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산의 침입
밤은 검은 물이었다.
천산 본산의 담장 위로 올라간 이강은 호흡 한 번 하지 않고 기와를 밟았다. 발소리는 없었다. 십 년 도끼질로 단련된 발목의 힘이 몸을 완전히 부양했고, 검술과는 다른 차원의 움직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청운 노장이 준 곡괭이는 등에 묶여 있었다. 도끼가 아닌 곡괭이. 저주의 빈틈을 파고드는 도구.
본산 뜰에 내려앉은 순간, 유성현의 제자 셋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은 이강을 보고 한 번의 인사도 없이 몸을 날렸다. 경비병들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동쪽에서 횃불이 떠올랐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강은 서쪽 회랑으로 몸을 날렸다.
담장 안의 구조는 십 년 전과 같았다. 비급 저장소는 본전 지하 삼층. 그곳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 장문인실 뒤의 돌 계단. 그 계단의 입구는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형."
어둠 속에서 노장 청운의 음성이 울렸다. 이강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청운은 장문인실 옆방에 숨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하나 들렸다. 돌 봉인이 울음을 내며 밀려났다. 칠십 년을 그 자리에서 지켜온 노장의 검기였다.
돌 계단이 드러났다. 이강은 내려갔다.
지하 삼층은 침묵했다. 촛불도 없었다. 다만 벽에서 나오는 미세한 빛—저주의 빛이 길을 밝혔다. 비급의 저장소는 저주 위에 놓여 있었다. 접근하는 자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그 저주.
이강의 손이 곡괭이를 들었다.
비검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뼈에 울리는 그 음향. 손가락이 검어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늘어났다. 눈썹이 흰색으로 변했다. 매 순간이 삼개월이었다.
저주의 빛이 꺼졌다.
이강은 비급을 집어 들었다. 흰 비단에 싸인 그것은 손에서 무거웠다. 하지만 무게는 물질의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무게. 십 년 전 자신이 본 그것.
그 안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이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자는 달라졌다.
처음 여섯 장은 검술이었다. 백련심검의 기초. 유연한 움직임.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검법. 하지만 일곱 번째 장부터 글씨가 변했다. 붓이 달라졌다. 필체가 흔들렸다.
'혼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그 문장 아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한석곤. 백삼십 구 명.
연우진. 오십 팔 명.
김목화. 이십 팔 명.
이름 옆에는 죽음의 방식이 기록되어 있었다. 검상. 독. 불태움. 절단. 수장.
'유파 통합 이후 경계 세력의 대정리. 필요한 조치.'
필체가 다시 바뀌었다. 더 단호했다. 더 차갑했다.
'비검은 이 과정에서 사용된 비급 무술이다. 검이 아닌 것으로 행한 학살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는 이름을 붙였다. 비검. 검이 아닌 것으로 그들을 지웠다.'
이강의 손이 떨렸다.
'비검 사용자는 그 죄를 짊어진다. 생명력의 소모. 이것이 저주가 아니라 속죄라고 우리는 믿는다. 하지만 이 기록이 밖으로 나가면, 백련검파는 명문파가 아니라 살인 조직으로 불릴 것이다. 그러므로 비검을 배운 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 기록을 지키기 위해.'
백 구십 오 명.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이강의 눈이 흐려졌다. 노화가 아니었다. 분노였다.
십 년 전, 자신이 본 것은 이것이었다. 검술의 비급이 아니라 학살의 기록. 백련검파 창파 오십 년의 역사 속에서 저질러진 죽음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말들.
'비검은 죄의 무술이다.'
그 말은 진실이었고, 동시에 거짓이었다. 비검은 죄가 아니었다. 비검을 만든 자들의 죄였다. 비검을 사용한 자들의 죄였다.
이강은 비급을 가슴에 안았다. 백 구십 오 명의 이름이 가슴을 누르고 내려왔다. 그들은 죽었다. 비검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살인으로. 이강의 손가락이 떨렸다. 노화도 분노도 아닌, 순수한 죄책감이었다.
"저것을 가져가면 백련검파가 무너진다."
목소리는 어둠에서 나왔다. 이강이 고개를 들었다.
계단 위에 사람이 섰다. 횃불을 든 손. 흰 도포. 장문인의 복장.
한옥천이었다.
"십 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넌 돌아왔다. 내가 원하던 대로."
한옥천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눈은 미소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박함이었다. 십 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이강이 돌아왔고, 한옥천은 그를 막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냐하면 이강의 귀환은 단순한 비급 탈취를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백련검파 내부의 모든 비밀이 드러난다는 뜻이었고, 한옥천이 십 년간 유지해온 권력 체계의 붕괴를 의미했다.
"비급을 내려놓고 죽어라. 그럼 청목동의 아이들을 살려주겠다."
이강은 계단을 올라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비급을 가슴에 안은 채.
"답이 없나? 그럼 이미 죽은 셈이다. 넌 그때부터 죽어 있었어. 저주에 걸려서."
한옥천이 손가락을 튕겼다.
어둠이 갈라졌다.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백련심검의 기운. 상대의 심리를 읽고 그것을 베는 검법. 이강의 다리를 노렸다. 동시에 옆구리를. 동시에 목을 노렸다. 삼갈래의 검기가 계단을 채웠다.
이강이 곡괭이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울었다. 더 크게. 더 절박하게. 손가락이 검어지는 것을 이강은 느꼈다.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감각. 내장이 마르는 것 같은 무게. 매 순간이 삼개월.
곡괭이가 검기를 갈랐다. 삼갈래가 흩어졌다.
한옥천이 물러섰다.
"역시 넌 비검을 완전히 깨웠군."
그 순간, 검기가 옆에서 터져 나왔다.
한옥천 뒤에서 칠살검객이 나타났다. 검을 들고. 하지만 그 검은 이강을 향하지 않았다. 한옥천을 향했다.
칠살검객의 손이 떨렸다. 처음이었다. 십 년을 그의 손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명령을 받으면 그대로 따랐다. 검을 들면 상대는 죽었다. 감정이 없었다. 선택이 없었다. 그저 칠살검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손은 떨렸다.
"내려놓아."
한옥천이 소리쳤다.
"내려놓고 이강을 죽여."
칠살검객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빗소리 같았다. 희미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구입니까?"
한옥천의 얼굴이 굳었다.
"넌 칠살검객이다. 내 명령을 따르는—"
"저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칠살검객이 검을 돌렸다. 칼날이 한옥천을 향했다.
"비급에 적힌 이름. 저는 그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비급에 적힌 이름. 이강이 눈을 떴다. 그렇다면 칠살검객도 그 기록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백 구십 오 명 중 하나. 죽은 것으로 기록된 자.
"나도 모르겠습니다."
칠살검객의 목소리가 조금 더 크게 울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한옥천이 손을 들었다. 검기가 모였다. 백련심검의 완성형. 상대를 완전히 꿰뚫는 그 검법.
"넌 도구다. 도구는 이름을 묻지 않는다."
검이 날아갔다.
칠살검객이 그것을 막았다. 칠살검법의 일곱 궤적이 펼쳐졌다. 한옥천의 검기와 부딪쳤다. 불꽃이 터졌다. 계단이 흔들렸다.
"이제 난 내 손으로 선택합니다."
칠살검객이 한옥천을 밀어냈다.
"당신은 나에게서 이름을 빼앗았습니다. 그 이름을 찾기 위해, 이 사람과 함께 가겠습니다."
칠살검객이 이강을 보며 검을 내렸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옆에 섰다.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옥천이 웃음을 흘렸다. 비틀린 웃음이었다.
"그래. 그럼 죽어라. 둘 다."
검기가 폭발했다. 백련심검의 모든 경지가 한 점으로 모였다. 한옥천의 절망적인 공격.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강과 칠살검객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강의 곡괭이가 검기를 갈랐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울었다. 더 크게. 이강의 얼굴이 한 살 더 늙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손등에 검은 반점이 피어났다. 입술이 말라 갈라졌다. 매 순간이 삼개월. 얼마나 많은 순간이 흘렀는가.
칠살검객의 검이 한옥천의 검을 베었다.
한옥천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계단을 굴렀다. 위로. 지표면으로. 본전 뜰로.
이강과 칠살검객이 따라올라갔다.
본산 뜰은 전장이었다. 유성현의 제자들이 경비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동쪽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창고에 불을 질렀다. 서쪽에서는 비명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한옥천이 몸을 일으켰다. 피가 그의 옷을 적셨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외쳤다. 그리고 달아났다.
본산 서쪽으로. 산으로. 어둠으로.
이강이 한발 나아갔지만, 칠살검객이 팔을 잡았다.
"그를 쫓지 마십시오."
칠살검객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달라져 있었다. 무언가 인간다운 것이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강이 칠살검객을 바라봤다.
"너는 누구냐고 물었지? 넌 이제 선택할 수 있다."
칠살검객의 눈이 이강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 눈에 질문이 있었다.
"내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이강이 비급을 내려놨다.
"그럼 함께 가자. 그리고 자기 이름을 지어라."
칠살검객이 이강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멈췄다.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이강의 손을 잡을지, 아니면 거부할지. 그 선택 앞에서 칠살검객은 처음으로 진정한 갈등을 느꼈다. 십 년간 명령에만 따르던 손이, 지금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야 했다.
칠살검객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이강의 손을 잡았다.
유성현이 뜨에서 나타났다. 그의 제자 다섯 명이 뒤를 따랐다. 얼굴에 상처가 있었지만 눈은 맑았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유성현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빠르게 사라졌다. 왜냐하면 본산 사방의 담장에서 횃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옥천의 직속 제자들. 백련검파의 정예 세력. 수십 명. 아니, 백 명이 넘는 검객들.
그들이 모두 칼을 뽑았다.
한옥천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이강. 넌 죽지 않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럼 그렇게 죽거라. 천천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강의 손이 곡괭이를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 그것이 울려 퍼졌을 때, 이강의 눈에는 더 이상 인간의 색이 없었다. 검은 동공. 흰 눈동자. 죽음을 마주한 자의 눈.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누군가는 죽는다."
손가락이 곡괭이의 자루를 감쌌다. 검어진 손가락. 썩어가는 손가락.
"하지만 그건 나가 아니다."
비검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
밤하늘이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옥천의 목소리는 이미 멀어져 있었지만, 그 울림은 본산 전체에 배어 있었다. 백련검파 정예 세력 백 명 이상이 담장에서 내려왔다. 횃불의 불빛이 그들의 검을 붉게 물들였다. 이강은 그것을 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곡괭이의 자루를 쥔 손가락은 이미 늙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었다. 검은 반점이 손등 전체를 뒤덮었고, 손톱 사이로는 검은 선이 드리워져 있었다. 손가락 끝이 괴사하기 시작했다. 매 순간이 삼개월. 그가 비검을 몇 번 더 쓸 수 있는가.
칠살검객이 이강 옆에 섰다. 그의 칠살검도 이미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 손도 떨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칠살검객의 손이 떨렸다.
"나는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칠살검객이 속삭였다.
"나는 명령받은 대로만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손이 떨립니다."
이강이 옆을 보지 않고 말했다.
"손이 떨리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유성현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제자들도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는 백 명에 비하면 한 줌이었다. 유성현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이강.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넌 안 싸워도 된다."
유성현이 돌아봤다. 이강의 눈을 마주쳤다.
"이것은 내 싸움이다. 넌 뒤로 물러나. 청운과 만나. 그리고 비급을 다시 정리하거라. 비검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할 테니까."
유성현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가 이강의 얼굴을 본다. 육십 대 노인처럼 늙어버린 그 얼굴. 눈가의 깊은 주름. 떨리는 손가락.
"넌 죽는다."
유성현이 말했다. 선언하듯.
"알아."
이강이 대답했다.
"그래서 상관없다."
본산의 검객들이 움직였다. 첫 번째 물결. 동쪽에서 십 명이 내려왔다. 장검을 든 자들. 단검을 든 자들. 창을 든 자도 있었다. 다양한 검법. 다양한 경지. 하지만 모두 같은 명령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한옥천의 명령. 죽여라.
이강이 곡괭이를 들었다.
비검의 기운이 터져 나왔을 때, 밤하늘이 갈라졌다. 실제로 갈라졌다. 별들이 흔들렸다. 아니, 별이 아니라 이강의 시선이 흔들렸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비검은 더욱 명확해진다.
곡괭이가 움직였다. 한 번의 움직임이 아니라 무수한 궤적. 도끼질에서 비롯된 단순함이 아니라, 검술의 모든 경지를 담은 궤적. 칠 년 전에 봤던 그 기술. 민준을 죽인 칠살검객의 기술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비검은 검이 아니다.
검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다.
첫 번째 물결의 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둘이 쓰러졌다. 하나가 팔을 잃었다. 나머지들은 상처를 입고 도망쳤다.
한옥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모두 들어가! 함께 들어가!"
본산 전체가 움직였다. 담장에서 내려온 검객들이 일제히 이강을 향해 달렸다. 파도처럼. 파도는 절벽을 깎는다.
이강이 곡괭이를 다시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울었다. 더 크게. 이강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죽음의 기운. 이미 절반이 죽어있는 자의 기운.
그 기운 속에서, 이강은 춤을 춘다.
곡괭이가 그린 궤적은 도끼질이 아니다. 검술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이다. 순수한 죽음. 비검이 담은 원시적인 진리. 검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다.
검객들이 쓰러진다. 한 명씩이 아니라 묶음으로. 무더기로. 첫 번째 물결이 밀려나갔다. 두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번엔 다른 검법을 들고 있었다. 원형 진법을 짜며 이강을 포위하려 했다.
이강의 곡괭이가 그 진을 뚫었다. 궤적이 바뀌었다. 원을 그리는 회전 공격. 칠살검법의 일곱 궤적과는 다른 것이었다. 더 단순했다. 더 순수했다. 검객들의 진이 흩어졌다.
세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번엔 궁수들도 섞여 있었다. 화살이 빗발쳤다. 이강이 몸을 날렸다.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중 하나가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이강의 동작이 한 순간 흔들렸다. 비검의 기운이 약해졌다. 손가락의 괴사가 더 빨라졌다.
칠살검객이 그 궁수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칠살검법이 펼쳐진다. 화살들이 떨어졌다. 궁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칠살검객의 검이 한 명의 궁수를 스쳤다. 그 순간, 칠살검객의 눈에 뭔가가 깜빡였다. 죄책감. 처음 느끼는 감정.
유성현이 옆에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제자들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강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강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측면을 지키고 있었다.
네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강의 손은 더 검어졌다. 손톱이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피부가 주름잡혔다. 더 이상 손이 아니라 해골의 뼈처럼 보였다. 매 순간이 삼개월. 이강이 비검을 쓸 때마다, 그의 나이는 십 살씩 먹었다. 이강의 내면에서 뭔가가 울었다. 백 구십 오 명의 이름들. 그들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저지르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
다섯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강은 계속 움직였다. 곡괭이가 그린 궤적이 더욱 명확해졌다. 더 이상 도끼질의 흔적이 없었다. 순수한 검술. 하지만 검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 검술. 이강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분노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음성.
여섯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강의 눈이 흐려졌다. 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였다. 본능으로. 죽음으로. 곡괭이가 움직일 때마다 검객들이 쓰러졌다. 이강의 몸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 죽음이 오히려 더욱 강력했다. 죽음이 죽음을 낳는다.
일곱 번째 물결. 이번엔 다른 것이었다. 한옥천의 직속 제자들. 백련검파의 최고 경지를 갖춘 자들. 그들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각자의 검법이 다르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이강을 죽이는 것.
이강과 칠살검객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강의 곡괭이가 검기를 갈랐다. 칠살검객의 검이 다른 검기를 베었다. 불꽃이 터졌다. 본산의 뜨가 흔들렸다. 이강의 얼굴에서 또 다른 주름이 파였다. 눈이 더욱 침몰했다.
한옥천의 직속 제자들이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상처만 입었다. 아직 싸울 여력이 남아 있었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 물결이 밀려들었다. 더 이상 물결이 아니었다. 파도였다. 끝없는 파도. 이강의 손가락은 이제 완전히 검어져 있었다. 손등의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살이 노출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뼈가 삐걱거렸다.
그래도 그는 계속 움직였다.
"백 구십 오 명..."
이강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낮고 거친 음성. 죽음의 음성.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곡괭이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검객들이 쓰러졌다. 백 명이 오십 명이 되고, 오십 명이 이십 명이 되고, 이십 명이 열 명이 되었다. 남은 검객들은 더 이상 나아오지 않았다. 본산의 뜨는 시체로 가득했다. 피가 흘렀다. 검이 부러졌다. 흙이 붉게 물들었다.
한옥천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네가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십 년 전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한옥천이 나타났다. 본산 서쪽 지붕 위에서. 그의 옷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여전히 들려 있었다.
"이제 내가 직접 끝내겠다."
한옥천이 내려왔다. 검을 들고. 천천히.
이강이 곡괭이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떨림이 아니라 진동이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진동. 마지막 음성.
칠살검객이 옆에서 검을 들었다.
"나는 선택했습니다."
칠살검객이 말했다.
"나는 이제 당신의 검객이 아닙니다."
한옥천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절망의 웃음이었다. 십 년을 기다린 끝에, 자신이 만든 도구마저 자신을 배반했다는 절망.
"그래. 그럼 함께 죽거라."
백련심검이 펼쳐졌다. 한옥천의 마지막 검술. 모든 것을 담은 검기. 상대의 심리를 완전히 꿰뚫으려는 시도. 하지만 이강은 더 이상 심리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죽음 자체였다.
비검과 칠살검법이 동시에 펼쳐졌다.
곡괭이가 한옥천의 검을 갈랐다. 불꽃이 터졌다. 칠살검객의 검이 한옥천의 옆구리를 베었다. 한옥천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피가 흘렀다.
이강이 곡괭이를 다시 들었다. 마지막 한 번. 비검의 모든 경지를 담은 그 일격. 이강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새어 나왔다.
"용서해라."
그것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백 구십 오 명의 죽은 자들에게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인지.
밤하늘이 갈라졌다. 진짜로.
별들이 흔들렸다.
본산이 울음을 멈췄다.
---
아침이 왔다.
이강은 서 있었다. 곡괭이를 들고.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칠살검객이 그 옆에 섰다. 검을 내렸다.
한옥천은 땅에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유성현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강의 얼굴을 봤다. 이강은 백 살처럼 보였다. 피부는 종이처럼 얇았고, 눈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강."
유성현이 불렀다.
"여기 있어."
이강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비급을 찾았나?"
이강이 물었다.
"찾았다. 청운이 보냈다. 모든 기록이 있다."
유성현이 말했다.
"비검의 진실도?"
"그것도."
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강이 곡괭이를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더 이상 진동이 아니라 진짜 떨림이었다.
"너는?"
이강이 칠살검객을 봤다.
칠살검객이 이강을 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질문이 있었다.
"내 이름을 모릅니다."
칠살검객이 말했다.
"그럼 함께 가자."
이강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지어라. 아무도 넌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칠살검객이 이강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다시 한 번, 선택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선택이었다.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내리는 선택.
칠살검객의 손이 이강의 손을 잡았다.
유성현이 둘을 봤다. 그리고 웃음을 흘렸다.
"이제 진짜 시작이군."
유성현이 중얼거렸다.
본산 사방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청운의 신호였다. 노장 파와 신진 파가 본산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신호. 유성현의 세력이 백련검파의 정치 구도를 다시 그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신호음은 곧 멈췄다.
왜냐하면 천산 너머에서 또 다른 신호음이 울려 왔기 때문이었다.
한옥천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온 신호였다. 백련검파의 중추. 그곳에서.
유성현의 얼굴이 굳었다.
"뭐가 이래?"
유성현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강이 하늘을 봤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해. 피의 해. 그 해 아래에서, 백련검파의 또 다른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더 큰 것이 본산을 노리고 있었다.
이강의 눈이 감기려 했다. 하지만 감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칠살검객이 이강의 옷자락을 잡았다.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칠살검객이 물었다.
이강이 대답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계속 걸어야 해. 멈추면 죽으니까."
칠살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걸었다. 본산의 뜨를 빠져나와. 새벽의 산길로. 죽음을 등에 진 채로.
뒤에서 유성현이 외쳤다.
"이강! 답해줄 게 있어!"
이강이 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지금은 달아나야 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이강과 칠살검객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유성현은 한옥천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본산 사방의 시체들을 봤다. 그리고 천산 너머의 신호음을 다시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유성현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옥천은 죽었지만, 백련검파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리고 백련검파 내부의 또 다른 세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유성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통쾌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의 웃음이었다. 이제 진짜가 시작된다는 깨달음.
"이제 진짜 전쟁이다."
유성현이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