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감정의 방

펜트하우스의 거실은 여전히 차갑고 명확했다. 회색 소파, 검은 대리석 테이블, 대도시를 내려다보는 통창. 지은은 이곳에 올 때마다 숨이 가빠진다. 이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전시하기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

준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표정. 담담하고 정결하고 텅 빈.

"오셨네요."

그의 인사는 고객을 맞이하는 비즈니스맨의 그것이었다. 지은은 자신이 월급을 받는 상담사라는 사실을 자주 잊으려고 했다.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은이 마주 앉으며 물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승낙의 신호였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침묵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이지만, 그 사이에 준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우측 상향으로. 기억을 뒤지는 신호.

"좋은 학교에 다녔습니다. 좋은 집에서 자랐습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인사말처럼 정확했다. 마치 이력서를 읽는 것처럼.

지은은 그 목소리 아래를 들었다. 단어들 사이의 공백.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

"당신은 행복했나요?"

준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무언가가 흔들렸다. 미묘한 흔들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빛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 하지만 지은은 그것을 포착했다.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 뭔가가 섞여 있었다. 불확실성. 의문. 혹은 그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언가.

지은은 그 '모름' 속을 들었다. 그 텅 빈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것들. 수십 년을 채워야 할 말들. 물었지만 답을 받지 못한 질문들. 어린 준호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을 모든 것들.

"외로우셨군요," 지은이 조용히 말했다.

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극도로 미묘한 변화였지만, 지은은 놓치지 않았다. 눈썹 사이의 주름. 입가의 긴장. 마치 누군가가 그의 내부에 손을 뻗어 뭔가를 건드린 것 같은 반응.

"...예."

그것은 대답이 아니라 인정이었다.

상담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은의 제안이었다. 펜트하우스의 거실에서는 뭔가가 완성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 같은 불편함. 그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진전이었다.

'감정의 방'은 준호가 처음 방문했을 때와 같았다. 따뜻한 조명, 식물들, 그리고 벽에 붙은 수백 장의 포스트잇들. 상담자들이 남긴 고마움의 말들.

준호가 벽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한 점에 멈췄다.

지은이 그의 눈을 따라 봤다. 오래된 사진이 있었다. 프레임에 든 가족 사진. 준호의 어머니, 어린 준호, 그리고 한 남자. 준호의 아버지였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은 흐릿했다.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은 것처럼. 혹은 의도적으로 흐리게 촬영된 것처럼.

이미영의 목소리가 공중에 떠돌았다. 지은이 들은 적 없는 목소리인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들렸다.

"감정은 약함이야. 약함은 죽음이야."

준호가 사진을 내려봤다. 그의 손가락이 유리에 닿으려다 멈췄다.

"당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 지은이 물었다.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감정적이었습니다. 그것이 회사를 무너뜨렸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호에게는 진실이었다.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는 언젠가 기억이 된다. 기억이 아닌 것도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상담실의 중앙으로 돌아왔을 때, 지은은 준호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나요?"

준호가 침묵했다. 이번 침묵은 다르다고 지은은 생각했다. 기억을 뒤지는 침묵이 아니라 내부를 들여다보는 침묵. 자신 안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절박한 침묵.

"모르겠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진실이 아니었다. "아니, 뭔가... 불편합니다.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은데..."

그는 더듬거렸다. 언어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지은은 침묵했다. 이것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자신 안의 어두움을 인식하는 순간. 그 어두움이 감정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의 순간.

"그것들을 신체로 표현해보세요. 어디서 느껴지나요? 그 감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은이 천천히 말했다. 그녀는 준호의 손을 봤다. 소파 팔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호가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호흡이 얕아집니다."

지은은 그의 호흡음을 들었다. 확실히 불규칙했다. 마치 뭔가에 눌려 있는 것처럼.

"더 자세히 말해보세요. 가슴의 어느 부분이요?"

"중앙입니다. 심장 위쪽. 마치...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준호가 손을 가슴에 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셔츠 위에서 작게 떨렸다.

"그 감각이 커지나요, 작아지나요?"

"계속 커집니다. 마치 제 안에 구멍이 있는 것처럼. 그 구멍이 계속 커지고 있는데,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주 미묘하게. 마치 처음 악기를 켜는 음악가의 손처럼.

지은이 그 모든 것을 받아냈다. 그의 말, 그의 떨림, 그의 절박함. 그것들을 자신의 가슴에 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준호 자신이 그것을 찾을 때까지.

"그 구멍이 무엇을 원하는 것 같나요?"

지은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거의 속삭이듯이.

준호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이 불안정했다.

"누군가... 누군가를."

그가 말했다. 그 말은 거의 인정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저를 봐주기를. 저를 묻기를. 저를 기억해주기를."

지은은 침묵했다. 이것이 그 순간이었다. 감정이 신체 신호에서 의미로 변환되는 순간. 그녀는 준호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언어화하기를 기다렸다.

"그것을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은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느끼는 것은 그것보다 더 깊은 것 같아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갈망. 그것이 맞나요?"

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제 알았어요.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상담은 계속되었다. 지은은 준호의 신체 신호를 읽으며 그것을 언어로 번역했다. 손가락의 움직임, 호흡의 변화, 눈동자의 떨림. 모든 것이 신호였고, 모든 신호가 의미였다.

준호는 천천히 자신을 배워나갔다. 불안감, 갈망, 그리움, 두려움. 모두 낯선 언어였지만, 지은의 질문을 통해 하나씩 신체에서 마음으로 옮겨졌다.

저녁 여섯 시. 상담실의 조명이 주황빛으로 변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불이 켜지고 있었다.

준호가 일어섰다. 상담이 끝났다는 신호. 하지만 그는 문 앞에서 멈췄다.

지은이 그의 등을 봤다. 그의 어깨가 미묘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뭔가 더 말씀하실 게 있나요?" 지은이 물었다.

준호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이 지은과 마주쳤다.

"다음에는... 당신의 것을 읽고 싶습니다."

지은이 웃었다. 그것은 놀라움과 당혹감이 섞인 웃음이었다.

"계약에 그건 없는데요?"

준호가 한 발 다시 들어왔다. 상담실 안으로.

"그럼 계약을 수정해야 하나요?"

그의 말이 지은의 얼굴에 가닿았을 때, 무언가가 변했다. 지은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것처럼. 이 계약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린 것처럼.

"당신은 나를 도우려고 하는데," 준호가 계속했다. "누가 당신을 도우나요?"

지은은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이었다. 자신이 타인에게만 비춰주던 거울이 이제 자신을 향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이었다.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거짓.

준호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의 눈이 지은의 손을 따라갔다. 소파 팔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 떨리고 있는 손.

"당신의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판단이 없었다. 단지 관찰일 뿐. 하지만 그 관찰이 지은을 흔들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신체 신호를 읽은 것이다. 그녀가 항상 읽어내던 것을, 이제는 자신이 당하는 것이다.

지은의 눈이 흔들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당신을 읽을 수 없게 해주세요. 마치 제가 당신을 읽는 것처럼."

준호가 말했다.

그 순간, 지은의 손가락이 움켜졌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 속에는 두려움도 있었고,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그녀는 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불안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결의. 아니면 간청.

"계약에 없는 조건을 추가할 수 없습니다."

지은이 말했다. 그것은 거절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계약이 아닌 다른 형태로는 어떨까요?"

준호가 소파 팔목에 기대 앉았다. 상담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자세였다. 마치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앉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제 감정을 읽을 때, 당신은 무엇을 느낍니까?"

지은이 침을 삼켰다.

"그것은... 전문적 공감입니다."

"정말인가요?"

준호가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있었다. 완전한 확신은 아니지만, 뭔가가 맞지 않다는 느낌. 아직 불안정한 감정 회로가 보내는 신호.

지은은 답하지 않았다.

"당신의 호흡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질문했을 때. 그것도 신체 신호입니다."

준호가 말했다. 마치 자신이 배운 것을 즉시 사용하려는 학생처럼. 그것이 서툴렀고, 그렇기에 더 날카로웠다.

"저는 전문가입니다. 경계를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왜 손이 떨리나요?"

지은이 자신의 손을 봤다. 정말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숨길 수 없었다.

준호가 일어섰다. 상담실의 한쪽 벽에 붙은 포스트잇들을 바라봤다. 수십 장의 메모. 모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 수 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들을 누가 썼나요?"

지은이 답하지 않았다.

준호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손글씨를 자세히 봤다. 글자의 굵기, 기울기, 마침표의 위치. 그리고 다른 메모들과 비교했다.

"어떤 것들은...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확신이 아니라 의문. 아직 불완전한 해석.

지은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침묵만이 답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준호가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은 비난이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함이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하지만 그 목소리 아래에는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지은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답은 자신도 모르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딘가에.

준호가 포스트잇을 다시 벽에 붙였다. 조심스럽게. 마치 그것이 깨지기 쉬운 유물인 것처럼.

"저는 당신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 싫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이 감정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요."

지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눈물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통제 밖에서.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행복했나요?'라고. 저는 행복의 정의를 몰랐습니다."

준호가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지금 느껴집니다. 당신이 저를 보려고 할 때, 그 시간이... 좋습니다."

그가 한 손을 들었다. 지은의 눈물을 닦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만질 권리가 없다는 듯이.

"저도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지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준호와 마주쳤다.

"계약이 이미 끝났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지은이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준호가 웃었다. 그것은 짧고 쓸쓸한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나요? 제가 느낀 감정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것이 성장입니다."

"성장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이 지은의 가슴을 꿰뚫었다.

준호는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복도의 불이 밝게 들어왔다.

"내일 오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같은 시간에."

"계약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계약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계약이 아닙니다."

준호가 돌아섰다. 문의 틀 안에 서 있는 그는 마치 그림처럼 보였다. 조명 아래서 그의 얼굴은 부드러워 보였다. 그리고 외로워 보였다.

"당신이 저를 읽으려고 했을 때, 저는 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겠습니다. 피하는 것도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지은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손이 문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손도 떨리고 있었다.

"당신을 읽어주세요. 제발."

그 말이 공중에 떠돌고, 준호가 복도로 나갔다. 상담실의 문이 닫혔다.

지은은 혼자 남았다. 포스트잇들로 가득한 벽 앞에서.

그녀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메모. 확실히 자신이 쓴 필체였다. 언제 썼는지도 모르면서.

휴대폰이 울렸다. 서윤이었다.

"뭐 해?"

"상담 중이었어."

"이 시간에? 누구?"

지은이 침을 삼켰다.

"그 남자. 준호."

통화 너머로 서윤의 한숨이 들렸다.

"은, 너 정신 차려. 그 남자는 위험해."

"뭐가?"

"모든 게."

전화가 끊겼다.

지은은 상담실의 불을 껐다. 벽의 포스트잇들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종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위로들.

집으로 가는 길, 지은은 준호의 말을 계속 생각했다.

'당신을 읽어주세요. 제발.'

그 '제발'이라는 말에 담긴 절박함.

그리고 그 절박함이 자신에게 무엇을 하는지를.

그녀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에는 준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것을 읽겠습니다. 이번엔 계약이 아닌, 선택으로.'

지은은 그 메시지를 몇 번을 읽었다.

선택. 그 말이 자신을 흔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항상 남의 감정만 선택해왔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준호에게 연락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내일을 기다려야 할까?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다.

밤이 깊어갔다. 서울의 불들이 하나둘 꺼져갔다.

하지만 펜트하우스의 한 창문에는 불이 계속 켜져 있었다.

준호는 상담실에서 받은 감정들을 정렬하고 있었다. 불안감. 갈망. 그리움. 두려움.

그리고 하나 더. 자신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생기고 있었다. 신체에서 시작된 그 신호는 아직 언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무섭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형 준영의 전화가 울렸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전화를 받았다.

"감정들을 정리 중입니다."

"그 상담사? 아직도 만나고 있어? 어머니가 화났어."

"알고 있습니다."

"뭘 아냐고. 그 여자가 너를 약하게 만들고 있잖아. 비즈니스의 기본이 뭔데, 감정 따위에 흔들려? 아버지도 그래서 망했어."

준호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혼란이 있었다.

"형 말이 맞습니다."

준영이 안도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럼 내일 만나서..."

"하지만 저는 계속할 것입니다."

"뭐?"

"내일도 만나겠습니다."

준호의 목소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확신보다는 필요성에 가까웠다.

"형이 말한 대로라면, 아버지는 감정이 있었기에 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정이 없어서 이겼습니다."

준영이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뭔가 이상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이 약함인지 강함인지 모르겠습니다."

"준호, 그건 약함이야. 감정에 흔들리는 거야."

"예. 흔들리고 있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혼란이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탐구하려는 의지.

"그리고 처음으로, 그것이... 싫지 않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창밖의 서울을 바라봤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지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그 생각만으로도, 그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을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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