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거울 앞의 공허함

거울 앞에 선 이한의 눈동자가 검은 구슬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감정의 파편들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순수한 계산뿐이었다. 심판자 김의 기록지에 적힌 숫자들—연승 22경기, 항복 무시 4회, 중상 상대 8명—이 모두 의미 있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저 강함의 증거일 뿐. 감정 소실의 완성까지 남은 시간은 72시간. 그 사이에 강태현을 끝내야 했다.

정보망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명희는 더 이상 이한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지만, 격투계의 말은 흘러다녔다. 강태현이 도시로 돌아왔다. 강씨 저택이 아닌 어딘가로. 명문가의 차기 당주는 왜 공식 저택을 떠났는가? 이한은 그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었다. 강태현의 행동 원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위치만 필요했다.

밤 11시, 도시의 남쪽 강변 도로. 이한은 어둠 속에서 걸었다. 네온사인이 물에 반사되는 강 위로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정보상 까마귀가 전한 좌표는 정확했다. 강태현은 이 근처에 있다. 이한의 발걸음은 기계적이었다. 한 발, 한 발. 검귀검법의 마지막 검식 '영혼의 절단'을 마무리한 후로는 걷는 행위 자체도 계산이 되었다. 가장 효율적인 보폭,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 최대의 이동 속도.

"이한."

강태현의 목소리였다.

이한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계속 걸어갔다. 강변 도로의 가로등 아래로 나타난 강태현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명문가의 차기 당주답게 세련되었지만, 이한은 그 외모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감정 없는 눈은 그저 사실만 기록했다. 키 182센티, 체중 약 78킬로, 오른손 검집에 손을 댈 준비. 강태현은 이한을 재촉하지 않았다.

"십 년 전 강씨 저택 앞에서 만난 그 검객인가."

강태현의 음성은 놀라움도 적개심도 담지 않았다. 단지 확인하는 톤이었다. 이한은 강태현의 앞에서 멈추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15미터. 검을 뽑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기억하는군."

이한의 목소리는 모래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건조했다. 강태현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가로등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면서 선명해졌다. 이한은 그 얼굴을 바라봤다. 두려움인가? 분노인가? 연민인가? 하지만 읽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잃어버린 대신, 타인의 감정을 감지하는 능력도 함께 사라져 있었다.

"왜 돌아왔는가."

강태현이 물었다.

"복수하려고."

이한이 답했다. 그 답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복수. 그 단어는 이미 너무 단순했다. 강태현 개인에 대한 분노는 이미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그를 만든 체계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명문가. 강씨. 그 모든 것을 짓밟기 위해 이한은 자신의 영혼까지 내다팔았다.

"명문가를 원하는가?"

강태현이 갑자기 물었다. 그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이한은 잠시 침묵했다. 감정이 있었을 때라면, 그 침묵은 당황의 증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단지 정보 처리 시간이었다.

"무슨 뜻인가."

"너는 강씨 가문에 들어오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내가 죽기를 원하는 것인가."

강태현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이한은 그 질문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강태현이 자신을 이해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것인가? 하지만 감정 소실의 3단계에 진입한 이한은 타인의 진심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행동으로 답했다.

검을 뽑았다.

강귀검법의 기초 검식 '죽음의 가호'였다. 이한의 몸이 순간 물질화되지 않은 무언가처럼 흔들렸다. 강태현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놀라움의 신호였다. 이한은 그 신호를 읽었다. 강태현은 처음 두려움을 느꼈다.

"검귀검법을..."

강태현이 검을 뽑으며 후퇴했다. 이한은 멈추지 않았다. 15미터의 거리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죽음의 가호'의 공중 이동 기술로 이한은 3미터 거리로 순간 이동했다. 강태현은 방어 자세를 갖춰야 했다.

두 검이 부딪쳤다. 금속음이 강변 도로에 울렸다.

"누구에게 배웠는가."

강태현이 물으며 후퇴했다.

"너희 가문에서."

이한이 답했다. 검을 휘둘렀다. 강태현은 방어했다. 하지만 이한의 움직임은 명문가의 정통 검술과 달랐다. 더 빠르고, 더 실용적이고, 더 잔혹했다.

강태현은 격투장에서 배운 기술로 받아냈다. 기술은 우수했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그의 발이 흔들렸다. 이한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어 올렸다. 강태현이 급히 방어했지만, 이한의 다음 움직임은 이미 예측 불가능했다. 몸을 날려 강태현의 옆으로 회전했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강태현의 어깨를 향해 날아왔다.

"이 정도는..."

강태현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한의 검이 강태현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강태현은 놀라며 뒹굴었다. 이한은 추격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태현이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한은 그 두려움을 보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강태현의 눈빛이 변했다. 두려움은 사라졌고, 남겨진 것은 결연함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다른 감정. 이한은 그것을 읽으려 했지만, 자신의 감각이 이미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한이 검을 집어넣었다. 강태현은 어깨의 상처를 누르며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명확한 감정이 드러났다. 두려움이 아닌 다른 것. 절망인가? 아니면 연민인가?

"명진 할아버지께 보고하겠다."

강태현이 말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이한은 그를 놓아주었다. 충분했다. 강태현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승리의 신호였다.

하지만 이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강태현을 보면서 뭔가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었다. 단지 정보 처리의 오류일 뿐이었다. 강태현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깨닫기. 명문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체계의 일부가 되어야 했던 그도. 이한이 짓밟으려던 그 체계의 희생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강태현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한의 검술이 아니었다. 강명진의 명령을 거부했을 때의 후유증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강태현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한이 그를 죽이지 않으면, 강명진이 그를 죽일 것이다. 둘 다 이미 체계에 갇혀 있었다.

이한은 강변 도로에 혼자 남겨졌다. 밤 하늘의 별들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 근육이 경련하는 동안 뭔가가 더 사라져가고 있음을 기록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그것을 후회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이미 없었다. 72시간이 이제 48시간이 되었다.

밤 1시 30분, 격투장 뒷골목. 이한은 최태호를 만났다. 최태호는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단지 피곤해 보였다. 그의 절름거리는 다리가 더욱 심하게 절뚝거렸다.

"강태현을 봤다."

이한이 말했다.

"그리고?"

최태호가 물었다.

"이미 두려워하고 있다."

이한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웃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근육의 경련일 뿐이었다. 최태호는 그 미소를 보고 몸을 떨었다. 그 웃음에는 감정이 없었다. 단지 공허함만 있었다.

"그 웃음은... 너 아니다."

최태호가 외쳤다. 그리고 이한의 곁을 떠났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48시간이 지났다.

강명진의 명령은 오지 않았다. 대신 온 것은 강씨 가문의 공식 전투 요청서였다. 심판자 김이 그것을 이한에게 건넸을 때, 이한은 이미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씨 가주 강명진이 직접 나선다."

심판자 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무언가가 흔들렸다. 30년간 격투계를 봐온 심판자도 이 소식에는 놀랐다.

"강태현은?"

이한이 물었다. 음성은 금속음처럼 차갑게 울렸다.

"강태현은 명령 전달자일 뿐이다. 강명진은 너를 체계의 위협으로 본다. 그리고 체계의 위협은 체계 자체가 제거한다."

심판자 김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였다.

"강명진은 검귀검법의 완성자다. 너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다."

이한은 그 말을 듣고 정보를 처리했다. 강명진은 검귀검법의 완성자. 즉, 감정을 완전히 소실한 상태의 검객. 이한이 아직 48시간 남겨두고 있는 것을 이미 완성한 존재. 그렇다면 이한은 어떻게 이기는가? 그 질문에 답은 없었다.

격투장 지하 창고. 이한은 거울 앞에 섰다. 검귀검법 경전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의 문장만 남겨져 있었다.

'완성된 칼은 더 이상 칼을 쥔 자가 아니다.'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감정이 없으면 의미도 사라진다. 남겨진 것은 순수한 행동뿐이었다.

이한이 격투장을 나온 것은 자정 직후였다. 도시의 야경이 네온사인으로 부서져 떨어졌다. 골목의 밤거리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주정뱅이들, 야간 노동자들, 그리고 거리의 검객들. 이한이 걸어가는 길에 사람들이 물러섰다. 누군가는 이한의 이름을 속삭였다. 누군가는 십자 표시를 그었다. 하지만 이한은 그 어떤 인사도 받지 않았다. 이미 그는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연을 만난 것은 명희의 술집 뒷골목이었다. 소연은 한 팔로 기초 검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입으로 검을 물고, 몸 전체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여전히 순진했다. 하지만 이한은 그 순진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사부님."

소연이 검을 내려놓으며 인사했다. 그의 눈빛에는 반가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반가움 뒤에는 뭔가 다른 것이 숨어 있었다. 불안감. 두려움.

"계속해라."

이한이 말했다. 그리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소연이 불렀다.

"사부님, 당신... 괜찮으세요?"

소연의 질문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이한은 멈췄다. 돌아봤다. 소연의 눈빛을 마주했다. 맑고 순수한 눈빛. 그 눈빛이 담고 있는 걱정과 두려움. 소연은 사부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톤이 사라졌다. 표정이 굳어졌다. 눈빛이 사라졌다.

이한은 소연의 눈을 보면서 뭔가가 흔들렸다. 마지막 흔들림이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순수한 신뢰였다. 사부를 걱정하는 제자의 마음. 하지만 그것마저 이한의 감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붙잡으려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것도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를 복수하려던 겁니까?"

소연이 물었다. 그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이한은 그 질문의 무게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무게.

"강명진이다."

이한이 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강명진이 아니라 그를 만든 체계였다. 명문가였다. 그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구분도 의미가 없었다.

"아니에요."

소연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당신은 강명진을 복수하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을 죽이려고 해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어요. 강명진과의 싸움이 끝나면 당신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이한은 소연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할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강씨 가주가 나선다."

이한이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이한은 소연의 얼굴에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 소연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한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연은 알고 있었다. 사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럼... 당신은?"

소연이 물었다. 그 목소리는 떨렸다.

"이기든 지든 끝난다."

이한이 답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강명진과의 싸움은 이한의 끝이 될 것이다. 이기면 체계를 무너뜨릴 것이고, 지면 죽을 것이다. 둘 다 이한의 끝이었다.

소연은 이한을 붙잡으려 했다. 한 팔로 이한의 소매를 잡았다. 그 손의 온기가 이한의 팔에 전해졌다. 만약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이한은 그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이미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한은 천천히 소연의 손을 풀었다. 그 순간, 소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계속 검을 수련해라."

이한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걸어갔다. 소연은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부는 이미 가버렸다는 것을. 몸은 여기 있지만, 영혼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것을.

밤 2시, 명희의 술집. 최태호는 보안요원으로서 출입문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절름거리는 다리가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명희가 술잔을 닦고 있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한의 여정이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이 어떤 것일지도.

격투장 지하 창고. 이한은 거울 앞에 섰다. 검귀검법 경전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의 문장만 남겨져 있었다.

'완성된 칼은 더 이상 칼을 쥔 자가 아니다.'

72시간이 끝났다.

이한의 눈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더 이상 그곳에는 분노도 없었고, 슬픔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단지 절대적인 공허함만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검일 뿐이었다. 감정도 없고, 의지도 없고, 자아도 없는 완벽한 도구.

격투장의 중앙 무대. 이한은 거기에 서서 기다렸다. 강명진이 올 때까지. 손을 펼쳤다. 검을 들었다. 그리고 무아의 경지로 들어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모든 감각이 검에 집중되었다. 심장의 고동도 들리지 않았다.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한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존재할 뿐이었다.

밤 3시 40분.

강명진의 검이 칼집을 떠났다. 검귀검법의 완성된 형태로.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나타났다. 검객의 발이 땅을 박찼다. 그 움직임은 인간의 속도를 벗어났다. 이한을 향해 검이 날아온다. 공기가 떨린다. 검의 기운이 흔든다. 밤거리의 모든 것이 그 움직임을 감지한다.

이한의 귀가 반응했다.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발이 땅을 박찬다. 강명진의 호흡. 모든 것이 감각에 들어온다.

이한의 검이 칼집을 떠났다. 강명진의 검과 만나기 위해.

두 검이 부딪쳤다. 금속음이 격투장을 가득 채웠다. 그 음성은 비명처럼 울렸다. 무대 주변의 관객들이 몸을 날렸다. 그 충격만으로도 인간의 신체를 파괴할 수 있었다.

강명진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둘렀다. 이한이 방어했다. 다시 부딪쳤다. 또 다른 금속음. 더 큰 충격. 무대의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강명진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의 검술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했다. 모든 움직임이 최적화되어 있었다. 낭비가 없었다. 효율이 극대였다. 이한이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나 이한도 멈추지 않았다. 강명진의 검을 받아내면서 동시에 반격을 시도했다. 검이 교차했다. 검이 엇갈렸다. 검이 부딪쳤다. 매 순간이 생사의 경계였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강명진이 검을 휘어 올렸다. 이한이 몸을 날렸다. 강명진의 검이 이한의 팔을 스쳤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이한은 반응하지 않았다. 통증도 없었다. 단지 데이터일 뿐이었다. 왼팔 상완부 손상. 기능 감소 15%. 계속 전투 가능.

이한이 반격했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어 올렸다. 강명진이 방어했다. 하지만 이한의 움직임은 강명진의 예측을 벗어났다. 몸을 회전시키면서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강명진은 후퇴했다. 이한이 추격했다.

두 검객이 무대 위를 누볐다. 강명진의 움직임은 기계적이었다. 이한의 움직임도 기계적이었다. 둘 다 감정이 없었다. 둘 다 완벽했다. 하지만 완벽함이 충돌할 때 뭔가가 일어난다.

강명진이 검을 내려쳤다. 이한이 검을 들어 막았다. 그 순간, 강명진의 다리가 이한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한은 몸을 날렸다. 강명진의 발이 이한의 가슴을 스쳤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 하지만 이한은 멈추지 않았다. 공중에서 몸을 날려 강명진의 뒤로 내려섰다. 검을 휘둘렀다.

강명진이 돌아섰다. 검이 교차했다. 다시 부딪쳤다. 무대의 바닥이 더욱 갈라졌다. 벽이 흔들렸다. 조명이 떨어졌다.

강명진이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말이었다.

"너는 아직 감정이 남아있다."

이한이 검을 휘둘렀다. 대답 대신 행동으로.

"그것이 너의 약점이다."

강명진이 말했다.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이한이 방어했다. 하지만 강명진의 말이 맞았다. 이한의 움직임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부분. 그것은 감정의 흔적이었다. 소연의 눈물. 최태호의 절망. 명희의 침묵. 그것들이 아직도 이한의 몸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강명진이 그 틈을 노렸다. 검을 휘둘렀다. 이한이 방어했지만, 강명진의 검이 이한의 어깨를 스쳤다. 또 다른 상처.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 순간, 이한의 눈이 변했다. 아주 미묘하게. 강명진은 그것을 감지했다. 완벽한 공허함 속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그것은 분노였다. 아니,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살의였다.

이한이 검을 휘둘렀다. 강명진이 방어했다. 하지만 이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더 빨라졌다. 강명진이 후퇴했다. 이한이 추격했다. 검이 교차했다. 검이 부딪쳤다. 검이 엇갈렸다.

강명진의 팔에 상처가 났다. 피가 흘렀다. 강명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통증도 없었다. 단지 데이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중요했다. 강명진이 처음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한이 검을 휘둘렀다. 강명진이 방어했다. 하지만 이한의 검이 강명진의 방어를 뚫었다. 칼날이 강명진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강명진이 몸을 날렸다. 이한의 검이 강명진의 옷자락을 스쳤다. 거의 다 왔다. 거의 끝이 났다.

강명진이 일어섰다. 그의 눈이 변했다. 공허함이 더욱 깊어졌다. 강명진이 검을 들었다. 검귀검법의 최종 검식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이한도 준비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감정도, 영혼도, 생명도.

두 검객이 마주섰다. 완벽한 공허함 속에서. 완벽한 절망 속에서.

강명진의 검이 날아왔다. 이한의 검이 맞섰다.

그리고 그 순간, 이한의 검이 강명진의 가슴을 관통했다.

강명진의 눈빛이 변했다. 공허함이 흔들렸다. 아주 미묘하게. 그 흔들림 속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으로 강명진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 놀라움이었다. 아니, 깨달음이었다.

"너도... 아직 살아있구나."

강명진이 중얼거렸다. 그의 몸이 무릎을 꿇었다.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피가 흘렀다.

이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여전히 강명진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그 순간, 이한의 몸이 흔들렸다. 아주 미묘하게. 그것은 무엇인가? 승리감인가? 아니면 절망감인가?

이한은 자신의 손을 봤다. 검을 쥔 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살인자가 되었나?"

이한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낯설었다. 감정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72시간이 이미 끝났는데. 감정이 남아있을 수 없는데.

강명진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피와 함께 나오는 웃음이었다.

"완성된 칼이... 검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인간이 되는 건가."

강명진이 말했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흐려졌다.

"경전의 마지막 문장... 넌 이해했구나."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을 뽑았다. 강명진의 몸이 무대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격투장의 모든 것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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