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승리와 공포

강변은 고요했다.

밤 한 시, 물은 검은 거울처럼 흘렀고, 그 위로 달빛이 흔들렸다. 이한은 강변 석축 위에 서 있었다. 검을 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호흡도 없었다. 심장도 뛰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지금의 이한이었다.

강태현이 나타났다.

검은 도복을 입은 강씨 가문의 차기 당주는 석축 건너편에서 이한을 마주봤다. 10년이 흘렀어도 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오만함이 눈빛에 가득했고, 입가에는 미소가 떠 있었다. 약자를 보는 눈빛이었다.

"10년 만이군."

강태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골목 깡패가 이만큼 강해졌다니. 흥미롭군."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감정이 없었다.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몸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 것처럼.

강태현이 칼을 뽑았다. 명문가의 정통 검술을 담은 움직임이었다. 우아하고 정확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이한의 칼이 먼저 움직였다.

검귀검법의 첫 번째 형태. 강태현의 공격을 읽고, 그 읽음 자체를 공격으로 변환하는 기술. 강태현의 칼은 공중에서 부러졌다. 실제로는 이한의 칼이 그의 손목을 스쳐 지나갔고, 강태현의 팔에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강태현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서 오만함이 사라졌다. 놀라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한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보는 것도 이미 기술의 일부였다. 상대의 표정, 숨소리,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모든 것이 정보였고, 그 정보는 자동으로 칼로 변환되었다.

두 번째 공격. 세 번째 공격. 네 번째.

강태현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그가 피하려 해도 이한의 칼은 이미 그 궤도를 읽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아니, 이한의 인식이 빨라진 것이었다. 검귀검법이 극에 달했을 때 오는 무아지경. 그 상태에서 이한은 세상을 다르게 봤다. 강태현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일련의 '가능한 움직임'의 집합이었다.

다섯 번째 공격에서 강태현의 칼이 떨어졌다.

여섯 번째 공격에서 그의 무릎이 꺾였다.

일곱 번째—

"그만!"

검은 그림자가 석축 위로 뛰어올랐다. 나이 많은 남자였다. 강명진이었다. 강씨 가문의 가주. 검귀검법의 완성자.

이한이 칼을 돌렸다. 강명진의 공격은 강태현의 그것과 달랐다. 명문가의 정통 검술이 아니었다. 순수한 검귀검법이었다. 감정을 버린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그 형태 자체가 죽음인 검술.

이한의 칼이 강명진의 칼과 만났다.

불꽃이 튀었다. 돌이 깨졌다. 강변의 석축이 갈라졌다. 하지만 이한은 밀리지 않았다. 강명진도 밀리지 않았다. 두 개의 검귀검법이 부딪혔을 때, 세상은 단순한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강명진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30년을 감정 없이 살아온 가주의 눈이 흔들린 것은. 그것은 놀라움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깊은 것이었다. 마치 자신이 버린 것을 다시 마주한 것처럼.

이한의 칼이 또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강명진의 옷깃을 스쳤다. 피가 흘렀다. 가주의 피였다.

"너는..."

강명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감정이 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30년을 유지한 완벽한 무아지경 속에 균열이 생겼다. 칼의 궤적이 흔들렸다. 눈빛이 변했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왜일까. 이 골목 출신의 검객이, 자신이 버린 감정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이미 포기한 것으로. 자신의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강명진을 흔들었다.

강명진의 칼이 내려졌다.

"다음은 없다."

그것이 선언이었다. 그리고 경고였다. 강명진은 물러섰다. 석축 어둠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남았다. 강씨 가문 전체가 나설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한이 다시 강태현을 향했다.

무릎을 꿇은 검사는 이한을 봤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깊은 것. 자신을 보는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

이한의 칼이 올라갔다.

마지막 일격. 10년의 모욕을 씻어내는 순간. 복수의 완성.

그 순간, 이한은 자신을 봤다.

석축 옆 물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 그 얼굴은 낯설었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너무나 익숙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태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눈빛. 감정 없는 입. 약자를 내려다보는 표정.

그리고 그것은 강명진의 얼굴이기도 했다.

"아..."

이한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칼이 흔들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마치 강명진이 방금 떨었던 것처럼.

그 떨림은 감정의 돌아옴이 아니었다. 감정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이한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검귀검법이었다. 한 번 잃어간 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떨림은 있었다.

기억이 신경을 자극했다. 소연이 처음 입문했을 때의 모습. 너무나 약했던 그 아이가 칼을 들고 서 있던 모습. 명희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들. 최태호의 절음발이 옥상에서 내려오는 소리. 심판자 김이 그에게 건넨 손.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신경계를 자극했다.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팔뚝의 근육을 경련시켰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감정이 아닌 본능.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본능 앞에서의 저항. 아직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 비록 그것이 감정은 아니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무언가.

이한의 칼이 내려갔다.

강태현의 목이 아닌, 석축 위의 돌을 내려쳤다. 돌이 부스러졌다. 강태현은 죽지 않았다.

"왜..."

강태현이 웅얼렸다.

"왜..."

그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거기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 죽음 앞에서 구원받은 자의 그것.

이한은 칼을 들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사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이 돌아봤다.

양팔이 없는 소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소연이었다. 그녀의 어깨는 피로 젖어 있었다. 싸움을 한 흔적이었다.

소연의 눈에는 이한을 보는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존경이 아니었다.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사부, 당신은..."

소연이 한 발 다가왔다.

"누구를 복수하려던 겁니까?"

그 질문이 이한을 타격했다. 마치 칼이 가슴을 관통한 것처럼. 아니, 칼보다 더 깊이.

이한은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은 있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었다.

강변에서 밤바람이 불었다.

물이 흔들렸다. 거울이 깨졌다. 그 파편 속에서 수천 개의 얼굴이 보였다. 모두 이한의 얼굴이었다. 모두 강태현의 얼굴이었다. 모두 강명진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너는 누가 되었는가.

이한의 손에서 칼이 떨렸다.

"내가..."

입이 움직였다. 감정 없는 자의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무언가. 기계음 같은 것. 마치 녹슨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소연이 더 다가왔다.

"사부..."

그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것처럼.

"돌아와요."

그 순간 이한의 눈이 떨렸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강변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개. 여러 명. 강씨 가문의 검사들이었다. 강명진이 파견한 추가 인원.

이한은 그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검귀검법의 경지에서는 세상 모든 소리가 신호였다.

"소연."

이한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기계음이었다.

"물 속으로."

"사부, 난 당신을..."

"물 속으로."

명령이었다. 감정 없는 명령. 그것이 소연을 더 아프게 했다.

소연은 석축 아래로 뛰어내렸다. 한 팔로 물을 헤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한은 칼을 들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네 명의 검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칼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한의 칼이 네 명의 공격을 순간적으로 모두 읽었다. 호흡, 근육 진동, 심장 박동. 모든 것이 신호였다.

첫 번째 검사가 무릎을 꿇었다. 팔이 끊겼다.

두 번째 검사가 비명을 질렀다.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세 번째 검사는 도망쳤다.

네 번째 검사는 칼을 내려놨다.

"날 죽여. 제발."

이한은 칼을 들었다.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하지만 그 순간.

"사부!"

물에서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변 아래에서.

그 목소리가 이한을 멈추게 했다.

칼이 내려갔다. 그 검사의 목이 아닌, 석축을 내려쳤다. 돌이 부스러졌다. 그 검사는 살았다.

이한은 강변을 내려갔다. 석축을 타고 물로 뛰어내렸다.

물이 차가웠다. 신체가 물에 잠겼다. 감각이 변했다. 차가움이 피부를 자극했다. 신경이 반응했다. 마치 누군가 그를 안아주는 것 같은 감각.

물 속에서 시각이 왜곡되었다. 위가 아래처럼 보였다. 강변의 불빛이 물의 표면에서 흔들렸다.

청각도 변했다. 물 위의 사이렌 소리가 멀어졌다. 대신 물의 흐름음이 가까워졌다.

소연을 찾았다. 한 팔로 물을 헤치며 떠있는 그녀.

이한이 그녀를 잡았다. 손으로. 감정이 없는 손으로. 하지만 그 손은 따뜻했다. 움직이는 손. 생명이 있는 손.

"사부..."

소연이 울고 있었다.

"사부, 돌아와요. 제발. 당신이... 당신이 아니에요."

이한은 그녀를 안고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물 속으로. 강변 아래의 어둠으로.

숨을 참았다. 폐에 공기가 남아있었다. 그것이 생명이었다. 그것이 시간이었다. 그것이 거리였다.

방향 감각이 사라졌다. 위와 아래가 섞였다. 좌와 우가 뒤바뀌었다. 오직 소연의 체온만 남았다. 팔에 닿은 그 따뜻함. 그것이 유일한 신호였다.

강변 위에서는 경찰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신고했다. 명희였을 것이다. 최태호였을 것이다. 심판자 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한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물 속에서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었다. 점점 더 멀어졌다.

그 거리 속에서, 이한은 처음으로 무언가를 생각했다.

감정이 아닌 생각. 마지막 본능 같은 생각.

내가 누가 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오직 물의 흐름과 소연의 체온만 있었다. 그리고 점점 옅어져가는 의식.

물이 그를 받아들였다.

강변 위에는 소연이 남겨져 있었다. 한 팔로 물을 헤치며 검은 밤하늘을 향해 울고 있었다.

"사부!"

그 울음은 강을 따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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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장의 심판자 김은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지하 3층의 어둠 속에서. 그는 기록지에 펜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기록을 마친 후, 그는 한동안 그 종이를 바라봤다.

"검객 이한. 감정 소실률 100%. 육체 존속률: 미확인. 상태: 미정의."

펜을 놨다.

명희는 술집의 불을 껐다. 창밖으로 강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흐르는 검은 물줄기. 손이 술잔을 집었다. 그것을 창문으로 내팽개쳤다. 잔이 깨졌다.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돌아올 수 없는 거군."

최태호는 옥상에 앉아있었다. 절름거리는 다리를 내려뜨리며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옛 친구를 잃어버린 자의 눈물.

그는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밤새 앉아만 있었다.

강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흘러갔다.

도시를 가로질러. 밤을 가로질러.

그 어디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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