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선택
새벽빛이 본산 마당을 적시기 시작했다.
어제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어제의 전투는 이제 시작되려 했다.
이강의 손가락이 떨렸다. 떨림은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팔십 대 노인의 주름이 그것을 뒤덮고 있었고, 눈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비검을 한 번 더 사용할 때마다 삼 개월이 사라진다고 했다. 어제 하루 동안 몇 번을 사용했는가? 열두 번. 세 년이 사라졌다.
남은 시간은 육 개월.
"이강."
청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노장은 밤을 지새우지 않은 듯 얼굴이 맑았다. 하지만 눈은 슬픔으로 흐려 있었다.
"준비됐나?"
이강은 돌아서지 않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계속 바라봤다. 그 얼굴은 이미 죽음과 가까운 것이었다. 팔십 대 노인이 육 개월을 살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얼굴은 백 살의 얼굴이었다.
"유성현이 계획을 바꿨다."
청운이 말했다.
"어제 밤 한옥천을 거의 죽일 뻔했을 때, 너를 밀어내려 했다. 자신이 마지막 일격을 하려고."
이강이 돌아섰다.
"장문인 자리를 원하는군."
"그렇다. 그 놈도 한옥천이나 다를 바 없다. 권력에만 눈이 멀었다."
청운은 창문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그 손가락이 본산 전역을 가리켰다.
"한옥천 파는 본산의 동쪽을 장악했고, 유성현 파는 남쪽을 점령했다. 내 세력은 북쪽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넌 중앙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세 파벌이 한 동시에 움직인다는 뜻이군."
"그렇다."
청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 한옥천이든, 유성현이든, 혹은 그 둘 다든."
이강은 창밖을 내다봤다. 본산의 마당에서 검객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옥천의 검객들은 붉은 띠를 둘렀고, 유성현의 검객들은 파란 띠를 둘렀다. 그리고 청운의 제자들은 아무 표식이 없었다. 표식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이미 본산의 일부였다.
본산의 대사원(大寺院)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것은 전투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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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충돌은 남쪽 회랑에서 일어났다.
유성현의 제자 서른 명과 한옥천의 제자 사십 명이 마주쳤다. 유성검법의 특징인 빠른 연격이 하늘을 그었다. 마치 유성우가 내려오는 듯 검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한옥천의 제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더 강했다. 더 오래 단련됐다. 더 많이 살인했다.
첫 번째 비명이 울렸다.
유성현의 제자 중 한 명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이었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그의 눈에 담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목이 끊어졌다.
"후퇴하지 말아라!"
유성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최전선에 있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전술을 지휘하고 있었다.
회랑의 벽이 흔들렸다. 유성현의 제자들이 또 다시 몸을 날렸고, 한옥천의 제자들이 그들을 받아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 불꽃 사이로 피가 흘렀다.
이강은 북쪽 회랑에서 이를 지켜봤다. 청운이 옆에 서 있었다.
"저놈은 지휘관이다. 검객이 아니다."
청운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검객이 되어야 한다."
이강은 움직였다. 도끼를 들었다.
도끼가 공기를 가르며 내려왔다. 남쪽 회랑의 상인방(樑木)이 반으로 부러졌다. 목재가 폭발하며 날렸다. 한옥천의 제자들과 유성현의 제자들이 모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목재를 피했다.
그 틈에 이강이 들어갔다.
비검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도끼는 더 이상 도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한한 검기를 담은 검이었다. 검기가 공기를 울렸다. 한옥천의 제자 다섯 명이 동시에 뒤로 날렸다. 그들의 가슴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비검은 죽이지 않는 무술이었다.
그것이 비검의 비밀이었다.
이강의 얼굴이 또 늙었다. 주름이 깊어졌고, 머리카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도끼를 한 번 더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오 개월. 손가락이 떨렸다. 더 이상 떨림이 아니라 경련이었다.
"한옥천의 본진으로 가야 한다!"
유성현이 외쳤다. 그는 이강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이강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강이 더 이상 많은 비검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유성현의 제자들이 또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길을 막는 것이 있었다.
청운의 검객들이었다.
청운의 제자 열 명이 한옥천의 제자들 앞에 섰다. 그들은 비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전통의 검법만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성현의 제자들의 진격이 막혔다. 한옥천의 제자들이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노장, 이게 뭔가?"
유성현이 외쳤다.
"균형이다."
청운의 목소리가 차갑게 들렸다.
"넌 한옥천을 제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넌 한옥천이 되고 싶은 거다. 그건 복수가 아니라 야욕이다."
"그게 뭐가 잘못됐는가! 한옥천도 권력을 원했을 뿐이다!"
"그렇다. 그래서 그놈은 수십 명을 죽였다. 넌 그것을 반복하고 싶은가?"
청운이 한 발을 내디뎠다.
"아니다. 난 그걸 원하지 않는다."
청운의 제자들이 움직였다. 유성현의 제자들을 향해 검을 들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기 위해 그 각도를 조정했다. 가르치기 위해. 제지하기 위해. 검기가 유성현의 제자들의 팔과 다리를 스쳤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유성현은 얼굴이 굳었다.
"노장, 이건 배신이다."
"배신이 아니다. 이건 정의다."
청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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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산의 중앙 전당(戰堂)에서 이강과 한옥천이 마주쳤다.
한옥천의 얼굴은 창백했다. 어제의 대결에서 그는 상처를 입었다. 비검의 검기가 그의 가슴을 스쳤고, 그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있었다.
"넌 왜 죽이지 않는가?"
한옥천이 물었다.
"비검이 그런 무술이 아니니까."
이강이 답했다.
"그렇군. 그럼 넌 날 감옥에 가두려는 건가? 아니면 죽이되 고통 없이 해주려는 건가?"
한옥천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넌 알지 못한다. 넌 정말 모른다."
한옥천이 걸어왔다. 검을 들지 않았다. 그저 걸어왔다.
"민준이를 죽이게 한 건 내가 아니다. 그건 넌 자신의 과거 때문이다. 넌 이곳에서 도망쳤다. 넌 자신의 피를 숨겼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 피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그 아이는 넌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죽었다."
이강의 손이 떨렸다.
"넌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 내가 민준이를 죽이게 하는 것은, 넌 자신의 저주를 그 아이에게 옮긴 것과 같다."
한옥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 웃기는군. 넌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지 못한다. 넌 자신의 죄를 그 아이에게 씌웠고, 그 아이는 그것을 받아주다가 죽었다."
이강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옥천의 말이 가슴을 찢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복수심이 단지 자신의 도망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 자신이 평온하다고 생각했던 수십 년의 세월이 모두 눈을 감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인식.
민준이는 자신을 따라 이곳에 온 게 아니었나? 자신의 그림자가 되려 한 건 아니었나? 그렇다면 그 아이의 죽음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가?
이강의 몸이 흔들렸다. 손가락의 경련이 팔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것은 신체의 고통이 아니었다. 이것은 영혼의 고통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고통.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고통.
한옥천이 도끼를 집어 들었다. 이강의 도끼였다. 어제 대결에서 떨어진 그것.
"넌 도끼로 살인했다. 넌 비검으로 살인했다. 그리고 지금 넌 자신의 과거로 살인했다. 넌 살인자다. 나 같은 살인자다."
한옥천이 도끼를 집어던졌다. 도끼는 이강을 향해 날아왔다.
이강이 손을 들었다.
도끼가 그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뜨거운 통증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신체의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통증이었다.
이강은 무릎을 꿇었다. 도끼에 꿰뚫린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 피와 함께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복수심이었다. 증오심이었다. 자신이 품어왔던 모든 어두운 것들이.
한옥천의 말이 맞다면, 민준이의 죽음은 자신의 도망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곳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과거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옥천을 죽이는 것이 정의일까? 그것은 단지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것 아닐까?
이강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추구해온 복수가 단지 자신의 도망을 연장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민준이의 죽음을 자신의 복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죄악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
손가락이 더욱 떨렸다. 이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절망.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절망.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민준이의 얼굴이었다. 그 아이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그것은 증오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눈빛이었다. 자신을 구하려는 희망.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하려는 희망.
그렇다면 민준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복수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였다. 자신의 성장이었다. 자신의 깨달음이었다.
이강의 눈이 떠졌다. 거울 같은 눈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모습만 비쳤다. 늙고 병든 자신의 모습. 하지만 그 모습 뒤에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민준이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슬픔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득했다.
민준이는 자신이 될 수 없어서 죽은 게 아니었다. 민준이는 자신을 구하려고 왔던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하려고 왔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복수가 아니라 진실이었다. 죽음이 아니라 계시(啓示)였다.
"청운."
이강이 중얼거렸다.
노장이 나타났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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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이 이강의 옆에 섰다.
"그 말은 거짓이다."
노장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 아이가 죽은 이유는 넌 자신의 과거 때문이 아니라, 한옥천의 욕심 때문이다. 한옥천이 비급을 독점하기 위해 수십 명을 죽였다. 그 중에 그 아이도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청운은 비급을 펼쳤다. 두루마리 종이가 펼쳐졌다. 거기에는 글씨가 가득했다.
"이것이 비급이다. 이것은 과거의 죄의 기록이다. 백련검파가 유파 통합 과정에서 저질렀던 학살의 기록이다. 그리고 동시에..."
청운이 비급을 가리켰다.
"이것은 미래의 가능성이다. 비검은 원래 '모든 살상을 거부하는 무술'이었다. 검이 아닌 것으로 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비검의 진정한 비밀이다."
한옥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그건 거짓이다."
"거짓이 아니다. 넌 그것을 왜곡했을 뿐이다. 넌 비검을 살상의 무술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독점했다. 그래서 수십 명이 죽었다."
청운이 비급을 들어올렸다.
"이제 모두가 이것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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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이 일어섰다.
손가락에서 도끼가 빠져 나왔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신체의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피였다.
그의 몸이 또 늙었다. 팔십 대를 넘어 구십 대로 진입했다.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눈은 거의 실명 직전이었다.
남은 시간은 삼 개월.
아니다. 더 이상 셀 필요가 없었다.
이강은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정의라는 것을. 그리고 정의는 한옥천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모든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민준이를 위한 진정한 추도였다.
이강이 도끼를 들었다.
마지막 도끼였다.
비검의 완전 발동이 시작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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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멈췄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도 멈췄다. 본산의 모든 검객들이 멈췄다.
이강의 몸에서 검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검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이었다.
무한한 빛이 본산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밤이 낮으로 변했다. 숨겨진 모든 것이 드러났다.
빛은 흰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지개처럼 일렁였다. 마치 이강의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흩어지는 것처럼. 빛의 파동이 본산의 벽을 흔들었다. 돌이 부서지고, 기와가 날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빛이 모든 것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
이강의 신체가 서서히 투명해졌다. 처음에는 손끝부터. 피부가 반투명한 유리처럼 변했고, 그 아래 뼈와 혈관이 희미하게 보였다. 투명화는 팔을 거쳐 어깨로 올라왔다. 그의 몸은 점점 빛 자체로 변해갔다. 마치 죽음으로 천천히 진입하는 것처럼. 가슴이 투명해지자, 그 안에서 심장이 뛰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박동들.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었다.
빛은 이강의 몸을 완전히 삼켰다. 하지만 그의 형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반투명한 유령처럼. 마치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비급의 내용이 빛에 비추어 모든 검객의 눈에 보였다. 글씨가 공중에 떠올랐다. 마치 귀신의 손이 쓴 것처럼. 한옥천이 저질렀던 학살의 기록이 빛에 비추어 보였다. 이름이 하나씩 떠올랐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 그 중에 민준이의 이름도 있었다.
칠살검객의 정체가 빛에 비추어 보였다. 그는 한옥천의 양자였다. 비검의 저주에 걸려 있었다. 그도 이강처럼 저주받은 자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제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강의 수명이 빛에 비추어 보였다.
육 개월. 아니다. 이제는 그보다 적었다. 빛이 터져 나올 때마다 이강의 생명이 한 줌씩 흩어졌다.
이제는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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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내려앉았다.
본산의 모든 검객들이 이강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더 이상 이강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령이었다. 혹은 신이었다. 혹은 죽음 자체였다.
이강의 몸은 반투명했다. 마치 이미 죽음의 세계로 한 발을 들인 것처럼.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검객이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본산의 모든 문파 사신들이 비급을 봤다. 백련검파의 죄가 드러났다. 비검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어떤 사신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어떤 사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단순한 내분이 아니었다. 이것은 무술계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비검의 비밀이 공개된 것. 그리고 그것을 독점해온 한옥천의 죄가 폭로된 것.
한옥천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발 살려줘..."
하지만 이강은 이미 듣지 못했다. 이강의 귀는 이미 다른 세계의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칠살검객이 움직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한옥천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 검은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강의 의지였다. 이강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넌 나를 저주했다."
칠살검객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리고 넌 나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도 저주받은 자인 줄 이제 알겠다. 그래서 나도 선택을 할 수 있다."
칠살검객의 검이 내려왔다. 그 궤적은 느렸지만 거역할 수 없었다. 한옥천은 피할 수 없었다. 검은 그의 목을 가로지르며 내려왔다. 그의 비명이 울렸다. 짧고 날카로운 비명. 그리고 그 비명 속에서 한옥천의 생명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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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빛이 본산을 비추기 시작했다.
유성현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야욕은 이강의 비검 앞에서 무너졌다. 청운의 제자들이 그를 포로로 잡았다. 그는 감옥으로 끌려갈 것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면했다. 그것이 청운의 선택이었다.
한옥천의 파벌도 항복했다. 그들의 장문인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다. 한옥천의 제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들이 섬기던 주인이 비검의 저주로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저항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비급이 광장에 펼쳐졌다. 모든 문파의 사신들이 그것을 봤다. 백련검파의 죄가 드러났다. 비검의 진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강의 선택이 드러났다.
사신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비검이 이런 무술이었단 말인가? 죽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무술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비검을 배운다면, 자신들의 비밀도 드러날 수 있을 것이었다.
"이것이 비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한 사신이 중얼거렸다.
"정의의 무술이었구나."
또 다른 사신이 말했다.
"우리도 비검을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세 번째 사신의 말에 모든 사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더 이상 백련검파의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무술계 전체의 일이었다.
청운이 비급을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백련검파는 새롭게 시작한다. 이강이 그 길을 보여주었다. 검을 버리고도 검보다 강할 수 있다. 죽음 앞에서도 정의를 선택할 수 있다."
청운이 이강을 바라봤다.
이강은 여전히 반투명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초점이 없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세한 웃음이 떠 있었다.
"이제... 끝인가?"
이강이 중얼거렸다.
"아니다."
청운이 답했다.
"이제 시작이다. 넌 여기서 머물러야 한다. 이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비검은 이제 죽음의 무술이 아니라 삶의 무술이 되어야 한다."
청운이 이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한 명의 제자라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이 영원이 된다. 그것이 민준이를 위한 진정한 추도가 될 것이다."
청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넌 한 달 동안 칠살검객과 청운의 제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비검을 가르쳐야 한다. 정의의 무술을 가르쳐야 한다."
본산의 마당에 이강과 칠살검객이 마주 섰다.
이강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도끼를 들지 않은 손이었다. 그저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에서 미세한 검기가 피어올랐다.
"비검의 첫 번째 형태를 본다."
이강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명확했다.
"검이 아닌 것으로 검을 쓴다. 죽이지 않으면서 이긴다. 그것이 비검이다."
칠살검객이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강을 베려 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려 했다.
이강의 손이 움직였다. 느리지만 정확했다. 칠살검객의 검이 그 궤적을 따라왔다. 검과 손이 부딪쳤다.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다시."
이강이 말했다.
칠살검객이 다시 검을 들었다.
이강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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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 너머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높고 긴 소리였다.
그것은 더 높은 세력의 신호음이었다.
모든 검객들이 고개를 들었다. 천산 너머의 산맥에 수십 개의 횃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 횃불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산을 향해.
이강의 눈이 뜨였다. 아직 죽지 않은 눈이었다.
"또 다른 적인가?"
"아니다."
청운이 말했다.
"그건 다른 파벌이다. 아마도 천하회일 것이다. 그들이 비급의 소식을 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도 비급을 원할 것이다."
"그럼..."
"그럼 다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넌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번엔 비검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싸워야 한다. 넌 이미 충분히 죽음을 봤다. 이제 넌 살아야 한다. 살아서 제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강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먼 하늘에서 첫 번째 군대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강의 옆에 칠살검객이 검을 들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