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단신공
카인의 신경계가 붕괴되고 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렀다. 리나가 티슈를 건넸지만 카인은 받지 않았다.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댔다가 떨어냈다. 신경계 붕괴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그 순간 리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한 줄의 메시지만 떠 있었다.
—에바 크로스, 감마 기지에서 사살됨. 확인됨.
카인의 손이 떨렸다. 그건 신경계 붕괴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진동이었다. 분노였다.
버스 창이 카인의 눈동자에 반영되며 흔들렸다. 뇌 안쪽에서 뭔가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환각음이었다. 신경계 붕괴의 전형적 증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리나가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22시 47분.
"알파 기지까지 남은 이동 시간은 4시간 13분입니다. 그 전에 적어도 두 번 위치를 변경해야 합니다."
카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서울의 야간 조명들이 흐릿해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마크 윌슨의 추격대는?"
"남대문 로터리에서 세 개 차량이 감지되었습니다. 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 우리 버스와 평행 이동 중입니다."
카인의 손가락이 버스 창에 닿았다. 유리가 차갑지 않았다. 온도 감각도 왜곡되고 있었다. 신체 감각의 95% 이상이 뇌에 의존한다. 뇌가 붕괴되면 현실 자체가 붕괴된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지하 주차장 루트로."
리나가 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창밖의 야경이 더 천천히 흘렀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카인과 리나는 이미 문 근처로 이동해 있었다. 버스의 문이 열렸고, 두 명의 탑승객이 내렸다. 그 뒤로 검은색 승용차 세 대가 신호등을 통과했다. 추격대였다. 카인과 리나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카인의 눈이 더 이상 초점을 찾지 못했다. 계단의 모서리가 보이지 않았다. 리나가 손을 잡아 이끌었다. 카인은 끌려가기만 했다.
지하 주차장의 형광등이 천장에서 흔들렸다. 카인은 그걸 보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멀미 같은 건 아니었다. 뇌가 현실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그 형광등은 흔들리지 않았다. 카인의 신경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리나가 회색 세단 앞에서 멈췄다. 카인은 뒷좌석에 누웠다. 리나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출발했다.
카인은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이 호흡하는 것처럼 보였다. 팽창했다가 수축했다. 그건 없었다. 카인의 신경계가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감마 기지 지하 3층의 협약서 보관소에서 나온 후, 에바 크로스와의 마지막 접촉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바가 남긴 메시지가 있습니다. 암호화된 형태로."
"내용이?"
카인의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 낯설게 들렸다. 음성이 왜곡되어 있었다.
"알 수 없습니다. 복호화 권한이 없습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리나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카인을 바라봤다. 카인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 양쪽 귀에서. 리나는 눈을 돌렸다.
"그 메시지는 어디에?"
"알파 기지에 있습니다. 에바가 직접 보관했습니다."
카인이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이 느렸다. 신경 전달 속도가 저하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리나의 손이 핸들을 꽉 쥐었다. 침묵이 흘렀다. 카인은 리나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감마 기지 폭파 후 추격대에 포위되었습니다. 정화 조직이 도착했을 때..."
"사진을 확인했습니까?"
리나가 스마트폰을 건넸다. 카인이 화면을 봤다. 에바 크로스의 시신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총상. 정면에서 세 발. 정화 조직의 표준 처리 방식이었다.
카인의 손이 떨렸다. 그건 신경계 붕괴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진동이었다. 분노였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어떤 형태입니까?"
"오디오 파일입니다. 음성 데이터. 박준호의 암호화 프로토콜로 인코딩되어 있습니다."
카인이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화면이 검어졌다.
"알파 기지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2시간 47분."
카인의 눈을 감았다. 어둠이 더 깊어졌다. 그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였다. 환각이었다. 카인의 신경계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그 안에서 에바의 얼굴이 보였다. 피로 물든 얼굴.
"내 때문에 죽었습니다."
카인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했습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좌석에서.
"당신의 선택이 그녀의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당신이 증인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당신이 협약서를 수집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감마 기지에 침투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카인의 눈이 떨렸다. 눈꺼풀이 연속으로 경련했다.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옵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떨렸다.
"제임스 코트. 에바 크로스. 그리고 나도. 당신의 계획에 따라 우리는 모두 죽을 것입니다. 알파 기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카인이 눈을 떴다. 천장이 호흡하고 있었다. 팽창했다가 수축했다가 팽창했다. 뇌 안쪽의 헐떡거림이 더 커졌다. 그건 환각음이 아니었다. 카인 자신의 신경계가 붕괴되는 소리였다.
"당신은 당신의 천재성만 믿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계산 대상으로만 봅니다. 그것이 당신의 죄입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운전대를 꽉 쥔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침묵이 흘렀다. 카인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리나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이 없었다면 박준호의 계획도, 정화 조직의 음모도 영원히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도 죽음이었다. 단지 더 느린 죽음일 뿐. 그리고 더 많은 죽음이었다.
"그렇습니다."
카인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모든 게 내 선택이었습니다. 탈옥도, 추적도, 폭로도. 그리고 그들의 죽음도. 하지만 폭로하지 않는 것도 죽음입니다. 더 많은 죽음입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뿐입니다."
리나가 핸들을 꽉 쥐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 속에는 체념과 절망이 담겨 있었다.
차가 산길로 들어섰다. 도시의 불빛이 사라졌다. 어둠만 남았다. 그 어둠 속에서 카인의 신경계가 계속 붕괴되고 있었다. 시각이 왜곡되고, 청각이 왜곡되고, 촉각이 왜곡되고 있었다. 현실이 조각나고 있었다.
30분 후, 차는 산 중턱의 폐가에 도착했다. 리나가 엔진을 껐다.
"알파 기지로 가는 비밀 통로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제임스 코트가 남긴 지도에 표시된 위치입니다."
카인이 차에서 내렸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 전달 지연. 신경계 붕괴의 심각한 신호였다.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짙었다. 리나가 손전등을 켰다. 조명이 벽을 비췄다. 벽이 흔들렸다. 다시 환각이었다.
계단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카인과 리나는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고 터널이 시작됐다. 터널은 산 안쪽으로 깊숙이 뻗어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던 비밀 통로였다. 지구 연합군의 것이었다.
터널을 따라 40분을 걸었다. 카인의 신체 상태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귀에서도. 입에서도. 신경계가 신체 전체로 붕괴를 퍼뜨리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리나가 멈췄다. 벽에 강철 문이 있었다. 리나가 코드를 입력했다. 문이 열렸다.
알파 기지 하층부였다. 카인은 이 기지를 10년간 설계했다. 모든 보안 체계를 알고 있었다. 모든 통로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신경계 붕괴로 인해 기억이 왜곡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지하 5층에서 지상 3층까지. 중앙 지휘실이 있는 곳.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
중앙 지휘실 입구였다. 통로 양쪽에 시신이 있었다. 보안 담당자들이었다. 총상. 최근에 죽었다. 시체에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마크 윌슨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리나가 말했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럼 우리는 늦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중앙 지휘실의 메인 서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협약서는 별도의 보관소에 있습니다."
리나가 통로로 들어갔다. 카인이 따라왔다.
통로의 끝에 또 다른 강철 문이 있었다. 비상 보관소였다. 리나가 코드를 입력했다. 문이 열렸다.
보관소 안에는 선반이 가득 찼다. 문서들이 아닌 다른 것들이었다. 시신이었다.
"무엇입니까?"
카인이 물었다.
"에바 크로스입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에바는 선반 위에 누워 있었다. 시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신경 독성 약물에 의한 마비 상태였다. 정화 조직의 표준 처리 방식이었다. 죽음은 천천히 찾아올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그녀가 살아 있습니까?"
카인이 다가갔다. 에바의 눈이 떨렸다.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신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이... 와줬군요."
에바가 입술을 움직였다. 음성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당신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카인이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에바의 눈이 카인의 가슴을 바라봤다. 카인의 옷 안주머니를 가리키고 있었다. 리나가 주머니를 열었다. 마이크로 SD 카드가 있었다.
"내가... 당신의 옷에... 몰래 넣었습니다. 감마 기지에서... 당신을 빠져나가게 할 때."
에바의 음성이 약했지만 명확했다.
"복호화... 하세요. 박준호의... 최종 계획이... 있습니다."
에바가 말했다. 음성이 더 약해졌다.
"5년... 안에... 30억... 감축..."
카인의 손이 떨렸다. 30억이었다. 현재 인류 인구의 37.5%였다.
"당신의... 폭로가... 유일한... 저항 수단입니다."
에바의 눈이 감겼다. 카인은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폭로하면 전쟁이 영구화될 것이고, 폭로하지 않으면 30억이 죽을 것이었다. 둘 다 지옥이었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다.
"미안합니다."
카인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아닙니다..."
에바의 입술이 움직였다.
"내가... 선택했습니다... 침묵하지... 않기를..."
그 다음 음성은 없었다. 에바의 가슴이 한 번 크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리나가 손을 잡아 카인을 일으켰다. 카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중앙 지휘실로 향했다.
중앙 지휘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모니터들이 켜져 있었다. 마크 윌슨이 메인 서버를 파괴하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었다.
"어서 왔습니다, 카인."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의 탈옥 이후, 나는 당신을 정확히 24번 추적했습니다. 매번 당신은 내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마크가 돌아섰다. 총을 카인에게 겨누었다.
"박준호의 명령은 명확합니다. 당신을 제거하고, 모든 증거를 회수하며, 이 기지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리나가 손을 들었다. 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인의 눈이 감겼다. 뇌 안쪽의 헐떡거림이 극도로 커졌다. 신경계 붕괴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카인은 패턴 인식 능력을 다시 한 번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이크로 SD 카드를 중앙 지휘실의 컴퓨터에 꽂았다. 에바의 음성 파일이 열렸다. 암호화된 상태였다. 카인은 눈을 감았다.
뇌가 작동했다. 박준호의 암호화 프로토콜을 분석했다. 30년간의 기록을 추적했다. 패턴을 찾았다. 박준호의 암호 체계는 자신의 생년월일, 아내의 생년월일, 딸의 생년월일, 그리고 최초 협약의 서명 날짜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인의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귀에서도. 입에서도. 눈에서도. 신경계가 붕괴되고 있었다. 뇌가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암호가 풀렸다.
에바의 음성이 들렸다.
"카인, 이것은 내 최후의 기록입니다. 박준호의 최종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5년 내 대규모 전쟁 확대. 인구 감축 목표 30억. 실행 일정 48시간 이내 외계 연합과의 최종 협상 개시. 하워드 의장이 이미 승인했습니다. 당신의 폭로만이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로의 대가는 전쟁의 영구화입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인류의 멸망을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영구화시킬 것인가. 그 둘 사이에는 길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음성이 끝났다.
카인의 의식이 거의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신경계 붕괴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카인은 움직였다.
컴퓨터 키보드를 손가락으로 쳤다. 모든 통신 채널을 열었다. 군 내부 네트워크. 민간 방송 네트워크. 인터넷 전역. 카인은 지구 연합군의 모든 통신망에 접근했다.
"지금입니다."
카인이 중얼거렸다.
"폭로의 시간입니다."
카인의 손이 엔터 키에 닿았다. 키를 누르는 순간, 모니터들이 일제히 밝아졌다. 데이터 전송 바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박준호의 모든 협약서, 정화 조직의 명단, 외계 연합과의 비밀 협상 기록이 지구 연합군의 전 채널로 흘러나갔다. 중앙 지휘실의 경보음이 울렸다. 빨간 불이 깜빡였다. 시스템이 침입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흩어져 나갔다.
마크 윌슨이 총을 들었다. 카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손가락이 트리거에 닿았다.
그 순간, 중앙 지휘실의 문이 열렸다.
박준호가 들어왔다. 정장 차림이었다. 총을 들지 않았다.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크 윌슨이 박준호를 향해 총을 돌렸다. 박준호의 명령으로 이 기지를 파괴하고 있었지만, 박준호가 직접 나타난 것은 예상 밖이었다.
"당신이... 여기에?"
마크의 목소리에 의혹이 담겼다.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박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카인, 당신은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박준호가 카인을 바라봤다.
"당신의 폭로는 이미 예상된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폭로하도록 우리가 설계한 것입니다."
카인의 손이 멈췄다.
"무엇입니까?"
"당신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까? 왜 당신이 이 정도까지 추적할 수 있었을까? 왜 모든 증거들이 당신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박준호가 한 발 더 다가왔다.
"당신이 알파 기지를 설계할 때, 당신은 자신의 설계에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그 설계 이후 10년 동안, 나는 당신의 설계 위에 또 다른 설계를 덧씌웠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당신의 탈옥, 당신의 추적, 당신의 모든 이동은 우리의 감시 체계 내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당신이 알파 기지를 설계했다면, 나는 당신의 설계를 역이용하도록 설계했습니다. 당신이 생각했던 모든 탈출 경로, 모든 우회 통로, 모든 보안 허점이 우리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카인의 눈이 떨렸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계획입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진실을 폭로하도록 설정된 변수일 뿐입니다. 마크 윌슨이 서버를 파괴하는 것도 당신의 폭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대입니다."
카인의 눈이 감겼다. 신경계 붕괴가 최고조에 달했다. 환각이 현실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 속에서 박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폭로의 진정한 목적을 아십니까?"
박준호가 웃음을 멈췄다.
"인류의 각성입니다. 그리고 그 각성이 가져올 혼란입니다."
마크 윌슨이 총의 각도를 조정했다. 박준호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트리거 위에 있었다. 누구를 먼저 쏠 것인가. 마크의 얼굴에 혼란이 드러났다.
"당신이 폭로한 데이터는 이미 우리가 조작한 것입니다."
박준호가 계속했다.
"당신이 보낸 협약서는 진짜가 아닙니다. 당신이 폭로한 정화 조직의 명단은 우리가 원하는 명단입니다. 당신이 보낸 외계 연합과의 협상 기록은 우리가 원하는 기록입니다. 인류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카인의 신경계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뇌에서 피가 흘렀다. 눈에서, 코에서, 귀에서, 입에서. 카인은 더 이상 현실과 환각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 혼란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영원히."
박준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아니, 가까워졌다. 아니, 사라졌다.
카인의 의식이 흔들렸다. 마지막 순간, 카인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설계한 알파 기지 내의 모든 시스템이 자신에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이 만든 백도어가 모두 막혀 있다는 것. 자신의 설계가 자신을 가두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절단신공이었다.
마크 윌슨이 총을 발동했다. 하지만 누구를 향해 쏠 것인가. 박준호인가, 카인인가, 아니면 자신인가.
중앙 지휘실의 경보음이 더 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