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결승전, 최후의 기회

경기장의 조명이 준호의 얼굴을 집중조명했다. 전국 아마 챔피언십 결승전. 서울 엘리트 vs 다시 일어나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스코어보드는 냉정했다. 38-23. 15점차.

준호는 라커룸의 벤치에 앉아 무릎을 눌렀다. 70분 동안 뛴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통증은 없었다. 대신 무감각함이 있었다. 신체가 신호를 보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석진 감독이 화이트보드 앞에서 후반전 전술을 설명했다. 정태훈의 78% 정확도, 그들의 정교한 피크앤롤, 서울 엘리트의 압도적 디펜스. 모든 게 준호를 누르고 있었다.

"후반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박준과 수호다. 그들의 리바운드와 빠른 공격. 정태훈이 우리를 얕잡아본 사이에 점수차를 줄인다." 감독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떨리지 않았다. 다만 절박했다. "준호. 넌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말고, 그들이 오면 디펜스만 해. 알겠나?"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지 말라는 건 무엇인가. 능력을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능력을 쓰지 않으면 15점차를 뒤집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하지만 감독은 그래도 말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박준이 첫 번째 공격에서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손이 붕대로 감싸여 있었지만, 그의 팔은 움직였다. 움직이는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수호가 빠른 페이스로 공을 옮겼다. 준호가 윙에서 받았다. 정태훈의 가드가 붙었다. 준호는 슈팅하지 않았다. 박준에게 패스했다. 박준이 페인트 플레이로 2점을 득점했다.

34-25. 9점차로 줄었다.

경기는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서울 엘리트가 점수를 냈다. 다시 일어나다가 따라갔다. 정태훈이 3점을 성공시켰다. 수호가 빠른 드라이브로 2점을 만들었다.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을 바꿨다.

후반 5분 남았을 때, 스코어는 63-61. 다시 일어나다가 2점 앞서 있었다.

정태훈이 볼을 받았다. 그의 손에서 슛이 나왔다. 공이 호를 그렸다. 들어갔다. 64-63. 서울 엘리트가 앞섰다.

수호가 공을 가져갔다. 준호에게 패스했다. 준호가 움직였다. 느리게, 조심스럽게. 정태훈의 가드가 붙었다.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이 달려왔다. 준호가 패스했다. 박준이 슈팅했다. 2점. 65-64. 다시 일어나다가 앞섰다.

3분.

정태훈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농구는 기계 같았다. 정확하고, 차갑고, 아름다웠다. 3점. 67-65. 서울 엘리트.

준호의 심장이 울렸다. 이 정도 차라면 능력을 쓸 수 있다. 다음 공격에서 마지막 3초. 능력을 발동하면 된다. 무릎은 이미 망가졌다. 한 번 더 망가지는 게 무엇인가. 챔피언이 되면 된다. 프로팀이 기다리고 있다. 에이전트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게 준비되어 있다.

수호가 공을 가져갔다. 빠르게 준호에게 넘겼다. 준호가 받았다.

3초.

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이 슈팅이 모든 걸 결정한다. 유령 슈터가 깨어났다. 절박함이 그를 감쌌다. 능력의 맛이 혀에 올랐다.

그때.

박준의 눈이 준호를 봤다.

완벽하게 박준의 눈을 봤다. 붕대로 감싼 손, 땀으로 젖은 얼굴, 하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준의 입이 움직였다. 말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준호는 몰랐다. 하지만 읽혔다. "우리가 이겨."

수호도 봤다. 수호의 눈이 준호를 봤다. 수호의 입도 움직였다. "형, 우리를 믿어."

3초가 2초가 되었다.

준호의 손이 멈췄다. 능력이 물러났다. 그게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능력을 불러내는 것보다, 능력을 밀어내는 게 훨씬 어려웠다.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의 손이 받을 준비를 했다. 준호는 패스했다.

공이 박준의 손으로 들어갔다.

박준이 페인트 안에서 슈팅했다. 1초.

공이 떠올랐다.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공이 호를 그렸다. 높게, 완벽하게. 준호의 심장이 멈췄다. 박준의 얼굴이 보였다. 박준의 눈은 공을 따라갔다. 정태훈의 얼굴도 보였다. 한지현도 보였다. 모든 관중이 일어섰다. 아니, 아직 앉아 있었다. 모두가 숨을 참고 있었다. 공이 링에 닿았다.

접촉의 순간. 금속음이 났다. 콰닥.

공이 링을 한 바퀴 돌았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마치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준호의 눈이 커졌다. 박준의 입이 벌어졌다. 수호의 주먹이 쥐어졌다. 경기장의 모든 시간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공이 링 안으로 떨어졌다.

휘이이이이잉—

호루라기가 울렸다.

경기장이 폭발했다. 아니, 폭발하지 않았다. 경기장이 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관중의 비명, 박준의 외침, 수호의 울음, 감독의 목소리. 모든 음성이 한 점으로 모여 하늘을 뚫었다.

67-68.

다시 일어나다가 앞섰다.

정태훈이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다. 3초. 그의 손에서 3점 슈팅이 나왔다. 완벽한 폼이었다. 하지만 공은 링을 빗나갔다. 공이 날아갔다. 끝이었다.

챔피언.

준호가 코트로 달려나갔다. 박준이 준호를 안았다. 박준의 붕대 감싼 팔이 준호의 등을 치고 있었다. 수호가 따라왔다. 감독이 따라왔다. 팀원들이 따라왔다.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준호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다. 기쁨 때문이었다.

20분 후, 우승식이 시작되었다.

임석진 감독이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감독이 트로피를 준호에게 건넸다. 준호가 받았다. 그리고 박준에게 넘겼다. 박준이 수호에게 넘겼다. 수호가 다른 팀원에게 넘겼다. 모두가 함께 들어올렸다.

준호는 트로피를 보지 않았다. 박준의 얼굴을 봤다. 박준은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수호도 봤다. 수호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다. 임석진 감독도 봤다. 감독은 준호를 바라봤다. 감독의 눈 속에는 승리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게 있었다.

'다시 일어나다.'

팀의 이름이 정확했다.

로커룸으로 돌아갔을 때,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프로팀이었다. 다섯 번째 전화였다. 준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멈췄다.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이준호 선수, 당사의 복귀 제안을 검토해 주셨기를 바랍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연락 주시기를…"

준호가 끊었다.

박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뭐 하니?"

준호가 박준을 봤다. 박준은 이미 샤워를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붕대는 벗겨져 있었다. 손가락이 부어 있었다.

"생각 중이야."

"뭘 생각해?"

준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내일 대답하기로 했어."

박준이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이해가 있었다. "뭐든 선택해도 괜찮아. 우린 이미 우승했잖아."

준호가 박준을 봤다. 박준의 부어 있는 손가락, 땀으로 젖은 머리, 하지만 그의 눈은 맑았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박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때 수호가 들어왔다. "감독이 우리 모두 저녁 먹자고 했어. 가자."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전화는 계속 울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른 목소리들이 있었다. 박준의 웃음, 수호의 재촉, 감독의 발걸음. 그 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다.

준호가 로커룸을 나갔다. 박준과 수호가 따라왔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다른 번호였다. 강남 체육관의 번호.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면을 끈 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선택은 내일이다. 오늘은 아니다.

# 결승전, 최후의 기회

공이 링 안으로 떨어졌다.

휘이이이이잉—

호루라기가 울렸다.

경기장이 폭발했다. 아니, 폭발하지 않았다. 경기장이 소리를 멈췄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관중의 비명, 박준의 외침, 수호의 울음, 감독의 목소리. 모든 음성이 한 점으로 모여 하늘을 뚫었다.

67-68.

다시 일어나다가 앞섰다.

정태훈이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다. 3초. 그의 손에서 3점 슈팅이 나왔다. 완벽한 폼이었다. 하지만 공은 링을 빗나갔다. 공이 날아갔다. 끝이었다.

챔피언.

준호가 코트로 달려나갔다. 박준이 준호를 안았다. 박준의 붕대 감싼 팔이 준호의 등을 치고 있었다. 수호가 따라왔다. 감독이 따라왔다. 팀원들이 따라왔다.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준호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다. 기쁨 때문이었다.

20분 후, 우승식이 시작되었다.

임석진 감독이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감독이 트로피를 준호에게 건넸다. 준호가 받았다. 그리고 박준에게 넘겼다. 박준이 수호에게 넘겼다. 수호가 다른 팀원에게 넘겼다. 모두가 함께 들어올렸다.

준호는 트로피를 보지 않았다. 박준의 얼굴을 봤다. 박준은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수호도 봤다. 수호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다. 임석진 감독도 봤다. 감독은 준호를 바라봤다. 감독의 눈 속에는 승리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게 있었다.

'다시 일어나다.'

팀의 이름이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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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룸으로 돌아갔을 때,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프로팀이었다. 다섯 번째 전화였다. 준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멈췄다.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이준호 선수, 당사의 복귀 제안을 검토해 주셨기를 바랍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연락 주시기를…"

준호가 끊었다.

박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뭐 하니?"

준호가 박준을 봤다. 박준은 이미 샤워를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붕대는 벗겨져 있었다. 손가락이 부어 있었다.

"생각 중이야."

"뭘 생각해?"

준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내일 대답하기로 했어."

박준이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이해가 있었다. "뭐든 선택해도 괜찮아. 우린 이미 우승했잖아."

준호가 박준을 봤다. 박준의 부어 있는 손가락, 땀으로 젖은 머리, 하지만 그의 눈은 맑았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박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때 수호가 들어왔다. "감독이 우리 모두 저녁 먹자고 했어. 가자."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전화는 계속 울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른 목소리들이 있었다. 박준의 웃음, 수호의 재촉, 감독의 발걸음. 그 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다.

준호가 로커룸을 나갔다. 박준과 수호가 따라왔다. 뒷모습이 복도를 지나갔다.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다른 번호였다. 강남 체육관의 번호.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면을 끈 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선택은 내일이다. 오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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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경기장 인근의 작은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테이블에는 임석진 감독, 박준, 수호, 그리고 다시 일어나다의 모든 선수들이 앉았다. 회사원 출신의 파워 포워드, 대학을 중퇴한 슈터, 나이 많은 센터. 이들은 프로를 꿈꿨던 사람들이거나, 처음부터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테이블에선 모두가 챔피언이었다.

임석진 감독이 잔을 들었다. "건배."

모두가 잔을 들었다.

"우리는 진정한 팀이 되었다. 우리는 정태훈을 이겼고, 한지현을 이겼고, 서울의 모든 엘리트를 이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이 멈췄다. 그의 눈이 준호를 찾았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을 이겼다는 거다. 우리는 약했다. 하지만 약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함께했다."

준호가 감독을 봤다. 감독의 얼굴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경기장 옆 벤치에서 계속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계속 말했다.

"준호, 넌 이 팀에 올 필요가 없었다. 넌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넌 여기 남았다. 그리고 넌 우리와 함께 이겼다."

준호의 목이 메었다.

"이제 넌 선택할 수 있다. 프로로 갈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남을 수도 있다. 그건 너의 인생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감독이 잔을 마셨다.

"넌 이미 프로다. 넌 이미 충분하다."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박준이 준호의 어깨를 쳤다. 수호가 웃었다. 다른 팀원들도 웃었다.

준호는 그 자리에서 울지 않으려고 힘썼다. 하지만 눈물이 나왔다. 2년 전, 강남 체육관 지하에서 3점 내기를 하며 '다시 선수가 되겠다'고 맹세했던 그 날 이후, 준호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누구도 준호를 '선수'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두는 '낙오자', '전직 선수', '용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임석진 감독은 '너는 이미 프로다'라고 말했다.

---

밤 11시 30분, 준호는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감독이 운영하는 작은 원룸이었다. 준호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별 모양의 형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누가 붙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 별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휴대폰을 들었다. 프로팀의 전화 기록이 5개 남아 있었다. 음성 메시지도 3개. 내용은 비슷했다. 내일 오전까지 답변을 달라. 복귀 계약금은 5억. 3년 계약. 의료 지원은 충분하다.

준호는 전화 기록을 삭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켰다.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박준이 슈팅하는 순간. 수호가 드리블하는 순간. 감독이 손을 모으는 순간. 그리고 마지막 사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두의 모습.

준호는 그 사진을 오래 봤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강남 체육관 번호. 이번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준호?"

"네."

"여긴 강남 체육관이야. 기억해?"

준호가 웃음을 참았다. "네, 기억합니다."

"너 우승했다고 들었어.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야. 너 프로팀 복귀 제안 받은 거 알고 있어?"

준호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에이전트가 우리한테 연락했어. 너 데려갈 수 있느냐고. 네 진짜 실력을 프로에서 봤을 때…"

통화가 끝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체육관 사람이 계속 말했다.

"너 여기서 3점 내기로 벌던 돈 얼마 됐어?"

준호가 생각했다.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였어요."

"프로 복귀하면 얼마 벌겠어?"

"한 달에 5000만 원."

"25배네. 그래도 우리 체육관 생각 안 나?"

준호가 웃었다. 이상한 웃음이었다. 강남 체육관은 준호의 악몽이었다. 습한 지하, 냄새나는 공, 냉정한 도박꾼들. 하지만 그곳에서 준호는 살았다. 그곳에서 준호는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준호는 다시 찾기 시작했다.

"생각 날 것 같아요."

"좋아. 그럼 조건 다시 생각해 봐. 넌 우리 체육관 최고의 선수야. 넌 우리 자산이야."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자산. 도구. 선수. 용병. 모두 다른 말이지만 모두 같은 의미였다. 누군가의 소유물이라는 뜻. 하지만 오늘 준호는 다른 말을 들었다.

'너는 이미 프로다.'

준호는 천장의 별을 봤다. 별들이 더 밝아 보였다.

---

다음날 아침 9시 45분, 준호는 로커룸에 있었다. 박준과 수호가 옆에 앉아 있었다. 박준은 책을 읽고 있었고, 수호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우승팀 센터 박준, 프로 스카우트 제안 받아' …이거 봤어?"

수호가 휴대폰을 보였다. 박준이 얼굴을 들었다.

"뭐?"

"너한테 프로팀 제안 왔대.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박준이 웃었다. "그냥 헛소리야. 나 이미 33살이야. 프로는 너나 준호 같은 애들 무대지."

수호가 휴대폰을 내렸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좋은 제안이잖아."

박준이 책을 내려놨다. "좋은 제안은 많아. 중요한 건 뭘 선택하냐야. 난 이미 선택했어. 너도 알지?"

박준이 준호를 봤다.

"형도 선택했어?"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거짓이었다. 준호는 아직 선택하지 못했다. 시간은 9시 45분. 15분 뒤에 프로팀에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응."

"뭐 선택했어?"

준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박준이 웃었다.

"아직 못 정했구나."

준호가 박준을 봤다.

"정해."

박준이 준호의 옆에 앉았다. 박준의 부은 손가락이 준호의 어깨를 톡톡 쳤다.

"넌 뭘 원해? 정말로?"

준호가 생각했다. 프로 무대. 5억 계약금. 의료 지원. 다시 '선수'라는 이름을 얻는 것. 그 모든 게 준호가 2년 동안 꿈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꿈이 손 안에 들어오니, 뭔가 달랐다.

"모르겠어. 둘 다 원하는데."

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프로에 가면 뭐가 좋아?"

"돈도 벌고, 다시 선수가 되고…"

"그 다음은?"

"…뭐, 없어. 그게 다야."

박준이 웃었다. "그래. 그게 다야. 그런데 여기 있으면?"

"여기?"

"응. 여기 남으면 뭐가 좋아?"

준호가 생각했다. 돈은 적다. 무릎도 계속 아플 것이다. 프로 무대는 없다. 하지만…

"너희가 있어."

박준이 준호의 어깨를 안았다.

"그래. 우린 있어. 그리고 우린 계속 있을 거야. 넌 우리 팀이니까."

준호가 박준을 봤다. 박준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넌 프로에 가도 괜찮아. 우린 응원할 거야. 하지만…"

박준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뭐?"

"하지만 우린 너 없이 다시 우승 못할 것 같아. 우리는 팀이거든."

수호가 다가왔다. "형, 우리랑 계속 해 줄래?"

준호가 두 사람을 봤다. 박준과 수호. 2년 동안 준호는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준호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본 사람들. 준호가 약해져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10시 정각. 프로팀이었다.

준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안녕하세요."

"이준호 선수 맞습니까?"

"네."

"당사의 복귀 제안에 대한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계약금 5억, 3년 계약, 의료 지원 충분…"

준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안 거절하겠습니다."

통화 상대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 거절이요?"

"네. 저는 여기 남기로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계약금을 …"

준호가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박준과 수호가 준호를 봤다.

"뭐 했어?"

"거절했어."

박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응."

수호가 준호를 안았다. "형, 고마워."

준호가 수호의 등을 톡톡 쳤다. 박준도 안았다. 셋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 순간, 로커룸 문이 열렸다. 임석진 감독이 들어왔다.

"뭐 하고 있어?"

박준이 감독을 봤다. "감독, 준호가 여기 남기로 했어."

임석진 감독이 준호를 봤다. 감독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

"네."

감독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감독이 준호의 어깨를 안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로커룸을 나온 후, 준호는 혼자 체육관 코트로 갔다. 텅 빈 코트. 아침 햇살이 들어와 바닥을 밝혔다.

준호가 한 손으로 공을 집었다. 무릎이 아팠다. 여전히 아팠다. 아마 평생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준호가 3점 라인 바깥에서 슈팅을 했다. 공이 링을 통과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공은 계속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느껴졌다. 강남 체육관에서의 슈팅과 다르게. 그곳에서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건 기쁨을 위한 것이었다.

준호가 코트 중앙에 섰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아침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준호가 눈을 감았다.

2년 전, 준호는 프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릎 부상으로. 그 때 준호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되었다.

유령 슈터. 초능력. 그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시작은 박준이었다. 수호였다. 임석진 감독이었다. 팀이었다.

준호가 눈을 떴다. 코트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준호의 옆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들이 있었다.

박준의 웃음. 수호의 응원. 감독의 눈물. 팀의 신뢰.

준호가 공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슈팅했다. 공이 링을 통과했다.

이제 준호는 안다. 백 번을 놓쳐도 괜찮다는 것. 왜냐하면 백 번 중 한 번이 들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 그리고 그 한 번을 위해 팀이 있기 때문.

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강남 체육관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웃음이었다. 절박함이 아닌 감사함으로 가득한 웃음이었다.

체육관 밖에서 박준과 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밥 먹자!"

준호가 코트를 나갔다. 박준과 수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해?"

"슈팅 연습."

수호가 웃었다. "우승했는데 왜 또 연습해?"

"내일을 위해."

박준이 준호의 등을 쳤다. "그래.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지."

셋이 함께 걸었다. 햇살 아래로. 강남 체육관의 습한 지하가 아닌, 햇빛이 드는 길로.

준호는 뒤를 돌아봤다. 체육관의 작은 창문에서 별 모양의 형광 스티커들이 보였다. 아침 햇살에도 불구하고, 그 별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준호가 다시 앞을 봤다. 박준과 수호는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이 햇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준호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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