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검의 귀환
검상(劍傷)을 입은 다섯 구의 시체를 묻고 사흘이 지났을 때, 이강은 청목동을 떠났다.
산길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른 새벽, 별이 아직 흐릿한 하늘 위에서 깜박일 때였다. 이강은 도끼 자루를 어깨에 메고 한 발 한 발을 옮겼다. 발소리는 없었다. 십 년간의 도끼질이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침묵 속에서 걷는 법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그는 자신의 수명을 셈했다. 비검을 다섯 번 사용했다. 열다섯 개월. 남은 시간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민준이를 위해 쓸 시간이라면, 길든 짧든 상관없었다.
산길이 좁아지면서 숲이 짙어졌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어둠 속으로 이강은 계속 내려갔다. 그때였다.
"잠깐!"
다섯 명의 인영이 길을 막아섰다. 모두 백련검파 제복을 입고 있었다. 칼을 뽑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강의 얼굴을 본 것이었다.
"이강입니까?"
가장 앞선 제자가 물었다. 스물 정도 되어 보였다. 눈에 두려움과 결의가 섞여 있었다.
이강은 대답하지 않고 도끼를 내려놨다. 손잡이를 살짝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격!"
다섯 명이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검기가 번뜩였다. 제법 단련된 제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놓쳤다—비검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이강의 도끼가 회전했다.
도끼날이 공중을 헤쳤을 때, 그곳에는 검기가 흘렀다. 한 점이 아니라 여러 점. 마치 세 자루의 검이 동시에 그은 궤적처럼. 제자들의 칼은 그 검기에 부딪혔다. 손목이 꺾였다. 칼이 떨어졌다. 한 명, 둘, 셋.
"이게 뭐야—"
나머지 두 명이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강은 도끼를 들어올렸다. 한 번만 더 휘두르면 끝났다.
하지만 멈췄다.
"누가 보냈느냐?"
한 제자의 목깃을 잡아 들어올렸다. 청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칠살검객… 칠살검객님께서…"
"이름은?"
"이준호입니다!"
"이준호, 들어. 너희는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그건… 그건 장문인님의 명령이…"
이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청년이 목이 조여 오는 듯 숨을 헐떡였다.
"왜 나를 죽여야 하지?"
"비급… 때문이라고…"
"비급이 뭐다?"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았다. 이강은 그를 내려놨다. 청년은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나머지 제자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강을 보고만 있었다. 움직이면 죽을 것 같았다.
이강은 도끼를 다시 들었다.
"살아가거라. 이준호. 그리고 한옥천에게 전하거라. 나는 온다."
산길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강이 내려가고 난 후, 다섯 명의 제자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비검의 궤적이 여전히 그들의 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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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는 데 이틀이 걸렸다. 중간에 마을 하나를 지나갔을 때, 이강은 자신이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숨었다. 백련검파의 제자를 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이강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밤, 산의 작은 암자에서 쉬면서 이강은 자신의 과거를 생각했다. 십 년 전, 자신은 한옥천의 측근이었다. 비급 기록을 보관하는 밀실의 열쇠를 쥔 사람이었다. 한옥천은 자신을 신뢰했다. 아니, 그렇게 믿는 척했다.
그날 밤, 실수로 밀실의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기억은 흐릿했다.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그 기억을 손으로 지우려고 한 것처럼. 비급이라고 불리는 기록이 있었고, 그 속에는 글씨가 있었고, 그 글씨는 무엇이었나?
이강의 손이 떨렸다. 처음이 아니었다. 도끼를 들 때마다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똑, 똑, 똑. 마치 물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소리.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간다. 시간. 생명. 그것들이. 비검을 사용할 때마다 이강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민준이를 위해 쓰는 시간이라고 자신을 달래지만, 그 죽음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비급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자신을 죽이기까지 중요한가?
민준이까지 죽이기까지?
이강은 눈을 감았다. 암자의 천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과거도, 미래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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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懷陽)은 제법 큰 도시였다. 남쪽으로 가는 상인들의 거점이었고, 동쪽에서 온 무인들의 쉼터였다. 천산(千山)은 이곳에서 이틀을 더 가면 나타난다고 했다. 백련검파의 본산이 있는 곳.
이강은 도시 안쪽의 주막 골목으로 들어갔다. 작은 간판이 흔들렸다. '청룡주(靑龍酒)'. 낡았지만 깨끗한 곳이었다.
주모가 나왔다. 오십 대 중반으로 보였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무림의 냄새가 났다.
"한 사발 줄 수 있나?"
"술입니까?"
"밥이 좋겠다."
주모가 웃었다. 이강은 모서리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서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밥을 먹으며 이강은 귀를 열었다. 주막의 다른 손님들이 말하고 있었다. 무림 소식들. 그 중에서 백련검파에 관한 말이 나왔다.
"…장문인 한옥천이 장악한 파벌, 노장 청운 쪽 파벌, 그리고 신진파 유성현이 이끄는 파벌. 요즘 천산 안은 난리가 났다더군."
"그런데 들었습니까? 십 년 전에 쫓겨난 제자가 돌아올 거라는 거?"
"아, 그 이야기 말이지. 이강이라더만. 도끼를 쓴다고?"
"비검이라고 하더군. 검이 아닌 도구로 검을 대신한다니까."
이강의 손이 멈췄다. 그들이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진짜 그럴리가. 검을 도끼로 대신한다니."
"야, 요즘 무림은 이상한 기술들이 많아. 비급이니 비검이니 하는 게 다 있지 않나."
"비급 독점 때문에 백련검파가 문제라더."
"뭐?"
"한옥천이 비급을 독점하고 있다는 거. 그래서 신진파가 반발하는 거고, 노장 청운도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 아닌가."
이강은 밥을 삼켰다. 비급.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 그것이 민준이를 죽였다.
주모가 다시 나타났다. 이강의 그릇을 치우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췄다. 이강의 얼굴을 보고.
"당신… 혹시 이강이세요?"
이강의 눈이 위로 올라왔다. 주모를 노려봤다. 손이 도끼 자루로 향했다.
"아, 아니에요!"
주모가 손을 들었다. 빠르게.
"저는 당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예요. 유성현 공자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강의 손이 멈췄다.
주모는 주머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봉인된 편지. 그 위에는 유성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받으세요."
이강은 편지를 집어 들었다. 손지가 묵직했다. 손지 아래에는 뭔가 더 있었다. 동전. 아니, 동전이 아니었다. 작은 목걸이였다. 백련 모양의.
이강이 편지를 폈다. 글씨는 명확했다.
'천산에 오기 전에 나를 만나라. 서쪽 거점 적운각(赤雲閣)에서. 우리는 한옥천을 무너뜨릴 수 있다.'
편지의 끝에는 'Y'만 적혀 있었다.
이강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손가락이 편지를 구겼다.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동시에 깊은 의심. 유성현은 왜 자신을 기다리는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주모가 다시 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강은 편지를 다시 접었다. 손에서 떨리는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혼자 가는 길과 함께 가는 길. 그 사이에서 이강은 흔들렸다. 복수는 혼자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비급을 찾으려면?
주모가 계속했다.
"당신이 비급을 찾으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거예요."
이강의 눈이 위로 올라왔다.
"넌 어떻게 민준이를 아는가?"
"저는 유성현 공자의 사람입니다. 공자께서 십 년 동안 당신을 지켜봤어요."
주모의 눈이 진지했다. 그 눈에는 연민이 있었다.
"그리고 공자께서는 알고 있어요. 비급을 찾으면 민준이의 죽음이 누군가의 계획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강의 가슴이 철렁했다. 계획? 누군가의 계획?
"적운각은 어디인가?"
"서쪽으로 나흘 길입니다. 이 지도를 가져가세요."
주모가 또 다른 종이를 건넸다. 정확한 지도였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그린 것. 유성현이 자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강은 일어섰다. 주머니에 편지와 목걸이, 그리고 지도를 넣었다. 도끼를 들었다.
"고마워."
"안 되세요. 이건 유성현 공자의 마음입니다."
주모가 한 발 다가섰다. 그녀의 손이 이강의 팔에 닿았다.
"제자여. 돌아오세요."
이강이 고개를 들었다. 주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이었다.
"넌 누구인가?"
주모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지금은 가세요."
이강이 주막을 나갔다. 회양의 밤거리는 여전히 어두웠다. 별이 떠 있었다. 민준이가 보던 별들처럼. 하지만 이강의 눈은 별을 보지 않았다. 손지 안의 글씨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옥천을 무너뜨릴 수 있다.'
정말로? 그렇다면 비급의 진실도 밝혀질까? 그렇다면 민준이의 죽음도 헛된 것이 아닐까?
뒤에 남겨진 회양에서는 주모가 아직도 주막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이 가슴 위에서 모아졌다. 눈을 감고 입술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기도처럼.
"돌아오세요. 제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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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의 어둠 속에서 이강은 달음질했다. 발걸음이 리듬을 타며 자갈과 흙을 헤쳤다. 서쪽으로 나흘 길이라고 했지만, 이강은 이틀 만에 도착하고 싶었다. 도끼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지도를 펼쳤다. 달빛이 희미했지만 충분했다. 십 년간의 도끼질로 단련된 눈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놓치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넘으며 이강은 생각했다. 유성현이 정말로 한옥천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가? 신진파는 얼마나 강한가?
십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밤중에 비급실로 들어갔던 날. 한옥천의 곁에서 보호 임무를 맡고 있던 시절. 그 날 이강은 실수로 비급을 보았다. 두꺼운 종이에 기록된 검술—백련검파의 창파 근원과 함께, 무언가 더 있었다. 한 장의 그림. 검이 아닌 도구로 검을 대신하는 형상. 그것이 비검이었다.
그 다음날, 저주가 내려졌다.
"너는 검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한옥천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이강이 산길을 돌아 계곡으로 내려갔다. 적운각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렸다. 차갑고 깊은 물소리. 이강은 속도를 높였다.
그때였다.
"멈춰!"
외침이 숲에서 울려 나왔다.
이강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도끼를 들었다. 손가락이 도끼 자루를 감싸며 무게를 재었다. 여러 사람이다. 숨소리로 세어보니 대여섯 명. 아니, 더 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로 봐서 열 명은 넘는다.
"비검 사용자 이강! 한옥천 장문인의 명으로 너를 체포한다!"
목소리는 젊었다. 아직 스무 살을 넘지 않은 것 같았다. 백련검파의 제자들. 칠살검객의 부하들이 분명했다.
이강이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 흰 복장의 검사들이 나타났다. 백련검파의 제복. 모두 검을 들고 있었다. 진짜 검들이었다. 이강은 도끼를 높이 들었다.
"먼저 권하는 게 예의다. 나가라."
이강의 목소리는 낮았다. 마치 도끼질할 때처럼 담담했다.
"건방진 놈! 잡아라!"
여덟 명이 동시에 달려왔다. 검이 반짝였다. 달빛을 반사하며 이강을 향해 내려쳤다.
이강의 도끼가 위로 올라갔다.
"칭!"
금속음이 울렸다. 도끼 자루와 검이 부딪혔다. 하지만 그것은 충돌이 아니었다. 도끼에서 검기가 흘러나왔다. 무한한 검기가. 마치 도끼 자체가 수천 자루의 검으로 변했듯이, 공기가 갈라졌다.
여덟 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나뭇잎이 떨어졌다. 가지가 부러졌다. 이강 주변의 나무들이 마치 칼에 깎인 것처럼 일정한 각도로 잘려나갔다.
"뭐, 뭐야?!"
한 제자가 비명을 질렀다. 팔에서 피가 흘렀다. 도끼 자루에서 나온 검기가 그의 팔을 베었다.
이강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끼만 들고 있었다. 제자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더 조심스럽게. 세 명씩 좌우에서, 그리고 위에서.
"칭! 칭! 칭!"
도끼 자루가 하늘을 그렸다. 마치 여러 검이 동시에 휘두르는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하나의 도끼가 여러 검의 궤적을 그린 것이었다. 제자들의 검이 모두 튕겨나갔다. 손가락이 저렸다. 누군가는 검을 놓쳤다.
"후퇴!"
리더격인 제자가 외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강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도끼가 옆으로 휘둘러졌다. 마치 도끼로 나무를 베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검기의 궤적이었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검기가 제자 다섯 명을 동시에 밀어냈다.
"아아아!"
비명이 숲을 가득 채웠다. 제자들이 날아갔다. 나뭇가지에 몸이 걸렸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을 잃었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거나.
남은 제자는 셋이었다.
이강이 천천히 도끼를 내렸다. 도끼 끝에서 여전히 검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이강의 가슴이 거칠게 올라올 내려왔다. 비검을 사용할 때마다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 생명. 그런 것들이.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이강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느꼈다.
셋 중 한 명이 검을 던졌다. 항복의 신호였다.
"제, 제발. 우리는 명령을 따른 것뿐입니다!"
이강이 천천히 다가갔다. 제자들은 뒤로 물러섰다. 이강은 그들을 지나쳐 가지 않았다. 대신 멈추고 서 있는 제자를 봤다.
"너는 누구의 명령을 받았나?"
"칠, 칠살검객 님의 명령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보냈어요!"
이강의 눈이 좁혀졌다. 칠살검객.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뭔가 가슴이 철렁했다. 십 년 전, 자신을 저주한 자들 중 한 명이 분명했다.
"한옥천이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제자가 떨렸다.
"비, 비급 때문입니다. 당신이 비급을 본 것 때문에.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강이 한 발 더 다가갔다. 제자는 비명을 질렀다.
"제발! 제발 죽이지 마세요!"
이강은 멈추었다. 도끼를 내렸다. 제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을 묶어두었다. 나뭇가지로. 비검의 검기로 나뭇가지를 자르고, 그것으로 제자들의 팔을 묶었다. 그들이 여기서 나갈 수 없도록.
"여기서 기다려. 누군가 너희를 찾아올 것이다."
이강이 산길로 돌아섰다. 뒤에서 제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이강은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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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걸었다. 새벽이 올 때쯤, 이강은 적운각이라 쓰인 붉은 건물을 보았다. 산 위에 지어진 누각이었다. 붉은 벽돌과 검은 기와. 유성현의 거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강은 조심스러웠다.
누각 아래에서 멈추고, 도끼를 들었다. 손가락이 자루를 감싸 무게를 재었다. 이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옥천의 함정일 수도.
누각의 내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림자뿐이었다. 움직이는 그림자들. 누각이 정말로 비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왔다."
이강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분명했다.
누각의 문이 열렸다. 사람이 나왔다. 검은 복장의 젊은 남자. 유성현이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 있었다.
"왔군. 예상보다 빨리."
유성현이 한 발 내려왔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뭔가?"
"노장 청운을 만나야 한다. 그분은 당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
이강의 눈에 뭔가 떠올랐다. 낯설지만 동시에 친숙한 이름. 청운. 십 년 전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 이름. 그 사람을 만나면 무엇이 달라질까?
"청운은 어디 있나?"
"천산의 반대편 골짜기에. 오래된 암자에.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이 시작될 것이다."
유성현이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은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비급을 찾으면 당신의 복수가 정말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강의 눈이 흔들렸다. 민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의 밝은 얼굴. 도끼를 배우던 날의 순진한 미소.
"복수는 피할 수 없다."
이강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 비급의 진실이 자신의 복수를 정당화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뒤흔들까?
"그럴 수도 있지."
유성현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당신이 보게 될 것은, 그 복수의 의미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이강이 도끼를 들었다.
"가자. 청운을 찾자."
둘이 적운각을 나갔다. 새벽 하늘 아래, 산길을 따라. 뒤에서 누각의 문이 닫혔다.
그 순간, 누각의 가장 깊은 방에서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옥천이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비급의 일부. 그 위에는 글씨가 빼곡했다. 그리고 그 글씨 위에는 누군가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십 년 전 이강이 남긴 자국.
"이강이 움직이는군. 좋아.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한옥천이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 산 위에서 두 사람의 흐릿한 모습이 보였다. 이강과 유성현. 그들이 청운을 찾아간다면, 그들은 비급의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한옥천이 원하는 것이었다.
누각 내부의 어둠 속에서 그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