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강남 체육관 지하 코트의 불을 끈 지 3시간 뒤, 이준호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스포츠백. 그 안엔 농구화, 반팔 티셔츠, 그리고 2년간 자신을 먹여 살린 돈이 가득했다. 밤 11시 반.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임석진 감독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내일 오전 10시. 강남역 버스 터미널. 준비 완료?"

준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펼쳤다가 구부렸다. 72시간 전의 번개 같은 통증은 사라졌지만, 뭔가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무릎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천천히 조이는 듯한 감각. 의료팀 담당자 이은정의 경고가 자꾸만 떠올랐다.

"영구 부상. 한 번 더 쓰면 끝."

그 말이 사실이든 협박이든, 이제 상관없었다. 강남 체육관은 끝이었다. 3점 내기로 죽어 가는 것보다는, 적어도 한 번 더 '선수'로 불려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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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버스 터미널은 새벽 같았다. 택시 기사들이 졸고 있었고, 몇몇 야간 근무자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준호가 도착했을 때 임석진 감독은 이미 와 있었다. 50대 초반의 단단한 체형. 가슴에는 "Rise Again" 로고가 새겨진 회색 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왔네." 임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밤 잘 잤어?"

"네."

거짓이었다. 준호는 새벽 3시까지 천장을 봤다.

"버스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우리 연습장은 지방이거든." 임석진이 버스 표를 샀다. "가는 길에 얘기해 줄 게 있어."

버스는 거의 비어 있었다. 맨 뒤쪽 좌석에 앉은 임석진은 잠시 창밖을 봤다.

"넌 왜 농구를 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돈이 필요하니까요."

"그게 아니라."

임석진이 돌아봤다. 그의 눈은 준호의 얼굴을 꿰뚫으려는 듯했다.

"넌 왜 다시 코트에 나가려고 해? 돈만 벌려면 강남 체육관에서 계속 해도 되잖아."

준호의 턱이 경직됐다.

"프로 복귀. 그거지?"

침묵이 대답이었다.

"알았어. 난 네가 정직하다는 걸 좋아한다." 임석진이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엔 노트북이 있었다. "우리 팀을 봐."

화면엔 영상이 떴다. 팀 경기 영상이었다. 경기장은 낡았다. 조명은 어둡고, 바닥은 울렁거렸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색깔이 바랬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정확했다. 정확하고, 절실했다.

"작년에 지역 예선에서 떨어졌어. 올해는 다르다." 임석진이 영상을 멈췄다. "너 때문에 다르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팀의 평균 나이는 28살이야. 대부분 프로 진출에 실패했거나, 일을 하면서 농구를 하는 사람들이야. 돈? 없지. 버스 이용료도 선수들이 돈을 모아서 내." 임석진이 노트북을 닫았다. "하지만 우리는 전국 챔피언십 진출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그걸 할 수 있어. 너 때문에."

"전국 챔피언십?"

"그래. 너 같은 프로 수준의 선수가 들어오면, 예선 통과는 문제없어. 그 다음이 진짜 무대야. 서울의 명문 팀들, 프로 진출을 앞둔 유망주들. 그런 팀들과 싸우는 거야."

준호의 심장이 울렸다. 프로가 아니라도 그런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텐데.

"너는 뭐가 필요해?" 임석진이 물었다.

"무엇이요?"

"프로 복귀? 자존심? 돈? 뭐든 상관없어. 우리 팀이 그걸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봐."

준호는 창밖을 봤다. 경기도 경계가 지나가고 있었다. 회색 건물들, 회색 하늘. 그 안에 뭔가 희망이 있을까.

"줄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는 거래야. 우리는 너한테 무대를 줄 거고, 넌 우리한테 승리를 줄 거야. 공정한 거래지?"

거래. 그 말이 자꾸만 걸렸다. 하지만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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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의 체육관은 준호가 상상했던 것보다 낡았다. 천장은 낮고, 바닥은 울렁거렸다. 조명은 어두워서 골대 아래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공 튕기는 소리는 생생했다.

"준호다!"

누군가 외쳤다. 준호가 입장했을 때 훈련 중이던 선수들이 한 번에 멈췄다.

센터로 보이는 큰 체형의 남자가 다가왔다.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눈은 반짝였다.

"박준이야. 센터." 박준이 손을 내밀었다. "많이 들었어. 프로 출신이라고?"

준호가 손을 잡았다.

"네."

"와, 실제로 보니까 다르네. 피부 톤이 다르다니까." 박준이 웃었다. "근데 무릎 괜찮아? 들었어. 부상 때문에..."

"괜찮습니다."

준호가 손을 뗐다. 박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잠시, 박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밝음이 사라지고 뭔가 다른 것이 들어왔다.

"넌 우리를 믿지 않는다."

직설적인 말이었다. 박준의 눈이 준호를 꿰뚫었다.

"뭐?"

"너는 우리를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우리는 너한테 도구일 뿐이지. 넌 혼자 이기려고 왔어. 그게 보인다."

준호의 숨이 얕아졌다.

"우리는 함께 이기고 싶은 거고, 넌 자기 혼자 이기고 싶은 거야. 그게 다르다는 걸 알아야 돼."

박준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훈련으로 돌아갔다.

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박준의 등이 보였다. 실은 준호도 알고 있었다. 이 팀이 자신을 '팀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도구로 본다는 걸.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만 있으면 된다.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

"저기, 준호!"

포인트가드로 보이는 작고 빠른 남자가 손짓했다.

"나 김수호야. 패스를 많이 줄 테니까 슈팅만 잘해."

"네."

김수호는 박준과 달랐다. 감정이 없었다. 마치 기계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그게 더 편했다.

훈련은 기본기부터 시작했다. 드리블, 레이업, 미드레인지 슈팅. 준호는 모두 쉽게 소화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2년이 지났어도, 근육은 거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5대 5 미니게임이 시작됐다.

준호는 슈팅 가드 자리에 섰다. 김수호가 드리블을 하며 올라왔다. 박준이 스크린을 잡아줬다. 준호가 떨어져 나왔다. 김수호가 패스했다.

공이 준호의 손에 들어왔다.

그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마치 영화를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듯, 모든 게 느려졌다. 수비수의 움직임, 박준의 위치, 골대까지의 거리. 모든 게 계산됐다. 준호의 손가락이 공을 놨다.

공은 호를 그렸다. 아름다운 호. 정확한 호.

링을 탔다. 한 번. 두 번.

들어갔다.

"오!"

박준이 외쳤다. 박준의 눈이 준호를 봤다. 그 순간, 뭔가 바뀌었다. 도구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팀원을 보는 눈이었다.

훈련이 계속됐다. 준호는 또 슈팅했다. 또 들어갔다. 또 들어갔다. 박준의 눈빛은 점점 밝아졌다. 김수호도 달라졌다. 패스의 정확도가 올라갔다. 마치 그들이 준호와 같은 호흡으로 춤을 추는 것처럼.

훈련이 끝났을 때, 박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잘했어. 진짜."

"네."

"내일도 와?"

"네."

박준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순수했다. 이미 준호를 도구로 보지 않고 있었다.

---

로커룸. 선수들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 이겼다!"라고 외쳤고, 누군가는 "내일 회사 일찍 가야 하는데"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각자 일을 하고 저녁에 여기 모인다고 했다. 회사원, 대학생, 택시 기사...

준호는 벤치 끝에 앉아 있었다.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준호를 쳐다봤다. 호기심 섞인 눈, 경계하는 눈, 반가운 눈.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준호에게 닿지 않았다.

임석진 감독이 나타났다.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감독은 로커룸 밖으로 나가는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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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의 한구석.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임석진이 멈춰 섰다. 준호도 섰다.

"이준호, 내가 솔직하게 말하겠다."

임석진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무거웠다.

"우리 팀은 너 없이는 챔피언십 진출도 못 한다. 근데 넌..."

그가 준호의 눈을 봤다.

"넌 우리를 돕는 게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려고 온 거 같다. 그게 문제야."

준호의 턱이 경직됐다.

"우리는 팀이야. 승리를 위한 기계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야. 넌 그걸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임석진이 한 발 다가섰다.

"내가 너한테 기대는 건 단순한 슈팅이 아니야. 넌 이미 다 할 수 있는 선수야. 내가 원하는 건, 넌 왜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거야. 진짜 이유를 모르면,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어."

준호는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봐.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넌 뭘 원하는지."

임석진이 돌아섰다. 준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체육관의 불이 점점 꺼져 가고 있었다. 먼 곳에서 박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김수호의 농담 소리도 들렸다.

준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지는 것이었다.

무릎의 통증도, 자존심의 상처도 아니었다. 준호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실패가 다른 누군가의 꿈을 부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준이, 김수호가, 그리고 이 팀의 모든 선수들이 자신 때문에 다시 한 번 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혼자라면 지고 나서 혼자 일어나면 되지만, 함께라면 그들의 얼굴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

체육관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준호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더 서 있었다.

박준의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차 엔진음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체육관은 깊은 침묵으로 채워졌다. 준호는 천천히 움직였다. 로커룸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옷을 입었다. 신발 끈을 묶었다. 모든 동작이 기계적이었다.

밤거리를 걸으며 준호는 생각했다. 강남 체육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 지하 코트는 한적했다. 준호는 공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공의 표면을 감지했다. 온기를 느꼈다. 이 공은 2년을 함께한 동료였다. 유일한 동료였다.

"탁. 탁. 탁."

리듬이 시작됐다. 준호는 3점선 너머로 나갔다. 왼쪽 코너. 오른쪽 코너. 톱. 준호의 발이 바뀔 때마다 공의 궤적도 바뀌었다.

슈팅. 슈팅. 슈팅.

모두 들어갔다. 당연했다. 이곳에서는 항상 들어갔다. 돈을 걸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체육관에서는?

체육관에서도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공은 링을 통과했다. 그런데 왜 임석진의 말은 준호의 가슴을 헤집어 놓았나.

준호는 공을 멈췄다. 손에 들고 있던 공을 내려놨다. 가슴이 철렁했다. 불안감이 올라왔다.

'우리를 돕는 게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려고 온 거 같다.'

정확한 말이었다.

준호는 팀을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자신이 프로 무대로 돌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했다. 임석진도 알고 있었다. 박준도 알고 있었을까. 김수호도?

훈련장에서 그들의 눈빛을 다시 떠올렸다. 박준이 슈팅 후 준호를 봤을 때의 그 표정. 그것은 '팀원'을 보는 눈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들을 뭘로 봤나. 자신의 성공을 도와줄 도구로 봤다. 아니면 자신의 복귀를 가능하게 할 수단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이은정의 번호를 눌렀다. 밤 11시 30분이었지만, 이은정은 대답했다.

"뭐 해?"

"검사 결과 나왔어?"

음성이 들렸다. 무언가를 찾는 소리. 이은정이 숨을 쉬었다.

"너 뭐하는 거야. 밤에."

"검사 결과."

"내일 와. 오후 2시에."

"지금 알려 줘."

침묵이 있었다.

"좋지 않아. 무릎 관절염이 진행되고 있어. 다음 번 능력 사용하면..."

"영구 부상이라는 거 알고 있어."

"그럼 왜 물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준호. 너 뭐 하려고?"

"팀 훈련 받고 있어."

"경기는?"

"했어."

"뭐?"

"경기했어. 이겼어."

이은정의 숨소리가 들렸다. 뭔가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

"이준호. 진심이야. 다시 하지 마. 넌 이미..."

준호가 끊었다. 화면을 검게 만들었다.

체육관의 불이 타이머로 꺼지기 시작했다. 준호는 공을 다시 집었다. 손이 떨렸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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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의료실.

이은정의 스캔 사진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대조. 화면 속 무릎은 준호의 것이었지만 낯설었다. 손상된 부분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기. 그리고 여기."

이은정의 손가락이 두 곳을 가리켰다.

"회복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야. 하지만 한 번 더 무리하면..."

"영구 부상."

"네."

이은정의 얼굴은 차갑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준호는 그것이 뭔지 알았다. 동정이 아니라, 무력감이었다.

"넌 왜 계속 자신을 파괴하려고 해?"

준호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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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첫 공식 경기.

지역 리그 1차 라운드. 상대는 서울의 팀이 아닌 경기도의 중소 팀이었다. 하지만 준호에게는 모든 경기가 중요했다. 능력을 시험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박준이 먼저 준호를 봤다.

"왔어!"

"응."

"오늘 좀 봐 봐. 우리 팀이 얼마나 잘하는지."

박준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은 반짝였다. 마치 자신의 친구를 자랑하고 싶은 아이 같았다.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도구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1쿼터는 팽팽했다. 상대 팀도 약한 팀이 아니었다. 준호는 슈팅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임석진 감독이 준호를 거의 쓰지 않았다. 먼저 팀의 호흡을 맞추는 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2쿼터 중반, 드디어 준호가 들어갔다.

준호가 코트에 들어서자,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상대 팀이 준호를 마크했다. 하지만 김수호의 패스는 정확했다. 박준의 스크린은 견고했다. 준호는 기회를 얻었다.

오른쪽 윙에서 3점 슈팅. 준호의 몸이 리듬을 탔다. 무릎이 구부러졌다가 펴졌다. 발끝이 땅을 밀어냈다. 공이 손가락을 떠났다.

상대 수비수가 손을 뻗었다. 너무 늦었다. 공은 이미 호를 그리고 있었다.

링을 맞혔다. 한 번. 두 번.

들어갔다.

관중석에서 박준과 김수호가 외쳤다. 로커룸 벤치에서도 선수들의 환호가 들렸다. 하지만 임석진 감독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공이 준호에게 들어왔다. 이번엔 톱 오브 더 키. 준호가 한 발 물러났다. 수비수가 따라왔다. 준호의 눈이 박준을 찾았다. 박준이 로우 포스트로 내려갔다. 준호가 패스했다.

박준이 슈팅했다. 빗나갔다. 하지만 준호가 리바운드를 잡았다. 준호의 무릎에 미세한 통증이 흘렀다. 무시했다. 다시 슈팅했다.

들어갔다.

3점 슈팅. 또 들어갔다.

2쿼터 동안 준호는 12점을 터뜨렸다. 팀은 20점 차로 앞서갔다. 경기는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3쿼터, 상대 팀이 움직였다. 그들도 준호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준호를 집중적으로 마크했다. 준호는 슈팅 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신 박준과 김수호가 나섰다.

박준이 2점 슛을 시도했다. 빗나갔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지었다. 다시 집중했다. 김수호가 턴오버를 했다. 하지만 그는 즉시 다시 수비를 섰다. 그들은 지지 않고 있었다. 졌어도 괜찮다는 듯이 경기를 했다.

준호는 벤치에 앉아 그들을 봤다. 그건 준호가 본 적 없는 농구였다.

골목에서는 져서는 안 된다. 돈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프로에서도 졌다는 건 실패였다. 하지만 저들은... 저들은 뭔가 다른 걸 하고 있었다. 지더라도 함께 지는 것.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경기는 다시 일어나다 팀의 승리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 92 대 78.

4쿼터 역전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상대 팀이 따라붙었다. 5점 차까지 줄었다. 3분 남았다.

임석진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다. 준호도 벤치로 돌아갔다.

"준호, 마지막 슈팅 기회다. 넌 쓸 거냐, 안 쓸 거냐?"

감독의 말은 명확했다. 준호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능력을 쓰면 이길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무릎은?

박준이 준호를 봤다. 김수호도 봤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신뢰가 있었다.

"우리가 이길 거야. 함께."

박준이 중얼거렸다. 그 말은 준호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팀 전체를 위한 말이었다.

준호는 숨을 깊게 들었다.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들의 얼굴이었다.

"안 쓸 거다."

준호가 말했다.

"뭐?"

"능력 안 쓸 거다. 우리 팀이 이길 거다."

임석진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경기가 재개됐다. 김수호가 드리블을 했다. 박준이 스크린을 잡아줬다. 준호가 떨어져 나왔다. 김수호가 패스했다.

공이 준호의 손에 들어왔다. 슛 기회였다. 하지만 준호는 패스했다. 박준에게. 박준이 슈팅했다. 들어갔다.

관중석이 터져 나갔다. 박준이 준호를 봤다. 그 눈에는 감사가 있었다.

경기는 팀의 승리로 끝났다. 92 대 78.

로커룸에서 선수들은 경기의 여운 속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겼다!", 누군가는 "내일 회사 가야 하는데 힘들겠네" 같은 농담을 했다. 그들은 이겼지만 특별히 흥분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한 듯이.

박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어땠어?"

"좋았어."

"우리가 챔피언십까지 간다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준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공포가 아니었다. 책임이 아니었다.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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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거리는 고요했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준호의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를 넘어 있었다.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박준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우리가 챔피언십까지 간다고!'

이제 그 말이 희망처럼 들렸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준호는 한참을 망설였다가 받았다.

"이준호 선수?"

남자 목소리였다. 낮지만 진지한 목소리.

"네?"

"한 번 뵙고 싶습니다. 내일 오후 3시에 강남 테니스 클럽에서. 가능하신가요?"

"누세요?"

"이름은 아직 비밀이라고 해주세요. 다만, 당신의 '능력'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강남 체육관의 CCTV 영상도 봤고, 당신의 경기 기록도 봤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선수네요."

화면이 검게 변했다. 통화가 끝났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강남 체육관의 CCTV 영상. 경기 기록. 모든 것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을 만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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