어둠 속에 떠 있었다.
"당시 수사팀장 이상민은 이 사건으로 진급했어. 강력범죄수사대장이 되었고, 경찰청 내에서 실력자로 인정받았어."
서진우가 말했다. "그럼 이상민이 알고 있다는 뜻이네."
"당연하지. 자기가 조작했으니까."
박지현은 돌아섰다. 서진우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두려움에서 분노로.
"선배, 그럼..."
"내일 그를 만나. 그가 뭘 제안할지는 모르지만,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 재심을 청구한다."
서진우가 책상으로 다가갔다. 지문 채취 기록을 들었다.
"이걸 법정에 제출하면, 경찰청 전체가 흔들려. 이상민만의 문제가 아니야. 조직 전체가 협력했다는 의미니까."
"알아."
"그럼 왜?"
박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준호가 13년을 옥중에서 견딘 이유는 무엇인가.
박지현은 상자를 들었다. 상자 밑바닥의 글씨가 떠올랐다.
*"당신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선배..."
"내일 이상민을 만나기 전에, 모든 증거를 정리해야 해. 법정에서 쓸 증거목록, 신문할 증인 리스트, 그리고 검사의 반박에 대비할 논리. 다 준비해야 해."
"지금부터?"
"지금부터."
박지현은 다시 책상에 앉았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에 재심청구서가 떠올랐다.
서진우는 침묵했다. 서울의 밤은 계속 깊어갔다.
# 만남
오후 1시 50분. 박지현은 법원 근처 카페 입구에 서 있었다. 모카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였다. 법조인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다.
박지현은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노트만 놓았다.
이상민은 정확히 2시에 들어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50대 중반. 얼굴은 단단했다.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오셨네요."
박지현이 먼저 인사했다.
이상민은 앉았다.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박변호사, 우리 말 좀 듣자고 했는데..."
"들었습니다."
"이준호 사건, 재심청구 생각은 접으셨나?"
박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민의 눈빛이 변했다. 매서워졌다.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은 이미 끝난 거야. 13년 전에 끝났어. 법정에서 판결이 났고, 모든 절차가 끝났어."
"증거 조작도 끝났나요?"
침묵이 흘렀다. 카페 안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옆 테이블의 변호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상민이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조심해.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사실이면 명예훼손이 아닙니다."
이상민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경멸에 가까웠다.
"너한테는 사실이겠지. 하지만 법은 다르게 본다. 법은 증명된 사실만 인정해. 그리고 당신이 가진 증거는..."
이상민이 잠깐 멈췄다. 그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당신이 가진 증거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야. 당신은 변호사니까 알겠지. 증거의 수집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이 가진 증거들이 합법적으로 수집되었나?"
박지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상민의 지적이 정확했다. 증거 능력의 문제. 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증거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준호가 남긴 유품입니다. 그의 개인 소유물에서 나온 증거입니다."
"개인 소유물? 그건 당시 경찰 증거물이었어. 당신이 그걸 몰수한 건 불법이야. 그 증거는 법정에 제출할 수 없어."
박지현은 이상민의 말을 듣고 있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법적으로는. 하지만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상민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재심청구를 하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겠지? 당신의 사무실, 당신의 의뢰인들. 모든 게 조사 대상이 될 거야. 당신이 다른 의뢰인들의 의뢰를 받을 때 위법한 증거를 수집했는지, 의뢰인들의 정보를 불법으로 사용했는지. 다 조사할 거야."
협박이었다. 노골적인 협박.
"당신의 의뢰인 중에도 조사 대상이 될 사람들이 있을 거야. 2020년 김민준 폭행 사건, 당신이 그 사건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말이야."
박지현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상민이 알고 있었다. 박지현의 과거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약점들. 경찰청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합의 과정에서 박지현이 취한 절차의 회색 지대, 증인 확보 과정에서의 법적 경계선.
박지현은 일어섰다. 이상민도 일어섰다.
"내일 재심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합니다."
이상민의 얼굴이 굳었다.
"당신은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는군."
"알고 있습니다."
박지현은 카페를 나갔다. 뒤에서 이상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회할 거야!"
박지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카페 밖은 오후 햇빛이 따뜻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차가웠다. 이상민의 협박이 귀에 맴돌았다. 증거 능력 문제. 박지현의 다른 의뢰인들. 법적 근거의 부족함.
휴대폰이 울렸다. 서진우였다.
"선배! 뉴스 봤어? 이상민이..."
"뭐가?"
"이상민이 국장 진급이 확정됐대. 오늘 오후 공식 발표한대!"
박지현은 멈췄다. 길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봤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민은 이미 진급했다. 그것은 경찰청의 신뢰를 그대로 받았다는 의미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었다. 국가 기관의 대표였다.
# 재심청구
재심청구서를 제출한 것은 오후 4시 15분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실. 박지현은 서류를 담당자에게 건넸다. 담당자가 서류를 받아 스캔했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재심청구서, 이준호... 2011년 사건이네요. 13년 전 사건?"
담당자의 표정이 의아했다. 피고인이 사망한 사건의 재심청구는 드물었다.
"피고인이 사망했다고?"
"재심청구는 명예회복 차원에서 진행됩니다."
담당자는 서류를 정렬했다. 스탬프를 찍었다.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었다. 2024년 3월 15일 오후 4시 15분. 정확히 13년 후, 같은 날짜였다.
"이상한데, 피고인이 돌아가셨으면 명예회복이..."
담당자가 말을 흐렸다. 박지현은 설명하지 않았다. 법원 복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의뢰인들이 민원실을 드나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혼 조정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상속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인생이 법원 복도에 펼쳐져 있었다.
박지현은 영수증을 받았다. 손에 들려 있는 영수증.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법정의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하지만 곧 열릴 것이다.
박지현이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서진우는 이미 모든 신문 기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상민 국장 진급 확정. 내일 공식 임명장 수여식."
"알았어."
"그리고..."
서진우가 화면을 가리켰다. 또 다른 기사가 떠 있었다.
*"검사 김민석, 강력범죄 특별수사팀 팀장 임명"*
김민석. 13년 전 이준호를 기소한 검사였다. 그도 진급했다.
박지현은 책상에 앉았다. 영수증을 테이블 위에 놨다. 재심청구서 접수 증명. 손가락이 영수증 위에서 멈춰 있었다.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준호의 13년을 법정으로 옮기는 유일한 증거였다.
"선배..."
"알아. 모두 진급했어. 이제 그들은 더 강해졌어."
서진우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박지현이 설명했다.
"이상민은 국장이 되었고, 김민석은 팀장이 되었어. 이제 그들은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국가 기관의 신뢰도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어.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야. 첫 번째,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거나. 두 번째, 이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거나."
"그럼..."
"법정에서 만나자는 거야. 그곳에서만 그들을 멈출 수 있어."
박지현은 컴퓨터를 켰다. 화면에는 법정 일정이 떠 있었다. 재심청구 심문 예정일은 4월 12일. 정확히 한 달 뒤였다.
한 달.
그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박지현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준호가 남긴 증거들이 법정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박지현은 창밖을 봤다. 밤이 내려오고 있었다. 서울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그 불빛들 사이로, 법원 건물이 보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4월 12일, 그곳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박지현은 상자를 들었다. 준호의 유품이 담긴 상자. 그 안에는 13년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13년의 억울함, 13년의 기다림, 13년의 절망.
그리고 이제, 희망.
박지현은 상자를 닫았다. 준호의 글씨가 보였다. 마지막 메모.
*"당신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 글씨 옆에, 박지현이 펜으로 새로운 글씨를 썼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그 글씨를 바라보며 박지현은 공허함을 느꼈다.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호는 이미 죽었고, 13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허함 뒤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법정에서 진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결연함이.
밤은 계속 깊어갔다.
박지현은 컴퓨터 화면으로 돌아왔다. 증거 목록을 다시 검토했다. 지문 채취 기록의 시간 차이, 공식 기록과 맞지 않는 현장 사진들, 준호의 일기에 기록된 경찰의 재방문. 하나씩 법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부분들을 표시했다.
그러나 의문이 생겼다.
이 증거들이 정말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증거 수집의 합법성 문제를 이상민이 제기했을 때, 박지현이 제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충분할까. 준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증거는 법적으로 유효한가.
박지현은 판례를 찾기 시작했다. 유사 사건들, 증거 능력에 관한 판례들, 공소시효 관련 법률. 밤이 깊어갈수록 화면 위에는 법조문들이 쌓여갔다.
새벽 5시. 박지현은 여전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은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고, 눈은 판례문을 따라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피로와 긴장이 섞여 있었다.
4월 12일까지 남은 시간은 27일.
27일 안에 이상민과 김민석의 법적 반박을 모두 준비해야 했다. 그들은 이제 개인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대리인이었다. 그들의 변론은 단순한 개인의 명예 보호를 넘어, 경찰청과 검찰청 전체의 신뢰도를 지키는 것이 될 것이다.
박지현은 다시 증거 목록을 들었다. 준호가 남긴 문서들. 13년을 옥중에서 모은 증거들.
이것들이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박지현의 마음 속에서 자꾸만 떠올랐다. 증거 능력의 문제는 피할 수 없었다. 이상민이 제기한 합법성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청과 검찰청이 조직적으로 반박할 때 박지현이 방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충분한지 확실하지 않았다.
박지현은 손을 멈추고 화면을 바라봤다. 판례들이 떠 있었다. 비슷한 사건들. 하지만 정확히 같은 사건은 없었다.
법정은 아직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질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