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존의 늪
손가락이 차가워진다. 황제를 사랑한다는 감정도 함께.
화살이 창을 뚫고 들어왔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라벨의 공격 타이밍, 각도, 그 다음의 움직임까지. 전생의 기억 속에 그 장면이 또렷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막는 것은 다르다.
나는 몸을 날렸다.
황제의 가슴을 향한 칼날이 내 팔을 스쳤다. 따뜻한 것이 흘러내렸다. 피였다. 검은색 옷의 자국이 내 소매에 번졌다. 통증은 뒤따라왔다. 하지만 더 선명한 것은 다른 감각이었다.
손가락이 더 차가워진다.
"카이나!"
황제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니, 가까웠다. 그의 팔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내 차가운 피부에 닿자 역설적이게도 더 큰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불에 얼음을 던지는 것처럼, 더 빠르게 녹으면서 동시에 더 깊이 얼어붙는 그런 감각.
"당신 없이 나는 죽었을 것이다."
황제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의 음성에는 공포와 감사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의 품 안에서 전생의 기억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셀레나의 암살 계획, 라벨의 정확한 위치, 그다음 움직임까지. 기억을 꺼낼수록 내 몸이 얼어붙었다.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진다. 저린 듯한 무감각이 손목으로 번진다. 팔뚝이 경직되고, 목소리가 굳어간다. 호흡이 얕아진다.
가슴에서... 뭔가가 사라진다.
황제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그것이 가장 끔찍했다.
"카이나, 깨어나. 제발."
황제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렸다. 눈을 뜰 때, 천장이 보였다. 황궁의 의료관 침실.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황제였다.
"의료관, 상태가 어떻게 되는가?"
황제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의료관이 나머지 한쪽 팔을 들어올렸다. 나의 상처를 검사했다. 칼이 깊게 들어왔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의료관이 말을 멈추고 황제를 바라봤다. 뭔가 결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폐하, 이 여인이 복용한 약물이 있습니다."
"약물?"
"기억력 증강제입니다. 일반인이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특히 장기 복용 시..." 의료관이 내 손을 펼쳤다. 창백한 손가락들이 노출되었다. "감정 마비. 신경 계통의 점진적 마비. 계속 이런 식으로 복용한다면, 결국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황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 순간, 나는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자책. 죄책감. 그리고 공포.
"그대가... 나를 위해..."
황제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것이 없었다. 아니, 말할 감정이 없었다. 단지 논리만 남았다. 황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필요했고, 기억을 사용하려면 약물이 필요했고, 약물을 복용하려면 이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뿐이었다.
"의료관, 이 약물을 중단시킬 수 있는가?"
"폐하, 이미 복용량이 상당합니다. 급격히 중단하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점진적으로 양을 줄이면서 동시에 신경 계통을 재생시키는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료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완전한 회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의 온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 온기가 내 손을 데우지는 못했다. 내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폐하."
의료관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그 여인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지금 황궁 밖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암살 미수 사건이 알려지면서 황족 원로회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황제가 내 손에서 시선을 돌렸다. 의료관은 조심스럽게 침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다시 열렸다. 루시안이 들어섰다. 황족 원로회의 대표. 그의 표정은 심각했고,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폐하, 긴급 보고가 있습니다."
황제가 일어섰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지켜봤다.
"그 여인입니다. 카이나라는 이름의 그 여인이 폐하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침묵. 황제의 등이 경직되었다.
"증거가 있는가?"
"증거는 필요 없습니다, 폐하.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여인이 나타난 이후 폐하는 점점 그 여인의 조언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셨습니다. 신분제 철폐, 카르벨 파견, 정책 담당자 회유. 모든 일에 그 여인이 개입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여인이 암살자의 칼을 막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 여인을 신뢰해야 합니까?"
루시안이 침대 옆으로 한 발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황족 원로회는 폐하께 요구합니다. 그 여인을 즉시 황궁에서 내보내거나, 아니면 그 여인을 제거하시기를. 폐하께서 그 여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신다면, 우리는 황제 폐위를 의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제가 돌아섰다. 루시안의 말을 직면했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찾았다. 그 눈빛 속에는 의심이 명백했다.
"당신이 정말 나를 돕는 것인가, 조종하는 것인가?"
황제가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이 그의 눈 속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
루시안이 침대 옆에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폐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 여인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황족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둘 다는 불가능합니다."
황제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하지만 내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약물을 계속 복용하겠다."
황제가 갑자기 말했다.
루시안의 눈이 좁혀졌다. "폐하?"
"의료관, 약물 복용을 중단하지 않겠다. 계속 투여하게."
황제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하지만 그 결연함 아래에는 절망감이 깔려 있었다.
"폐하, 그렇다면..."
"그렇다. 나는 카이나를 계속 조종당하도록 두겠다. 그 대신 나는 그 조종에 저항하지 않겠다."
황제가 말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안에 있는 것을 읽었다. 사랑인지, 의존인지, 죄책감인지.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폐하, 그렇게 되면 기억 능력이 계속 필요합니다. 셀레나의 음모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평탄했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
황제가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왜?"
"약물을 끊으면 기억 능력이 약해지고, 계속 복용하면 감정이 완전히 마비됩니다. 당신을 돕는 것도, 조종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집니다."
내가 차갑게 설명했다.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루시안이 침대 곁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계산적이었다. 황제의 약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폐하, 황족 원로회의 결정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그 여인의 처분을 결정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대신하겠습니다."
루시안이 침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황제와 나는 다시 둘만 남았다.
황제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문이 그 안에 있었다.
"당신은 정말 나를 조종하려 했는가?"
황제가 물었다.
"예."
나는 대답했다. 감정이 없으니,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왜?"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약물을 끊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황제의 목소리에 공포가 묻어났다.
"네. 셀레나의 음모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라벨도 다시 움직일 것입니다. 기억 능력이 약해지면 대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것이 현실였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였다.
황제가 창문으로 다가갔다. 황궁의 정원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등불들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이나."
황제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예."
"내가 그대를 다시 잃고 싶지 않다. 전생에서처럼."
황제의 등이 보였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폐하, 전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렇다. 끝났다. 그래서 나는 이번 생에서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황제가 돌아섰다. 그의 눈이 내 눈을 마주쳤다. 그 안에는 여전히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더 강한 것이 있었다. 결연함.
"약물을 계속 복용하라."
황제가 말했다.
"폐하?"
"당신이 감정을 잃더라도, 나는 당신을 지킬 것이다. 당신의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황제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당신은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기억에서 본 것, 계획한 것, 모든 것. 그래야만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다."
황제가 말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 안에 있는 것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단지 논리만 남았다.
내가 약물을 계속 복용한다는 것은 감정을 완전히 잃는다는 뜻이었다. 조종자가 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 조종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신뢰인가, 아니면 절망적인 의존인가?
나는 선택했다. 감정 없이, 차갑게.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창밖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정원의 남쪽 담장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라벨이었다. 그녀는 첫 번째 암살이 실패했을 때부터 이미 다음을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라벨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화살이 아닌 다른 것.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전생의 기억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향로였다. 독이 든 향로.
"폐하, 뒤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팔의 통증은 무시했다. 손가락은 차가웠지만, 움직였다.
"무엇인가?"
황제가 물었다.
"라벨입니다."
나는 창문을 향해 달렸다. 황제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정원에서 라벨이 향로에 불을 붙였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경비!"
나는 외쳤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침실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제가 기침했다. 나는 즉시 창문을 닫고 황제를 침대 아래로 끌어당겼다.
"숨을 얕게 쉬세요. 독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 하지만 명확했다.
황제가 내 팔을 잡았다. "당신은?"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이미 약물의 부작용으로 신경이 마비되어 있었다. 독은 나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다.
침실 밖에서 경비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외침이 들렸다. 라벨이 도망치고 있었다.
황제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있었다.
"당신이 나를 구했다."
"네."
"그리고 당신은 약물을 계속 복용할 것이다."
"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구해야 한다. 감정 마비로부터."
황제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결연함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감정이 없었으니까.
검은 연기는 점점 옅어졌다. 경비들이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있었다. 라벨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황제는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약물을 계속 복용하되,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하라."
황제가 다시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당신의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당신을 지킬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시도하겠다."
황제의 손이 내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그의 온기는 여전히 내 피부에 도달하지 못했다. 마치 두 세계 사이의 벽처럼,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가 감정을 잃어가는 동안, 그는 나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침실의 창문은 닫혀 있었다. 밖에서는 경비들의 움직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라벨은 도망쳤지만, 그녀가 남긴 독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내 감정처럼.
황제의 손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의 온기는 내게 닿지 않았지만, 그것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신뢰인가, 의존인가, 조종인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미 선택했으니까.
내일 정오. 루시안의 최후통첩이 남겨졌다. 황족 원로회는 나의 처분을 결정할 것이었다. 황제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그 손을 놓아야 할까?
그 모든 것은 내일의 문제였다.
지금은 어둠 속에서, 두 손이 만나는 곳에서,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