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하얀 천장이 보였다

준호는 눈을 떴다. 정확히는 떴다고 느꼈다. 눈꺼풀이 천 근처에 있던 것처럼 무거웠다. 검은색이 조금씩 밀려나가고, 하얀 천장이 시야를 채웠다. 천장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 게 아니라 그의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형광등. 병원의 형광등이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감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코에 튜브. 팔의 주삿바늘. 가슴의 센서들이 보내는 따뜻함. 그리고 기계음. 규칙적이고 끝없는 기계음이 귀를 채웠다. 심전도. 호흡기.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신체를 감시하고 있었다.

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천천히, 마치 처음 움직이는 것처럼. 그 다음 팔. 팔도 움직였다. 다리는?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는 건 느껴졌지만, 그 신호가 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나?

기억이 조각조각이었다. 차량. 빠른 속도. 그리고 충돌음. 그 이후는 아무것도 없었다.

"응? 응!"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실 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준호는 눈을 깜빡였다. 천장이 다시 선명해졌다. 그 다음 얼굴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간호사. 의사. 또 다른 의료진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입이 움직였다. 말을 하고 있었지만, 준호의 귀에는 먼 곳에서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의식 회복... 반응이..."

"혈압 정상이야?"

"혈압 정상이고, 산소포화도도... 기적이야."

의사는 손전등을 들고 준호의 눈을 비추었다. 동공이 수축했다 팽창했다 수축했다. 준호는 그 빛을 따라갔다. 자신의 신체가 명령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환자분, 저를 보세요. 이름이 뭐예요?"

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목이 말랐다. 마치 5년을 물 없이 지낸 것처럼. 혀가 입천장에 붙어있었다.

"준... 호..."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낡고, 먼먼 곳에서 오는 것 같았다.

"준호 씨!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야!"

의사가 웃었다. 간호사도 웃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준호의 시야 가장자리에서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까만 머리. 하얀 간호복. 그리고 눈물.

그 여자는 울고 있었다.

"5년을 잠자고 계셨어요. 5년을..."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그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의료진들이 이것저것을 확인했다. 신경 반응. 근육 반응. 인지 능력. 준호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름. 생년월일. 대통령 이름.

그런데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딸이... 솔이가..."

준호가 중얼거렸다. 의료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 간호사의 얼굴도.

"솔이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의사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침묵이 준호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

"5년... 5년이 지났다고 했어?"

"네. 2015년 사고 이후로 현재가 2020년입니다."

2015년. 그의 기억 속 마지막 날짜는 2015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솔이. 그리고...

준호는 눈을 감았다. 천장 대신 다른 것들이 보였다. 학원 버스. 모의고사. 그리고 솔이의 뒷모습.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

"거울을... 줄 수 있어?"

준호가 물었다. 간호사가 작은 거울을 가져왔다. 준호는 그것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봤다.

창백했다. 마치 유령처럼. 뺨이 움푹 들어가 있었고, 턱에는 수염이 자라있었다.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5년이 얼굴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 그 눈에는 무언가 깊은 절망이 담겨있었다.

"당신은 자꾸 누군가를 잃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준호는 거울을 내렸다. 그 여자는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었다.

"뭐라고?"

"아니... 그냥..."

그 여자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울음으로 변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렸다.

"5년 동안 당신을 봤어요. 매일매일. 당신이 이렇게 누워만 있는데도, 자꾸 미안해라고 중얼거렸어요. 그 말을 수천 번 들었어요."

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깨어났으니까, 제발... 자신을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의 의미를 준호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깊은 곳에서 그 말이 울렸다.

의료진들이 하나둘 병실을 빠져나갔다. 의사도, 다른 간호사들도. 오직 그 여자만 남았다. 그 여자는 준호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준호가 말했다. 자신도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나왔다.

그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줄기, 또 한 줄기. 그 눈물이 준호의 손 위에 떨어졌다. 따뜻했다.

의사인 박민준은 준호의 의료 기록을 들고 병실 밖의 복도에서 중얼거렸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회복... 뇌파 기록에 이상 신호... 신경 재생... 근육 회복..."

그가 기록을 넘기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5년간 완전한 식물인간 상태였던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되찾고, 신체 기능까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것은 의학 교과서에 없는 일이었다.

"의학적 기적이라고 봐야 하나?"

옆에 있던 간호 팀장이 물었다.

"기적... 그런 게 있나?"

박민준은 기록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 당일, 뇌파 기록에 주기적 이상 신호 감지. 현재까지도 지속 중.'

주기적? 그게 무슨 뜻이지?

박민준은 의료 기록을 들고 준호의 병실로 돌아갔다. 간호사가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 지영. 뭔가 있었어?"

"아니... 그냥 환자분이 좀 이상해 보여서요."

박민준은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의 눈은 천장을 향해 있었고, 손가락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준호 씨, 무엇을 하고 있어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만 계속 움직였다.

박민준은 의료 기록을 다시 봤다. 주기적 이상 신호. 5년간 계속된 신호. 그리고 지금 이 움직임.

뭔가 이상했다.

밤 11시.

준호는 홀로 병실에 남겨져 있었다. 창밖의 서울 야경이 검은 하늘 위에 떠있었다. 불빛들. 수백만 개의 불빛들이 도시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도시 속에서 솔이는 어디에 있을까?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펴지려고 하는 손가락을 주먹으로 쥐려고 했지만, 손가락들은 자신의 의지를 무시하고 펼쳐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다음,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창밖의 불빛들이 깜빡이다가 사라졌다. 하늘이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변했다. 빌딩들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거리의 자동차들이 뒤로 움직였다.

준호의 의식이 흐려졌다.

"뭐... 이게..."

손가락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감겼다.

검은색이 밀려왔다.

그리고.

눈을 떴다.

창밖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낮이었다. 밝은 햇빛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의 달력이 3월 1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준호는 깜박였다.

"뭐... 이게 뭐야?"

손을 움직였다. 손이 움직였다. 다리도 움직였다. 어제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병실 문이 열렸다. 어제와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 환자분, 깨셨어? 의료진 부르겠습니다!"

간호사가 서둘러 나갔다.

준호는 천장을 바라봤다. 같은 천장. 같은 형광등. 하지만 뭔가 달랐다.

시간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밤이 다시 찾아왔다. 준호는 병실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창밖의 도시는 불을 밝혔다. 수백만 개의 불빛들이 3월의 밤하늘을 채웠다.

준호의 손가락이 또 움직였다. 펴지려고 하는 손가락을 주먹으로 쥐려고 했지만, 손가락들은 자신의 의지를 무시하고 펼쳐졌다.

"안 돼. 다시는 안 돼."

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창밖의 불빛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거리의 자동차들이 뒤로 움직였다. 하늘이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변했다.

"아니야!"

준호가 외쳤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의식이 흐려졌다. 검은색이 밀려왔다. 그 속에서 준호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번엔 뭐가 달라질까?

눈을 떴다.

달력은 3월 1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병실의 창밖으로 보이는 햇빛의 각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의료진들의 발걸음 소리도 다르게 들렸다. 심지어 모니터에서 나는 신호음도 다른 리듬으로 울리고 있었다.

준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회귀할 때마다 뭔가가 변한다. 그게 뭘까?

병실 문이 열렸다. 지영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엔 지영의 표정이 달랐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어제 밤에 뭔가 이상했어요."

지영이 먼저 말했다.

준호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당신의 뇌파가... 계속 변했어요.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처럼."

지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료 기록을 들고 있었다.

"당신이 뭔가 하고 있다는 건 알아요."

준호의 입이 떨어졌다.

"지영... 너가 알고 있었어?"

"5년 동안 당신을 봤어요. 매일매일. 그리고 어제... 아니, 계속 반복되는 어제들. 나는 그걸 느꼈어요."

지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신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준호는 말하지 못했다. 지영은 자신이 회귀할 때마다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왜?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영이 준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SNS가 켜져있었다. 계정은 '솔미_art'였다.

"당신의 딸이 그렸어요. 이 그림을."

화면에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떴다. 그림 속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의 손에서는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도 보였다. 그 빛을 받아내는 또 다른 손이 그려져있었다.

"솔이는 당신이 깨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지영이 말했다.

"당신을 깨우고 있어요."

준호의 손이 떨렸다.

"그럼... 왜 자꾸 달라져? 왜 매번 뭔가가 변해?"

"당신이 시간을 거슬릴 때마다 세상이 조정돼요. 하지만..."

지영이 말을 멈췄다.

"하지만 뭐?"

"매번 조정할 때마다 뭔가가 사라져요."

지영이 창밖을 봤다.

"처음엔 나였어요. 당신이 내 손을 잡던 기억이 사라졌어요.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뭐야?"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뭔가가 사라지고 있어요."

준호는 지영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따뜻했다. 지영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엔 뭐가 남을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지영이 준호의 눈을 봤다.

"당신이 계속 시간을 거슬리면, 언젠가는 당신도 사라질 거야."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 솔이는?"

"솔이는 계속 남아있을 거야. 시간 속에서. 계속 당신을 깨우려고."

의료진들이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를 냈다. 지영이 서둘러 나가려 했다.

"지영, 잠깐!"

준호가 불렀다. 지영이 돌아봤다.

"이번엔... 기억해. 제발."

지영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슬펐다.

"나는 계속 기억할 거야.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도."

지영이 준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의 틈에 있거든."

그 말의 의미를 준호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영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지영?"

준호가 불렀지만, 지영의 손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미안해. 준호."

지영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리고 지영은 완전히 사라졌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반투명해 보였다.

병실의 창밖을 봤다. 3월 1일의 서울.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 않은 도시. 그 도시 어딘가에 솔이가 있을 것이다.

준호는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지영이 남긴 SNS. 솔미_art의 계정.

그림들을 하나씩 봤다. 모두 어두웠다. 파란색과 검은색의 조합.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그림에는 빛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밤이 다시 찾아왔다.

준호는 병실의 창밖을 봤다. 불빛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번엔 준호는 저항하지 않았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준호는 알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이것이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그 시작 속에서 자신은 무언가를 잃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것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

눈을 떴다.

달력은 3월 1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반투명해 보였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