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강씨 저택을 빠져나온 지 사흘째, 이한은 도시 지하 3층의 격투장 후미 창고에서 탈취한 경전을 펼쳤다. 누런 종이 위에 먹으로 그려진 검의 궤적들. 그것이 검귀검법의 전부였다.
심판자 김은 경전을 건네주며 말했다. "강씨 가문의 최고 비급이다. 완성한 검객은 열 손가락 안팎. 그들은 모두 죽은 눈을 하고 있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이 따뜻함을 잃기 시작했고, 오른쪽 눈가 근처의 신경이 둔해졌다. 강태현의 저택에서 경전을 꺼내던 순간부터다.
수련은 밤 열한 시에 시작되었다.
지하 격투장의 최심부, 공식 기록에 없는 방. 심판자 김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공간이었다. 네온사인이 스며드는 창 하나. 바닥에 그려진 오래된 검의 흔적들. 이곳에서 몇십 년 동안 누군가들이 강해지려 했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어갔다.
이한은 경전의 첫 장을 읽었다.
"검과 심을 하나로. 자아를 내려놓고, 오직 칼날만을 남겨라."
그 문장은 마치 초대장처럼 들렸다.
이한은 검을 집어 들었다. 지난 십 년간 격투장에서 갈아 만든 검. 금속은 이미 그의 손 모양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팔뚝까지, 모든 근육이 이 검을 위해 단련되었다.
먼저 호흡이었다. 경전에 적힌 대로 복부에서 시작하는 호흡. 한 번 들이쉴 때마다 세상이 멀어졌다. 두 번 들이쉴 때는 자신의 이름이 희미해졌다. 세 번째 호흡에서 이한은 더 이상 '이한'이 아니었다.
그저 검이었다.
눈이 열렸을 때, 상대가 있었다. 상상의 상대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태현의 얼굴이었나, 아니면 자신의 얼굴이었나. 구분이 안 되었다.
검이 움직였다.
이한의 의지가 아니라, 경전의 궤적을 따라. 첫 번째 검식—'귀신의 손'. 칼날이 호를 그렸다. 상대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상상의 상대는 그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없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한의 검은 이미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검식—'죽음의 숨결'.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상대의 머리를 반으로 나누는 궤적. 그것도 피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한의 몸은 경전의 명령을 따랐다. 더 이상 생각이 아니라 순수한 반사였다. 뇌가 아닌 칼날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칼날의 생각은 절대적으로 옳았다.
마지막 검식—'검귀검법'의 완성형.
칼날이 상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순간, 이한은 그것을 봤다.
칼날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흘러내렸다. 연기처럼, 아니면 까만 피처럼. 그것은 흩어졌다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것이 감정인가."
이한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렸다. 더 낮고, 더 차갑고, 더 먼.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이한이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검이 손을 놓은 것처럼. 바닥에 부딪히는 금속음. 그 소리도 멀게 들렸다.
이한은 거울로 걸어갔다. 격투장 후미의 오래된 거울. 누군가 욕실에서 떼어낸 것 같은 거울이었다.
그 안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신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얼굴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입가에는 웃음의 흔적이 없었다. 눈빛은—
눈빛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이었다.
명희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이한은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왜 그 모양이야?"
명희는 격투장의 후미 입구에 서 있었다. 술집에서 온 것 같았다. 검은 옷에 적신 땀이 보였다. 그녀는 이한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왜 웃지 않아?"
이한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웃을 필요가 없다."
그의 목소리가 들었을 때, 명희의 얼굴이 변했다. 아주 미묘하게. 하지만 이한은 그것을 봤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내려앉았고, 입술이 다물어졌다.
"이한."
명희가 한 발 더 다가왔다.
"당신의 얼굴이 이상해."
"이상한 게 뭐가 있어."
이한은 거울 옆의 의자에 앉았다.
"더 강해지고 있을 뿐이다."
명희는 그의 옆에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앉으면 뭔가 감염될까봐.
"그게 강해지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뭔가 흔들렸다.
"당신의 눈이 죽어 있어."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진동했다. 마치 검귀검법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명희가 그의 손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이한의 손가락 끝에 닿을 정도까지만.
"따뜻해?"
"응."
거짓이었다. 손가락 끝은 이미 차가워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한 줄씩 끊어 가는 것처럼.
명희는 손을 거두었다.
"복수가 끝나도, 당신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단정이었다.
이한은 대답했어야 했다. 무엇이든. 약속이든, 거짓말이든.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열어도 무엇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명희는 그의 침묵을 봤다. 그리고 그 침묵이 이미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당신은 누군가를 보호하는 사람이었어."
명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당신은 누군가를 짓밟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
이한은 여전히 거울을 봤다. 그 안의 얼굴은 여전히 낯선 사람이었다.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 강함은 저주야."
명희가 돌아섰다. 격투장 후미의 어둠 속으로.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발소리는 멈췄다.
"당신이 변하지 않길 빌었어. 정말로.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녀는 문장을 마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것은 이한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자신 안에서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명희는 떠났다. 격투장의 후미를 빠져나가며,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봤다. 하지만 이한은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 안의 낯선 얼굴을.
밤의 도시 어딘가에서 심판자 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또 다른 검귀가 탄생했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기록지가 있었다. 십 년 전의 기록.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검귀검법으로 강해진 검객들의 이름. 그 중 대부분에는 작은 십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사망 표시였다.
심판자 김은 기록지의 빈 칸에 '이한'이라고 적으며 중얼거렸다.
"이 아이도 그 길을 갈까."
격투장 후미의 창고로 돌아온 이한은 여전히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검귀검법의 경전이 들려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검식을 읽고 있었다.
'죽음의 가호'라는 제목의 검식.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검식을 완성하면, 상대의 영혼까지 베어낼 수 있다. 대신 사용자의 기억 중 가장 소중한 것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
이한의 손가락이 그 문장을 따라갔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읽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중얼거렸다.
"괜찮다. 이미 잃을 게 많지 않은데."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아직도 명희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직도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그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한은 그것을 안다. 다음 검식을 완성하면, 그 기억도 칼날 위에 녹아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울 수 없는 자가 될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강함인지, 아니면 죽음인지는 여전히 구분이 안 된다.
밤의 도시는 이한을 집어삼켰다. 네온사인과 어둠 사이의 골목 속으로. 그곳에서 또 다른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한은 밤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감정 없는, 차갑고 완벽한 칼의 일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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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시는 이한을 집어삼켰다. 네온사인과 어둠 사이의 골목 속으로.
격투장을 나온 이한은 지하 3층으로 향했다. 심판자 김의 비밀 수련실. 공식 무림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그곳에서만, 검귀검법의 진정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이한은 손을 펼쳤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을 하나씩 끊어 가는 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들은 강함의 대가일 뿐이었다.
지하 3층의 비밀 수련실은 거대한 석조 건물이었다. 한때는 도시의 지하 금고였다고 들었다. 지금은 심판자 김이 선택한 자들만이 드나드는 곳. 이한은 그 선택받은 자 중 하나였다.
"오셨네."
심판자 김은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하지만 눈만큼은 이한을 깊이 들여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
"경전을 봤나."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검식을 연습하려고 왔습니다."
"'죽음의 가호'?"
"네."
심판자 김은 한 번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 검식을 완성하는 데에는 대가가 크다. 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잃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진짜로?"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전의 페이지를 펼쳤다. 손글씨로 적힌 복잡한 도형과 문구들. 그것들을 읽으며 몸의 자세를 취했다.
심판자 김은 이한을 관찰했다. 그 자세, 그 눈빛, 그 움직임. 모두가 이미 변해 있었다. 십 년 전 지하 격투장에 들어온 날 그 젊은이의 자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때는 아직 눈에 불이 있었다. 살기가 있었다. 인간다움이 있었다.
지금의 이한은 다른 존재였다.
"시작하겠습니다."
이한이 검을 들었다. 심판자 김이 준 검. 검귀검법을 수련하기 위한 검. 무게는 일반 검의 두 배였지만, 이한의 손에는 가벼웠다.
그가 눈을 감았다.
첫 번째 검식은 호흡이었다. 들숨과 날숨의 리듬을 심장의 박동과 맞추는 것. 그것이 무아지경의 시작이었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리듬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이한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이한의 눈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감정 없는 깊이. 계산만 가득한 공허함.
그가 검을 휘둘렀다.
수련실의 공기가 갈라졌다. 검의 자취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심판자 김도 그 궤적을 온전히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저 그 공간에 칼바람만 감돌 뿐.
이한은 상상의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 그것이 강태현인지, 자신의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검의 움직임만이 있었다.
한 번의 검식이 완성되자, 다음 검식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경전에 없는 검식도 있었다. 이한의 몸이 만들어낸 새로운 검식들. 검귀검법의 핵심은 결국 이것이었다. 완벽한 무아지경 속에서 검객 자신의 영혼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것. 그 순간 모든 한계가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파괴만이 남는 것.
마지막 검식. '죽음의 가호'.
이한의 움직임이 정점에 달했다. 검이 공중에서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너무 빨라서 멈춘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검귀검법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검객만이 볼 수 있다는 현상이 일어났다.
검의 칼날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흘러내렸다. 마치 검이 유혈하듯, 그 검은 액체는 바닥에 떨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씩. 그것이 감정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영혼의 일부인가?
이한은 그것을 봤다. 그리고 무언가 물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이것이... 감정인가."
심판자 김은 일어섰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눈만큼은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수십 번 본 광경이었다. 검귀검법을 완성하는 순간. 그 순간마다 그것을 본다. 검의 칼날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것들.
"그렇다."
심판자 김이 답했다.
"그것이 감정이고, 기억이고, 영혼의 일부다."
이한은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다. 검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액체를 봤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피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완성했나."
"네."
"그럼 이제 알겠지. 검귀검법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싼지."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이미 그것도 감정이었을 것이다. 떨림 자체가 감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
"당신 앞에 많은 검객들이 있었습니다."
이한이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심판자 김은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죽었다. 대부분이."
"어떻게?"
"강해졌기 때문에. 강함이 그들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인간이 아닌 것은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누군가는 미쳤다. 누군가는 자살했다. 누군가는 명문가의 칼에 죽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계속 지켜봤습니까."
"그렇다. 그것이 내 일이다."
이한은 거울을 찾아 나갔다. 수련실의 한구석에 있는 검은 거울.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미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마치 돌로 깎은 조각상처럼. 그리고 눈빛. 그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무언가 깊고, 차갑고, 계산하는 눈. 마치 칼 자신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이한은 자신의 얼굴을 오래 봤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는 알았지만,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격투장으로 돌아왔을 때 명희가 있었다. 술집의 불을 끄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눈이 이한을 찾았다.
"당신... 뭔가 다르다."
명희가 말했다.
"웃지 않네."
"웃을 것이 없습니다."
"전에는 웃었어. 아무도 모르게, 몰래."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희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이한의 얼굴에 닿으려고 했다. 마치 그 손길이 자신을 다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이한은 그 손을 피했다.
"복수가 끝나도, 당신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명희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단정이었다. 그리고 그 단정 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어도 나올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올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당신은 누군가를 보호하는 사람이었어. 이제 당신은 누군가를 짓밟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
명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해지는 것이다."
이한이 말했다.
"그런 강함은 저주야."
명희가 돌아섰다. 격투장 후미의 어둠 속으로.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발소리는 멈췄다.
"당신이 변하지 않길 빌었어. 정말로.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녀는 문장을 마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것은 이한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자신 안에서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명희는 떠났다. 격투장의 후미를 빠져나가며, 마지막으로 한 번 뒤를 봤다. 하지만 이한은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 안의 낯선 얼굴을.
밤의 도시 어딘가에서 심판자 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또 다른 검귀가 탄생했다."
그의 손에는 오래된 기록지가 있었다. 십 년 전의 기록.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검귀검법으로 강해진 검객들의 이름. 그 중 대부분에는 작은 십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사망 표시였다.
심판자 김은 기록지의 빈 칸에 '이한'이라고 적으며 중얼거렸다.
"이 아이도 그 길을 갈까."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름을 쓴 후 한 번 더. 그리고 그 옆에 물음표를 그었다. 다른 모든 이름들과는 달리 확실하지 않은 미래. 하지만 심판자 김은 알고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 것도 결국은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격투장 후미의 창고로 돌아온 이한은 거울 앞에 다시 앉았다. 손에는 검귀검법의 경전이 들려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검식을 읽고 있었다.
'영혼의 절단'이라는 제목의 검식.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검식을 완성하면, 상대의 영혼까지 베어낼 수 있다. 대신 사용자의 기억 중 가장 소중한 것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
이한의 손가락이 그 문장을 따라갔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읽는 것처럼.
명희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 다음 검식을 완성하면, 그 기억도 칼날 위에 녹아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울 수 없는 자가 될 것이다.
더 강해질 것이다.
그 대신.
밤의 도시는 더욱 깊어갔다. 그리고 이한은 그 어둠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창고의 불이 꺼졌다.
이한은 다시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