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체육관의 불을 끈 지 열두 시간. 준호는 버스 창에 기대어 지방 도시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차창 밖은 회색이었다. 도로 위의 트럭들, 회색 아파트, 회색 하늘. 그 속에서도 준호의 손가락은 움직이고 있었다. 공을 튕기는 리듬을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탁. 탁. 탁.'
옆자리의 노인이 한 번 쓱 봤다. 준호는 손가락을 멈췄다.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박준이 가장 먼저 나왔다. 180을 넘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준호! 어디 다쳤어? 걸음이 이상한데?"
"괜찮아."
박준은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준호는 그의 옆을 지나갔다. 로커룸의 공기는 습했다. 옷장에서 나오는 세제 냄새와 누군가의 발냄새가 섞여 있었다.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준호를 힐끗 봤다. 누군가는 본 척하지 않았다.
임석진 감독이 손을 쳤다.
"다 모였나? 시작하자."
감독의 얼굴은 두꺼운 주름으로 가득했다. 축구화 끈을 묶던 손가락에도 주름이 있었다. 그 손이 준호를 가리켰다.
"이분이 이준호. 우리 팀에 새로 합류한 슈팅 가드야. 인사해."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이 손을 들어 환영했다. 포인트가드 김수호는 눈으로만 인사했다. 센터 위치의 누군가는 준호를 훑어봤다. 평가하는 시선이었다.
"경기는 오후 4시 시작. 상대팀은 광주 드래곤스. 지역 리그에서 2년 연속 우승팀이야."
임석진이 화이트보드에 X자를 그었다.
"우리는 약팀이고, 그들은 강팀이야. 이건 사실이고, 그래서 더 이기고 싶은 거야. 알겠지?"
준호는 무릎을 굽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왼쪽 무릎이 먼저 울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통증이 남아있었다. 이은정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72시간 안정. 그 이후에도 무리하면 안 돼.'*
그는 무릎을 더 깊이 굽혔다. 고통은 증거였다. 살아있다는 증거.
경기장은 생각보다 낡았다. 천장에서 물이 샌 자국이 있었고, 바닥의 라인은 희미했다. 조명도 어두워서 관중석 뒤쪽은 거의 그림자였다. 관중은 백 명 남짓이었다. 대부분 광주 드래곤스 응원단이었다.
준호는 워밍업을 시작했다. 3점 라인 너머에서 슛을 쏟아냈다. 손목의 스냅, 팔꿈치의 각도, 무릎의 굴신.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슛이 나올 때마다 관중의 웅성거림이 작아졌다.
*'누가 저 선수야?'*
준호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듣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됐을 때, 준호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박준이 센터로, 김수호가 포인트가드로 나갔다. 나머지 셋은 이름도 얼굴도 아직 낯선 선수들이었다. 임석진은 옆에 앉은 준호에게 속삭였다.
"첫 쿼터는 상황을 봐. 두 번째 쿼터부터 너를 넣을 거야."
준호는 끄덕였다.
첫 쿼터는 예상대로였다. 광주 드래곤스가 13:8로 앞서갔다. 박준은 열심히 뛰었지만 상대 센터는 더 컸다. 김수호는 빠르지만 상대 포인트가드는 더 노련했다. 이것이 현실였다.
두 번째 쿼터, 준호가 들어갔다.
처음 몇 초는 어색했다. 팀원들의 눈빛이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 구원자가 왔다'는 기대감. 준호는 그것을 느꼈고, 그것을 이용했다.
첫 플레이에서 준호는 3점을 쏴서 성공시켰다. 두 번째 플레이에서도 성공. 관중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준이 준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준호는 무시했다.
하프타임이 됐을 때 점수는 38:42였다. 준호의 팀이 4점 앞서 있었다. 로커룸에서 임석진은 화이트보드를 집어던지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잘했어. 저렇게만 하면 이긴다."
준호는 무릎을 쓸어내렸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세 번째 쿼터는 팽팽했다. 광주 드래곤스가 깨어났다. 준호가 쏜 3점에 그들의 슈팅가드도 3점을 답했다. 그렇게 점수는 오르고 내렸다. 56:56.
네 번째 쿼터의 마지막 3분.
준호의 팀이 64:63으로 앞서 있었다. 광주 드래곤스의 타임아웃이 끝나고 경기가 재개됐다. 상대 팀의 포인트가드가 공을 돌렸다. 준호는 수비를 붙었다. 그 선수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준호는 더 빠르게 반응했다.
공을 빼앗았다.
남은 시간은 3초.
임석진이 소리쳤다.
"슈우우우우!"
준호는 공을 받았다. 자신의 몸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손가락 끝으로 잡았다. 동시에 시간이 멈췄다.
아니,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준호의 눈에만 세상이 명확했다. 3점 라인 너머, 약 12미터 거리. 달려오는 수비수 3명의 손가락 끝이 닿지 않는 궤도. 그곳으로만 공이 통과할 수 있었다.
준호의 무릎이 굽혀졌다. 팔이 올라갔다. 손목이 스냅을 했다.
공이 손가락을 떠났다.
그 순간, 시간이 돌아왔다.
공은 정확히 링의 중심을 통과했다. 바닥에 튕겨나오면서 네트가 흔들렸다.
준호의 팀이 67:64로 이겼다.
박준이 달려왔다. 준호를 집어던지듯 안았다. 김수호도 왔다. 모든 선수가 왔다. 임석진도 웃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손뼉이 나왔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왔다.
준호는 그들의 팔에 안겨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치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 팀원들의 환호, 박준의 무거운 손이 등을 치는 감각, 승리의 쾌감.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1초 만에 끝났다.
왼쪽 무릎에 고통이 터졌다. 마치 내부에서 뭔가가 뜯어지는 듯한 느낌. 준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준이 알아챘다.
"괜찮아?"
"응. 괜찮아."
그렇지 않았다.
로커룸으로 돌아간 준호는 바지를 벗었다. 무릎이 붓기 시작했다. 부종이 심해지고 있었다. 통증은 참을 수 없었다.
이은정이 전화를 했을 때,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밤 11시, 임석진이 의료진을 부르려 했을 때 준호가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피로일 거예요."
"준호, 이건 피로가 아니야. 무릎이 붓고 있어."
"내일 괜찮을 거예요."
임석진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준호의 무릎을 봤다. 그리고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무릎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기는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뇌가 신호를 거부했다.
준호는 천천히 침대를 내려갔다. 한 발씩. 오른발이 먼저, 그 다음 왼발. 하지만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무릎에서 비명 같은 고통이 터져 나왔다. 준호는 이를 깨물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욕실까지 가는 거리는 5미터였다. 그것이 50미터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에서 나온 준호는 거울을 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이은정이 들어왔다. 준호의 여동생이자 의료팀 담당자.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오빠."
준호는 세면대에 기대었다.
이은정이 준호의 무릎을 올렸다. 붓기가 하루 사이에 심해져 있었다. 보라색 멍도 시작되고 있었다. 이은정의 손이 떨렸다.
"오빠, 이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고?!"
이은정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언제까지 이러려고? 이렇게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뭘 증명하려고 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은정이 한 발 물러섰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오빠... 제발."
준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세면대에 기대어 있었다. 무릎의 통증을 느끼면서.
욕실을 나온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의 그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간이 멈췄던 그 순간. 세상이 느려졌던 그 순간. 공이 링을 통과했던 그 순간. 팀원들의 환호가 자신을 감싸던 그 순간.
그것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통증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두려웠다.
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 강남 테니스 클럽에서 만나자던 그 전화. 어제 경기 직후 처음 울렸을 때는 무시했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엔 받았다.
"네?"
상대의 목소리는 차갑고 정제되어 있었다.
"이준호 맞죠? 어제 경기 봤습니다. 마지막 슈팅. 정말 흥미로웠어요."
"누세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가진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됩니다."
준호의 호흡이 가팬해졌다.
"당신 같은 선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처음일 겁니다. 그런 선수가 왜 지방 무명 팀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뭘 원하세요?"
"만나서 얘기하죠. 강남 테니스 클럽. 내일 오후 3시. 혼자 와야 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명확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두려웠다.
오후 2시, 준호의 무릎은 여전히 부어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준호는 내려갔다. 아래층에서 이은정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준호를 본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하는 거야?"
"잠깐 나왔어."
"이 상태로?"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관으로 향했다.
"오빠!"
이은정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택시를 탔다. 강남 테니스 클럽. 준호는 주소를 말했다. 기사는 묻지 않았다.
20분 뒤, 준호는 클럽 로비에 서 있었다. 천장이 높고 조명이 밝은 공간. 이곳은 준호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강남 체육관의 습한 지하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 돈의 냄새가 났다.
"이준호."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나타났다. 50대로 보였다. 깔끔한 정장. 차가운 눈빛. 준호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저는 김준석이라고 합니다. 프로 농구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어요."
"에이전시?"
"네. 당신 같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구단과 연결시키는 일을 합니다. 당신의 경우는 특별하네요."
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어제 경기를 봤습니다. 마지막 슈팅. 정말 특이했어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이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여요."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신이 프로에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는... 당신의 능력을 활용해야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안 됩니다."
"아직 생각할 시간이 있습니다. 1주일을 드릴게요. 그 사이에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원하던 프로 무대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이 정도는 또 없을 겁니다."
김준석은 명함을 내밀었다. 준호는 받지 않았다.
"당신의 여동생 이은정이라고 했죠? 의료팀 담당자. 그분도 우리 구단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릴 수 있어요."
준호의 눈이 변했다.
"협박하는 건가요?"
"아뇨. 제안입니다. 좋은 제안 말이에요."
준호는 돌아섰다.
"1주일. 그 안에 연락 주세요."
준호는 클럽을 나왔다. 택시를 탔다. 목이 메어 올 것 같았다. 호흡이 얕아졌다. 주먹을 쥐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 자신의 가족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한다.
준호는 무릎의 통증을 느꼈다.
경기장으로 가야 했다. 다시 일어나다의 연습장으로.
준호가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6시였다.
박준이 먼저 준호를 봤다.
"어제 경기 봤어? 미쳤지. 마지막 슈팅. 진짜 미쳤어."
박준은 준호의 얼굴을 봤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괜찮아?"
"응. 괜찮아."
김수호가 준호에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조심스러웠다.
"어제 경기 후에 무릎이 괜찮아?"
준호는 수호를 봤다. 수호의 눈에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 있었다.
"왜?"
"그냥... 나도 부상으로 고생했거든. 그런 표정이 나는 것 같아서."
준호는 수호에게서 눈을 돌렸다.
임석진 감독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도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준호. 어제 경기 때 슈팅 폼이 특이했어. 마지막 슈팅."
"네?"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준호는 공을 집었다. 3점선 밖에 섰다. 거리 10미터.
공을 던졌다.
그냥 던졌다. 특별한 능력 없이.
공은 링을 빗나갔다.
임석진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뭔가를 확인한 것처럼.
"다시 한 번."
준호가 다시 던졌다.
이번엔 들어갔다.
"네 능력은 뭐야? 모든 슈팅이 들어가는 건 아니고... 특정 순간에만 뭔가가 다르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아.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마.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 그 능력이 뭐든 간에, 그것은 네 것이야.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쓸지도 네가 정하는 거야."
임석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마치 자신도 누군가의 압박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연습이 시작됐다.
준호는 박준과 함께 포스트 플레이를 했다. 박준이 공을 받고, 준호가 블록 아웃을 했다. 박준의 몸이 묵직했다. 마치 철제 기둥처럼.
"너 뭔가 이상해. 어제는 정신이 여기 있었는데, 오늘은 여기가 아니네."
박준이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나랑 1년을 함께했는데, 네가 뭐 생각하는지 모를 줄 알아?"
박준은 준호를 돌렸다.
"뭐가 문제야? 진짜로."
준호는 박준의 눈을 봤다. 그 눈에는 순수한 신뢰가 있었다. 돈도 없고, 프로 진출 가능성도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팀원으로 본다는 믿음.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 믿음을 배신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의 목이 메어 올 것 같았다.
"우리는 팀이야."
박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 말이 준호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준호는 박준의 등을 두드렸다.
"고마워."
박준이 웃었다.
연습이 끝나고 모두가 나간 후, 준호는 혼자 코트에 남았다.
야간 조명만 켜져 있었다. 어두운 체육관. 낡은 바닥. 낮은 천장.
준호가 공을 집었다. 3점선 모서리에 섰다. 거리 11미터.
박준의 신뢰. 무릎의 통증. 그리고 1주일의 기한.
준호는 공을 던지려다 멈췄다. 손에 공을 들고 서 있었다. 밤새 고민해야 할 선택. 팀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능력을 포기할 것인가. 둘 다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공을 내려놨다.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감싸 안았다.
다음 날 아침, 준호는 의료실로 향했다.
이은정이 준호를 봤을 때 얼굴이 굳어졌다.
"오빠, 이건..."
"진짜 심한 거야?"
"심한 정도가 아니야. 어제 능력 사용 후 무릎 상태가 악화됐어. 이렇게 계속되면..."
이은정은 말을 멈췄다.
"뭐?"
"영구 부상이야. 다음 사용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
준호는 침묵했다.
"오빠,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어제부터 계속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보여."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거짓말하지 마. 난 의료팀이잖아. 너 상태 다 알아."
준호는 이은정을 봤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누군가가 나한테 제안을 했어. 프로로 올라갈 수 있는."
"그 대신?"
"능력을 쓰는 거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은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빠, 그건..."
"알아. 위험하다는 거."
"위험한 게 아니야. 그건 너를 파괴하는 거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1주일이 남았어?"
"응."
"그 사이에 다른 방법을 찾자. 제발."
준호는 이은정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녁, 준호는 임석진을 찾았다.
감독은 체육관의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준호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었다.
"뭐야?"
"감독님, 제가 뭔가를 물어봐도 될까요?"
"뭐?"
"감독님도... 누군가한테 압박을 받은 적 있어요?"
임석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지."
"어떻게 하셨어요?"
"처음엔 유혹이 컸어. 프로 선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제안. 하지만 그건 함정이었어. 능력을 쓸수록 몸이 망가지고, 결국 그들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팀을 택했어. 정말 소중한 팀원들이 있었거든. 그들을 버릴 수 없었어."
임석진은 준호를 봤다.
"넌?"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 봐.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프로 무대인지, 아니면 이 팀인지."
준호는 체육관을 나왔다.
밤 11시, 준호는 코트에 혼자 서 있었다.
공을 집었다. 3점선 모서리. 거리 11미터.
박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팀이야."
임석진의 말도 떠올랐다. "그 능력을 어떻게 쓸지도 네가 정하는 거야."
그리고 이은정의 말. "다음 사용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
준호는 공을 던졌다.
시간이 멈췄다.
공이 손가락을 떠났다. 호를 그렸다. 링을 통과했다.
그 순간, 무릎에 고통이 터졌다. 이전과 달랐다. 더 깊고, 더 광범위했다. 무릎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마치 내부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
준호는 무릎을 감싸 안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의료진의 경고가 떠올랐다.
"다음 사용이 영구 부상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인가?
준호는 어두운 체육관에서 무릎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김준석의 1주일 기한. 박준이라는 팀원. 영구 부상이라는 경고.
세 개의 시간이 준호를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할 뿐.
내일 감독에게 말해야 한다. 능력의 비결을. 그리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