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의 끝, 진실의 시작
아침 일곱 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어제 밤 준호의 계단에서 무릎을 꿇었던 자리가 여전히 욱신거렸다. 휴대폰 화면에는 루미에르 그룹 이사회 긴급 소집 공지가 떠 있었다. 오전 열 시. 장소는 회의실 A. 안건은 '경영진 신뢰도 추락에 따른 CEO 책임 규명'.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자리가 내 인생의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준우가 언론에 '민지은 CEO는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의 당사자'라는 기사를 흘렸고, 루미에르의 주가는 이틀 만에 12% 폭락했다. 이사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거짓으로 자신을 조립할 수 없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봤다. 메이크업은 완벽했다. 아이라인은 예리했고, 파운데이션은 결점 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죽어 있었다. 준호를 버린 그 순간부터 계속 죽어 있었다.
나는 옷자락을 정리했다. 검은색 슈트. 완벽한 여전사의 복장. 하지만 오늘은 이 옷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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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로 들어섰을 때 모든 이사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열 명의 이사 중 여덟 명은 내 해임을 원하는 표정이었다. 회의실 맨 끝에는 준우가 앉아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 있었다. 승리의 미소.
"CEO 민지은입니다."
이사장 이호준이 입을 열었다.
"루미에르 그룹의 주가가 폭락했고, 언론은 우리 회사를 '계약연애 사기에 연루된 기업'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준우는 내가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나는 거짓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준호의 계단에서.
"제가... 거짓을 말했습니다."
목이 메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이어갔다.
"그 남자와의 관계는 계약 연애였습니다. 처음에는요."
눈가에 뜨거운 감정이 맺혔다.
"저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상류사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거짓 남친을 고용했습니다. 윤준호라는 남자를 돈으로 사기로 했습니다."
준우의 얼굴에 미소가 더 짙어졌다. 내가 스스로 자백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눈물을 닦아냈다. 손이 떨렸다.
"중간에 뭔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사들이 술렁였다.
"계약 기간이 끝나도 지속되는 감정이 생겼습니다. 근데 저는... 두려워했습니다."
목이 다시 메었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감정은 약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준우 회장의 기사가 나왔을 때 그를 의심했고, 신제품 발표회에서 거짓이라고 부인했습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날 밤, 저는 그의 집 계단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외쳤어요. 하지만 그는 문을 닫았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밤새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를 버렸습니다."
내 목소리가 떨렸다.
"두 번이나요. 첫 번째는 의심했을 때. 두 번째는 거짓이라고 말했을 때. 저는 완벽함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버렸습니다. 제가 가장 큰 사기꾼이었습니다."
나는 이사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놀라움, 의심, 그리고 어떤 이들의 눈에는 동정이 보였다.
"따라서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잠깐."
준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CEO님의 고백은 감동적입니다만, 이것이 루미에르 그룹의 신뢰도 추락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그가 이사들을 둘러봤다.
"저는 이 자리에서 민지은 CEO의 즉각적인 해임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루미에르 그룹의 신뢰도 회복을 위해 외부 경영진 영입을 제안합니다. 저는 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준우를 봤다. 그의 눈은 이미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사장님.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장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루미에르 그룹은 지난 오 년간 '완벽함'을 추구해왔습니다. 완벽한 제품, 완벽한 이미지, 완벽한 CEO.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감정입니다. 사람의 감정입니다."
나는 회의실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떨렸다.
"우리 회사는 뷰티 기업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제품을 사서 자신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 아름다움만이 아닙니다. 내적 아름다움, 즉 감정의 아름다움을 원해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감정.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은 감정."
"CEO님, 이것이 무슨..."
"그런 감정이 있을 때, 사람은 진정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는 제가 해임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요."
나는 이사장을 직시했다.
"루미에르 그룹의 새로운 캠페인. 제목은 '감정의 가치'입니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시작합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빛나는 감정을.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로 돌아가는 용기를."
회의실이 침묵했다. 준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것이 회사를 위한 제 마지막 제안입니다."
나는 회의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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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 시, 나는 강북 오피스텔 502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선물도, 준비된 말도 없었다. 오직 내 자신만.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누세요?"
준호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톤이었다.
"나야. 지은이야."
침묵이 흘렀다. 길고 무거운 침묵.
"정말 오래됐네요."
그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들어와도 되니?"
"...잠깐만요."
문이 열렸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502호 문 앞에서 준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져 있었다. 며칠을 제대로 자지 않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그가 인사했다. 존댓말이었다. 우리 사이에 존댓말이 돌아왔다. 그것은 거리였고, 방어였다.
"준호, 나 말 들어줄래?"
"네."
"이번엔 거짓 없이."
그가 한 발 물러섰다.
"지은님은 지금 무엇을 원하세요?"
"너를 원해."
"네가 이전에 한 말도 거짓이 아니었나요?"
내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가 맞았다. 나는 전에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을 버렸다.
"나는 감정을 약함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거래처럼 대했어. 계약이 끝나면 떠날 사람이라고 자신을 속이며."
나는 그의 눈을 봤다.
"하지만 너와 함께하면서 깨달았어. 감정은 약함이 아니야. 감정은 용기야. 너를 버릴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다시 너에게 돌아갈 수 있는 용기. 나는 지금 그 용기를 내고 있어."
"지은님이..."
"이사회에 가서 너를 거짓이라고 부인한 게 내 가장 큰 실수라고 말했어. 그리고 내가 사직 권고를 받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걸 수용했어."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왜냐하면 너 없이 가진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알았거든."
준호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의심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미안해. 너무 많은 상처를 줘서."
"지은님은 지금 뭘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가 남아 있었다.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진짜로."
"진짜로?"
"응."
"근데 지은님은 이전에도 진심이었잖아요. 그런데 신제품 발표회에서는 거짓이라고 했고."
준호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는 맞았다.
"알아. 내가 너를 믿기 어렵겠지."
"그게 아니라..."
준호가 턱을 쓸어내렸다.
"저도 거짓을 했어요."
"뭐?"
"계약연애 중개소에 가입한 것. 그게 거짓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로 돈이 필요했고, 정말로 그 일을 했어요. 그런데 지은님을 만나면서 뭔가가 바뀌었고, 저는 그걸 숨기려고 했어요. 글을 쓸 때도 제 잘못을 최소화하려고 했어요."
그가 나를 직시했다.
"그래서 저도 거짓을 했어요. 지은님처럼. 그런데 이제 지은님이 다시 돌아오라고 하니까... 저도 무섭고, 혼란스럽고, 믿을 수가 없어요."
내 목이 메었다.
"나도 몰라. 나도 정말 모르겠어. 우리가 이 거짓들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지. 근데 나는..."
나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너를 버린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어. 그래서 다시 돌아온 거야. 완벽한 답을 가지고가 아니라, 너와 함께 헤쳐나가고 싶어서."
준호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상처받으면 저는..."
"알아."
"정말 알아요?"
"응."
준호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우리는 손을 맞닿게 했다.
"조건이 있어요."
"뭐?"
"천천히 시작해요. 이전처럼 빠르게 진행하지 말고."
"알겠어."
"그리고 앞으로 거짓은 절대 없어야 해요. 작은 것도 안 돼요."
"응."
"마지막으로... 제 아버지 얘기는 나중에 해줄 수 있어요? 아직은 준비가 안 돼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준호가 나를 거실로 이끌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손은 여전히 맞닿아 있었다.
"차 마실래요?"
"응."
준호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그를 봤다. 그는 여전히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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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준호의 블로그 글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의 글은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드러냈다. 자신이 어떻게 중개소에 가입했는지, 왜 피해자 여성들을 도우려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오인받게 되었는지.
언론은 준호를 '피해자 증인'으로 재포지셔닝했다. 경찰청은 진범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유진이 직접 준호의 집을 찾아왔다.
나는 준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의 손은 소파 위에서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유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가 너무 분노하고 있었어요. 그 분노를 잘못된 사람에게 쏟았어요."
"괜찮습니다. 나도 이해합니다."
준호는 유진에게 물을 건넸다.
"사실 저도 오래 미워했어요. 제 자신을. 왜 그 중개소에 가입했는지, 왜 그걸로 돈을 벌려고 했는지."
"그건 생존이었어요. 잘못된 게 아니었어요."
"그래요. 이제 알겠어요."
유진이 조금 진정했다.
"혹시... 함께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요?"
"계약연애 피해자들을 위한 프로젝트. 당신의 글을 보니까, 우리가 함께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준호가 나를 봤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함께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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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루미에르 그룹의 이사회에서 연락이 왔다. 내 제안한 캠페인 '감정의 가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준우의 반발은 있었지만, 이사들은 새로운 경영 철학에 공감했다. 그들은 내게 CEO 자리를 유지하되, 3개월간 신뢰도 회복에 집중하라고 했다.
나는 준호에게 먼저 알렸다.
"캠페인이 승인됐어. 너도 참여해줄 수 있을까?"
"저요?"
"응. 너 없이는 이 캠페인이 완성되지 않아."
준호는 한참을 생각했다.
"생각해볼게요."
그것은 거절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락도 아니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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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준호가 캠페인 참여를 결정했다. 촬영은 간단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완벽한 슈트도, 화려한 메이크업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우리였다.
광고 문구는 이랬다. '완벽함은 거짓입니다. 감정이 진실입니다.'
촬영 현장에서 준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것이 신뢰 회복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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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공개되자 루미에르의 주가는 올라갔다. 하지만 천천히. 한 주에 3%, 다음 주에 5%. 직원들의 반응도 시간이 걸렸다. 회사 내부 게시판에는 '감정의 가치 캠페인에 공감한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이게 무슨 경영 철학이냐'는 비판도 있었다.
나는 이사회에서 각 단계별로 설득했다. 신제품 개발 방향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직원 복지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완벽함에서 인간다움으로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신제품 '감정 에센스'는 기존의 고급스러운 라인과 달랐다. 패키징은 소박했고, 광고에는 일반인들의 실제 사연이 담겼다. 직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마케팅팀의 한 과장은 회의에서 "이게 정말 루미에르의 정체성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정체성은 고정된 게 아니라 성장하는 거"라고 답했다.
준호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촬영 현장에서, 그리고 나중에 내가 그에게 말해줄 때.
"힘들어?"
"응. 근데 이게 맞는 것 같아."
"정말?"
"응. 왜냐하면 이제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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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나는 준호의 오피스텔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우리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준호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의 손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반짝였다. 수천 개의 불빛이 밤하늘을 밝혔다. 그 중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있을 때 그것들은 아름다웠다.
"행복해?"
준호가 물었다.
"응. 너는?"
"응. 이제는."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응. 천천히 하자."
우리는 오래 말없이 앉아 있었다. 준호의 팔이 내 어깨에 감겼다. 그것이 신뢰의 완성이었다.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준이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팔이 내 어깨에서 떨어졌다.
"지금 뉴스 봤어? 기사가 올라왔는데..."
나는 준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화면을 봤다. 그 순간 내 피가 얼었다.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 20년 전 유사 사건과 연결 고리 발견. 윤준호 작가의 아버지가 당시 사건의 주요 인물로 지목'
나는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은 회백색이었다. 베란다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 위에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무언가 깊고 오래된 상처가 떠올랐다.
"아버지..."
그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뭐 한 거야, 아버지..."
준호의 손이 떨렸다.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차갑고 경직되어 있었다. 우리가 겨우 쌓아올린 신뢰 위에 또 다른 거짓이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