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되는 대가
밤 10시, 체육관 지하 코트. 준호는 한 손으로 골대를 잡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숨을 헐떡이며 해내는 신세였다.
왼쪽 무릎이 부었다. 보라색 멍이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지난 일주일, 두 경기. 두 번의 능력 사용.
첫 번째는 인천 라이온스전이었다. 3초 남은 상황에서 준호가 측면에서 3점을 날렸다. 손목을 튕기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중력이 없어지고, 시간이 늘어나고, 공만 선명했다. 스윽. 네트가 흔들렸다. 팀이 승리했다. 준호의 무릎은 48시간 동안 계단 오르내리기조차 불가능했다.
두 번째는 어제, 대전 타이거스전. 연장 접전 끝, 1점 차로 밀리는 상황에서 우측 코너에서 쏜 3점. 이번엔 세상이 멈추는 시간이 더 길었다. 준호는 그 안에서 공의 회전을 느낄 수 있었다. 능력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공은 들어갔다. 팀이 이겼다.
그 대신 무릎은 더 망가졌다.
어제 오늘, 이틀을 합쳐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누적이었다.
"너 언제까지 이러려고 하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돌아봤다. 이은정이 체육관 입구에 서 있었다. 의료팀 담당자로서의 얼굴이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전화했잖아. 검사 받으라고."
"내일 받을게."
"오늘."
이은정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준호는 처음 봤다. 그녀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얼굴 전체가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준호, 농구 얘기 아니야. 넌 의료진 말을 안 듣고 있어. 내가 MRI를 봐야 진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제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고개를 외로웠다.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내일 오후 2시. 병원. 안 오면 감독한테 전해야겠다."
이은정은 돌아섰다. 조용했다. 준호는 다시 공을 튕겼다.
탁.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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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2시, 병원 촬영실.
MRI 기계의 소음이 준호의 귀를 때렸다. 반시간을 누워 있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직선음과 박자음이 섞여 있었다. 준호는 천장을 봤다. 하얀 천장. 그 안에서 자신의 무릎이 어떻게 부서져 가고 있는지 기계가 읽고 있었다.
나왔을 때 이은정과 정형외과 의사가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의사는 70대 남성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앉아."
의사가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준호가 앉았다. 이은정도 옆에 섰다.
"여기 봐."
의사가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MRI 영상. 무릎의 횡단면 이미지.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었다. 의사는 특정 부분을 확대했다.
"연골이다. 정상이면 이 정도 밀도를 유지해야 해. 근데 너 봐라."
이미지가 바뀌었다. 준호의 연골 부분.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곳곳에 검은 줄이 생겼다.
"50% 이상 손상됐다. 2년 전 부상 때문에 이미 이 정도였는데, 지난 한 주일 사이에 더 진행됐어. 특히 여기."
의사가 한 지점을 짚었다. 가장 검은 부분이었다. 갈라진 모양이었다.
"만약 너가 또 극심한 충격을 받으면 이 균열이 완전히 깨진다. 그럼 끝이야. 영구 부상. 인공 관절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어. 농구는 꿈도 꾸지 마. 걷는 것도 불편할 거고."
의사의 목소리는 중립적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사실을 읽어주는 목소리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준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뭔가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턱이 경직됐다.
"넌 이미 경고를 받았다고 들었어. 능력을 쓸 때마다 무릎이 악화된다고. 그 경고를 무시했어?"
"…"
"대답해."
"네."
"미친 짓이다. 너 자신을 파괴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더 말할 건 없다. 이제 결정은 너 몫이야.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런 충격을 받으면, 넌 더 이상 선수가 아니라 장애인이 될 거야."
의사는 의자를 돌렸다. 상담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이은정이 준호를 봤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냥 흐르는 게 아니라, 눈물이 그 자리에 맺혀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눈물이었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목소리가 떨렸다.
"넌 왜 자꾸만 자신을 망치는 거야? 나한테 물어봐. 뭐 필요한 게 있는지. 아니면 감독한테, 팀한테라도. 왜 혼자?"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2년 전에도 이렇게 혼자였어. 그때 무릎 터진 거 알지? 그때도 도움을 안 받고 혼자 짊어졌어. 지금 또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준호, 제발."
이은정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한두 방울이 아니라 계속 흘렀다. 그녀는 얼굴을 돌렸다. 더 이상 준호를 보지 않았다.
"가. 너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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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일상이 지나갔다. 직장인들, 학생들, 어린아이들. 모두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준호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섰다. 왼쪽 다리에 무게를 싣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났다.
50% 이상 손상.
영구 부상.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회색으로 변한 연골. 갈라진 부분. 그게 자신의 무릎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체육관 지하 코트에 도착했을 때, 한지현이 공을 튕기고 있었다. 준호의 전 팀 선배였다. 2년 전 준호가 부상으로 떨어질 때, 한지현은 프로에 올라갔다. 지금은 K리그 중위권 팀에서 뛰고 있었다.
"어? 준호?"
한지현이 공을 멈췄다. 그는 준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눈이 준호의 다리, 특히 왼쪽 무릎의 부종과 멍에 멈췄다. 표정이 굳어졌다.
"너 요즘 유명하더라. 어디 팀? 아마?"
"응."
"그런데 그 무릎은 뭐야? 또 다쳤어?"
한지현의 목소리에는 조롱이 없었다. 그 안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준호는 천천히 깨달았다. 그건 연민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갈아먹을 거야?"
한지현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공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준호의 무릎을 바라봤다. 그리고 공을 건넸다.
"한 번 슈팅이나 해봐. 같이."
준호가 공을 받았다. 손가락이 공의 표면을 더듬었다.
한지현은 코트 쪽으로 걸어갔다. 준호도 천천히 따라갔다. 무릎이 아팠지만 걸었다.
"자. 여기서 슈팅해봐."
한지현이 코너를 가리켰다. 준호가 슈팅 폼을 취했다. 손가락을 펼쳤다. 공을 날리려는 순간—
무릎이 울렸다.
공은 날아갔지만 준호의 몸은 비틀렸다. 착지할 때 왼쪽 다리에 무게가 실렸다. 통증이 폭발했다. 준호는 무릎을 감싸며 몸을 구부렸다.
한지현이 달려왔다.
"어? 괜찮아?"
준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한지현은 그의 무릎을 봤다. 부종이 더 심해져 있었다. 한지현의 얼굴이 변했다. 그는 준호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가 멈췄다. 준호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손을 놨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한지현이 중얼거렸다. 그는 공을 집어 들었다. 다시 준호에게 건네려다 멈췄다. 준호의 무릎을 다시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공을 내려놨다.
"쉬어. 제발 쉬어."
한지현은 돌아섰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준호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그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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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연습 시간. 체육관에는 팀원들이 모였다. 박준이 먼저 다가왔다. 센터는 준호의 다리를 봤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봤다.
"괜찮아."
준호가 먼저 말했다.
"그래?"
박준의 목소리는 의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준호의 팔뚝을 잡았다. 준호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박준은 그걸 느꼈다. 손을 놨다가 다시 잡았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연습 시작 전에 감독님이 너 봐야 한다고 했어."
박준이 감독실을 가리켰다.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임석진 감독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준호가 들어가자 감독은 고개를 들었다. 감독의 눈도 준호의 다리를 봤다.
"의료팀한테서 연락 받았다."
감독이 말했다.
"MRI 결과가 좋지 않다고."
"네."
"그리고 너 이은정이 울었다고 했어. 처음이래. 그 여자가."
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감독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문으로 나갔다. 준호도 따라나갔다. 창문 너머로는 체육관 코트가 보였다. 선수들이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다. 박준이 수호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수호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봤다. 그의 눈엔 근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준호를 향한 기대. 아직도 자신들의 팀원을 믿고 있다는 신호였다.
감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이 팀에 영입한 건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었어."
감독이 말했다.
"넌 알겠지. 내가 너 같은 선수들을 본다는 걸. 나도 한때 꿈꿨었어. 그리고 부상으로 떨어졌어. 넌 그때 내 마음을 알 것 같았어. 그래서 데려왔어. 너한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팀과 함께라면."
감독은 준호를 봤다.
"근데 넌 혼자 일어나려고 하고 있어. 혼자 팀을 이기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파괴하고 있어."
준호의 목이 메었다.
"다음 경기부터는 능력을 쓰지 마. 이해했어?"
"감독님, 그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거야. 넌 센터 없이도 뛸 수 있어. 박준이와 수호가 너를 믿고 있어. 그리고 나도 믿어. 그런데 넌 왜 그들을 믿지 못해?"
감독의 목소리가 낮았다. 더 무거웠다.
"내가 너한테 다시 한 번 더 묻고 싶어. 넌 왜 여기 왔어? 프로 복귀하려고? 아니면 팀과 함께하려고?"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이 자신을 찢어 놓고 있었다. 프로 복귀. 그것만을 향해 달려온 자신. 하지만 팀원들의 눈빛, 감독의 믿음, 이은정의 눈물. 그 모든 것이 자신을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생각해봐."
감독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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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준호의 원룸.
좁은 방. 침대, 옷장, 작은 책상. 그게 전부였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 앞에 섰다.
왼쪽 무릎을 만졌다. 부종이 딱딱했다.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 내렸다. 멍이 든 부분이 뜨거웠다. 이 무릎이 자신의 꿈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릎이 자신의 꿈을 죽이고 있었다.
준호는 침대에 앉았다. 방 한구석에 농구공이 있었다. 그가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공의 표면을 더듬었다. 익숙한 감촉. 그 안에는 능력을 원하는 욕구가 가득했다.
슈팅 폼을 취했다. 손가락을 펼쳤다. 마치 공을 날리려는 듯.
그리고 멈췄다.
공을 내려놨다. 다시 집어 들었다. 또 폼을 취했다. 또 멈췄다.
이 반복이 몇 번이나 계속됐을까. 준호는 공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휴대폰이 울렸다. 팀 그룹채팅. 메시지가 떴다.
[박준: 준호 형, 내일 경기 화이팅!]
[수호: 우리 함께 이겨요!]
[이은정: 화이팅.]
준호는 화면을 껐다. 손가락이 떨렸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준호가 일어났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임석진 감독이 서 있었다. 야외 복장 그대로였다. 얼굴이 엄했다.
"들어가도 돼?"
감독이 물었다. 준호가 비켜섰다. 감독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준호의 다리를 봤다. 붓고 멍이 든 모습. 바닥에 떨어진 농구공도 봤다. 감독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감독은 침대 옆에 앉았다. 준호도 앉았다.
"내가 너한테 이 팀에 온 걸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아."
감독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넌 자신을 파괴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그걸 막을 수 없어. 내가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넌 내 말을 안 들어. 넌 누구의 말도 안 들어."
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난 너한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 거야."
감독이 준호를 봤다. 눈이 진지했다.
"다음 경기에서 능력을 쓰면 넌 이 팀에서 나가야 한다. 알겠어?"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감독의 얼굴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거야. 넌 그걸 믿어야 해. 우리를 믿어야 해. 그리고 네 몸을 믿어야 해."
감독이 일어났다. 그는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멈췄다.
"혼자 이기는 게 뭐 하는 거냐. 그게 정말 승리냐."
감독은 떠났다.
방에 침묵만 남았다.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그 안에 박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은정의 눈물이 떠올랐다. 한지현의 죄책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의료 이미지. 회색으로 변한 연골. 갈라진 부분.
손가락이 떨렸다.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공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능력을 쓰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그것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감독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를 믿어야 해.
그리고 박준의 메시지. 수호의 메시지. 이은정의 메시지.
3일 후가 리그 플레이오프 예선전이었다. 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
그날 경기에서 준호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감독의 명령. 의료진의 충고. 팀원들의 믿음. 그 모든 것이 그를 지탱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점수가 나올 때마다, 팀이 밀릴 때마다, 마지막 슈팅 기회가 올 때—그때 준호의 손가락은 떨릴 것이다. 그 떨림 속에서 능력을 원하는 절박함이 밀려올 것이다.
천장은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