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결별

밤 두 시, 격투장 지하 2층의 휴게실.

최태호는 문을 밀어젖히고 들어섰다. 십 년 전 그 날 이후로 구부러지지 않은 왼쪽 무릎이 절뚝거렸지만, 그 절름거림은 그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한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옷을 벗은 상태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검음으로.

"그만해."

최태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두 글자에는 십 년의 동료애가 담겨 있었다.

이한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이한의 얼굴이 아니었다. 강태현의 얼굴이 겹쳐 있었고, 강명진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명문가의 차디찬 눈빛. 그 눈빛이 자신의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한."

최태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이름을 불렀다.

이한이 검을 거두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어내리듯이. 그리고 돌아섰다. 최태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를 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뭐하러 왔어?"

목소리도 달랐다. 감정의 결을 모두 제거한 기계음이었다.

"당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

최태호가 한 발 다가섰다. 절름거리는 다리로도 불구하고 그는 이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불과 2미터. 격투장에서는 생사의 거리였다.

"강해지고 있어."

이한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게 아니야."

최태호의 목소리에 진동이 생겼다.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당신이 추구하는 강함은 누군가를 밟는 강함이 되고 있어.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봐줄 수 없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자신은 이미 대답했다. 최태호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검과 강함만이 남아 있었다.

"날 봐."

최태호가 명령했다. 그것은 동료의 간청이 아니라, 누군가를 깨우려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지하 1층에서 우리가 처음 싸웠을 때 기억나? 상대가 당신을 밟으려고 했을 때, 내가 막아줬어. 당신이 나를 도왔던 것처럼."

이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단순한 음파에 대한 신체의 반응일 뿐이었다.

"그때 당신은 웃었어. 진심으로. 그 웃음이 나를 따르게 했어. 당신이 강하다고 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최태호가 한 발 물러섰다. 그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다만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위험한 것으로부터의 거리.

"지금 당신의 얼굴에서 그 웃음이 사라졌어. 아니, 웃을 수 있는 감정 자체가 사라졌어. 내가 맞나?"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함이 무엇인지 이미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감정의 층위를 하나둘 벗겨내는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이 검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당신은 이제 우리가 원하던 강한 놈이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하던 무언가가 돼버렸어."

최태호는 오래 이한을 바라봤다. 그 절름거리는 다리로 한 발, 한 발 물러섰다. 이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최태호가 문을 나갈 때까지, 계속 거울을 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이한은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엔 검음도 없었다. 오직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밤 세 시 삼십 분.

명희는 술집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밤새 뭔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내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결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단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격투장 3층.

이한이 있었다. 이번엔 옷을 입고 있었다. 검도 어딘가에 내려놓은 상태였다. 창 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네온사인의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아래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싸우고 있을 것이었다.

"이한."

명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한은 돌아섰다. 명희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신을 봐줄 수 없을 것 같아."

명희가 말했다. 그 말은 선고였다. "내가 모르던 누군가가 되어버린 당신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어."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희는 카운터에서 술잔을 들었다. 그 손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말해줄게. 당신이 원하던 게 정말 이것이야?"

명희가 물었다. 그 질문에는 수십 년의 골목 경험이 담겨 있었다. 약자들을 지켜온 자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한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장애물일 뿐이었다. 강함을 방해하는 감정일 뿐이었다.

명희가 한 발 다가섰다. 그녀의 손이 이한의 손 위에 올려졌다. 살아있는 손이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이한은 그 손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명희의 온기를 빨아들였다.

"돌아올 수 있을 때 돌아와. 당신은 아직 인간이야."

명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마지막 간청이었다.

이한은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차갑고 명확했다.

"나는 이미 돌아갈 길을 잃었어."

명희는 그 말을 듣고 한 발 물러섰다. 그것이 확인이었다. 이한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다는 확인. 그녀는 다시 한 번 이한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서 예전의 이한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강함만이 있었다. 그리고 강함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명희는 돌아섰다. 그리고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그 무감정한 눈빛이 자신을 꿰뚫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밤 네 시.

소연은 여전히 격투장에 있었다. 단층 숙소에서, 그녀는 입으로 검을 물고 기초 검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래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사부가 보여준 길을 가려면,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이한이 들어왔다. 소연은 검을 떨어뜨렸다. 떨어지는 검을 이한의 발끝이 차올렸다. 그리고 다시 손으로 집어들었다. 이한의 손으로.

"계속해."

이한이 말했다.

소연은 검을 다시 물었다. 기초 검식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가 달랐다. 사부의 눈빛이 달랐다. 예전의 따뜻함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오직 차가움만 남아 있었다. 마치 죽은 자의 눈빛 같은.

"사부... 당신 괜찮아?"

소연이 물었다. 검을 물고도, 그 질문은 흘러나왔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연의 움직임을 봤다. 한 팔로 검을 휘두르는 그 동작을. 불완전하지만, 어딘가 완벽한 그 검식을.

"좋아. 이제 실전이야."

이한이 말했다.

"사부?"

소연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약한 자를 봐주는 강자가 되면 안 돼. 그건 약함이야. 약함은 칼날을 무디게 해."

이한이 말했다. 그 말은 차갑고, 명확하고, 모든 온기를 제거한 말이었다. "지금부터 넌 약한 자를 밟을 수 있는 강자가 돼야 해."

소연은 검을 놓았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그리고 이한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자신이 따라다니던 사부의 얼굴이 아니었다.

"사부... 당신 누구야?"

소연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공포와 배신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섰다. 그리고 나갔다. 그 뒷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유령 같은.

밤 다섯 시.

지하 3층 격투장의 중앙 무대. 심판자 김이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그 위에는 이한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감정 소실률 98%'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숫자를 그었다.

'100%'

그 옆에 괄호를 쳤다. '(검귀 완성)'

심판자 김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삼십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삼십 년간 이 지하 세계에서 본 수많은 검객들. 그들이 강해질수록 외로워지는 것을 본 시간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검귀가 완성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절망.

밤 여섯 시.

도시의 야경은 변하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밤의 검객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그들은 낮의 도시에 자리가 없었다. 밤의 골목만이 그들의 무대였다.

옥상 위에서, 이한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지막 감정들이 칼날에 흡수되고 있었다. 이한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이. 마치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밤 일곱 시.

강명진의 저택. 서재의 창문을 통해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강명진은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읽는 척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책에 있지 않았다.

옆에 서 있는 강태현이 보고했다.

"아버지, 이한이 완전히 감정을 잃었습니다. 심판자 김의 기록에 따르면 이제 그는 순수한 칼입니다."

강명진은 책을 덮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좋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명확해졌다."

강명진이 일어섰다. 창문을 통해 도시를 내려다봤다. "골목의 검객이 명문가의 비급을 손에 쥔 채 돌아다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질서의 붕괴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내일 밤 자정, 강변에서 끝을 낼 것이다. 나 자신이 나갈 것이다."

강명진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마치 판결문을 낭독하는 것처럼.

"아버지, 그 자는 이미 검귀입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강명진이 강태현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차디찬 얼음처럼 보였다.

"검귀? 그 자는 아직 검귀의 경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검귀검법의 완성자다. 내 감정은 이미 완전히 소실되었고, 내 검은 완벽하다. 그 사파 검객은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강명진이 서재의 벽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검을 꺼냈다. 검귀검법의 완성 경지에서 만들어진 검이었다. 그 검은 마치 달빛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명진이 그 검을 들었다. 그의 손에 정확히 맞는 검. 그것은 마치 그의 팔의 연장인 것처럼.

"내일 밤, 모든 것이 끝난다."

강명진이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었다. 확정된 미래였다.

밤 여덟 시.

격투장 지하 3층. 심판자 김이 이한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내가 그걸 명확히 해줄 수 있어. 당신은 이제 검이야. 인간이 아니라, 순수한 칼이야."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 밤, 강변에서 강명진이 당신을 만난다. 그게 끝이야. 당신이 이기면, 당신은 명문가의 가장 위험한 적이 될 거고. 당신이 지면, 당신은 죽을 거야."

심판자 김이 말했다. "둘 다 당신에겐 끝이야."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좋아."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밤 아홉 시.

격투장 옥상에서, 이한은 다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모든 감정이 다 소실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순수한 강함뿐이었다. 그 강함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공허함만이 있었다.

그 공허함 속에서, 이한은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웃음을 낼 수 있는 감정도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밤 아홉 시 삼십 분.

옥상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절름거리는 발소리. 최태호였다.

옥상에 닿는 순간, 이한이 검을 내렸다. 마지막 한 번의 검식. 그것은 정확했고, 아름다웠고, 끔찍했다. 칼날에서 무언가가 떨어져나갔다. 순수한 공허함.

"이한."

최태호가 불렀다.

이한이 돌아섰다.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마치 관 속의 죽은 자처럼.

"뭔가."

단 두 글자.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최태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두 글자가 주는 충격은 여전했다. 십 년을 함께한 친구에게 할 인사가 단 두 글자라니.

"당신이 나한테 처음 검을 보여줄 때, 기억하니?"

이한이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의미 없다는 듯이.

"우리가 격투장 지하 1층에서 싸웠어. 그때 당신은 졌다. 상대가 당신을 밟으려고 했을 때, 나는 그걸 막았어. 당신이 나를 도왔던 것처럼."

여전히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주 작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단순한 음파에 대한 신체의 반응일 뿐이었다.

"그때 당신은 웃었어. 진심으로. 그 웃음이 내가 당신을 따르게 했어. 당신이 강하다고 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최태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당신의 얼굴에서 그 웃음이 사라졌어. 아니, 웃을 수 있는 감정 자체가 사라졌어. 내가 맞나?"

이한은 검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신이 추구하는 강함은 누군가를 밟는 강함이 되고 있다. 처음엔 우리를 지키기 위한 강함이었는데, 이제는 약한 자들을 짓밟기 위한 강함이 되었어."

최태호가 한 발 물러섰다. 그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다만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위험한 것으로부터의 거리.

"나는 당신을 더 이상 따를 수 없어. 강해질 수 있다면 절름거리며 살겠어. 하지만 당신처럼 되지는 않겠어. 당신 같은 검이 되느니, 나는 약한 사람으로 남겠어."

그리고 최태호는 돌아섰다. 절름거리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최태호."

처음으로 이한이 그 이름을 불렀다.

최태호가 멈췄다. 등을 지은 채.

"당신의 선택은 약함이다."

그 말은 마치 칼날 같았다. 정확하고, 차갑고, 상처를 남기는.

최태호의 어깨가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 약함이야. 나는 약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어. 그게 낫겠어, 당신 같은 강한 사람보다."

그렇게 말하며, 최태호는 계단으로 사라졌다. 절름거리는 발소리만 남겼다.

이한은 옥상에 혼자 남았다. 검을 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면서.

밤 열 시.

술집 명희의 카운터. 이한이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앉아 있는 것일 뿐이었다. 마치 의자 위에 놓인 돌처럼.

명희는 그의 앞에 술을 놨다. 그는 마시지 않았다. 술잔은 그대로 식어갔다.

"당신이 변했어."

명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도가 담겨 있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그렇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정확히는 언제?"

이한이 검귀검법을 펼쳤을 때, 명희는 알았다. 그 비급의 대가가 무엇인지. 그 비급의 대가는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알았을 거야. 강함에는 대가가 있다는 거. 그 대가가 뭔지도."

이한이 대답했다. "대가를 치르고 있다."

"대가? 당신이 치르는 건 대가가 아니라 영혼이야."

명희가 카운터를 쳤다. 손가락이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당신을 믿었어. 당신이 복수를 하더라도, 당신의 따뜻함은 남아있을 거라고. 그 따뜻함이 당신을 구원할 거라고. 하지만 당신은 그 따뜻함을 버렸어. 아니, 잘라냈어. 마치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듯이."

명희의 눈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있는 강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돌아올 수 있을 때 돌아와. 아직도 늦지 않았어. 당신이 정말로 원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다시 받아줄 수 있어."

명희의 손이 이한의 손 위에 올려졌다. 그것은 온기 있는 손이었다. 살아있는 손이었다.

이한은 그 손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은 명희의 온기를 빨아들였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거둬졌다. 아무 의도도 없이, 단지 물러나듯이.

"나는 이미 돌아갈 길을 잃었다."

이한이 말했다. 명희의 손은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건 핑계야."

명희가 말했다.

"그렇다."

"당신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어. 지금이라도."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은 감정을 요구한다. 나는 감정이 없다. 따라서 나는 선택하지 않고, 단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명희는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술집의 주인으로서, 그녀는 이한과 같은 손님을 받을 수 없었다. 위험한 손님. 살아있지 않은 손님을.

"명희."

이한이 불렀다.

명희가 멈췄다. 그녀의 등이 보였다. 떨리는 등.

"고마워."

그것이 이한의 마지막 말이었다. 감정 없는 감사. 그것은 더 이상 감사가 아니었다. 단지 형식일 뿐이었다.

명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너진다면, 그녀는 이한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막아야 할 것을 막지 못하는 것, 그것은 더 큰 고통이었다.

밤 열한 시.

격투장 지하 3층. 이한이 들어섰다.

소연이 앉아 있었다. 양팔이 없는 몸으로. 하지만 그녀의 눈은 밝았다. 사부를 기다리던 눈이었다.

"사부님."

소연이 일어섰다. 입으로 물어뜯은 검을 의족처럼 다루며.

"왔군."

이한이 앉았다. 소연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내일 밤이에요. 강변에서."

"그렇다."

"사부님이 이기시겠죠?"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연은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사부님은 반드시 이기실 거예요."

소연이 계속했다. "당신은 약한 사람을 봐줄 수 있는 유일한 강자였으니까요."

이한은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약한 사람을 봐줄 수 있는' 그런 감정은 이미 그의 몸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소연."

"네, 사부님."

"당신은... 나를 따라야 한다."

소연이 검을 입으로 물었다. 그것은 결심의 표시였다.

"물론이에요. 저는 사부님을 따르겠습니다."

소연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없었다. 오직 믿음만 있었다. 이한은 그 믿음을 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이. 소연은 사부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공허함만이 있었다.

이한은 천천히 일어섰다. 소연을 보며 말했다.

"내일 밤, 모든 것이 끝난다. 당신도 준비해야 한다."

"네, 사부님. 저는 준비됐습니다."

소연의 대답은 빨랐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사부를 따르는 것. 그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이한은 돌아섰다. 그리고 나갔다. 그 뒷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유령 같은.

밤 자정을 향하며.

강변으로 향하는 길. 이한은 검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야경이 뒤로 물러났다. 골목이 끝나고, 강변이 나타났다. 물이 흐르는 소리. 그것이 유일한 음성이었다.

강변의 중앙. 이한이 멈췄다.

멀리서, 강명진이 나타났다. 은색 검을 들고. 그의 움직임은 이한과 정확히 같았다. 감정 없는 움직임. 기계적인 움직임.

둘이 마주봤다.

강명진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빙하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넌 누군가?"

이한이 대답했다.

"검이다."

"그래. 넌 검이고, 나도 검이다. 그러면 이제 끝낼 시간이다."

강명진이 검을 들었다.

이한도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변의 밤은 두 개의 검이 부딪히는 음으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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