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의 진실
강명진의 검이 강태현의 목을 가로질렀다.
밤 한 시 반, 강변의 포장도로는 시신의 냄새로 가득했다. 강씨 가문의 가주는 무자비했다. 비명도 없었다. 단지 검의 울음소리만 있었다. 강태현이 무릎을 꿇은 지 호흡 하나 만에 모든 것이 끝났다. 강씨 가문의 검사들은 흩어져 있었고, 감정을 완전히 소실한 검객 앞에서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검객이 이한이었다.
이한은 강물 속으로 내려갔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되었는지 잊기 위해. 강변의 불빛이 흔들리는 수면에 투영되었다. 거울처럼. 그 거울 속에는 강명진의 얼굴이 있었다. 아니, 자신의 얼굴이었다. 죽어 있는 눈. 굳어 있는 입술. 표정이 없는 얼굴.
이한은 손을 뻗어 물을 헤쳤다.
그때 팔이 나타났다. 한쪽 팔이 물을 가르며 이한을 집어당겼다.
"사부!"
소연이었다.
소연은 한 팔의 힘으로 이한을 물에서 끌어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아이는 해냈다. 포장도로 위에 이한을 내려놓고 소연은 숨을 몰아쉬며 그의 얼굴을 들었다.
"사부, 깨어나세요. 제발."
이한의 눈이 떨렸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강물 속에서 본 거울 같은 얼굴이 망막에 붙어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얼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사부…"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은 눈을 떴다.
강변의 불빛이 천천히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포장도로 위의 웅덩이, 물에 젖은 자신의 옷깃, 그리고 소연의 얼굴. 팔이 없는 그 아이의 얼굴이 자신 위에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소연의 눈물인지 자신의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사부…"
소연이 한 팔로 이한을 붙잡았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팔뚝이 이한의 등을 감싸고 있었다.
이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팔뚝의 무게를 느꼈다. 단단한 근육, 떨리는 힘, 따뜻함. 그 따뜻함이 무엇인지 이한은 알았다. 10년간 잃어왔던 것. 검귀검법의 이름 아래 버려왔던 것.
인간의 온기였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누가 당신을…"
이한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 물에 젖은 손이 소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검객의 손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처럼.
그때 강변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발걸음이었다. 강씨 가문의 검사들이 강변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강명진이었다. 가주의 검은 칼집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내려왔다. 포장도로 위에 서서 이한과 소연을 내려다봤다.
"일어나거라."
강명진의 목소리였다.
이한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연이 자신 위에 더욱 몸을 낮췄다.
"당신은 우리가 된 것이다."
강명진이 말했다.
"검귀검법의 완성자. 감정 소실률 100%. 넌 이제 살아있는 칼이 됐고, 살아있는 칼은 우리의 것이다. 강씨 가문에 합류하거라. 우리도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당신처럼."
강명진이 한 손을 내밀었다. 명문가 가주의 손이었다.
이한은 그 손을 봤다. 그리고 그 손 너머에 있는 것을 봤다. 명문가의 권력, 체계적인 억압, 약한 자들을 짓밟기 위해 조직된 질서. 그 모든 것이 그 손 안에 있었다.
"사부!"
소연이 이한의 팔을 잡았다.
"당신은 누구를 복수하려던 겁니까?"
소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태현을 이기려던 건가요? 아니면…"
소연이 눈을 들었다.
"자신을 짓밟은 체계를 이기려던 건가요?"
그 질문 앞에서 이한의 몸이 굳었다.
10년 전 강태현에게 당했던 모욕. 골목 출신이라는 이유로 짓밟힌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이한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명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복수가 끝나도 당신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그 말을 이한은 무시했다. 하지만 그 말은 맞았다.
처음에는 골목 출신들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원했다. 약한 자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이 이한의 복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가. 그 순수한 동기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항복한 상대를 계속 내려치던 자신. 동료들의 얼굴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껴도 멈추지 않던 자신. 명희가 건넨 따뜻한 말을 거절하던 자신. 최태호의 경고를 무시하던 자신.
강해질수록 약한 자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짓밟을 수 있는 강함을 원하게 됐다. 명문가를 증오했던 것이 아니라, 명문가와 같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강명진 같은 가주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
강변의 불빛 속에서 이한은 자신의 손을 봤다. 물에 젖은 손.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 이한은 알고 있었다. 최태호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추구하는 강함은 누군가를 밟는 강함이 되고 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사부…"
소연이 다시 이한을 불렀다.
"사부는 약한 사람을 봐줄 수 있는 유일한 강자였어요. 처음에는요."
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내 팔이 없다고 해도 날 차별하지 않으셨어요. 다른 강자들처럼 내 약함을 보고 멀리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난 당신을 따랐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 문장도 끝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한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강명진이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걷는다. 감정을 버리고, 체계를 유지하고, 질서를 지킨다. 당신도 그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미 되어 있다."
강명진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이한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10년간 잃어왔던 목소리. 감정이 담긴 목소리.
"미안하다."
이한이 소연을 바라봤다.
"미안해."
그 두 단어 앞에서 소연의 몸이 떨렸다.
"미안해할 것도 없습니다."
소연이 말했다. 눈물이 흘렀다.
"아직 돌아올 수 있습니다. 사부, 아직…"
이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10년 만에. 검귀검법을 익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한은 깨달았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아직 인간이라는 것을.
강명진이 손을 걷었다.
"선택이다."
강명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우리의 일부가 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적이 되거나. 그 사이는 없다."
강명진이 돌아섰다. 강씨 가문의 검사들이 뒤를 따랐다. 그들이 강변을 올라가는 동안 강명진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호흡은 가파르지 않았고, 검의 손잡이를 쥔 손가락도 떨리지 않았다. 오직 침묵만이 있었다.
그때 경적 소리가 울렸다. 명문가의 추적 조직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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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는 이한과 소연만 남았다.
이한은 소연을 봤다. 팔이 없는 그 아이의 얼굴을. 눈물로 젖은 그 얼굴을.
"사부…"
소연이 다시 이한을 안았다. 한 팔이 이한의 등을 감싸며 천천히 흔들렸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한은 강물을 봤다. 검은 수면에 반사된 것은 더 이상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하늘이 비쳐 있었다. 흔들리는 별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이한이 말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요?"
이한은 소연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는 자신을 향한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순수한 물음이 있었다.
"명희를 찾아가자. 골목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처음 시작한 그곳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소연의 목소리가 작았다.
"강씨 가문이 날 놔둘까요?"
"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아니라는 뜻이다."
이한이 일어섰다. 손을 내밀었다. 소연이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강명진은 선택을 줬다. 그들의 일부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이한이 강변의 어둠을 바라봤다.
"나는 둘 다 아니다."
"그럼 뭐예요?"
"인간이다. 그냥 인간이다."
이한이 소연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이 강변을 떠나려던 순간, 뒤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느린 박수였다. 정확한 리듬의 박수였다.
이한과 소연이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심판자 김이었다.
"10년을 지켜봤다."
심판자 김이 말했다.
"격투장에서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넌 다른 검객들과 달랐다. 강해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를 잃어가고 있었다. 많은 검객들을 봤지만, 모두 같은 길을 갔다. 강함의 정점은 고독의 정점이다."
심판자 김이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너는 돌아왔다. 30년을 봐온 나도 처음이다. 그리고 난 명희의 부탁을 받았다. 너를 지켜보라고."
"심판자님…"
이한이 말을 꺼냈다.
"강씨 가문의 추적을 막기 위해 나타나신 건가요?"
심판자 김이 웃음을 터뜨렸다. 건조한 웃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중개인이다. 어느 쪽도 내 편이 아니다. 다만 너는 아직도 거리의 검객이다. 명문가의 검사가 아니라. 그 차이는 크다. 거리의 검객은 혼자 설 수 있다. 명문가는 아니다. 그들은 체계에 묶여있고, 체계가 그들을 지킨다. 하지만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것이 강함이고 동시에 약함이다. 강씨 가문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심판자 김이 한 손을 펼쳤다.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이한이 그것을 집었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도시 변두리의 낡은 건물.
"명희의 새로운 술집이다."
심판자 김이 말했다.
"강명진은 너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는 넓다. 명문가가 모든 골목을 지배할 수는 없다. 아직은."
심판자 김이 뒤를 돌았다.
"그곳으로 가거라.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라. 그 믿음이 너를 인간으로 만든다."
심판자 김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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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종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사부?"
소연이 이한의 팔을 잡았다.
"우리 가요."
이한은 소연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변을 떠나면서 이한은 물 위의 별들을 마지막으로 봤다. 흔들리는 그 별들이 마치 누군가의 눈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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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변두리의 골목. 네온사인이 희미한 이곳에는 새로운 술집이 있었다. 간판은 낡았지만, 창문 너머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한이 문을 열었다.
명희가 카운터 뒤에서 술잔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돌아왔네."
명희가 말했다.
"누가 돌아올 줄 알았어. 당신 말고는."
명희의 손이 술잔을 놨다. 그녀는 카운터에서 내려와 이한 앞에 섰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10년 전의 그 청년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빛이 돌아왔고, 입가에 피로함과 함께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인간다움이었다. 명희는 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따뜻했다. 살아있는 손의 온기였다.
"정말…"
명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돌아왔구나."
이한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가슴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앉아."
명희가 손짓했다.
"술을 마시자. 오랜만에 따뜻한 술을."
이한이 소연과 함께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강변 위에서 강명진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단지 바라볼 뿐이었다.
강명진의 입술이 움직였다. 검의 끝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호흡은 고르지 않았고, 검의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검이 칼집과 만나며 낮고 날카로운 울음을 냈다.
밤은 아직도 깊었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는 여러 힘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강씨 가문은 이한의 소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명희와 최태호는 그의 귀환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소연은 사부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한은 처음으로 술잔을 들었다. 검이 아니라.
명희가 따라준 술이 잔 안에서 빛났다. 그 술을 마시는 순간, 이한은 느꼈다.
자신이 아직도 뭔가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아직도 인간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회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강명진의 침묵처럼, 미래도 불확정이었다.
다만 이한이 알고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돌아왔다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