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명의 차이
지하 안전가옥의 콘크리트 벽이 카인의 눈에만 투명했다. 펼쳐진 설계도 위에서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폭발 반경을 나타내는 붉은 원형 표시—정확히 삼십 퍼센트 초과했다. 자신이 설계한 알파 기지 폭탄의 범위는 1.2킬로미터였다. 이것은 1.56킬로미터였다.
"말이 안 된다."
카인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채웠다. 리나 송은 노트북 화면 너머로 그의 얼굴을 봤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는 게 보였다. 영상 통화의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수축하고 확장하는 패턴은 명확했다.
"폭발 범위가 이 정도면, 인접 구역의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파괴된다. 내 설계는 절대 그런 방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리나가 펜을 들었다. 기록하는 손이 떨렸다.
"그 오류들이 증거가 될까?"
"증거가 아니라 선언이다."
카인이 설계도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타이머 메커니즘의 상세도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회로를 따라갔다.
"이 타이머는 2087년식 기계식 릴레이다. 내가 절대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다. 신뢰도가 67퍼센트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내 설계의 최소 기준은 99.7퍼센트다. 그리고 설치 위치."
그가 구조도를 가리켰다. 알파 기지의 중앙 복도, 제3통로 교차점 위쪽이었다. 핵심 시설 위에 있었다.
"내 전술 원칙을 모르는 놈이 짜낸 폭탄이다. 누군가 내 스타일을 모방하려고 했지만, 완벽하게 실패했다. 이 세 가지 오류가 조합되면 불가능하다. 같은 능력자가 같은 설계를 했다면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리나는 기록을 멈추고 화면을 통해 카인을 봤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가 타올랐다. 분노가 아니었다. 더 위험한 것이었다. 확신이었다.
"진범을 찾으면 모든 게 밝혀진다. 누가 나를 빼닮으려고 했는지, 왜 박준호가 그렇게 빨리 판결을 내렸는지, 그 모든 것이."
카인이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카메라에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 설계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본이 필요하다. 알파 기지에 있던 원본 도면."
"원본?"
"정보국이 보관 중이다. 베타 기지 정보국 보안실, 좌표 37.28.15.4에 있다. 나는 그곳 배치도를 알고 있다."
리나의 손이 노트북에서 떨어졌다.
"베타 기지는 지금 경계 상태다. 당신이 탈옥했다는 소식이 전파됐어. 모든 주요 기지에 당신의 수배 지령이—"
"알고 있다."
카인이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커졌다 작아졌다.
"베타 기지 남쪽 진입로는 야간에 경비 인원이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다. 22시 25분에서 22시 35분 사이에 교대 공백이 생긴다. 그 사이에 서브레벨 진입 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그가 손가락으로 구조도를 그렸다. 보안 카드 판독기 위쪽, 환기구 네트워크를 따라 내려오는 경로.
"15층 아래 서브레벨 3에 정보국 보안실이 있다. 생체 인식 시스템은 나와 코트만 통과할 수 있다."
리나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노트북 모서리를 집었다.
"당신이 코트를 믿는 건가요?"
카인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관자놀이의 경련이 시작됐다. 리나는 그것을 알아봤다. 능력을 사용할 때의 신경계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인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1화에서 그가 당신을 보고도 보고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주는 정보의 정확도는 일반적인 정보 흐름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별하고 있다."
"그게 함정일 수도 있어요."
침묵이 화면 사이를 흘렀다. 리나는 카인이 뭔가를 계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패턴 인식. 모든 가능성을 조합하는 그의 능력이 작동하고 있었다.
"함정이든 아니든, 나아가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
카인이 펜을 집어 들었다. 설계도의 여백에 뭔가를 빠르게 그렸다. 숫자들의 나열이었다. 좌표, 시간, 확률.
"베타 기지 침입 후 탈출 경로는 동쪽 벽 외부 비상구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간다. 지상에 나가면 북쪽 주차장 2구간에 도난 차량이 필요하다. 리나, 당신이 준비해야 한다."
리나는 노트북 옆에 또 다른 장치를 켰다. 녹음기였다. 카인의 음성이 기록되고 있었다. 그녀는 펜으로 메모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대신 결연함이 묻어났다.
"당신이 감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정보국 요원이 내 아파트 근처에서 목격됐어. 공식으로는 루틴 체크라고 했지만."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카인이 손목 시계를 봤다. 21시 47분이었다.
"18분 후 나는 베타 기지 남쪽 진입로에 있을 것이다."
리나는 통화 끝나기 전에 물었다.
"당신이 나올 수 있을까?"
카인의 침묵이 길었다.
"모르겠다."
"그럼 내가 뭘 해야 돼?"
"차를 준비하고 기다려. 내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통화가 끝났다. 리나는 화면을 끈 후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자신의 맥박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접고 일어섰다. 손가락이 떨렸다. 도난 차량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카인이 베타 기지에서 나올 때까지 기도해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가 정말 나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 그 불확실성이 리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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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의 사무실은 검은색이었다. 검은 책상, 검은 벽, 검은 천장. 그곳에서 빛은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스탠드뿐이었다. 그는 펜을 놀리고 있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규칙적으로 톡톡거렸다.
"마크, 들었나?"
스피커에서 윌슨의 목소리가 나왔다.
"예."
"그놈이 베타 기지로 간다. 코트 때문이다. 코트가 정보를 흘렸다."
박준호의 펜이 멈췄다.
"코트는?"
"현재 정보국에 있습니다. 모니터링 중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최종 해결책의 일부다. 카인을 베타 기지로 유인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곳에서 그를 제거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회수하는 것이 목표다. 리나 송도 포함해서."
윌슨이 침묵했다. 박준호의 말은 명확했다. 이것은 단순한 작전이 아니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최종 해결책이었다.
"알겠습니다. 베타 기지 침입 시점을 예측해서 선제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마크, 한 가지 더."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도 알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당신도 보안 위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통화가 끝났다. 윌슨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의 손이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턱이 조여 들었다. 박준호의 말은 명확했다. 최종 해결책. 그것은 카인의 제거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윌슨은 창밖을 봤다. 밤거리의 불빛들이 흐릿했다. 그는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베타 기지 배치도를 불러왔다. 카인의 침입 경로를 예측했다. 22시 25분 교대 공백. 서브레벨 진입. 그리고 정보국 보안실.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카인이 베타 기지에 도착하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를 죽이는가? 아니면 살려두는가? 박준호의 명령은 명확했다. 하지만 윌슨은 카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정화 조직의 최고 능력자. 그를 죽이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그리고 그를 죽인 후, 자신은 어떻게 될까?
윌슨의 입 모서리가 올라갔다. 미소가 아니었다.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신도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해야 했다. 왜냐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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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안전가옥에서 카인은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장갑, 검은색 옷, 검은색 신발. 모든 것이 야간 활동을 위해 준비됐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동자가 다시 수축했다.
관자놀이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미세한 선혈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닦았다.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었다. 패턴 인식을 사용할 때마다 신경계는 더 손상됐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진범을 찾기 위해서는 이 능력이 필수였다.
그의 눈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신경계 붕괴가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얼마나 더 사용할 수 있을까? 아마 한두 번 더. 그 이상 사용하면 기억이 뒤섞일 것이다. 환각이 시작될 것이다. 자신의 몸도 더 이상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벽시계를 봤다. 21시 59분이었다. 26분 후 베타 기지 남쪽 진입로에 도착해야 했다. 그곳에서 교대 공백을 기다렸다가 침입할 것이었다.
카인은 펜드라이브를 주머니에 넣었다. 코트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정보국 보안실의 생체 인식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아니, 정말 충분할까? 코트가 주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심의 대상이었다. 코트의 정보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가? 그가 정말 자신의 편인가? 아니면 박준호의 또 다른 함정인가?
카인의 관자놀이가 다시 경련했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3초 정도로 벌어졌다가 다시 좁혀들었다. 패턴 인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모든 정보를 조합했다. 코트의 배신 가능성, 박준호의 함정, 펜드라이브의 진위. 하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나아가야 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가 문을 열었을 때,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경찰 사이렌이 아니었다. 군부 기지의 긴급 경보음이었다. 카인은 몸을 굳혔다. 그는 창문을 통해 거리를 봤다. 군용 차량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향은 하나였다. 남쪽이었다.
카인의 눈이 좁혀졌다.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리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이 알고 있다.'
메시지를 보내고 3초 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려지지 않은 번호였다. 그는 받았다.
"카인, 들려?"
코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호흡이 빨랐다.
"베타 기지에 경보가 떨어졌다. 박준호의 지시다. 당신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당신이 온다는 걸 알기를 원하고 있다."
"함정이라는 뜻인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곳에는 윌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화 조직 병력 최소 20명이."
카인이 침묵했다.
"당신이 원본 설계도를 얻으면 모든 게 바뀐다고 생각했나? 박준호는 당신이 그것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 설령 당신이 살아나가더라도, 그 설계도는 절대 가져갈 수 없게."
"그럼 당신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죽은 거다. 박준호의 최종 해결책 안에서. 하지만 당신이 원본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카인이 기다렸다. 코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정보국 보안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 복사본이 있다. 숨겨진 곳에. 나만 그 위치를 알고 있다."
"위치를 말해라."
"먼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윌슨을 만나야 한다."
"윌슨?"
"그는 지금 당신을 찾고 있다. 그리고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죽을 거라는 걸 모른다. 박준호의 최종 해결책 안에서. 당신이 윌슨에게 그것을 알려주면, 그가 당신을 돕게 될 것이다."
"그것도 함정일 수 있다."
"맞다. 모든 게 함정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이것뿐이다."
통화가 끝났다. 카인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더 흘렀다. 신경계가 극도로 자극받고 있었다. 패턴 인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2초 정도로 좁혀들었다. 모든 정보를 조합했다. 코트의 배신 가능성, 윌슨의 추격, 박준호의 함정, 그리고 복사본의 위치.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도 보였다. 코트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코트도 박준호의 희생양이라는 것. 그렇다면 윌슨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지하 안전가옥의 뒤쪽은 골목이었다. 그곳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그는 탁자로 가서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불에 태웠다.
증거는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다. 세 가지 오류. 폭발 반경, 타이머, 설치 위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만약 신경계가 완전히 붕괴된다면? 그 세 가지 오류의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카인이 골목으로 내려갔다. 거리의 사이렌이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뒷골목을 따라 움직였다. 목표는 베타 기지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다. 먼저 윌슨을 찾아야 했다. 윌슨이 정말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박준호의 도구일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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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후, 카인은 군부 주변 지역의 폐건물에 들어갔다. 그곳은 구 정보 센터였다. 이미 운영이 중단된 지 3년이 되었다. 그 건물의 지하층 진입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윌슨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카인은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발 아래서 금속음이 났다. 계단이었다. 그는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패턴 인식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윌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호흡음, 움직임, 총기의 위치. 모든 것이 카인의 뇌에 입력되고 있었다. 동시에 관자놀이의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1초 정도로 더 좁혀들었다.
지하층에 도착했을 때, 윌슨은 이미 총을 들고 있었다.
"예상대로 왔네."
윌슨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준호가 당신이 올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코트에게 연락받을 거라고도. 모든 게 계획대로다."
카인이 한 발을 옮겼다. 윌슨의 총이 움직였다.
"당신도 알고 있나? 박준호의 최종 해결책이 뭔지?"
윌슨의 손이 흔들렸다.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당신은 사형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탈옥했다. 그래서 박준호는 당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당신이 찾아낸 증거와 함께."
"그리고 당신은?"
윌슨이 침묵했다. 그의 침묵은 길었다. 카인은 어둠 속에서 윌슨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호흡이 변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당신도 제거 대상이다. 윌슨. 박준호는 이 일이 끝나면 당신도 죽일 거다. 정화 조직의 일원으로서 너무 많이 알고 있으니까."
윌슨의 총 손잡이가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총을 쏘지는 않았다.
"당신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뭐냐?"
"당신도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나도."
카인이 또 한 발을 옮겼다. 동시에 윌슨의 총구가 카인을 겨냥했다. 어둠 속에서 두 인물이 대치했다.
"원본 설계도를 얻으면, 모든 게 끝난다. 박준호의 비밀이 폭로되고, 당신도 생존할 수 있다. 정화 조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윌슨이 총을 내렸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펜드라이브를 꺼냈다. 검은색의 작은 장치였다.
"코트가 나한테도 줬다. 다른 것이지만, 같은 목적의."
윌슨이 펜드라이브를 카인에게 던졌다.
"정보국 보안실의 백업 데이터가 여기에 있다. 설계도, 증거, 모든 게. 하지만 이것도 함정일 수 있다."
카인이 펜드라이브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그것을 만졌을 때, 그의 신경계가 경고를 보냈다. 이것은 정말 진짜인가? 아니면 위조된 것인가? 펜드라이브 두 개. 코트의 것과 윌슨의 것. 둘 다 같은 정보를 담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참일까?
"우리 둘 다 죽는 거다."
윌슨의 다음 말이 카인의 생각을 끊었다. 그의 입 모서리가 올라갔다.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남기고."
카인은 그 표정을 이해했다. 윌슨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뜻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는 뜻이었다.
"베타 기지로 가야 한다."
윌슨이 총을 다시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인을 향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다리를 향했다. 그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결단이었다.
윌슨은 자신이 왜 이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박준호의 최종 해결책 속에서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죽는 것보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카인을 도울 수 있다면, 자신의 죽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다. 윌슨의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절망의 웃음이 아니었다. 해방의 웃음이었다.
"이제 나는 도망칠 수 없다. 박준호에게 잡힐 수도 없다. 그리고 당신을 방해할 수도 없다."
윌슨이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격투가 시작됐다. 윌슨이 남은 총알을 쏘려고 했다. 카인이 윌슨의 팔을 걷어냈다. 총알이 벽을 스쳤다. 윌슨이 몸을 굴려 거리를 벌렸다. 카인이 추격했다.
윌슨이 주먹을 날렸다. 카인이 몸을 돌려 피했다. 윌슨의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카인이 반격으로 팔꿈치를 날렸다. 윌슨이 팔로 막았다.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윌슨이 다리를 휩쓸었다. 카인이 점프해서 넘었다. 착지하면서 카인이 윌슨의 옆구리를 노렸다. 윌슨이 몸을 굴려 피했다.
격투는 짧았다. 카인의 신경계가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0.5초 이하로 떨어졌다. 카인의 동작이 점점 기계적이 되어갔다. 패턴 인식이 극한까지 작동하고 있었다. 윌슨의 모든 움직임이 예측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카인의 몸에 거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카인이 윌슨의 목을 잡았다. 윌슨의 몸이 경직됐다. 카인의 손가락이 더 강하게 조여 들었다. 윌슨의 눈이 카인을 봤다. 그 눈에는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대신 확신이 있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것이 맞다는 확신.
카인은 윌슨의 목에서 손을 뺐다. 윌슨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기절했을 뿐이었다. 카인이 윌슨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슨도 자신처럼 박준호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 능력을 한 번 더 사용할 때마다 신경계가 얼마나 빠르게 붕괴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을 더 죽이는 것이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카인이 윌슨의 주머니를 뒤졌다. 추가 펜드라이브가 또 있었다. 그것도 꺼냈다. 윌슨이 언급한 '다른 것'이었다. 코트의 펜드라이브와는 다른 용도로 보였다. 더 작고, 더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정보국 백업이 아니라 다른 정보를 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폐건물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 밖을 봤다. 군용 차량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경보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베타 기지는 완전히 경계 상태였다.
카인이 폐건물의 뒤쪽 벽을 타고 올라갔다. 옥상에 도달했다. 거기서 그는 멈췄다. 관자놀이의 통증이 극도에 달했다. 신경계가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눈동자 수축의 간격이 이제 0.3초 정도였다. 기억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의 시야가 흔들렸다. 환각이 시작되고 있었다. 옥상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주머니의 펜드라이브들을 확인했다. 세 개가 있었다. 코트의 것, 윌슨의 것, 그리고 또 다른 것. 그 세 번째는 어디서 나온 걸까? 기억을 더듬어봤다. 윌슨의 주머니에서 꺼낸 것이 맞다. 그렇다면 윌슨이 세 개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면 코트가 미리 준비해둔 것인가?
카인은 각 펜드라이브를 검토했다. 코트의 것—정보국 보안실 우회 프로그램. 윌슨의 것—정보국 백업 데이터. 그렇다면 세 번째는? 그것은 더 작고, 더 낡았다. 라벨이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뭔가 각인된 흔적이 있었다. 지워진 글씨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운 것 같았다.
세 가지 오류. 폭발 반경, 타이머, 설치 위치. 그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신경계 붕괴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몇 분 안에 기억이 완전히 뒤섞일 것이다. 환각이 현실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더 이상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다.
"베타 기지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
카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 함정인가, 아니면 기회인가? 펜드라이브들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코트의 정보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가? 윌슨이 정말 협력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박준호의 거대한 함정인가?
그 순간, 아래쪽 거리에서 차량 엔진음이 났다. 그리고 사이렌. 여러 대의 차량이 한 방향으로 모이고 있었다. 자신의 방향으로.
정화 조직의 추격대가 카인을 찾고 있었다. 카인은 옥상의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뛰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살 수도 있었다. 패턴 인식으로 계산하면 생존 확률은 34.7퍼센트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신경계는 더 이상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피가 손가락에 묻었다. 신경계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제 더 이상 패턴 인식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능력 사용이 될 것이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카인은 옥상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인접한 건물로 뛰어갈 수 있었다. 거리는 3.2미터. 패턴 인식으로 계산하면 성공 확률은 78.4퍼센트였다. 그는 도움닫기를 했다. 그리고 뛰었다.
공중에서 카인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신경계 붕괴가 시작되고 있었다. 환각이 보였다. 자신이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환각이었다. 그는 인접한 건물의 옥상에 착지했다.
뒤를 돌아봤다. 추격대의 차량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을 놓쳤다. 최소한 몇 분 동안은.
카인은 건물의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거리로 나갔다. 리나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도난 차량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북쪽 주차장 2구간에.
그는 거리를 따라 움직였다. 신경계는 계속 붕괴되고 있었다. 기억이 뒤섞이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점점 불명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베타 기지에 가야 한다는 것. 원본 설계도를 얻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박준호를 끝내야 한다는 것.
주머니를 만졌다. 펜드라이브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는 세 가지 오류의 기억이 있었다. 폭발 반경, 타이머, 설치 위치. 그것들이 모두였다. 그것들이 진실이었다. 그것들이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카인은 북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리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베타 기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세 번째 펜드라이브를 꺼냈다. 작고 낡은 것. 라벨이 없는 것. 손가락으로 그것을 돌렸다. 지워진 각인이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출처를 숨긴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직관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카인은 그것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북쪽 주차장으로 계속 움직였다. 신경계의 붕괴 속에서. 기억의 혼란 속에서. 환각의 경계에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