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강남 코엑스 대기실의 거울 앞에서 나는 한 시간을 더 서 있었다. 화장을 다시 고쳤다. 파운데이션을 덧발랐고, 아이라인을 그었고, 립스틱을 바꿨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서연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은, 지금 뉴스 봤어?"

나는 핸드폰을 내렸다. 뉴스를 켜는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봤어."

거짓이었다.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우가 보낸 사진과 기사 제목이 내 눈에 타올랐다.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가해자였다?' 그리고 그 아래, 준호의 이름. 준호의 사진.

"지은, 이건... 루미에르도 엮여 있어. 루머가 퍼지고 있어. CEO가 계약연애 사기꾼과 관계가 있었다고.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 화면을 켰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루미에르 그룹 지은 CEO'. 2위는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 3위는 '준호 사진 유출'. 기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루미에르 그룹 CEO 민지은,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 연루자와 관계 적발]

기사는 내 얼굴과 준호의 얼굴을 나란히 놓았다. 우리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준우가 보낸 사진이었다.

'루미에르 그룹의 이미지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 제기'

'CEO의 판단력 재평가 필요'

'주가 2.3% 하락'

내 손이 떨렸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비서였다.

"회장님, 이사회에서 긴급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30분 안에..."

"알았어."

나는 거울을 다시 봤다. 완벽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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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였다. 나는 차에 앉아 있었다. 창문을 통해 그의 집 문을 봤다. 2층 오피스텔. 작고 낡은 건물. 지난 몇 주간 나는 이 건물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엔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두드렸다.

"준호. 준호, 나야. 문을 열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벽에 기댔다. 그리고 기다렸다.

밤 7시가 되었을 때, 문이 열렸다.

준호가 나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이 부어 있었다. 옷은 구겨져 있었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준호, 나는 너를 믿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준호는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넌 나를 믿어? 그게 뭐가 중요해? 넌 나를 필요할 때만 믿지. 그게 아니면..."

그가 나를 봤다. 처음으로.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해? 계약? 아니면 사기꾼?"

나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목이 졸렸다. 아무 말도 나올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너한테 뭐가 되려고 했는지. 너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결국 사기꾼이 되었어."

그리고 그는 문을 닫았다.

나는 계단 앞에 앉았다. 밤이 내려왔다. 서울의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뉴스가 났다.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의 진실, 피해자가 직접 쓴 글]

준호의 블로그에 글이 올라왔다.

나는 읽었다.

---

*저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거짓 안에 살았습니다.*

*2년 전, 저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서 한 달을 버티기 위해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했고, 어느 날 누군가 저에게 제안했습니다. 계약연애 중개소. 돈을 벌 수 있다고. 쉽다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저는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거짓이 아닌 상처받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기를 당했고, 저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거절했습니다.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저를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주, 저는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따뜻한 사람. 저를 믿어주는 사람. 저를 '필요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 그 사람 덕분에 저는 제 과거를 다시 봤습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로.*

*그 사람은 저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도 거짓 안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우리 모두처럼.*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제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으로는 진실을 지킬 수 없습니다.*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거짓을 거짓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입니다.*

*저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까요?*

---

화면이 흐려졌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울을 봤을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회의실에서도, 아버지 앞에서도, 민준이의 분노 앞에서도. 하지만 준호의 말은 달랐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문장이 내 가슴을 부수고 있었다. 완벽함으로 무장했던 나도, 거짓으로 단단히 묶었던 나도, 결국 그 한 문장 앞에서 무너졌다.

---

민준이가 나를 찾아왔다.

루미에르 그룹의 사무실. 내 CEO 룸. 그는 문을 닫고 앉았다.

"너 준호를 버렸어. 그게 전부야."

나는 숨을 멈췄다.

"나는 너를 보호하려고 한 거야. 루미에르를 보호하려고..."

"그건 보호가 아니라 도망이야."

민준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분노한 그를. 평소의 차분함이 온데간데 없었다.

"너는 자신의 감정이 무서워서 준호를 버린 거야. 너는 그를 거짓으로 시작했고, 거짓으로 끝내고 싶었어. 왜? 진실이 무서웠으니까. 진실이 너를 다치게 할까봐. 하지만 넌 준호를 더 많이 다쳤어. 너는 그를 사기꾼으로 만들었어."

나는 입을 벌렸다.

"준호는 피해자야. 그리고 넌 가해자야."

민준이는 나갔다. 닫힌 문 너머로 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

아버지가 왔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아버지. 그의 얼굴은 엄숙했다.

"너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나는 아버지를 봤다.

"엄마는 감정을 너무 두려워해서 아버지를 버렸어. 그리고 너도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가 뭐길래? 넌 그를 왜 버렸어?"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나는 너한테서 감정을 배우고 싶었어. 나는 너한테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 하지만 넌 자꾸만 도망치려고 해. 거짓으로. 계약으로. 그리고 결국 넌 모두를 상처 입혀."

아버지는 나갔다. 그의 등이 점점 작아졌다.

---

저녁 9시. 이사회 회의실.

이사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CEO의 판단력에 대해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루미에르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준우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예리했다.

"내 제안입니다. 이 시점에서 CEO를 교체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나는 이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사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은 CEO, 할 말이 있으십니까?"

나는 일어섰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루미에르를 지키겠다는 말? 준호를 버린 선택을 정당화하는 말? 아니면 거짓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

모두가 거짓이었다.

나는 회의실을 나갔다.

복도에 서 있었다. 밤의 서울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불빛들.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루미에르를 지키는 것? 아니면 준호를 지키는 것? 왜 둘을 동시에 지킬 수 없을까.

그 순간 깨달았다. 둘을 동시에 지킬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처음부터 준호를 거짓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계약으로 시작했고, 계약으로 끝내려고 했다. 루미에르를 지키기 위해 그를 버렸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비겁한 선택이었다.

---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미지의 번호였다.

나는 받았다.

"안녕하세요, 루미에르 그룹 CEO 민지은님이신가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조심스러웠다.

"저는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유진이라고 합니다."

내 손이 식어갔다.

"저는 준호를 사기꾼이라고 고발했던 사람입니다."

그 이름. 준호. 내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저는 방금 언론에 제 증언이 거짓이었음을 밝혔습니다."

유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준호는 피해자였습니다. 저도 피해자였고요. 우리 모두 그곳의 피해자였는데, 저는 제 두려움 때문에 그를 버렸어요. 그리고 그 거짓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쳤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유진이 숨을 쉬었다.

"CEO님께도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이 준호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봤습니다. 뉴스에서. 당신도 피해자였군요. 제가 거짓 증언으로 모두를 상처 입혔습니다."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끝났다.

나는 뉴스를 켰다. 손가락이 떨렸다.

[속보: 계약연애 중개소 사건 피해자 증언 번복 — 준호는 피해자, 가해자 아님]

[루미에르 CEO 민지은, 거짓 루머 피해자로 확인]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 준호의 블로그가 떠 있었다.

---

준호의 명예가 회복되고 있었다. 내 루머도 사라지고 있었다. 루미에르의 주가도 오를 것이다.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거짓의 한가운데.

유진의 증언 번복은 준호를 구했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를 버렸다. 그를 거짓으로 몰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

사무실의 불을 껐다. 복도를 나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내 모습을 봤다. 완벽한 메이크업. 명품 정장.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 무너진 얼굴.

지하주차장에서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그 안에는 계약서가 있었다. 어제 찢으려다 만 계약서. 나는 그것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찢었다.

조각조각 떨어지는 종이들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종이를 찢는 것만으로는 거짓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을.

검은색 벤츠에 탔다. 강북. 서울의 반대편.

---

준호의 집. 강북. 서울의 반대편.

밤 11시. 준호의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엔진을 껐다. 낡은 오피스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두드렸다.

침묵.

나는 계단 옆에 앉았다. 콘크리트가 차갑고 딱딱했다. 기다렸다.

밤 12시가 넘었을 때 누군가 계단을 올라왔다.

준호였다.

그는 나를 봤다. 그 순간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충격. 그리고 깊은 상처.

"뭐 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그것이 더 아팠다. 차가움은 감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완전히 비어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난 너를 사랑해."

그 말이 전부였다.

준호는 웃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절망의 음성이었다.

"너는 나를 필요할 때만 사랑해. 나는 너한테 뭐야? 계약? 아니면 사기꾼?"

나는 눈을 감았다. 눈썹이 떨렸다.

"대답해 봐."

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너한테 뭐야?"

그 질문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였으니까. 거짓. 계약. 거래.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찢긴 계약서 조각들을 꺼냈다.

"이건 거짓이야. 우리가 시작한 모든 거짓이야."

준호는 나를 봤다.

"나는 루미에르를 포기하기로 했어."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일 사표를 낼 거야. 그리고 나는..."

나는 숨을 쉬었다. 깊게, 천천히.

"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계약도 거래도 아니야. 진짜야."

준호는 나를 봤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의심이 가득했다.

"지은..."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어. 너는 이미 한 번 나를 버렸어."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사랑의 고백도 그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서 난 증거를 남길 거야. 계약서를 찢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난 모든 거짓을 벗겨낼 거야. 회사도, 지위도, 모든 거짓을."

"지은..."

"넌 내게 뭐냐고 물었어. 나는 너한테 뭐냐고."

나는 그를 봤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게 전부야. 그게 진실이야. 그리고 그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모든 거짓을 버릴 거야."

준호는 한참을 나를 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의심 속에 무언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들어와."

그가 문을 열었다.

---

새벽 3시. 준호의 좁은 원룸.

나는 그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준호는 나를 봤다.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다.

"정말 회사를 그만둘 거야?"

"응."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루미에르. 내가 만든 회사. 내 자존심. 내 모든 것.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인지 알고 있었다.

"할 수도 있지. 하지만 후회하는 것보다 너를 잃는 게 더 무서워."

준호는 나를 안았다. 하지만 그 포옹에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

"미안해. 내가 먼저 문을 닫아서."

"내가 먼저 거짓을 택했어."

우리는 침묵 속에 있었다. 밤은 깊었고, 아침은 멀었다.

---

아침이 왔다.

나는 핸드폰을 켰다. 뉴스가 떴다.

[루미에르 그룹 CEO 민지은, 긴급 사표 제출]

[루미에르 주가 5% 하락, 시장 혼란]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준호가 나를 봤다. 그의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후회해?"

나는 웃었다.

"아직 아침이야. 후회할 시간은 충분해."

준호도 웃었다. 그것은 아직 조심스러운 웃음이었지만, 적어도 웃음이었다.

---

차 안은 조용했다. 나는 준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밤거리의 불빛들이 유리창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거짓을 버렸다.

계약을 버렸다.

그리고 진실만 남겼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루미에르는 어떻게 될지, 준우는 어떤 짓을 할지, 세상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것들은 아직 불확실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빈 손이 아니었다.

나는 준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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