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단신공
정태훈 팀의 버스가 체육관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준호는 로커룸 창문 너머로 그것을 봤다. 광고판에 'SEOUL ELITE'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팀. 프로 진출을 앞둔 선수들이 가득한 팀.
준호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저 팀 정말 강하대. 지난 시즌 우승팀이고." 박준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우리가 이기면 상금 500만 원인데."
수호는 대답 대신 슈팅 폼을 체크했다. 그의 입술은 일직선이었다. 감독 임석진은 로커룸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시간을 주는 방식이었다.
준호는 테이핑된 무릎을 만졌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불안감이 남았다. 능력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지 사흘. 그 결심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준호는 안다.
서울 엘리트는 다른 차원이었다.
첫 오프닝 플레이에서 정태훈이 공을 받았다. 준호가 수비를 붙었지만, 정태훈의 첫 번째 드리블은 준호의 예상을 벗어났다. 속도가 다르다. 무릎이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프로 선수의 몸이다.
정태훈이 스리포인트 라인 너머에서 슈팅했다. 거리 8미터. 공은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링을 통과했다.
3-0.
준호는 정태훈의 슈팅 폼을 봤다. 팔꿈치의 각도, 손가락의 끝맺음, 발의 위치. 모든 것이 교과서적이었다. 그것이 프로 수준의 슈팅이다. 준호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2쿼터 초반, 박준이 로우 포스트에서 공을 받으려 했다. 정태훈의 팀 센터가 그를 강하게 눌렀다. 박준이 몸으로 버티려 했지만, 슈팅을 시도한 순간 정태훈이 옆에서 팔을 내밀었다. 블록이 깔끔했다. 공이 박준의 손가락을 스치며 튕겨나갔다.
박준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준호의 심장이 멈췄다.
"박준!"
박준이 바닥에서 오른쪽 팔을 감싸 안고 신음했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의료진이 들어왔다. 이은정이 박준의 팔을 확인했다. 부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호의 안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렸다.
유령 슈터의 신호다.
'이 경기를 이겨야 한다. 박준이 다쳤다. 팀이 필요하다.'
절박함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능력은 그 온도를 감지했다. 준호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펼쳐졌다. 다음 기회가 오면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 확신이 몸에 배었다.
그때 임석진 감독이 타임아웃을 외쳤다.
벤치에 모인 선수들 앞에서 감독은 준호를 봤다. 눈빛이 말했다. '하지 마.'
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경기는 계속됐다. 박준은 부상이 경미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플레이를 멈췄다. 그 순간부터 팀의 리듬이 깨졌다. 박준의 로우 포스트 플레이가 없어지자 서울 엘리트의 수비 압박이 더욱 강해졌다. 준호와 수호는 페리미터에서 계속 압박당했다. 정태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3쿼터 내내 그는 슈팅을 날렸다. 한 경기에 9개의 슈팅 중 7개가 들어갔다. 정확도 78%. 프로 수준이었다. 준호가 수비를 붙어도 정태훈은 준호를 상대로 4번 슈팅해 4번 모두 성공시켰다.
'내가 이 정도밖에 못 하는 건가.'
준호의 입 안에서 그 생각이 반복됐다.
4쿼터 중반, 서울 엘리트는 20점을 앞서가고 있었다. 72-52. 더 이상 경기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압도였다.
경기 종료 후, 준호는 로커룸에 앉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이 드러누워 신음하는 와중에, 준호는 벽에 등을 기대 섰다.
박준이 다가왔다. 오른쪽 팔이 붕대로 감싸져 있었다.
"괜찮아." 박준이 말했다. "다음 기회가 있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 박준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팀이야. 한 선수의 능력이 아니라 다섯 선수가 함께..."
"물러나." 준호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넌 다쳤다. 쉬어."
박준이 입을 다물었다. 준호의 눈빛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며칠간 봤던 따뜻한 눈빛이 사라졌다. 차갑고, 절망적이고, 혼자인 눈빛이었다.
박준은 돌아섰다.
체육관을 나간 준호는 주차장에 섰다. 저녁 햇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은 회색이었다.
손이 떨렸다.
팔 전체가 떨렸다.
정태훈의 슈팅 폼이 자꾸만 떠올랐다. 완벽한 각도.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결과. 그것이 프로의 세계다. 그리고 자신은? 아마추어 팀에서 능력에 의존하는 선수. 능력조차 쓸 수 없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선수.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 이은정의 목소리였다. 의사 톤이 아니라 누나의 톤이었다. "경기 봤어. 넌 오늘 능력을 안 썼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내가 알아. 그래도 참았어."
"졌는데."
"응. 졌어. 한 경기야."
"다음 경기도 질 거야." 준호가 말했다. "계속 질 거야."
전화 너머에서 이은정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 참다가 말했다.
"준호, 나 걱정돼. 넌 또 능력을 쓸 거 같은데." 이은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하지 마. 한 번만 더 써도 영구 부상이야. 인공 관절 수술까지 나온 상태인데... 제발."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었어?"
"응."
휴대폰을 내렸다. 화면이 검어졌다.
체육관 방향을 보니 조명이 켜지고 있었다. 감독이 내일 경기를 위해 선수들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박준이 나갈 것이다. 수호도 나갈 것이다. 그들은 다시 일어서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준호는?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서울 엘리트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한지현이었다.
"준호."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한지현의 얼굴에는 연민이 없었다. 그저 사실만 있었다. "넌 이미 끝났어."
"뭐?"
"정태훈과 우리들의 차이 봤지?" 한지현이 한 발 가까워졌다. "넌 그 차이를 절대 못 좁혀. 넌 이미 2년 전에 끝났어. 부상으로 무너진 선수. 그게 넌데, 왜 자꾸..."
"나가."
"현실을 봐야 해." 한지현이 계속했다. "넌 프로 선수가 될 수 없어. 이 팀도 우승할 수 없어. 그냥 편하게 받아들여. 더 이상 상처 받지 말고."
준호의 주먹이 쥐어졌다. 그 순간, 한지현의 말이 정확히 어디를 맞췄는지 자신도 알았다.
2년 전의 준호. 프로 무대에서 빛나던 선수. 그 선수가 부상 한 번에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 2년은 그 손실을 되돌리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발버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한지현이 돌아섰다. "내일 우리는 여기서 떠나. 넌 여기 남아. 그게 맞아."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체육관 조명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곳에서 박준과 수호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감독이 전술을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준호의 손가락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절망의 신호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김준석'이었다. 에이전트.
"이준호."
"..."
"나 걱정되는데, 넌 어때? 경기 봤어. 그런데..." 김준석의 목소리가 달콤했다. "이제 우리와 함께 다시 시작하자. 프로 무대로 돌아와. 내가 다 준비했어. 계약서도 있고."
"뭔 소리야."
"너 지금 절박하지? 그 절박함이 바로 니가 필요한 거야. 혼자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라면, 넌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에이전트의 목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화면을 향해 뻗어졌다. 끝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준호는 멈췄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떨렸다.
한지현의 말이 맞다면, 능력을 다시 쓰면 된다. 정태훈을 이길 수 있다. 프로 무대로 돌아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준호의 눈이 감겼다. 인공 관절 수술. 영구 부상. 이은정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팀.
박준의 말. 수호의 웃음. 감독의 눈빛.
손가락이 내려왔다.
화면을 터치했다.
통화가 끊겼다.
주차장의 조명 아래서 준호는 서 있었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고, 무릎이 아팠고,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때다.
로커룸의 문이 열렸다. 박준이 나왔다. 팔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싸여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준호의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준호."
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박준이 준호의 앞에 섰다. "내일 경기가 있어. 우리 팀이 이겨야 할 경기. 그리고..." 박준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넌 필요해. 그 능력이 아니라, 너 자신이."
"난 너 때문에 이 모든 게 무너졌어." 준호가 말했다. "넌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왜냐하면..." 박준이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팀이니까. 그리고 팀은 혼자가 아니야."
준호의 눈에 뭔가가 맺혔다.
하지만 그것을 흘리지는 않았다.
박준이 돌아섰다. 뒷모습만으로도 그의 결의가 느껴졌다. 준호는 여전히 서 있었다.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로커룸으로 돌아간 준호는 자신의 로커 앞에 섰다. 유니폼은 여전히 땀에 젖어 있었다. 경기 중 정태훈의 슈팅을 막으려다 공이 준호의 손가락을 스친 순간, 그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완벽한 슈팅 폼. 신체 능력의 차이. 그것이 준호에게 보여준 것은 명확했다.
넌 이미 끝났다.
준호가 로커 문을 닫았다. 손이 떨렸다.
그 순간, 감독 임석진이 나타났다. 경기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얼굴에는 피로와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준호."
"감독님."
"경기 어땠어?"
"...패배했습니다."
"그래. 패배했어." 임석진이 준호 옆에 섰다. "그런데 넌 왜 경기 중에 능력을 쓰지 않았어?"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박준이가 부상 당했을 때, 넌 유령 슈터를 발동할 뻔했어. 내가 봤어. 넌 그 순간을 느꼈어. 절박함. 그리고 그것을 멈췄어. 왜?"
"감독님이 말씀하셨잖아요. 팀을 믿으라고."
임석진이 웃음을 흘렸다. 그건 웃음이 아니라 한숨이었다. "그게 아니야. 넌 알고 있었어. 그 능력을 쓰면 넌 다시 무너진다는 걸. 그리고..."
감독이 준호의 어깨를 짚었다.
"그 능력만으로는 정태훈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그 말이 준호의 가슴을 내려쳤다.
"나도 부상으로 프로를 떠났어. 너랑 달라서 떠난 게 아니야. 같은 이유로 떠났어. 그리고 2년을 버텼어. 혼자가 아니라 이 팀과 함께." 임석진이 눈을 마주쳤다. "넌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 같아? 혼자? 아니면 팀과 함께?"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일 플레이오프 8강이야. 광주 드래곤스와의 경기. 이기면 4강이다. 준호, 이제 넌..."
임석진이 말을 끊었다.
"선택할 차례야."
감독이 돌아갔다. 발걸음은 무거웠다.
준호는 로커룸을 나갔다.
체육관 코트 위로 나갔다. 야간 조명 아래, 준호는 3점 라인 뒤에 섰다. 공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한 발을 디디고.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준호는 슈팅을 했다.
공은 호를 그렸다. 정확했다. 링을 통과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또 다시.
준호는 계속 슈팅했다. 능력 없이. 절박함 없이. 그저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것만.
열 번째 슈팅. 공이 링을 맞고 튀어나갔다.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집어 들었다.
그때다.
로커룸 문이 열렸다. 수호가 나왔다. 샤워를 마친 뒤였다. 그는 준호를 보고 멈췄다. 준호의 슈팅 자세를 관찰했다. 능력의 신호는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선택. 결의. 혼자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움직임.
수호는 천천히 다가왔다.
"준호? 뭐 해?"
"슈팅."
"이 시간에?"
"응."
수호가 준호의 옆에 섰다. 말없이 그의 슈팅을 봤다. 공이 하나 또 하나 링을 통과했다.
"박준이가 너를 찾고 있었어."
"뭐?"
"감독님이 박준이한테 뭔가 전해줬나봐. 박준이가 나한테 그러더라. '수호, 우리가 준호를 믿어야 한다'고. 그리고..." 수호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도 우리를 믿어야 한다고."
준호의 손이 멈췄다.
"근데 난 의심했어." 수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정태훈 봤잖아. 넌 저 정도 실력으로 이길 수 있어? 능력 없이?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어."
준호는 수호를 봤다.
"그런데 넌 지금 뭘 하고 있어? 능력 없이 슈팅을 하고 있어. 그게 뭐냐는 거야. 왜 넌 그걸 선택했어?"
"..."
"내일 경기에서 넌 뭘 할 거야? 능력? 아니면 우리?"
준호는 공을 다시 들었다. 수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심 뒤에는 믿음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있었다.
준호가 슈팅했다.
공은 날아갔다. 호를 그렸다. 링을 통과했다.
수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확신의 웃음이었다.
"좋아. 그럼 내일 우리가 이겨. 함께."
수호가 돌아갔다.
준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코트 위에서. 야간 조명 아래서. 준호는 계속 슈팅했다.
밤 11시 47분.
체육관은 이제 조용했다. 모두가 떠났다.
준호만 남았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었다.
마지막 슈팅.
준호는 3점 라인 뒤에서 공을 들었다.
거리를 재지 않았다. 각도를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던졌다.
공은 호를 그렸다.
링을 통과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준호의 뺨을 눈물이 타고 흘렀다.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선택의 눈물이었다. 능력을 버리고 팀을 택한 선수의 눈물이었다. 입가에는 처음으로 진정성 있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내일은 광주 드래곤스와의 경기다.
이기면 4강.
팀 플레이만으로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준호는 코트를 떠났다.
주차장으로 나갔다.
밤하늘은 여전히 어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별은 떠 있었다.
작지만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