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위기
일요일 아침 여섯 시. 손을 토마토 모종에 얹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옥상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식물들의 잎이 하나둘 변색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물감을 묻혀서 정확하게 닿힌 자국처럼, 갈색 반점들이 퍼져 있었다. 토마토, 옥수수, 나팔꽃, 해바라기, 고추, 상추. 모든 식물이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배치된 갈색 반점들. 잎 끝의 까만 곰팡이. 시든 줄기들.
언제나처럼 따뜻함이 흐를 거라고 믿었다. 손 안의 초록빛이 잎의 갈색을 밀어낼 거라고 믿었다.
손을 다시 얹었다. 다른 식물에, 또 다른 식물에. 반복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내 손이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정확히 23초가 걸렸다. 나는 초를 세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세는 것으로 현실을 거부할 수 있을 것처럼.
일요일 오전 9시 35분. 할머니 집 거실.
내가 할머니 집으로 간 이유는 단순했다. 혼자서는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말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했다. 이게 정말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이건 병충해예요."
한서준이 식물 도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사진에서 본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토마토 잎마름병. 고추 탄저병. 나팔꽃 흰가루병.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습도와 온도 변화 때문이에요. 요즘 날씨가 급격하게 바뀌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물을 너무 많이 줬어요."
한미영이 나를 바라봤다. 준호는 내 옆에 앉아 있었고, 할머니는 부엌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 박소영은 오지 않았다. 어제부터 연락이 없었다.
"얼마나 걸려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음... 적절히 관리하면 한두 달이면 회복될 거예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한서준이 말을 흐렸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뭐예요?"
"뿌리까지 갈 수도 있어요."
일요일 오후 2시. 옥상.
나는 혼자였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다고 했고, 한미영은 준호를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한서준은 병충해 치료약을 구하러 나갔다. 박소영은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나는 토마토 모종을 들었다. 까만 점들이 더 많아져 있었다. 이제 확실했다. 내 손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혹은 그 능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혹은 처음부터 그런 능력은 없었고, 내가 착각했을 뿐이었다.
나팔꽃 덩굴을 만졌다. 시든 줄기가 부스러져 내 손가락 사이에서 가루처럼 흩어졌다. 아, 이건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그제야 울음이 나왔다.
처음엔 목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다음엔 몸 전체를 흔드는 떨림이었다. 나는 식물들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흙이 내 무릎을 적셨다. 손가락 사이로 흙이 파고들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 정원에서.
아무도 내 울음을 듣지 않았다. 옥상 위엔 나 혼자였다.
일요일 오후 5시 47분. 메시지 알림.
**한미영**: 준호가 물어봐요. 정원이 죽는 거라고. 이유진 씨, 우리가 뭘 잘못했어요?
나는 화면을 껐다. 읽지 않았다.
**한미영**: 죄송해요. 저... 우리가 이 모든 걸 망쳤나 봐요.
또 다른 메시지가 들어왔다. 역시 읽지 않았다.
**한서준**: 회사 동료들한테 물어봤어요. 구조적 문제라고 했어요. 옥상에 이렇게 많은 무게를 지탱할 수 없대요. 처음부터 불가능했어요. 우리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이 메시지를 보고 나는 화면을 내려놨다. 한서준은 이미 관리자와 대화했다는 뜻이었다. 구조적 문제.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박소영**: 죄송합니다. 저 SNS 그만할게요.
마지막 메시지는 열지 않았다.
내 화면이 어두워졌다.
일요일 오후 6시 12분. 옥상.
박소영이 나타났다.
"어제 SNS 말고 여기에 올렸어요."
박소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는 '옥상 정원 보존 청원'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고, 그 아래엔 그녀가 찍은 정원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커뮤니티 게시판이에요. 이 아파트 주민들이 보는 곳."
"왜요?"
박소영이 한 발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이 흙과 병충해 냄새로 가득한 옥상 위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SNS는 거짓이었어요. 완벽한 삶, 완벽한 힐링, 완벽한 우리. 다 거짓이었어요."
그녀가 숨을 쉬었다. 옥상의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흔들었다.
"근데 여기, 이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들은... 적어도 이웃들에게만큼은 진짜 것 같았어요. 실제로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보는 거니까."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SNS에 올려진 그 밝은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저 이 모든 게 거짓이었어요. 제 삶 전부가 거짓이었어요. 회사도 거짓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거짓이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거짓이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부터 연락이 없었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그녀가 혼자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나.
"근데 여기서만... 이 정원에서만..."
"여기서만 뭐예요?"
내가 물었다.
"여기서만 진짜였어요."
박소영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그녀도 울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있었다.
"나도 그래."
내가 말했다.
"나도 그래."
박소영이 나를 바라봤다.
"뭘요?"
"모든 게 지금처럼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어. 정원도, 우리도, 이 감정도. 근데 식물은 자라고, 시들고, 죽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어."
내가 말하고 있었다. 아직 내 자신도 믿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뭔가를 망친 건 아니야."
일요일 오후 7시. 할머니 집.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최영숙 할머니가 물었다. 거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그녀의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가득했다.
"정원이 없으면요? 정원이 다 죽어버리면요?"
할머니가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묻는 것이 아니라 절망하는 것 같았다.
"우리 다시 혼자가 되는 거 아닐까요?"
준호가 엄마 옆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내 얼굴을 향해 있었다. 마치 내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일요일 밤 10시. 옥상.
나는 혼자였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 후, 나는 옥상에 남았다. 까만 반점들이 더 깊어진 식물들 사이에서, 나는 한 가지 깨닫고 있었다.
내 손이 식물을 살리는 손이 아니라는 것.
아니, 그게 아니었다. 내 손이 살린 건 식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죽어가는 정원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 손이 만졌던 거였다.
그리고 이제 그 손도 더 이상 아무것도 살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토마토 모종을 들었다. 줄기 전체가 까만 점들로 뒤덮혀 있었다. 곧 이것도 죽을 거였다. 모든 게 죽을 거였다. 그리고 사람들도 다시 무너질 거였다.
공포였다.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라는, 처음부터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공포였다.
토마토 모종이 손가락 사이에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줄기 전체가 검은 반점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만지는 순간 가루처럼 떨어져나갔다.
무릎이 꺾였다.
아파트 옥상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나는 무너졌다. 화분들 사이에서. 죽어가는 것들 사이에서.
울음이 나왔다. 9년을 참아온 울음이 한 번에 터져나왔다.
옥상 위의 밤하늘은 도시의 불빛에 물들어 있었고, 내가 흙 위에 떨어뜨린 눈물은 마치 그 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손을 들었다 다시 내렸다. 여러 번. 반복했다. 식물 하나하나를 다시 만져봤다. 토마토, 상추, 민트, 로즈마리. 모두 같았다. 까만 점들. 부드럽게 썩어가는 줄기들. 내 손의 온기가 닿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왜... 왜 안 돼?"
목소리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옥상 위에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9년간 같은 자리에서 무기력했던 사람이 갑자기 손을 뻗었을 때, 그 손이 만진 모든 게 살아났다. 할머니의 눈빛, 준호의 웃음, 한서준의 호흡, 박소영의 눈물. 다 살아났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 내 손은 죽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일요일 밤 10시 47분.
화면에 "엄마"라고 떠 있었다. 한미영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메시지가 왔다. "준호가 자꾸 옥상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요.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요?"
또 메시지가 왔다. "제가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옥상의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계단 입구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형체만 보였다.
"누구야?"
내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야."
한서준이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는 옥상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당신은... 왜?"
"못 자겠어. 한미영 메시지를 받고 자꾸 생각이 나. 당신이 혼자 있을 것 같았어."
한서준이 나 옆에 앉았다. 그가 들고 있던 것은 스프레이 병이었다.
"살충제. 약국에서 샀어. 병충해 치료약."
나는 그를 바라봤다.
"소용 없어."
"모르지."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담담했다.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나?"
한서준이 가장 가까운 화분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약한 냄새가 옥상에 퍼졌다. 그는 계속했다. 하나, 둘, 셋. 모든 화분에.
"이거 한 번에 낫는 건 아니겠지. 며칠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안 될 수도 있고."
그가 멈췄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건 이거 아니겠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당신이 모든 걸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알았어. 당신의 손이 모든 걸 살릴 수 없다는 걸 이제 알았어."
한서준이 스프레이를 내게 건넸다.
"그래도 올 거야."
나는 그의 손에서 스프레이를 받았다. 손이 떨렸다.
"망칠까봐 무서워."
"이미 망가진 거 아닌가."
그가 말했다.
"그래서 망칠 게 뭐가 있어?"
내가 웃음이 터져나왔다. 울음 같은 웃음이었다.
옥상에서 우리는 밤새 스프레이를 뿌렸다. 일요일 밤 11시부터 월요일 새벽 4시까지. 모든 화분에, 모든 줄기에, 모든 잎에. 한서준이 한쪽을 하면 나는 다른 한쪽을 했다.
말은 많지 않았다. 가끔 한서준이 물었다.
"내일 회사 안 가?"
"휴직 중이야."
"아, 그래."
그것뿐이었다.
새벽이 되자, 옥상이 조금씩 밝아왔다. 하늘이 검은색에서 진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린 살충제가 식물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내일 밤에도 올게."
한서준이 말했다.
"안 돼도 괜찮아. 며칠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안 될 수도 있고."
그는 침묵 속에서 마지막 화분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래도 올 거야. 당신 혼자 하게 둘 수는 없지."
그가 떠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희미해졌다.
나는 옥상에 남겨진 화분들을 바라봤다. 살충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할머니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망가지는 것. 함께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옥상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었다.
할머니였다. 최영숙 할머니는 이미 옥상에 와 있었고, 손에는 노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어제 한서준이가 말했어요. 밤새 약을 뿌렸대요. 나도 뭔가 해야겠더라고요."
할머니는 말없이 나 옆에 섰다. 그리고 함께 화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좀 나아 보이네."
"이건?"
"이건 좀 더 걸릴 것 같아."
우리는 계속했다. 한 화분씩, 한 잎씩. 병충해가 진정되는지 확인하고, 죽은 부분은 제거하고, 살아있는 부분을 격려하듯 만졌다.
"당신 손이 특별한 거 아니었나?"
할머니가 물었다.
"네."
"지금은?"
"지금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웃었다. 깊은 주름 속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에요?"
"당신도 우리처럼 불완전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럼 이제 우리가 정말 함께할 수 있는 거야."
월요일 오후, 박소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SNS를 켜지 않았다. 그냥 옥상에 와서, 손을 더럽히며, 우리와 함께 했다.
"저 사진 못 올려요. 이 정도면 완벽한 힐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올려도 돼."
내가 말했다.
"이대로."
박소영이 나를 바라봤다.
"완벽하지 않아도요?"
"특히 그럴 때."
옥상은 다시 채워졌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월요일 저녁, 준호와 한미영이 왔다. 준호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할머니가 우리도 도와줄 수 있대요."
준호가 말했다.
"정원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만 아니라, 함께 아프는 것도 괜찮다고."
한미영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미안함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당신이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에요."
"왜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옥상의 식물들이 모두 나을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옥상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떨어진 것들을 줍고 있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요일 아침.
옥상의 한쪽 구석에서 새싹이 났다.
작고, 연약하고, 언제든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새싹이.
준호가 먼저 발견했다.
"언니! 여기 봐!"
그가 외쳤다.
우리는 모두 그곳으로 달려갔다. 새싹은 여전히 작았다.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내 손이 떨렸다. 이번엔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이 뭐였는지, 나는 아직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 함께 이거 키워보자."
"네."
내가 대답했다.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