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거짓의 완벽한 리허설

갤러리의 천고장 조명이 내 얼굴을 비췄다. 거울 같은 검은 바닥에 비친 내 모습은 완벽했다. 구겨질 틈 없는 화이트 드레스,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은 헤어, 입가에 맺힌 미소.

그런데 준호의 손이 떨렸다.

까만 수트를 입은 준호가 나타났을 때, 내 손을 잡는 순간 그의 손가락이 경직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익사하는 사람이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손을 붙잡는 것처럼.

이건 계획에 없었다.

"괜찮아?"

나는 그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신호였다. 나를 믿어.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있어. 너는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응."

준호가 대답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나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의도적으로 느리게, 모든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속도로. 그리고 그의 팔을 내 팔에 감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변했다.

준호의 어깨가 이완되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그의 따뜻함을 느꼈다. 손가락 끝에서 팔뚝까지, 그 온기가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이상했다. 계약에는 이런 조항이 없었는데.

갤러리 안의 시선들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서울 상류사회의 무게가 우리 위에 내려앉는 감각.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손 안에 있는 그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는 것도.

"민지은."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회장 부인이었다. 나는 즉시 표정을 바꿨다. 준호의 손은 여전히 내 손 안에 있었지만, 나는 이미 다른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

"어서오세요."

나는 준호를 소개했다. 이 말 한 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었다.

"이 사람이 제 남자친구 준호예요. 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거짓이었다. 확실하게 거짓이었다. 우리는 계약 관계였고, 신뢰는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거짓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뭔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얼음이 녹는 소리처럼.

회장 부인이 웃었다. "아, 그래요? 정말 자랑스러운데요."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완벽한 미소. 하지만 내 손가락은 준호의 손을 더 세게 쥐고 있었다. 왜일까?

행사는 진행되었다.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회사 임원진, 아버지의 지인들, 상류사회의 남자들. 모두가 나를 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남친이 있었어?" 그들의 놀라움은 예상대로였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나 혼자가 아니라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준호는 내 옆에서 그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내 지시에 따라 웃고,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봤다. 마치 진짜 연인처럼.

"음, 너 정말..."

누군가가 나를 옆으로 끌어냈다. 준호를 놓친 순간, 내 손이 공중에서 맴돌았다. 그건 이준우였다.

"넌 정말 완벽하게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남친이 있었어?"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나는 즉시 모드를 전환했다. 친구에서 경쟁자로. 따뜻함에서 냉정함으로.

"왜? 실망했어?"

"아니지, 오히려 흥미로워."

그는 준호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명백했다. 준호는 약했다. 나보다 훨씬 약했다. 그래서 이준우는 준호를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남자, 뭐 하는 사람이야?"

"프리랜서 작가."

"아."

한 글자.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준우의 시선에서 준호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다시 그를 찾았다.

준호는 갤러리의 한구석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불편했다. 내가 이준우와 나누는 대화를 보고 있었고, 내 목소리 톤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고 있었다. 그의 눈이 나를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것을 봤다. 자신이 이준우 같은 사람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표정. 그리고 내가 그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눈빛.

내 손이 저절로 이준우의 팔을 풀려고 움직였지만, 나는 그것을 멈췄다. 계약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어야 했다.

"다음 주에 봐."

이준우가 떠났다. 나는 즉시 준호 쪽으로 돌아갔다.

"괜찮아?"

"응."

그의 대답은 짧았다. 뭔가 달라졌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의문. 그리고 미묘한 상처.

택시 안에서 준호가 물었다.

"그 남자 싫어하는 것 같은데?"

"싫어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 경쟁일 뿐이야. 감정은 없어."

"감정이 없어?"

준호가 내 얼굴을 봤다.

"근데 넌 저 남자한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 목소리도, 눈빛도 다 달랐어. 넌 저 남자 앞에서 완전히 다르게 변했어."

내가 대답하지 않자, 준호가 다시 말했다.

"사람은 거래가 아니잖아. 그 사람이 너한테 뭔가 하면, 그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거야. 넌 그걸 거래로 바꾸고 있는 거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건 약함의 신호였다. 감정의 균열.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계약을 잊지 말아."

내 목소리는 차가웠다. 얼음처럼.

"이건 거래야. 넌 돈을 받고, 나는 이미지를 얻는 거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준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이 내 말보다 더 크게 들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지은이?"

"네, 아버지."

"오늘 행사 잘 다녀왔어?"

"네."

"혼자?"

내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이 질문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아니,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있어요."

거짓이 입에서 나왔다. 자연스럽게.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사처럼.

"그 사람이 너를 행복하게 해?"

아버지의 질문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나는 그 질문에 직면할 수 없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통화를 끊었다.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얼굴이 낯설었다. 평소의 나는 거기 있지 않았다. 완벽한 차가움. 감정의 그림자도 없는 얼굴. 그런 내 얼굴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곳에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입가의 미소가 아직도 남아 있었고, 눈빛에는 뭔가 따뜻한 것이 묻어 있었다.

거짓이 내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화장을 지웠다. 클렌징 크림을 얼굴에 펴 바르면서, 거울 속의 그 낯선 표정을 지워내려 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내 피부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핸드폰에 알림이 떠올랐다. 준호의 메시지였다.

"오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것 같아."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의 블로그를 켰다. 그는 새 글을 올렸다.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손을 잡을 때 느끼는 따뜻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따뜻함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내 손이 떨렸다.

거짓에서 시작된 이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는 거짓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준호의 목소리가 자꾸만 들렸다.

'사람은 거래가 아니잖아.'

그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내가 삼십 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아니, 들었을 수도 있지만 무시해왔던 말.

새벽 세 시. 나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

회사에 나간 것은 오후 두 시였다. 아침 회의는 서연에게 넘겼다. 나 민지은이 회의를 미루다니. 하지만 나는 준호의 글을 자꾸만 다시 읽고 싶었고, 거울을 봤을 때 내 얼굴의 부드러움을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루미에르 그룹의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서연이 나를 봤다.

"어제 잘 다녀왔어?"

"응."

"그 사람, 진짜 잘생겼더라. 갤러리에서 본 사진 봤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의 사진. 어제 갤러리에서 누군가 찍은 사진들이 SNS에 올라왔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은아, 너 진짜..."

서연이 말을 이었다.

"저 남자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니야?"

"뭐?"

"어제 너 표정 봤어. 저 남자 봤을 때 완전 달라졌어. 너는 모를지 모르지만, 난 알아. 널 오래 봤거든."

나는 서연을 무시하고 회의 자료를 펼쳤다.

"그런 건 없어. 이건 전부 전략이야."

"전략?"

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은아, 감정은 전략이 아니야."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회의를 시작했다. 분기별 매출 현황, 신상품 론칭 일정, 마케팅 전략.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했다. 모든 것을 거래로 변환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이준우'

내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목소리를 차갑게 다듬고, 표정을 정리하고, 거리를 계산했다.

"준우."

"지은아. 어제 행사 잘 봤어. 그 남자, 누구야?"

내 손가락이 경직됐다.

"관심 가는 건 왜?"

"당연하지. 넌 항상 완벽하게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남친이 있었어? 그것도 저런 스타일의 남자?"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비아냥이 있었다.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사생활에 관심 가질 필요는 없어."

"그렇지. 하지만 넌 사생활이 없는 여자잖아. 회사, 회사, 회사. 그게 너의 전부였는데... 뭔가 변했네."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할 말 있으면 비즈니스 얘기로만 해. 그 외에는 시간 낭비야."

"차갑네. 그게 너지. 난 좋아, 그런 너."

그가 웃었다. 그 웃음이 싫었다.

통화를 끊은 후, 나는 창 밖을 봤다. 강남의 고층 건물들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아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얼마나 따뜻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까. 나처럼 모든 것을 거래로 변환하면서 살아갈까.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 형이야."

준호의 친구였다.

"아, 안녕하세요."

"지은 씨, 근데... 준호가 요즘 좀 이상해.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 같고. 어제 행사 이후로 더 심해졌어."

나는 말을 삼켰다.

"뭐... 없어요."

"아, 미안해. 이렇게 물어보는 게 실례인 거 알아. 근데 준호는 되게 상처받기 쉬운 친구야. 그 친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으려고 할 때, 그걸 실망시키지 말아 줄 수 있을까?"

민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제 밤에 준호가 뭘 했는지 알아? 밤새 너한테 보낼 메시지를 지웠어. 몇십 번을. 결국 하나만 보냈지. 그 정도면 진심이 아니냐고. 계약이라고 해도, 감정은 거짓이 아니거든."

통화가 끝났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민준의 마지막 말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계약이라고 해도, 감정은 거짓이 아니거든.'

그 말이 맞다면, 나는 뭔가를 잘못하고 있었다. 준호의 감정이 거짓이 아니라면, 나는 그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도 거짓이 아니라면...

나는 그 생각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

저녁 여섯 시.

나는 강북으로 향했다. 준호가 자주 가는 카페. 어제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카페. 나는 그곳에 간다는 것을 준호에게 알리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었다. 거짓이 맞는지, 아니면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지.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준호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앞에서. 그는 뭔가를 열심히 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잠깐 봤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의 준호는 항상 밝았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 하지만 지금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뭔가 깊은 생각이 있었다. 마치 내가 그를 상처 입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그의 테이블로 갔다.

"뭐 해?"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봤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건 기쁨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감정이 그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은아. 뭐했어?"

"일."

"맨날 일이네."

그가 다시 노트북을 봤다. 나는 그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춰 있는 것을 봤다.

"뭐 쓰고 있어?"

"글."

"뭔 글?"

준호가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를 압박했다.

"거짓에 대해서."

내 가슴이 철렁했다.

"거짓?"

"응. 거짓이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처음엔 거짓은 거래라고 생각했어. 돈과 서비스의 교환. 하지만..."

준호가 내 눈을 봤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빛이 얼마나 상처받아 있는지 깨달았다.

"어떤 거짓은 처음부터 거래가 아닐 수도 있어. 한쪽은 거래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쪽은 이미 거래를 넘어선 거야. 그럼 그건 뭘까? 사기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내가 숨을 쉴 수 없었다.

"준호, 그건..."

"괜찮아. 난 알고 있어. 이건 계약이야. 그리고 넌 이 관계를 거래로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날 봐 봐."

그가 일어섰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난 이미 거래를 넘어섰어. 너를 보면 가슴이 아파. 넌 나한테 차갑고, 나는 그게 싫어.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이 떨렸다.

"왜냐하면 난 너를 사랑하고 있거든."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생각했어. 만약 이 계약이 끝난다면, 난 뭐라고 할까. 고마워라고? 미안해라고? 아니면..."

그가 내 눈을 봤다.

"너한테 솔직해질 거야. 이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 있냐고. 아니면 영원히 거짓으로 남을 거냐고."

그의 질문 앞에서,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이. 상처받는 것이.

"지은아, 넌 거짓을 계속 유지할 거야? 아니면 이 거짓을 진실로 바꿀 거야?"

준호가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카페를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그의 어깨가 조금 떨렸다.

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준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노트북이 남겨져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나 있었다.

'거짓에서 시작된 사랑이, 언젠가는 진실로 변할 수 있을까. 그것을 결정하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이다.'

내 손이 떨렸다. 노트북 앞에 앉았다. 마우스를 집었다. 커서가 마지막 문장 뒤에 깜빡였다.

나는 타이핑을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짓은 이미 진실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진정한 관계란, 누군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무너지는 것이라는 것을. 준호,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손가락이 멈췄다. 마지막 세 글자를 쓸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랑해.'

글을 저장했다. 핸드폰을 들었다. 준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 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화면이 검게 변했다. 배터리가 나갔다. 내 손이 얼어붙었다.

노트북 화면을 다시 봤다. 내가 쓴 글이 아직 저장되지 않았다.

화면 우측 상단에 '저장되지 않음'이라는 표시가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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