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구치소 면회실의 형광등은 언제나 같은 밝기로 죽음을 밝혔다. 박지현이 들어선 순간, 그 차가운 빛이 그의 얼굴을 깎아냈다. 20년을 법정에서 보낸 변호사도 이곳의 공기는 처음이었다. 콘크리트 냄새, 락스 냄새, 그리고 절망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준호는 이미 앉아 있었다.
회색 수감복을 입은 남자는 박지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먼저 고개를 숙였다. 13년이라는 시간이 그의 어깨를 얼마나 내려앉혔는지 한눈에 드러났다. 손목에는 수감자 팔찌가 채워져 있었고, 그 플라스틱 밴드는 마치 그의 인생 자체를 기록하는 바코드처럼 보였다.
"이준호 씨입니다."
박지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네, 변호사님."
준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또렷했다. 박지현은 기대했던 신경질적인 톤이 아닌, 차분한 응답에 한 번 놀랐다. 법정에서 만난 수많은 의뢰인들은 대부분 소리를 지르거나 울었다. 그들의 절망은 외향적이었다. 하지만 준호의 절망은 내향적이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재심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사건을 다시 살펴봤고, 당시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박지현의 말은 정확했다. 감정을 섞지 않은 법률가의 언어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박지현은 준호의 눈을 보았다.
그곳에는 죽어있어야 할 것들이 살아있었다. 희망이었다.
"13년 전 강남역 뒤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 당신은 현장에서 채취된 지문과 목격자의 증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지현이 준호의 앞에 검은 폴더를 펼쳤다. 그 안에는 13년 전의 사진들이 있었다. 범행 현장의 모습, 피해자 최준영 씨의 시신, 그리고 준호의 당시 얼굴이 담긴 수사기록 사진이었다.
"피해자는 52세 남성, 오피스텔 운영자였습니다. 당신은 돈을 빼앗기 위해 그를 흉기로 찌르고 현장에서 도주했다고 기소됐습니다. 지문이 현장에 남겨져 있었고, 옆 건물에 있던 목격자가 당신을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박지현이 말하는 동안,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동의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이미 몇 백 번을 들었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무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네."
한 글자의 대답.
"13년을 그렇게 주장하면서 옥중에 있었습니다."
"네."
또 다시 한 글자.
박지현은 준호를 바라봤다. 20년간의 변호사 경험 속에서 수많은 피고인들을 만났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절망 속에 자포자기한 사람들. 하지만 준호는 달랐다. 13년을 같은 말로 일관했다. 그것은 집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 가진 무게였다.
"당신의 지문이 왜 현장에 있었을까요?"
박지현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준호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고, 다시 멈췄다. 마치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도 모릅니다. 저는 그곳에 간 적이 없습니다."
"목격자는?"
"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준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박지현은 그 차이를 느꼈다. 거짓말쟁이는 차분하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 자는 확신으로 말한다. 이것은 법정의 논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의 직관이었다.
"변호사님."
준호가 박지현을 바라봤다. 그 순간, 박지현의 심장이 한 박자 뛰었다.
"법이 정말 정의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지현은 답할 수 없었다. 20년을 법 위에 세웠던 자신의 발이 흔들렸다. 법이 정의인가. 그 질문은 그가 법대에 들어간 이후 한 번도 진지하게 던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저는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준호의 손이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수감자 팔찌가 딸깍 소리를 냈다.
"변호사님, 제가 남긴 것들을 꼭 봐주세요. 저는 죽기 전에 제 명예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박지현의 얼굴이 변했다. 차분함이 사라졌다. 법률가의 탈이 벗겨졌다. 남은 것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 눈빛에는 결연함이 켜져 있었다.
"저는 당신을 돕겠습니다. 재심을 청구하겠습니다. 당신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하겠습니다."
박지현의 말이 나갔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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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를 나가는 길은 긴 복도였다. 박지현의 구두 소리가 타일 위에서 울렸다. 한 발 한 발이 무거웠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박지현은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떴던 것은 뉴스 알람이었다.
**[속보] 서울구치소 수감자 이준호 옥중 사망…심장마비로 추정**
손가락이 화면을 놓쳤다. 휴대폰이 손가락 사이에서 떨렸다. 시간이 뒤틀렸다. 방금 전 준호는 앉아있었다. 테이블 너머에서 박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살아있었다.
화면을 다시 읽었다.
**사망 시간: 오후 2시 45분경**
면회 종료: 오후 2시 33분.
정확히 12분.
박지현은 뒤돌아섰다. 구치소 정문이 다시 보였다. 경비원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변호사는 뛰지 않는다. 변호사는 절차를 따른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의무실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박지현이 문을 두드렸을 때, 의무관의 얼굴이 나타났다.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준호 수감자를 봤습니다. 방금 전입니다."
박지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의무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박지현은 준호의 유품 상자를 받았다. 종이 박스에 준호의 이름이 검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손글씨였다.
상자를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13년의 무게가 이 정도일까. 그 가벼움이 더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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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에서 박지현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옷가지들, 몇 권의 책, 그리고 종이들. 준호가 13년 동안 모아온 것들이었다. 종이들을 꺼냈다. 옥중 편지, 법원 판결문, 수사기록 사본들.
그리고 맨 아래.
손가락이 멈추었다.
현장 지문 채취 기록이었다. 공식 증거 목록에는 없는 것. 손가락이 기록을 따라갔다.
공식 기록: 오후 11시 23분
이 기록: 오후 2시 37분
박지현의 손가락이 두 시간을 오갔다. 13시간의 차이.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기록의 모서리를 반복해서 짚었다. 종이의 질감, 잉크의 농도, 필체의 흔들림. 모든 것이 말을 걸어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조작했다. 13년 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거짓이 여기 있었다.
그 옆에 준호의 손글씨가 있었다.
**"변호사님, 이것을 꼭 봐주세요. 이것이 저를 살릴 겁니다."**
택시 기사가 뒷좌석을 보며 말했다. "손님, 목적지가 어디세요?"
박지현은 정신을 차렸다. 사무실 주소를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
창밖의 서울이 지나갔다. 강남대로의 차들, 신호등의 빨강과 초록, 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서울구치소에서 13년을 버틴 남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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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박지현은 상자의 나머지 것들을 꺼냈다.
봉투였다. 회색 봉투. 그 위에 준호의 손글씨가 있었다.
**"법정에서 사용하세요."**
봉투를 열었다. 사진들이었다. 공식 기록에 없는 각도에서 촬영된 현장 사진들. 각 사진 뒤에는 준호의 손글씨 주석이 있었다.
**"이 사진은 공식 기록에 없습니다."**
**"이 사진은 수사팀이 숨긴 것입니다."**
**"이 사진이 저를 살렸을 겁니다."**
사진을 하나씩 책상에 펼쳤다. 13년 전 강도살인 현장. 하지만 공식 기록에는 없는 각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 있는 손가락 자국. 지문.
그것은 이준호의 손가락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식 증거에 기록된 적이 없었다.
다른 손가락 자국. 그것은 누구의 것인가?
박지현은 일어섰다. 노트북을 켰다. 당시 수사 팀장의 이름을 검색했다. 이상민.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 이상민, 대검찰청 지명 예정]**
최근 뉴스였다. 1주일 전.
얼굴이 굳었다. 이상민은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13년 전 그의 사건이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문이 열렸다. 서진우가 들어왔다.
"선배, 뭐가 이렇게..."
서진우의 말이 멈췄다. 책상 위에 펼쳐진 것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들, 기록들.
"저건?"
박지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준호가 남긴 증거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13년 전 경찰이 숨긴 것들이다."
박지현은 노트북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다. 각 장면을 정확히 기록했다. 손가락 자국, 시간 기록, 필체의 흔들림. 13년의 증거를 디지털로 보존했다.
"재심을 청구한다. 내일 아침."
목소리는 명확했다.
"그리고 우리는 경찰청을 법정에 세울 것이다."
서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박지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박지현은 다시 앉았다. 준호가 남긴 사진 하나를 집었다. 그 사진에는 범행 현장의 전체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모서리에 다른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눈이 그것을 따라갔다. 그 손가락 자국은 누구의 것인가? 공식 기록에는 없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받았다.
"박 변호사님이세요?"
남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차분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이상민입니다."
호흡이 멈추었다.
"이준호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이상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협박이 아니었다. 더 위험한 것이었다.
"당신이 가진 것들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요."
침묵했다.
"준호 군이 당신에게 뭔가 남겼나요? 사진? 기록? 그런 것들이 세상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경력도 문제지만, 당신의 아들은요? 지금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예지초등학교 3학년 다니죠?"
손이 떨렸다. 이것은 협박이었다. 직설적인 협박. 그리고 이상민은 박지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카페. 제가 위치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혼자 오세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이상민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계속 떨렸다. 서진우가 물었다.
"누가요?"
"경찰청이다."
박지현의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그 아래에는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이상민이라는 수사대장이다. 그는 우리가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 아들을 협박했다."
서진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박지현은 준호의 사진들을 다시 들었다. 그 사진들 속에는 13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무게는 박지현의 어깨 위에만 놓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상민의 목에도 걸려 있었다.
박지현은 천천히 일어섰다. 창밖의 야경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법정은 아직 열지 않았다.
"내일 아침 첫 번째 일은 재심 청구다."
박지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불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법정에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