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상의 계절
옥상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본 것은 색깔이 사라진 세상이었다.
"언니, 정원이 죽어가는 건가요?"
목소리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준호였다. 학교가 일찍 끝났던 모양이었다. 등에 매달린 보조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렸고, 얼굴에는 여름날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다른 감정이 떠 있었다. 두려움. 아니면 슬픔.
나는 한 발 한 발 옥상을 걸어 다니며 상태를 확인했다. 초록이 죽어가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가을은 급하게 깊어졌고, 아침저녁으로 내려앉은 찬 공기가 정원의 생명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었다. 토마토는 이미 검게 말라버렸고, 해바라기는 고개를 완전히 떨어뜨렸다. 그나마 버티던 장미도 꽃잎 절반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내 손이 닿는 것들이 모두 살아나던 기적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작동하고 있는 걸까. 다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일 뿐. 그 차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손가락들이 떨렸다.
흙을 찔러 습도를 재고, 줄기를 만져보고, 잎의 색감을 살펴봤다. 여름에 그렇게 생생하던 초록들이 회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멈출 수 없다는 공포가 가슴을 눌렀다.
이 아이는 지난 몇 달간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우산을 찾아 온 낡은 신발의 소년에서, 이제는 매일 옥상으로 먼저 달려오는 아이가 되었다. 손에는 언제나 물뿌리개를 들었고, 식물의 작은 변화도 나보다 먼저 감지했다.
"아니야. 쉬고 있는 거야."
내 목소리가 놀랍게 차분했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겨울은 정원이 자는 계절이야. 뿌리가 깊어지는 시간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거지. 죽음이 아니라."
준호는 시들어가는 해바라기 줄기를 만졌다. 손가락이 갈색 줄기를 타고 내려갔다가 떨어진 꽃잎에 닿았다. 그 작은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근데... 봄이 올까요? 확실하게?"
그 질문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내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도 봄을 믿나요? 옥상에서의 시간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나를 봐서 알 수 있었다. 준호도 나와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나와 함께할 누군가가 떠날까 봐.
"온다."
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반드시 온다."
---
토요일 오후였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나타났다. 노란 장갑을 낀 손으로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정리했다. 가지를 쳐내고, 떨어진 잎을 모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 움직임이 매우 능숙했다.
"죽음도 자연의 일부구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남편을 5년 전에 떠나보낸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슬픔과 동시에 깊은 수용이 있었다.
"내 남편도 이렇게 떠났지. 계절이 바뀌듯이."
나는 할머니 옆에 서서 함께 식물을 정리했다. 우리 둘 다 말이 없었다. 말을 더할 필요가 없었다. 흙을 만지는 손과 손이 닿아 있었다.
한서준이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중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가을 햇빛 속에서 안경을 벗어 닦았다. 렌즈에 맺힌 김을 호흡으로 제거하고, 다시 걸었다. 옥상 한쪽을 가리켰다.
"겨울이 오는군요. 하지만 봄을 기다리며 함께 있는 것도 좋네요."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10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해온 직장인이 이제는 옥상에 서서 계절을 말하고 있었다.
박소영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SNS에 올릴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저 옥상을 기록했다. 시들어가는 정원을. 죽음과 함께 있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이거 올려도 돼요?"
박소영이 나에게 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팔로워 수를 재는 계산 대신, 뭔가 진정한 것을 담아내고 싶은 욕망이 어린 눈빛이었다.
"어디에?"
"그냥... 진짜 커뮤니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올려."
박소영이 카메라를 내렸다. 그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진정한 것을 담아내려 할 때의 떨림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SNS 계정은?"
박소영이 나를 바라봤다. 질문의 의미를 아는 눈빛이었다.
"지우기로 했어요. 오늘 밤에."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해방감이 함께 있었다.
한미영과 준호가 함께 나타났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옥상에 모여 있었다. 할머니, 한서준, 박소영, 그리고 이제 한미영과 준호까지. 여섯 명이 한 정원 위에 서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평온했다. 따뜻했다. 죽어가는 정원을 함께 보고 있는 침묵. 완벽하지 않은 정원을 함께 보고 있는 침묵.
한미영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 잘 돌봐요?"
같은 질문을 또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대답하고 싶었다.
"안 돌봐요. 우리가 함께 돌봐요."
나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이 할머니가 가장 잘 알아요. 계절의 순환을."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있었다.
한미영이 내게 몸을 기울였다.
"가족들한테 이 자리 있다고 말하기로 했어요. 내일."
그 결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혼자만의 비밀로 지켜오던 시간을 타인에게 열기로 한 것이다.
---
저녁이 깊어갈 때 김재하가 나타났다. 그는 정원 한쪽에 작은 나무를 심기 위해 구멍을 파고 있었다. 남편을 15년 전에 잃은 사람의 손이 흙을 파고 있었다. 그 손에는 장갑이 없었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지난 몇 주간 그와 나 사이에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규정을 들먹이던 그가 이제 흙을 파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이 나무는?"
"봄에 피는 나무예요."
김재하가 흙을 파면서 말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대화를 걸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규정을 들먹이던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당신도 봄을 기다렸어요? 이 옥상에서?"
"네. 남편이 봄을 좋아했어요."
김재하의 손이 멈췄다. 흙 위에 멈춘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15년을 혼자 그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함께 기다리는 게... 다르네요."
나는 그의 옆에 앉아 함께 흙을 만졌다. 말을 하지 않았다. 함께 있었다.
"봄에 피는 나무를 심었어요."
김재하가 다시 말했다.
"함께 봄을 기다릴 거예요."
완벽한 대화가 아니라, 함께 있는 침묵. 그것이 타인과의 거리감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
일요일 아침, 준호가 옥상에 올 때 들고 있던 것은 우산이 아니었다. 물뿌리개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언니, 내일도 올 수 있어요?"
"응."
"모레도?"
"응."
"계속?"
나는 그 작은 손을 잠시 들었다가 놨다.
"응. 계속 와. 네가 필요해."
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9년을 혼자 살아온 사람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순간 내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이 아이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손의 기적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계속 돌아오는 발걸음이었다.
준호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
옥상은 변했다. 초록이 사라졌지만, 다른 것들이 생겼다. 할머니의 노란 장갑. 한서준이 꽂아놓은 온도계. 박소영이 찍은 사진들을 정렬한 작은 액자. 준호가 그려 붙인 캐릭터 스티커들. 한미영이 가져온 따뜻한 음료를 데워 두는 작은 보온병.
모두가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지만,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한서준이 온도계를 확인했다.
"요즘 밤에는 5도까지 떨어져요. 식물들도 휴면에 들어가는 시기네요."
"휴면이 뭐예요?"
준호가 물었다.
"쉬는 거야. 겨울을 견디기 위해 쉬는 거."
내가 대답했다.
"그럼 죽은 거 아니에요?"
"아니야. 쉬고 있는 거야. 봄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할머니가 내 말을 이었다.
"내가 봤어. 죽음도 자연의 일부구나 하는 걸.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당연한 거구나."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십 년 이상을 혼자 살아온 사람의 무게가 있었다. 남편을 여의고 5년을 시간을 때우며 살다가, 이곳에서 함께 계절을 맞이하게 된 사람. 그 변화가 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한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피로가 있었지만, 다른 무언가가 덧칠해져 있었다. 평온함이었을까. 아니면 함께 견딘다는 것의 안도감이었을까.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그녀는 여기 있었다.
---
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모두가 내려가고,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봄이 올 것 같은 바람이. 차갑지만 어딘가 새로운 것을 담은 바람.
손가락을 지나가는 바람에 맡겼다. 그 차가움이 피부에 닿았다. 죽음과 재생을 동시에 품은 바람. 계절의 바람.
나는 무릎을 꿇고 흙을 만졌다. 이제는 무언가를 살려내려는 욕망이 아니었다. 그저 흙의 질감을 느끼고, 봄을 기다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시든 식물들 사이에서 작은 새싹이 나 있었다.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 내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자라난 새싹. 기적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이었다.
나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할머니가 하던 것처럼, 그저 옆에 있기로 했다.
그때 할머니가 나타났다. 노란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옆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는 함께 흙을 만졌다. 봄을 기다리며.
할머니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흙 위에, 새싹 옆에. 그 손의 움직임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죽음도, 기다림도, 함께 있음도.
"함께 있으니까 괜찮아요?"
내가 물었다.
"응. 괜찮아. 혼자일 때는 계절도 무겁던데, 함께니까 가볍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놓친 것이 무엇인지.
정원은 나를 치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원은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감을 무너뜨리는 것은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함께 부러진 부분들을 감싸안는 것이라는 것을.
9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타인을 신뢰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던 나. 그런 나를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 그리고 그 필요함을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를 배웠다.
할머니와 나는 오랫동안 함께 흙을 만졌다. 말 없이. 그 침묵 속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그리고 언젠가는 봄으로.
하지만 봄이 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새싹이 자라날 것이라는 약속도 없었다. 우리가 함께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보증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 있었다. 흙을 만지며 기다리고 있었다.
---
월요일 아침, 건물 관리자가 옥상에 올라왔다.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옥상을 한 바퀴 돌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나무. 액자. 스티커들. 그리고 우리가 남긴 모든 흔적들.
"이것들 다 정리하셔야 합니다. 규정상—"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내 손은 여전히 흙 위에 있었다.
관리자가 떠난 후, 옥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제 그 조용함은 다르게 느껴졌다. 평온함이 아니라, 위협이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이 자리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준호의 스티커를 바라봤다. 그리고 알았다. 이 모든 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와야 한다는 것을.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