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3일 뒤 오후 2시 30분, 준호는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룩진 곰팡이 자국을 세며 손가락을 꼽았다. 광주전에서 능력을 썼고, 그로부터 72시간이 지났다. 무릎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의, 라는 단어가 중요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임석진 감독이었다.

"30분 뒤 출발한다. 준비됐나?"

"네."

"준호, 오늘 경기는 다르게 해보자. 능력 없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이은정이 말했어. 넌 다음 사용이 영구 부상이라고. 그럼 오늘은 우리를 믿어 봐. 진짜로."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천장을 계속 봤다. 능력 없이 이기는 것. 그게 가능할까?

―――

지방 소도시의 낡은 체육관. 조명은 여전히 어두웠다.

박준이 준호를 찾아 다가왔다.

"형, 무릎 어때?"

"괜찮아."

박준은 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오늘 감독님이 뭐라고 했어?"

"능력 없이 경기하라고."

박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좋아. 형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이겨."

로커룸으로 들어가며 준호는 김수호를 찾았다. 수호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준호를 본 수호는 일어나 앉았다.

"형, 오늘 어떻게 할 거예요?"

"경기한다."

"능력 말고요?"

준호는 유니폼을 입었다. 수호는 한 번 더 물을 생각했지만, 준호의 옆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

경기가 시작되자 상대팀 부산 화이트스타는 준호를 집중적으로 마크했다. 2년 전 준호의 프로 경기를 본 감독이었다. 준호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첫 5분간 준호는 공을 잡지 못했다.

박준이 인바운드를 받았다. 3점라인 너머에서 준호를 봤다. 상대 수비수 두 명이 준호를 막고 있었다. 박준은 준호에게 패스하지 않았다. 대신 수호에게 전달했다. 수호는 드라이브를 시작했고, 준호는 그 움직임 속으로 들어갔다.

스크린 플레이. 박준과 수호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을 준호는 느꼈다.

준호는 롤을 돌며 페인트를 했다. 수호의 패스가 날아왔다. 준호가 받자마자 상대 센터가 덮쳤다. 준호는 점프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박준에게 패스했다.

박준은 미드레인지에서 슛을 쏘았다.

공은 링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떨어졌다. 체육관에 한숨이 흘렀다. 하지만 박준은 웃고 있었다. 박준이 준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쿼터 중반, 준호가 처음으로 3점을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슈팅이 아니었다. 수호의 정확한 패스, 박준의 스크린, 상대 수비의 순간적 실수. 모든 것이 맞물려 나온 점수였다.

준호는 손을 들어 박준과 수호에게 박수를 쳤다.

세 번째 쿼터, 상황이 바뀌었다.

준호에게 집중되던 수비가 흐트러졌다. 박준과 수호가 계속 득점을 했기 때문이다. 박준의 중거리 슈팅, 수호의 레이업. 준호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 없이도 팀이 움직인다. 자신 없이도 팀이 이긴다.

4쿼터, 3분 남은 상황. 점수는 62대 54였다. 8점 차였다.

부산 화이트스타가 시간초를 썼다.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신호였다. 스크린 플레이.

공이 들어왔다. 박준이 준호를 위해 스크린을 섰다. 수호가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준호는 박준을 따라 움직였다.

수호가 점프했다. 준호가 공중에서 손을 펼쳤다. 수호의 패스가 정확했다. 준호는 점프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슈팅했다.

공은 날아갔다.

"3점! 3점 들어갔다!"

체육관이 터져나갔다. 박준이 준호를 안았다. 수호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자신의 슈팅이 들어갔을 때의 기쁨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자신을 믿어주었기 때문에 점수가 나왔다는 기쁨이었다.

경기는 다시 일어나다의 승리로 끝났다. 72대 63. 9점 차.

―――

로커룸. 준호는 벤치에 앉아 신발을 풀고 있었다. 박준이 옆에 앉았다.

"고마워, 형."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너 없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고마워. 이제 알겠어, 형이 왜 여기 있는지."

박준은 계속 말했다.

"처음엔 형이 왔을 때 우리가 졌다고 생각했어. 형이 없으면 못 이긴다고. 근데 오늘 경기 보니까 아니더라. 형이 우리를 믿어주니까, 우리도 믿을 수 있는 거야."

준호는 목이 메었다. 2년 전 무릎이 무너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너 없이도 우리가 이긴다'는 말이 아니라, '너 때문에 우리가 달라진다'는 말. 더 정확히는 '넌 우리 팀이야'라는 말.

수호가 다가왔다. 준호를 따로 불렀다.

"형, 저기 좀 나가요."

체육관 복도. 텅 빈 공간에서 수호는 입을 열었다.

"형, 제가 처음엔 형을 질시했어요. 형이 와서 우리 자리를 뺏을까봐."

"그래."

"그런데 요즘 형 보니까 달라요. 처음엔 형이 우리를 이기려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겠어요. 형이 뭔가 포기하고 있다는 걸."

준호가 수호를 봤다. 수호의 눈은 진지했다.

"저도 한때 프로 가려고 했어요. 진짜 간절했어요. 그런데 무릎이 안 좋아지니까 포기했고, 처음엔 후회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프로 못 가서 좋더라고요."

"왜?"

"여기서 형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형이 없었으면 우리 계속 그냥 이기고 졌을 거예요. 하지만 형이 오니까 우리가 뭔가 달라져요. 형이 우리를 믿어주니까, 우리도 우리를 믿게 돼요."

수호가 웃었다.

"나도 처음엔 프로 되는 게 다인 줄 알았어. 그런데 팀과 함께하는 게 더 행복하더라."

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호는 돌아갔다.

체육관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다른 팀의 감독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지나갔다. 그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 약한 팀들. 챔피언십 진출까지 생각했네."

감독은 웃으며 사라졌다.

준호의 눈빛이 변했다. 약한 팀들. 다시 일어나다는 약한 팀이었다. 감독도 없고, 돈도 없고, 프로 경험자도 거의 없었다. 그저 서로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약함이 준호에게는 강함처럼 느껴졌다.

박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호의 웃음이 떠올랐다. 경기 후반 수호의 정확한 패스, 박준의 스크린. 그리고 자신의 슈팅이 들어갔을 때 박준이 보여준 웃음.

준호는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임석진 감독이 팀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약자들의 팀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게 하나 있다면, 서로를 믿는 거다. 오늘 경기 봤지? 저 팀들은 우리를 약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우리가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건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 될 거다."

임석진 감독의 말이 준호의 가슴 깊숙이 들어갔다.

"다음 경기부터는 챔피언십을 향해 달린다. 우리가 약자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기는 팀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한 마음이면 말이다."

경기장이 조용했다. 선수들의 눈이 반짝였다.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이 웃고 있었다.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호는 알았다.

자신이 팀을 위해 능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박준의 웃음, 수호의 고백, 감독의 말. 모든 것이 준호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팀이야.'

준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무릎이 아팠다. 누적된 부상의 신호였다. 다음 사용이 영구 부상이라는 의료진의 경고가 떠올랐다.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

원룸의 좁은 침대로 돌아간 밤, 준호는 천장을 보지 않았다. 대신 손을 펼쳤다. 박준의 스크린을 받으며 느꼈던 신체적 감각, 수호의 패스를 받는 순간의 신뢰감. 그리고 자신의 슈팅이 들어갔을 때 박준이 보여준 웃음.

그 웃음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내일은 플레이오프 8강이다. 상대는 서울의 명문팀. 한지현이 있는 팀이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천장 스티로폼이 노란 불빛에 비쳐 있었다. 휴대폰의 시간은 오전 7시 42분. 플레이오프 8강 경기 날이었다.

무릎을 천천히 펼쳤다. 어제의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능력 사용 후의 그 끔찍한 부종은 아니었다. 의료진의 경고가 떠올랐다. '다음 사용이 영구 부상.' 명확한 선택지처럼 다가왔다.

준호는 냉수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낡아 보였다. 수염이 자라 있었고, 눈 아래는 검었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2주 전의 절망적인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이었다.

"형, 일어났어? 우리 오전 10시에 체육관 모여."

"알았다."

"형, 오늘 경기 이기자. 진짜."

박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준호를 움직였다.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는 9시 45분이었다. 선수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박준, 수호, 그리고 팀의 파워포워드 최진호, 슈팅가드 이동욱.

임석진 감독이 화이트보드에 서울 명문팀의 포메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저 팀은 한지현의 슈팅력과 센터의 피지컬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하면 진다. 대신 우리는 수비를 조직해야 한다. 박준, 너는 센터의 위치를 항상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준호, 너는 윙에서 빠른 피니시를 노려. 하지만 무리하지 마. 자신이 없으면 패스. 알겠지?"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하나다. 서로를 믿고, 끝까지 믿는 것. 그게 우리의 강점이다."

로커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을 때, 수호가 준호 옆에 섰다.

"형, 어제 밤 잘 잤어?"

"응."

"나는 못 잤어. 계속 어제 경기가 떠올랐어. 형이 우리를 믿어줄 때 박준이 슈팅 성공한 거.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어. 형, 우리 오늘도 그렇게 하자. 형이 우리를 믿고, 우리가 형을 믿고. 그럼 이기는 거 아닐까?"

준호는 수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응. 우리 이기자."

―――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의 소음은 준호의 기대보다 컸다. 서울에서 온 명문팀의 응원단이 꽤 규모가 있었다. 반면 다시 일어나다의 응원단은 팀 가족들 몇 명과, 체육관 운영하는 아저씨들 정도였다.

한지현이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한지현의 입가가 비틀렸다. 측정하는 눈빛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서울팀의 속도감이 드러났다. 한지현의 첫 번째 공격은 빠른 드라이브였다. 박준이 방어했지만, 한지현의 유연한 피니시가 골대를 흔들었다.

2 대 0.

다시 일어나다의 첫 공격은 수호의 패스에서 시작됐다. 박준으로 향하는 공. 박준이 미드레인지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공이 링을 맴돌다가 빠져나갔다.

그 순간 준호가 오프볼로 움직였다. 리바운드 위치를 선점한 준호는 동욱에게 패스했다. 동욱의 빠른 컷인 슈팅이 들어갔다.

2 대 2.

1쿼터는 팽팽했다. 서울팀이 속도에서 앞섰지만, 다시 일어나다는 조직력으로 버텼다. 수호의 정확한 패스와 박준의 수비가 팀을 지탱했다. 준호는 슈팅을 3번 시도해 2개를 성공시켰다.

1쿼터 끝 점수: 18 대 16. 서울팀이 2점 앞섰다.

2쿼터에 들어서며 한지현의 활동량이 늘었다. 슈팅뿐 아니라 드라이브, 페이크까지. 그의 모든 움직임이 정확했다. 프로 수준의 기술이었다.

준호는 한지현을 마크했다. 신체 접촉은 피했다. 무릎 부상을 악화시킬 수 없었다. 대신 거리를 유지하며 슈팅 라인을 차단했다.

한지현이 준호에게 말했다.

"형,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프로는 여기가 아니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렸다. 능력을 쓰고 싶은 욕구. 한지현을 압도하고 싶은 충동. 하지만 그 순간 박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호의 신뢰감이 떠올랐다. 준호는 그 욕구를 누르고 집중했다.

2쿼터 중반, 점수는 38 대 35로 벌어졌다. 서울팀이 앞섰다. 임석진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박준, 넌 센터 위치 포기하지 말고. 수호, 너는 한지현의 볼 무브를 읽어. 준호, 넌 여유 가져. 우리가 진다고 생각하면 진다."

다시 코트로 나왔을 때, 준호의 심박수가 올라가 있었다. 능력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2쿼터 마지막 2분 30초. 서울팀이 52 대 48로 앞선 상황에서 준호가 볼을 가졌다. 한지현이 디펜스 했다.

"왜 자꾸 나타나? 형은 이미 끝났는데."

한지현의 목소리가 낮았다. 도발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 진술인 것 같았다.

준호는 한지현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는 연민이 있었다. 가장 끔찍한 종류의 연민이었다. 준호의 무릎을 보며 이미 끝났다고 판단하는 연민.

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상태였다. 절박함이 있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현을 압도하고 싶었다.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준호는 멈췄다.

페이크 슈팅을 했다. 한지현이 반응했다. 그 틈에 준호는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무릎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다. 상체 페이크만 사용했다. 속도는 나왔지만 무릎 내부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그것을 무시하고 레이업을 시도했다.

볼이 백보드를 맞혔다. 골대 밖으로 나갔다.

턴오버.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아까 경기에서 느꼈던 그 확신이 순간 흔들렸다. 능력을 썼다면 들어갔을 것이다. 능력을 썼다면...

그 순간 박준이 옆에서 준호를 톡톡 쳤다.

"괜찮아. 우리 있잖아."

그 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충분했다.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의 눈에는 의심이 없었다. 오직 신뢰만 있었다. 그것이 준호의 가슴을 다시 채웠다.

2쿼터 마지막 공격에서 수호의 정확한 패스가 박준에게 들어갔다. 박준의 미드레인지 슈팅이 공중을 그었다. 링을 맴돌다 들어갔다.

52 대 50.

하프타임 휘슬이 울렸다.

―――

로커룸에서 임석진 감독이 선수들을 둘러싸고 섰다.

"1쿼터 때보다 훨씬 잘했다. 우리가 이기고 있어. 점수는 밀려 있지만 경기는 우리 손에 있다. 3쿼터 시작하면서 뭔가를 보여주자. 저들이 절대 생각 못 한 뭔가. 우리는 팀이다. 그게 우리의 강점이다."

임석진 감독의 눈이 준호에게로 향했다.

"준호, 넌 어떻게 생각해?"

모든 선수들이 준호를 봤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

"저들은 우리를 약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맞아요. 우리는 약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팀입니다. 이게 우리의 강점이에요. 우리가 서로를 믿으면 이길 수 있어요."

박준과 수호가 눈을 마주쳤다.

준호의 말이 자신에게도 박혔다. 능력 없이 경기하는 것.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다. 팀원들을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걸 느꼈다. 능력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은 이미 변해 있었다.

3쿼터가 시작되자 다시 일어나다의 공격이 달라졌다. 박준의 스크린이 더 적극적이었고, 수호의 패스가 더 정확했다. 그리고 준호는 그들의 신뢰를 받아 움직였다.

3쿼터 3분 40초. 수호의 빠른 드라이브에서 나온 킥아웃 패스. 준호가 받았다. 한지현이 막으러 왔다. 준호는 페이크했다. 한지현이 흔들렸다. 그 틈에 준호는 박준에게 패스했다. 박준이 받았다. 박준의 슈팅이 들어갔다.

60 대 58.

3쿼터 중반, 준호가 볼을 가진 상황. 한지현이 다시 붙었다. 이번엔 준호가 스크린을 요청했다. 박준이 스크린을 해줬다. 한지현이 박준에게 막혔다. 그 틈에 준호는 수호에게 패스했다. 수호의 정확한 3점 슈팅이 들어갔다.

63 대 60.

한지현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막을 수 없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표정이었다. 한 명의 뛰어난 선수를 막을 수는 있어도, 서로를 믿는 팀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3쿼터 끝: 72 대 68. 다시 일어나다가 4점 앞섰다.

4쿼터는 더 치열했다. 서울팀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감독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지현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마크 전략이 바뀌었다. 한지현이 준호를 더 강하게 마크했다.

4쿼터 2분. 한지현의 거친 팔 접촉으로 준호가 넘어질 뻔했다. 심판이 파울을 불렀다. 한지현의 얼굴이 굳었다.

준호가 프리스로를 던졌다. 한 개를 성공시켰다.

73 대 68.

무릎이 울렸다. 누적된 부상의 신호였다. 준호는 자신의 다리를 봤다. 부종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능력 사용 조건이 형성되고 있었다. 절박함이 있었다. 경기가 팽팽했다. 마지막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렇다면 능력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준호는 다시 생각했다. 박준의 웃음. 수호의 신뢰. 그리고 임석진 감독의 말.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하나다. 서로를 믿고, 끝까지 믿는 것.'

준호는 결정했다. 능력을 쓰지 않기로.

4쿼터 5분. 한지현의 수비가 더욱 거칠어졌다. 팔이 준호의 무릎 근처를 스쳤다. 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릎이 흔들렸다.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고 있었다. 한 번만 쓰면 된다. 한지현을 압도하고, 경기를 끝낼 수 있다. 그 다음은 영구 부상이어도 상관없다. 이 경기를 이기면 되는 것 아닐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넌 여기가 끝이야."

한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한지현을 봤다. 그 눈 속에는 절망이 있었다. 승리를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의 절망이었다.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한지현을 향한 것이자,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여기서 시작이야."

그 말을 하는 순간, 준호는 알았다.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능력을 포기하는 것. 그것은 약함이 아니었다. 팀원들을 믿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었다.

다음 공격에서 수호가 준호에게 패스했다. 준호는 한지현을 피해 움직였다. 무릎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다. 상체 페이크만 사용했다. 그리고 박준에게 리턴 패스를 했다.

박준의 슈팅이 들어갔다.

75 대 68.

준호는 박준을 봤다. 박준이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준호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4쿼터 8분. 한지현이 또 준호를 거칠게 마크했다. 이번엔 심판이 기술파울을 불렀다. 한지현이 항의했지만 무의미했다.

준호가 프리스로를 던졌다. 두 개를 모두 성공시켰다.

77 대 70.

4쿼터 10분. 서울팀의 센터가 박준에게 강하게 몸을 부딪혔다. 박준이 넘어졌다. 심판이 파울을 불렀다. 박준이 일어나며 준호를 봤다.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의 웃음이었다. 팀원을 믿고, 그 믿음이 보상받는 순간의 웃음.

박준이 준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이겼다."

4쿼터 12분. 다시 일어나다가 81 대 76으로 앞선 상황에서 시간이 3분 남았다.

서울팀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감독이 한지현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코트로 나왔을 때, 준호는 한지현의 눈을 봤다. 그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도발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경외였다.

마지막 3분은 다시 일어나다의 수비로 결정됐다. 박준과 준호의 조직적인 수비, 수호의 정확한 스틸. 서울팀은 한 번도 역전하지 못했다.

경기 끝. 84 대 80.

다시 일어나다의 승리.

플레이오프 8강 진출.

경기장이 울렸다. 팀 가족들의 환호성, 박준과 수호의 외침. 준호는 박준과 부딪혔다. 그들의 몸이 닿았을 때, 준호는 느꼈다.

이것이 프로 무대의 승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프로에서의 승리는 개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다았다. 이것은 팀의 승리였다. 서로를 믿는 사람들의 승리였다.

―――

로커룸에서 임석진 감독이 모든 선수를 안았다.

"우리가 했다. 정말로 했다. 챔피언십이 보인다. 이제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경기장 복도에서 준호는 한지현과 마주쳤다. 한지현이 먼저 말했다.

"형, 미안했어. 나는... 형을 이해하지 못했어."

준호가 한지현의 어깨를 쓸었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한지현이 떠나간 후,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경기장 밖에서 임석진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나와."

준호가 나갔다. 감독이 준호를 한적한 복도로 데려갔다.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경기."

"좋습니다. 정말."

"능력을 쓸 기회가 있었지?"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 썼다. 왜?"

준호는 박준과 수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나를 믿어줬으니까요. 그 신뢰를 깨고 싶지 않았어요. 능력을 쓰는 순간, 저는 다시 혼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임석진 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깨달았구나. 넌 혼자가 아니야. 절대로."

그 말이 끝나자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준호가 받았다.

"이준호씨? 저 김준석입니다. 에이전시 대표요. 오늘 경기 봤습니다.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능력을 쓰지 않은 부분이 말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팀을 위해 능력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흥미로운데요. 내일 만나지 않겠습니까?"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생각해보세요. 챔피언십이 아직 멀었잖습니까. 당신의 무릎도 위험하고요. 우리는 당신을 프로 무대로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의료진, 최고의 시설. 모든 것을 갖춘 환경에서 말입니다."

에이전시 대표의 말이 계속됐다. 준호의 뇌는 빠르게 돌아갔다. 프로 복귀. 2년을 기다린 그 기회가 왔다. 무릎 부상의 위험도 피할 수 있다.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내일까지 연락 주세요."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프로 복귀의 유혹과 팀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준호는 흔들렸다.

임석진 감독이 준호를 봤다.

"뭐 했어?"

"에이전시입니다. 프로 복귀를 제안했어요."

감독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곧 풀렸다.

"그래. 넌 선택해야 한다. 너의 미래를 위해."

준호는 감독을 봤다. 감독의 눈에는 이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준호가 가면 팀이 어떻게 될지를 아는 감독의 염려.

준호는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박준과 수호가 여전히 코트에서 슛을 쏘고 있었다.

박준이 준호를 봤다.

"형, 뭐 해? 우리 같이 연습하자!"

수호가 웃으며 공을 던졌다.

준호가 코트에 올라섰다. 무릎이 아팠다. 누적된 부상의 신호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박준이 준호에게 던진 패스였다. 수호의 신뢰감이었다.

준호가 슈팅을 했다. 공이 들어갔다.

박준이 웃었다.

"우리 챔피언십 우승하자!"

수호가 외쳤다.

"형, 우리와 함께 끝까지 가자!"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슛을 쐈다. 공이 들어갔다. 박준과 수호가 환호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어두운 체육관에 울렸다.

준호의 심장이 뛰었다.

프로 무대의 그 무의미한 고독함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것을 느꼈다. 팀과 함께하는 것. 서로를 믿고 나아가는 것.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내일 에이전시에 전화할 때,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지를.

준호는 박준과 수호를 봤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준호는 결정했다.

프로 복귀는 나중이다. 지금은 챔피언십이다. 팀과 함께하는 챔피언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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