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
양팔이 없는 소녀가 이한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저를 받아주세요."
이한은 그 눈을 보지 않았다. 격투장의 관객석, 무대 위의 다른 선수들—어디든 그 눈을 피했다.
"안 된다."
소연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은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탈의실 통로에서, 그녀는 계속 말했다.
"저는 강해지고 싶습니다.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을 찾아라."
이한이 돌아섰다. 그의 등 뒤로 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사부님만이..."
"나도 안 된다고 했다."
통로의 끝으로 걸어가는 이한. 그는 한 번도 뒤를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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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을 때, 이한은 창고에 앉아 있었다. 지하 격투장 아래, 심판자 김이 중요한 정보를 저장해두는 방. 거울 앞에서, 그는 검귀검법의 경전을 펼쳤다.
'영혼의 절단—감정의 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오직 검의 움직임만 남길 것.'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빛이 죽어 있었다. 광채가 없었다.
경전의 다음 장을 넘겼다. '죽음의 검식(檢式)'.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검을 휘둘 것. 검이 그 기억을 잘라낼 때마다, 그 기억은 영원히 사라진다.'
이한은 검을 들었다.
그 순간, 소연의 웃음이 떠올랐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그 소녀를 받아들였다면 그녀가 웃을 것 같은 그런 웃음.
검이 그 기억을 가르려고 했다.
이한의 호흡이 끊겼다.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사라졌다. 척추를 타고 냉기가 내려왔다.
하지만 이한은 손을 멈췄다.
손이 떨렸다. 아직 그렇게까지 가지 못했다.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한이 검을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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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지났다.
격투장의 대기실. 심판자 김이 이한의 팔을 잡았다.
"저 아래 있는 여자, 봤나? 양팔이 없는 여자. 지난주에 계속 너를 보러 온다."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지. 그런데 이제 넌 단순한 검객이 아니다. 이제부터 넌 학파의 시작이 돼간다. 학파의 머리가 제자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선언이다. 이 도시에서 넌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심판자 김의 말이 이한의 가슴에 무게처럼 내려앉았다. 제자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수련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리고 책임은 감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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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으로 내려가는 통로에서, 이한은 관객석을 봤다. 한 얼굴이 선명했다.
소연이 앉아 있었다. 맨 위쪽, 가장 구석진 자리에.
그녀의 눈에는 타는 듯한 열정이 있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올라왔다.
이한의 검이 울렸다.
경기장의 상대는 하급 검객이었다. 둘 다였다. 이한은 그들을 15초 안에 제압했다.
그리고 이한은 소연을 봤다.
소연이 일어나고 있었다. 손이 없어서 박수를 칠 수 없으니, 그녀는 일어나서 몸으로 기립박수를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다.
이한의 몸이 경직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심장이 요동쳤다. 호흡이 가빠졌다. 손가락 끝에 경직된 감각이 흘렀다. 마치 얼음에 닿은 것처럼.
그 웃음을 본 순간, 이한은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을 버리려 했는지. 그리고 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경기장을 나오는 길에서, 이한은 소연을 마주치지 않으려 다른 통로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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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을 때, 다시 그 창고.
거울 앞에 앉은 이한은 경전을 펼쳤다. '죽음의 검식'의 다음 부분.
'가장 따뜻한 기억부터 시작할 것. 그것이 가장 빨리 사라지는 기억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한 검을 만드는 기억이다.'
이한이 검을 들었다.
소연의 웃음이 떠올랐다. 격투장의 조명 아래서, 처음으로 진정한 웃음을 지었던 그 모습. 팔이 없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눈빛.
이한의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졌다.
검이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검에 베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거울이 깨지는 소리처럼.
이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그것을 기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뭔가가 사라졌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리고 그 느낌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안개가 흩어지듯이.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이한은 더욱 낯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죽어 있었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 그 자체였다.
이한이 거울에 손을 뻗었다. 거울의 표면이 손가락 끝에 닿았을 때, 그는 주먹을 쥐었다.
거울이 부서졌다.
산산조각난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 조각 위에 비친 이한의 얼굴들은 모두 달랐다. 어떤 것은 인간이었고, 어떤 것은 검이었고, 어떤 것은 무엇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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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격투장 위쪽에서 최태호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안실 창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최태호는 지하의 이한을 봤다. 그 남자는 지금 뭔가를 버리고 있었다. 자신이 구하려던 친구가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
최태호는 보안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았다. 고통스러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창고 입구에 도달했을 때, 그는 손을 뻗었다.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미 자신과 이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났다. 강해질 수 없는 자로 남아 있기로 선택한 남자는 오직 지켜볼 수만 있었다.
최태호의 주먹이 벽을 내려쳤다. 소리 없이. 그리고 그는 등을 돌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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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한 시, 격투장 최상층의 관객석.
소연이 앉아 있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이한이 경기장으로 내려가는 순간,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부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 자신에게 하는 맹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 어딘가에서 이한이 다시 검을 들었다.
검이 울렸다.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강태현과의 첫 만남. 수치심. 골목 친구들의 웃음. 명희의 따뜻한 말. 최태호의 격려. 그 모든 것이 칼날에 녹아내렸다.
이한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곧 멈췄다.
감정을 버렸으니, 손이 떨릴 이유가 없다. 손이 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벽한 칼이 되었다는 뜻이다.
강태현을 죽이기 위한 완벽한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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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밤, 격투장 하층의 백사장.
소연이 나타났다. 맨발로, 양팔이 없이.
"사부님."
이한은 그녀를 봤다. 더 정확히는, 그녀를 '본다'는 행위를 수행했다. 감정 없이.
"우리는 처음 만나는 건가."
"아뇨. 저는 일 년 전부터 당신을 봤어요. 당신이 지하 2층 도박장의 경호원을 이겼을 때, 저는 구석에 숨어서 봤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 경호원의 동료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일 수 있었는데."
이한이 검을 세웠다. "그래서?"
"저도 그래요.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소연이 무릎을 꿇었다. 양팔이 없어서 어색했지만, 그녀는 척추를 곧게 펴고 이한을 바라봤다.
"강태현의 명문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팔을 자르고, 이 흉터를 남겼어요."
왼쪽 뺨에 칼자국 흉터가 있었다. 오래된 상처다. 그 흉터의 모양은 명문가의 문장과 흡사했다.
"저는 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한 짓을 기억하고 싶어요. 절대 잊지 않고."
이한의 눈이 움직였다. 그것은 감정이었다. 공감. 그리고 결정.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검술을 가르쳐주세요."
이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팔이 없는 여성이 무술을 배우겠다고? 그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격투장에서는 신체가 무기다. 팔이 없으면 그것은 무기를 잃은 것과 같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는 자신의 과거가 보였다.
"안 된다."
"왜요?"
"너는 너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소연의 눈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죽는 건 상관없어요. 저는 이미 죽어 있었거든요. 이 도시에서, 이 골목에서, 팔이 없는 여자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무도 저를 사람으로 안 봤어요. 당신을 제외하고."
이한이 검을 들었다. 소연의 목을 정확히 겨냥하는 위치.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녀를 끝낼 수 있다.
"나는 너를 도울 수 없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나는 강태현을 죽이려고 하는 자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 너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나?"
"네."
대답이 빨랐다. 주저함이 없었다.
심판자 김의 말이 이한의 뇌리를 스쳤다. '학파의 머리가 제자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선언이다.'
이한의 검이 내려갔다. 그가 검을 거꾸로 들고 소연의 어깨에 댔다. 그것이 받아들임의 신호였다.
"일주일에 석 번. 밤 열 시. 지하 1층 서쪽 통로의 백사장에서.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 내가 하는 말이 절대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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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련은 기초였다. 이한은 소연에게 검을 쥐는 방법부터 가르쳤다. 팔이 없으니 입으로 쥐는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이한은 목재로 특수한 고정장치를 만들었다. 검의 손잡이를 입에 물 수 있도록.
"처음엔 무게감을 느껴야 해. 검은 팔의 연장이 아니라, 너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한이 소연의 뒤에 섰다. 검을 들게 한 후, 그의 손이 소연의 등을 살짝 밀었다.
"중심을 잃지 마. 팔이 없으니 균형을 잡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너의 무기가 될 거다. 팔이 있는 자들은 팔에 의존한다. 하지만 넌 다르다. 넌 몸 전체로 싸워야 한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소연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검의 손잡이가 입 안의 살을 찔렀다.
"계속해."
"네."
두 시간이 지났을 때, 소연의 다리가 떨렸다. 기초 검식을 백 번 반복했다.
"계속해."
"네."
세 시간 반이 지났을 때, 소연이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설 수 없었다. 하지만 입에 물린 검은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로, 검식을 계속했다.
이한이 그녀를 봤다. 그 순간, 뭔가가 가슴 속에서 움직였다. 과거의 감정. 연민. 아니, 그보다는 공감. 자신도 한때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구했다.
이한은 수련을 멈추려 했다. 그 순간, 자신이 버린 따뜻함이 그녀에게서 보였다. 포기하지 않는 눈빛.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척추. 자신이 이미 잃어버린 것들.
이한의 눈이 돌아갔다.
"멈춰."
소연이 무릎을 꿇은 채로 이한을 봤다.
"넌 약한 게 아니다. 넌 다르게 강한 거다."
이한의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그 말은 명확했다.
소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녀가 웃었다. 불완전한 웃음이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었다. 격투장의 조명 아래에서, 양팔이 없는 여성이 처음으로 진정한 웃음을 지었다.
이한의 몸이 경직됐다.
그 웃음을 봤을 때, 호흡이 끊겼다.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손가락 끝이 경직되었다. 마치 얼음에 닿은 것처럼.
그것은 위험했다. 자신이 버린 감정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억누르지 않으면, 자신은 완벽한 칼이 될 수 없다.
이한이 소연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와."
"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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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격투계의 뒷세계에서 소식이 퍼졌다.
"이한이 제자를 뒀대."
"뭐? 그 냉정한 놈이?"
"그 제자 봤어? 팔이 없어."
"미쳤나? 팔 없는 놈한테 뭘 가르친다고?"
하지만 소식이 더 퍼질수록,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었다. 소연이 격투장에서 한 팔로 싸우는 모습을 본 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기술들. 이한이 만들어낸 새로운 검식들. 팔이 없다는 장애를 오히려 창의적인 전술로 변환해낸 모습.
심판자 김이 기록 노트를 펼쳤다. 그의 손가락이 이한의 이름 옆에 한 줄을 그었다 다시 썼다.
"이제 이한은 단순한 검객이 아니다. 학파의 시작이 되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래에 또 다른 이름을 기록했다.
'소연(양팔 없음). 검객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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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시간, 지하 3층의 격투장 후미 창고.
거울 앞에 앉은 이한은 검귀검법의 경전을 펼쳤다. 새로운 페이지. '영혼의 절단'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더 구체적인 지시가 적혀 있었다.
'가장 따뜻한 기억부터 시작할 것. 그것이 가장 빨리 사라지는 기억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한 검을 만드는 기억이다.'
이한이 검을 들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봤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이한의 얼굴이 아니었다. 누군가 낯선 존재의 얼굴.
이한이 그 생각을 내려놨다. 생각도 감정이다. 감정을 버리기로 했다면, 생각도 버려야 한다.
검을 휘둘렀다.
소연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 따뜻한, 밝은 웃음. 격투장의 조명 아래서, 처음으로 진정한 웃음을 지었던 그 모습. 팔이 없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눈빛. 자신을 믿는 그 순수함.
이한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심장이 요동쳤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졌다. 마치 얼음에 닿은 것처럼.
검이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검에 베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마치 거울이 깨지는 소리처럼.
이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그것을 기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뭔가가 사라졌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리고 그 느낌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안개가 흩어지듯이.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이한은 더욱 낯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죽어 있었다.
이한이 거울에 손을 뻗었다. 거울의 표면이 손가락 끝에 닿았을 때, 그는 주먹을 쥐었다.
거울이 부서졌다.
산산조각난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 조각 위에 비친 이한의 얼굴들은 모두 달랐다. 어떤 것은 인간이었고, 어떤 것은 검이었고, 어떤 것은 무엇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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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격투장 위쪽에서 최태호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안실 창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최태호는 지하의 이한을 봤다. 그 남자는 지금 뭔가를 버리고 있었다. 자신이 구하려던 친구가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
최태호는 보안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았다. 고통스러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창고 입구에 도달했을 때, 그는 손을 뻗었다.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미 자신과 이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났다. 강해질 수 없는 자로 남아 있기로 선택한 남자는 오직 지켜볼 수만 있었다.
최태호의 주먹이 벽을 내려쳤다. 소리 없이. 그리고 그는 등을 돌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절름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
밤 한 시, 격투장 최상층의 관객석.
소연이 앉아 있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이한이 경기장으로 내려가는 순간,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부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 자신에게 하는 맹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 어딘가에서 이한이 다시 검을 들었다.
검이 울렸다.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강태현과의 첫 만남. 그때의 수치심. 그리고 그것을 버티게 해준 골목 친구들의 웃음. 명희의 따뜻한 말. 최태호의 격려. 그 모든 것이 칼날에 녹아내렸다.
이한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곧 멈췄다.
감정을 버렸으니, 손이 떨릴 이유가 없다. 손이 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벽한 칼이 되었다는 뜻이다.
강태현을 죽이기 위한 완벽한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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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밤, 격투장의 한 구석.
명희가 거리에서 이한을 봤다. 아니, 이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봤다.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알던 남자가 아니었다. 눈빛도, 걸음도, 숨결도 달랐다.
명희는 몸을 숨겼다. 이한의 시선이 자신을 지나갔다. 그는 명희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명희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한을 피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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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도시의 동쪽 끝.
강태현의 정보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한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명문가의 차기 당주는 이미 이한의 존재를 감지했다.
강태현이 창문을 통해 도시를 내려다봤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 칼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태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래 기다렸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