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정원의 확대

월요일 오후 3시 15분.

회사 책상에서 메일을 읽고 있었다. 제목은 '옥상 정원 관련 보고'.

발신인은 김재하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옥상에 물이 고여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구조 점검 결과, 옥상 추가 하중으로 인해 건물의 안전 기준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관리자 판단으로 즉시 조치 바랍니다'였다.

나는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손가락이 마우스를 움직이지 않았다.

옥상 정원을 없애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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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마지막 층계를 밟고 옥상으로 나선다. 한서준이라는 이름의 39세 남자. 10년을 같은 회사 같은 자리에서 일해온 사람이었다.

"여기가 뭐예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혼낼까봐 두려워하는 톤. 나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 익숙한 것을 느꼈다. 9년을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온 내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

"정원입니다."

짧은 대답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서준은 내 대답보다 정원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옥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화분들이 이제는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무의 가지에는 새로운 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한서준은 그 풍경 앞에서 멈춰섰다.

"이게... 저번 주에는 다 죽어 있던 것 같은데."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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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옥상은 여느 때보다 붐볐다. 최영숙 할머니가 먼저 와서 화분들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고, 한준호는 물 주는 방법을 다시 한 번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박소영.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정원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유진 언니, 여기 좀 봐. 이 앵글 어때?"

박소영이 카메라 화면을 보여줬다. 그녀의 렌즈에 담긴 정원은 내가 보는 정원과 달랐다. 더 밝았고, 더 완벽했고, 더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나는 그 화면을 바라봤다. 목이 메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좋아."

한서준은 옥상 모서리에 서 있었다. 어제 밤 나타났던 그 남자. 그는 정원에 들어오지 않고 가장자리에서만 멈춰 있었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서준 씨, 이쪽으로 와요. 물을 주는 거 배워봐요."

할머니가 먼저 그를 부르고 나섰다. 한서준은 조심스럽게 한 발, 또 한 발을 내디뎠다. 물을 주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그의 얼굴이 천천히 풀어졌다. 손이 화분 위에 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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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한미영이 나타났다. 한준호의 엄마.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얼굴에는 피곤함이 뚜렷했다. 하지만 준호가 정원을 보며 얼굴을 밝히는 순간, 그녀의 표정도 함께 부드러워졌다.

"준호가 매일 이곳 얘기를 해요. 엄마도 한 번 가야 한다고."

한미영이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괜찮아요. 얼마든지 와도 돼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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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3시.

옥상 문이 열릴 때마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왔다. 준호는 이미 와 있었고, 그 옆에 한미영이 처음으로 발을 디디고 있었다. 한서준은 화분을 정렬하는 일을 자신의 역할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고, 할머니는 모든 일을 감시하듯 천천히 이동하며 지시를 내렸다. 박소영은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며 다시 한 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모두의 중심에 서서 물을 나르고 있었다.

손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함이 각 화분으로 전해졌다. 시든 꽃들의 잎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새싹들이 흙을 뚫고 나왔다. 한 주일 전의 황폐함은 이제 흔적도 남지 않았다. 대신 색깔이 가득했다. 초록색, 빨강색, 노랑색, 보라색. 계절이 한 번에 옥상에 도착해버린 것처럼.

"와, 봐 봐, 이거 어제는 시들어 있었는데."

박소영이 손가락으로 한 송이의 꽃을 가리켰다.

"이게 하루 만에?"

한서준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더 강한 것은 경탄이었다. 번아웃으로 지친 그 30대 남자의 얼굴이 천천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 봤어?"

할머니가 내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내 시절엔 이렇게 빨리 안 자랐는데."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도 웃었다. 그 웃음에 준호가 따라 웃기 시작했고, 한서준도 웃었다. 박소영은 그 웃음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미영.

한미영은 처음엔 서 있기만 했다. 아들이 자기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의 얼굴에 선명했다. 하지만 준호가 자신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보여주자, 그녀의 얼굴도 천천히 웃음으로 변했다.

옥상 전체가 웃음으로 채워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이 움직였다. 더 크게, 더 깊게. 처음으로 나도 그 웃음에 포함되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들이 내 정원에서 웃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함께 가슴을 채워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목이 메었다.

웃음이 계속될수록, 나는 그것을 느꼈다. 마치 얼음이 녹으면서 생기는 찬 공기처럼. 웃음 속에 다른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기쁨과 함께 불안이, 희열과 함께 두려움이.

박소영의 카메라 렌즈가 우리를 향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웃고 있는 이 장면이 어딘가에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완벽한 힐링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힐링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불안정함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한서준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미소 뒤에는 여전히 10년간의 번아웃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한미영의 죄책감은 웃음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준호. 그 아이도 내 정원을 떠나면 또 혼자가 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면 꽃은 시들 것이고, 사람들도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또 혼자가 될까.

준호가 새로 심은 씨앗 옆에 작은 팻말을 세우고 있었다. 그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울지, 언제 꽃을 피울지, 그리고 언제 죽을지. 나는 그 모든 과정을 그대로 감지할 것이었다. 정원의 모든 생명의 순환을 내 몸으로.

그것이 이 손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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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내려앉자 모두가 하나둘 옥상을 떠났다. 준호는 엄마 손을 잡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미영은 떠나기 전에 내게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내일 또 온다고 말했다. 한서준은 침묵으로 작별을 고했다. 박소영은 마지막으로 한 장의 사진을 더 찍고 떠났다.

옥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서쪽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는 정원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흙이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는 손을 흙 위에 완전히 묻었다.

따뜻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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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김재하로부터 답장이 왔다. 하지만 자료는 없었다. 대신 '관리자 판단으로 즉시 조치'라는 문구만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었다.

"김재하 과장님 계신가요?"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네, 뭔데요?"

"옥상 정원 관련해서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화분들을 치우는 게 맞습니다. 안전 기준이 있거든요."

"그 기준이 뭔지 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자료를 달라고 했는데 안 주셨어요."

"이건 관리자의 권한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만나서 얘기합시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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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나는 건물 관리실 앞에 서 있었다. 김재하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불편함이 선명했다.

"화분들이 옥상의 하중 기준을 초과했습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증거를 보여주세요."

"이건 전문가 판단입니다."

"어떤 전문가? 언제 점검했나요?"

김재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게 등을 돌렸다.

"화분들을 치우지 않으면 건물주에게 보고하겠습니다. 그러면 더 큰 문제가 될 겁니다."

그 말은 위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화분들을 왜 없애려고 하세요?"

"안전 때문입니다."

"정말로?"

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건물에 있는 다른 옥상들은 어떻게 되나요? 거기도 화분이 있는데?"

김재하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 뒤에는 다른 감정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줬으면 하는 바람처럼.

"이건 너의 결정이 아니야. 이건 건물의 결정이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면 건물주를 만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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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저녁, 나는 옥상에 서 있었다.

모든 화분이 그대로 있었다. 준호가 어제 새로 심은 씨앗도, 할머니가 가지고 온 국화도, 한서준이 정렬한 화분들도. 내일이면 모두 사라질 것이었다.

나는 손을 흙 위에 올렸다. 하지만 따뜻함이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마치 내 손도 이미 죽어 있는 것처럼.

그때,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미영이 올라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준호에게 들었다고 했다. 정원을 없애야 한다고.

"유진 언니."

한미영이 나를 바라봤다.

"정원이... 정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김재하가 안전 문제라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나는 말을 멈췄다.

"저는 싸우고 있어요. 건물주를 만나려고 하고 있어요."

한미영의 눈이 커졌다.

"그런데요."

그녀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당신이 한 것은 물을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준호가 변했거든요. 예전엔 집에 와도 혼자 방에만 들어가던 아이가, 이제는 내게 자꾸만 말을 걸어요. 당신 덕분이에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한미영의 눈이 젖어 있었다.

"정원이 없어지더라도, 준호는 변할 거예요. 당신이 준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박소영이 SNS에 올린 사진 봤어요?"

한미영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옥상 정원의 사진들이 떠 있었다. 그리고 댓글들이 가득했다.

'여기 어디예요?'

'이런 곳이 있다니!'

'힐링되네요!'

하지만 나는 그 댓글들을 읽으며 불편함을 느꼈다. 완벽한 힐링이라는 거짓. 그리고 박소영의 해시태그들.

#완벽한힐링 #천국 #여기천국인가요 #스트레스날려 #자연 #정원 #도시의쉼표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정원은 불안정했다. 오직 불안정함 속에서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한미영을 바라봤다.

"박소영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뭘요?"

"이 정원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이 힐링이 아니라, 함께 불안정함을 견디는 것이라는 것."

한미영은 나를 바라봤다.

"그럼... 정원을 지킬 거예요?"

나는 옥상을 둘러봤다. 화분들, 식물들, 그리고 내가 만든 이 공간. 그리고 이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들.

건물주 만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정원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내일 아침 김재하를 만나기로 했어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화분들을 옮길 거예요."

한미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그게..."

"옥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이 정원이 정말 없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정원을 만들 거예요. 더 크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미영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음이 나왔다.

"정말요?"

"네. 내일 아침 할머니, 준호, 한서준, 그리고 당신에게 연락할 거예요. 함께 화분들을 옮기자고."

나는 손을 다시 흙 위에 올렸다. 이번엔 따뜻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박소영에게도."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녀의 거짓을 바로잡을 거예요. 함께."

한미영은 나를 안았다. 그 품에서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옥상의 모든 화분들이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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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휴대폰이 울렸다.

"이유진입니다."

전화 너머에서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한서준이었다.

"내일... 화분들 옮기는 거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저도... 도와도 돼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물론이죠."

통화를 끝내고 나는 창밖을 봤다. 금요일 아침의 도시는 여전히 바쁘고 회색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내일 아침, 우리는 화분들을 옮길 것이었다. 건물주를 만나기 전에, 새로운 정원의 자리를 찾기 전에, 우리는 함께 움직일 것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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