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토요일 오전 10시. 옥상 계단을 올라가다 멈췄다.

공문이 붙어 있었다.

'아파트 옥상 사용 금지. 구조 안전상 사유로 2024년 X월 X일부터 시행. ─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문이 자꾸 공문으로 향했다. 공문 아래엔 김재하의 서명이 있었다. 그의 직인도. 마치 이미 결정된 것처럼.

옥상 문을 밀고 들어섰다. 할머니와 한서준, 박소영, 한미영이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지난 화에서 청원 활동을 시작한 지 사흘째. 이미 36가구 중 15가구가 서명했다. 토요일인데도 모두가 나왔다.

"어? 유진아, 얼굴이 안 좋은데?" 할머니가 먼저 눈치챘다.

"공문이 붙었어. 옥상 사용 금지."

한미영의 손이 멈췄다. 박소영이 입을 다물었다. 한서준이 포스터를 내려놨다.

"언제부터?" 할머니가 물었다.

"내일부터."

거짓이었다. 공문에는 '2024년 X월 X일'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긴급성을 만들어야 했다. 이들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 오늘이 마지막네요?" 한미영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야. 몇 일만 조용히 있자." 이유진이 말했다. "관리자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너무 티나게 활동하면 더 빨리 철거할 거야."

그것도 거짓이었다. 아무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정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거짓도 괜찮을 것 같았다.

"준호는?" 한미영이 물었다.

"학원 가는 날이지.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유진의 말을 믿었다. 할머니가 포스터를 내려놨고, 한서준도 따라했다. 박소영은 SNS에 올린 청원 글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한미영만 옥상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봤다.

"유진아, 이게 맞는 건가요?"

"뭐가?"

"거짓말 하는 게. 우리가."

이유진은 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려간 후,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식물들이 무성했다. 나무의 잎은 초록색이었고, 화분들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죽어가던 정원은 이제 번성하는 정원이 되었다.

옥상 문 앞으로 갔다. 낡은 자물쇠를 보았다.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9년 동안 해온 일이 떠올랐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고, 먼저 문을 닫고, 거리를 두고, 혼자 모든 걸 견디려고 했던 모습.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그것과 같지 않은가?

정원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 주민들을 조용히 있으라고 시켰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했다. 마치 옛날처럼.

손을 내렸다.

그때 떠올랐다. 9년 전 그 날. 누군가가 자신을 떠나가는 모습. 그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그 이후로 자신은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았다. 먼저 문을 닫으면 떠나갈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9년을 버텼다.

하지만 정원은 달랐다. 정원은 자신을 필요로 했다. 준호는 자신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자신과 함께 웃었다. 한미영도, 박소영도, 한서준도 이 공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옥상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화분 하나의 잎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어제는 선명한 초록색이었는데. 다른 화분도 살펴봤다. 몇 송이의 꽃잎이 말려 있었다.

손을 화분에 올렸다. 화분의 흙은 딱딱하게 말라 있었다. 물을 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손을 대면 흘러나오던 생명력이 오늘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손가락 끝이 저항감을 느꼈다. 식물의 줄기를 만졌을 때 그 탄력이 빠져 있었다.

옥상 계단에서 발걸음이 들렸다.

"유진 씨?"

한미영이 다시 올라왔다. 포스터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내려가셨다고 생각했는데요."

"응. 뭔가 빠뜨린 게 있어서."

한미영이 옥상을 둘러봤다. 식물들을 보다가 이유진을 봤다.

"뭔가 달라졌어요. 당신이. 더 멀어진 것 같아요."

이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원 활동을 멈춘 거, 그게 정말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아요." 한미영이 말했다. "우리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니야."

"그런데 왜요? 왜 그러세요?"

이유진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 잘 돌봐요?" 한미영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당신은 어떻게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견뎌요?"

그 질문 속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뜻. 함께하고 싶다는 뜻.

이유진은 "그냥..." 이라고만 대답했다.

한미영이 내려갔다.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식물들이 자꾸만 자신 같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물을 주었다. 그래서 손을 대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원이 살아났다.

그런데 지금, 자신도 그렇게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밀어내고, 거짓을 말하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고 했다. 자신의 내면 황폐함이 정원에 투영되었던 것처럼, 지금 자신의 불안정함이 식물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화분들을 다시 봤다. 어제는 선명했던 초록색이 흐려지고 있었다. 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옥상 계단에서 또 다른 발걸음이 들렸다.

이번엔 김재하였다. 손에 자물쇠와 공구를 들고 있었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제 그만해. 옥상 문을 잠가야 해."

이유진이 옥상 문 앞에 섰다. 김재하와 자신 사이의 거리는 5미터 정도였다.

"건축 전문가 진단이 나왔어. 옥상의 구조상 문제가 있어. 토양과 화분, 사람들의 무게를 더 실을 수 없어. 방수층이 손상되면 아래층에 물 새는 문제까지 생겨. 그럼 주민들한테 벌금이 부과되고, 건축주가 강제철거 일정을 잡을 거야. 그게 되면 이 아파트 전체가 난리 나."

현실적인 위협이 구체화되었다. 단순한 구조 진단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위협하는 법적·경제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뜻이었다.

"아직..."

"아직 뭐야? 청원서? 36가구 중 15가구밖에 안 서명했어. 2주 남았어도 안 될 것 같은데? 건축주는 이미 구조 개선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어. 이 옥상은 원래 사용 금지 구역이었어. 당신이 허락 없이 만든 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 이유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주민들에게 한 말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몇 일만 조용히 있자'는 거짓이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김재하가 옥상 문 쪽으로 다가왔다.

"물러나."

"안 돼."

이유진이 옥상 문 앞에 더 꼿꼿하게 섰다. 자신의 손을 들었다. 자물쇠를 만질 준비를 했다.

김재하가 다가왔다.

이유진의 손이 자물쇠에 닿았다. 생명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낡은 금속이 단단해졌다. 녹이 벗겨졌다. 자물쇠가 강해졌다. 김재하가 와도 열 수 없을 만큼.

하지만 그 순간, 멈췄다.

손을 내렸다.

"뭐 하는 거야?" 김재하가 물었다.

이유진이 자신을 봤다. 자물쇠를 강하게 만들려고 손을 올렸던 자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해서 먼저 문을 닫으려던 자신. 정원을 지키려다 사람들을 밀어내던 자신.

그리고 9년 동안 반복했던 모든 일들.

"미안해."

이유진이 말했다.

"뭐가?"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주민들한테. 청원 활동을 멈추라고.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제가... 혼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정원이 사라질 때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기 싫어서. 그래서 미리 밀어낸 거예요."

김재하의 표정이 변했다. 적대적인 것에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9년 전에 누군가를 잃었어요. 그 이후로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았어요. 먼저 마음의 문을 닫으면 떠나갈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9년을 혼자 버텼어요. 그런데 이 정원이 저를 살렸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정원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밀어내면서, 거짓을 말하면서."

옥상의 식물들이 더욱 시들었다. 화분들의 잎이 더 노랗게 변했다.

김재하가 자물쇠를 내려놨다. 공구도 함께.

"나도 처음엔 이 정원이 싫었어. 규칙 위반이고, 위험하고, 관리자로서 막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는 옥상을 둘러봤다. "할머니가 여기서 웃는 모습을 봤어. 그 아이가 자신감 있게 물을 주는 모습을 봤어. 당신이 이 공간을 만지면서 누군가를 돌보는 모습을."

"네?"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되면... 이 정원도 죽을 것 같아. 당신이 죽으니까."

김재하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묻어났다.

"내일 건물주한테 다시 얘기해 볼게. 구조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비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은... 사람들이랑 다시 얘기해야 해. 진짜로."

김재하가 계단 쪽으로 갔다. 자물쇠는 그대로 둔 채로.

"그리고 당신 정원... 진짜 괜찮은 것 같아."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내려갔다.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이유진이 화분들을 봤다. 시들고 있는 식물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손을 다시 화분에 올렸다. 이번엔 다르게.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미안해. 정말."

손을 통해 흐르는 생명력. 이전보다 약했지만, 흐르고 있었다. 화분의 잎이 조금씩 초록색을 되찾았다. 꽃잎들이 다시 펴졌다.

하지만 모든 식물이 살아나지는 않았다. 한 송이의 꽃은 떨어진 채로 남았다. 이유진이 그것을 주웠다. 죽은 꽃잎을 손에 들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거짓말이 초래한 손상 중에는 완전히 복구되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옥상 계단에서 또 다른 발걸음이 들렸다. 이번엔 준호였다. 학원에서 돌아온 것 같았다.

"언니! 오늘도 물 줘도 돼?"

이유진이 돌아봤다. 준호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응. 같이 하자."

준호가 옥상 위로 올라왔다. 시든 식물들을 봤다.

"어? 이 꽃들 왜 이래?"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너한테."

준호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이유진을 봤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물을 들고 화분들에 천천히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유진도 따라했다. 옥상의 식물들이 천천히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되살아나지는 않았다. 한 송이의 꽃은 돌아오지 않았다.

준호가 물통을 내려놨다.

"언니, 나 물어봐도 돼?"

"응."

"왜 갑자기 청원 활동 멈추라고 했어? 할머니가 슬펐어. 엄마도."

이유진이 준호를 봤다. 아이의 눈은 맑고 직설적이었다.

"내가... 두려웠어. 이 정원이 없어질까봐.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거야. 사람들을 밀어내는 게 정원을 지키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거짓말은 안 돼."

준호가 말했다. 아이다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어른 같은 확신이 있었다.

"응. 미안해."

이유진이 준호의 머리를 쓸어줬다. 그 손이 닿는 순간, 준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일 할머니한테 미안하다고 할 거야?"

"응. 주민들 다한테."

"그럼 괜찮아. 할머니는 화 잘 안 내."

준호가 옥상 한구석으로 갔다. 부러진 화분 옆에 앉았다. 이유진은 그 아이를 바라봤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한다고 한미영이 말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여기서 준호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언니, 이 정원 없어지면 나 어떻게 되는 거야?"

준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또 다른 누군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목소리였다.

이유진이 움직였다. 준호 옆에 앉았다.

"안 없어질 거야. 내가 지킬 테니까."

"정말?"

"정말."

이유진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은 따뜻했고, 작았고, 믿음으로 가득했다. 그 손을 잡는 순간, 이유진은 깨달았다. 이것이 정원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 이유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미영이었다.

"유진 씨? 지금 좀 시간 있으세요? 옥상에 있으세요?"

"네, 금방 내려갈 거예요."

"아, 그냥... 나 지금 밖에 있어서. 잠깐 올라가도 돼? 준호 데리러 왔는데, 할머니가 말해 줬어. 당신이 청원 활동 멈추라고 했다고."

침묵이 흘렀다.

"네, 제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올라와. 우리 얘기 좀 하자."

통화가 끝났다.

이유진이 준호를 봤다. 아이는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다!"

준호가 소리쳤다.

발걸음 소리가 옥상 쪽으로 다시 올라왔다. 한미영이 나타났다. 30대 중반의 여자.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났지만, 눈은 단호했다.

"유진 씨."

"네, 안녕하세요."

한미영이 옥상을 둘러봤다. 시든 식물들을 보다가 다시 이유진을 봤다.

"뭐 한 거예요? 왜 갑자기 청원 활동 멈추라고 했어요? 당신이 휴직까지 했잖아요."

이유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겁이 났어요. 이 정원이 정말 없어질까봐. 그래서 미리 사람들을 밀어낸 거예요. 혼자가 되려고. 이 정원이 사라질 때 누군가가 떠나가는 모습을 다시 보기 싫어서."

한미영의 표정이 변했다.

"9년 전에 누군가를 잃었어요. 그 이후로 아무도 가까이 두지 않았어요. 먼저 마음을 닫으면 떠나갈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9년을 혼자 버텼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이 정원을 찾아왔어요. 준호가, 할머니가, 박소영이, 한서준이.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돌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정원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서... 다시 옛날처럼 혼자가 되려고 했어요."

한미영이 말했다.

"당신 말을 들으니까... 뭔가 달라졌어요. 더 멀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이해가 돼요. 왜 그랬는지."

"제가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그럼 지금 뭐 할 거예요?"

"내일 주민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할 거예요. 그리고 이 정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을 거고요. 김재하 님도 건물주와 얘기해 주기로 했어요."

한미영이 옥상을 둘러봤다. 시들고 있는 식물들.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식물들. 그리고 떨어진 꽃잎.

"당신 손 봤어요. 이 정원을 만지면 식물들이 살아나요."

"네."

"근데 당신 감정이 안 좋으면 이들도 죽어요?"

이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도 여기서 함께 있어야 해요. 혼자가 아니라. 우리랑 함께."

한미영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책임감이 아니라, 진정한 연대의식이 담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할머니 집에서 청원 활동 다시 시작할 거예요. 당신도 와야 해요."

"네. 꼭 가겠습니다."

한미영이 옥상 한구석의 꽃을 봤다. 떨어진 꽃잎들.

"이 꽃은?"

"제 실수예요. 못 살려요. 완전히 죽었어요. 제 거짓말 때문에."

한미영이 그 꽃을 주웠다. 떨어진 꽃잎을 손에 들고 살펴봤다. 부서질 듯 얇은 것을 조심스레 접었다. 작은 노트의 한 페이지에 끼워 넣었다.

"이건 내가 가질게. 기억하라고.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그리고 혼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우리가 이 꽃을 기억하면서 청원 활동을 할 거야. 당신의 진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네."

"준호! 올라와!"

준호가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엄마, 이 정원 좋지? 언니가 만들었어."

"응. 좋다. 근데 우리 언니가 실수를 했어. 그래서 내일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알겠지?"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또 와. 청원 활동할 거야."

한미영이 이유진을 봤다.

"당신도 내일 아침 9시에 할머니 집에 와요. 다들 모일 거야."

"네, 꼭 가겠습니다."

한미영이 준호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언니! 내일 봐!"

준호가 외쳤다.

이유진이 손을 들어 준호를 배웅했다.

옥상에 혼자 남겨졌다.

이유진이 옥상 전체를 둘러봤다. 시들고 있는 식물들. 하지만 완전히 죽지는 않은 식물들. 그리고 자신의 손.

손을 다시 화분에 올렸다. 이번엔 진심으로. 거짓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옥상의 식물들이 천천히 초록색을 되찾았다. 꽃잎들이 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 송이는 떨어진 채로 남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신의 거짓말이 초래한 손상 중에는 완전히 복구되지 않을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이유진은 이제 알았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녁이 깊어가고 있었다.

옥상의 바람이 세어졌다. 남겨진 꽃잎이 이유진의 손가락 사이에서 부서져 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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