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속의 고백
침묵 속에서 루나의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5층 계단의 끝, 완전한 어둠이 시작되는 경계에서 루나는 루엔의 손을 놓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그 손을 놓는 것이 자신의 목숨을 놓는 것처럼.
"루엔."
루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 속에는 결정과 이별, 그리고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난 네 거짓을 알면서도 널 믿었어."
루엔은 돌아서지 못했다. 돌아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루나의 얼굴을 보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포기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넌 혼자가 되어야 해. 침묵의 방은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니까."
루나의 손이 완전히 떨어졌다. 따뜻했던 그 손의 온기가 사라지자, 루엔의 팔은 허공에 남겨졌다.
"거짓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해."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루나는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루엔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루엔이 루나를 위해 올라가는 길이, 루나를 떠나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 역설이 루엔의 가슴을 짓눌렀다.
미라는 달랐다.
미라는 루엔 앞에 섰다. 그 직설적인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 안에는 루엔이 본 적 없는 감정이 떠 있었다. 결심. 그리고 약속.
"내가 너를 놓아주는 건 아니야."
미라가 루엔의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난 아래에서 기다릴 거야. 넌 위에서 나아가. 그리고 돌아와."
말하고 난 후, 미라도 루엔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루나와는 다르게, 미라는 루엔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이별이 아니라 약속이 있었다.
"약속해."
"응."
루엔은 대답했다. 그 한 글자가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약속하겠다. 돌아오겠다. 거짓 없이 서겠다.
미라는 루나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루엔은 혼자 남겨졌다.
어둠 속에서 루엔의 손은 투명했다. 거짓을 고백할 때마다 벗겨져 나가던 자신의 몸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손가락을 보면 너머의 어둠이 비쳤다. 마치 자신이 물질이 아닌 것처럼.
6층의 문이 열렸다.
"침묵의 방"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루엔은 알았다. 이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그곳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끊길 것이라는 것을.
루엔은 발을 옮겼다.
한 발. 또 한 발.
문을 지나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소리가 없었다. 완전한 침묵. 루엔의 발이 바닥을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호흡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의 고동도. 마치 자신의 몸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빛도 거의 없었다. 5층에서 올라온 루엔의 몸에서 나오던 진주색 빛도 이 어둠 속에서는 사라져 갔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이 어둠이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입처럼.
루엔은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 또 한 발. 끝이 없었다.
방향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발은 계속 움직였다. 자신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발 아래 무언가가 있었다. 바닥이 있다는 증거. 그것만으로도 루엔은 계속 걸을 수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또 한 발.
시간이 흘렀다. 아니,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루엔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루엔."
소리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서 그 목소리는 흡수되었다.
손을 들어 앞으로 흔들어봤다. 손이 움직였다. 하지만 어둠은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 이름을 불렀다. 더 크게.
"루엔!"
침묵만 있었다.
루엔은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무언가를 느껴보려 했다.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 하지만 그것도 불확실했다.
공허함이 밀려왔다.
깊은, 거대한, 견딜 수 없는 공허함. 마치 자신의 가슴에 검을 들이대고 파고드는 것처럼. 루엔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음성도 없이, 몸도 없이, 오직 공허함만 남겨진 상태로.
다시 일어나려 했다.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또 넘어졌다. 손가락이 바닥에 부딪혔다. 통증이 없었다. 투명한 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루엔은 다시 일어섰다. 또 넘어졌다. 또 일어섰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침묵 속에서 루엔의 넘어짐과 일어남만 계속되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작은 빛. 별의 조각처럼 작은 빛. 여섯 번째 별의 파편이었다.
루엔은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투명한 손. 거짓 없는 손. 그 손이 별의 조각에 닿으려는 순간—
"루엔."
목소리가 들렸다.
침묵의 방에서 처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루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루엔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형의 목소리.
"셀린?"
루엔이 중얼거렸다. 침묵의 방에서 자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형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들렸다.
어둠이 걷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것처럼.
그리고 셀린이 나타났다.
형은 탑의 계단에 서 있었다. 마을의 옷을 입고, 마을의 창을 들고. 하지만 그 눈은 달랐다. 이전의 차가움이 없었다. 대신 깊은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난 널 미워한 적 없어."
셀린이 천천히 루엔에게 다가왔다.
"널 무시했을 뿐이야. 그리고 넌 나한테 거짓을 했어."
루엔은 대답할 수 없었다. 형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이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형의 목소리는 분명 현실이었다.
"난 너를 질투했어."
루엔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왔다. 침묵의 방에서, 처음으로.
"넌 특별하고 난 평범하다고 생각했어."
루엔의 몸이 떨렸다. 여섯 번째 거짓. 그것은 모든 거짓의 근원이었다. 형에 대한 질투, 형을 향한 거짓. 그것이 루엔을 형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형이 루엔을 무시하게 만들었고, 결국 루엔 자신을 거짓의 감옥에 가두었다.
"그래서 넌 나를 도울 수 없다고 거짓말했어."
루엔은 계속했다. 말할수록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어. 넌 내가 필요했어. 넌 나를 도우려고 했어. 난 그걸 거부했어."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 루엔의 몸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빛이었다.
진주색 빛. 하지만 이제는 다른 색깔이 섞여 있었다. 형의 색깔. 루엔이 본 적 없는, 형 고유의 빛.
황금색이 루엔의 진주색과 만났을 때, 루엔의 가슴이 터질 듯 뜨거워졌다.
여섯 번째 별이 만들어졌다.
별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침묵의 방의 천장을 뚫고, 5층을 지나고, 4층을 지나고, 계속 위로. 아래에 있는 루나와 미라에게도 그 빛이 보였을 것이다. 여섯 번째 별. 형과의 관계가 회복된 증거.
셀린이 루엔을 안아주었다.
투명해진 루엔의 몸을 안았다. 마치 무형의 것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미안해. 루엔. 정말 미안해."
셀린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나도."
루엔이 중얼거렸다.
둘의 호흡이 맞춰졌다. 들숨과 날숨이 같은 리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형의 눈물이 루엔의 투명한 어깨에 떨어졌다. 차갑고 뜨거운 눈물이 루엔의 몸을 통과해 빛으로 변했다.
거짓 없는 침묵. 진정한 형과 동생의 침묵.
시간이 흘렀다.
루엔과 셀린은 천천히 몸을 떼었다. 형의 얼굴을 보니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 위로 가야 해."
셀린이 말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아래에도 루나와 미라가 있고, 난 여기 있어. 그리고 아르투르도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
루엔이 고개를 들었다.
"아르투르?"
"응. 그 늙은이가 날 따라오라고 했어. 넌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8층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난 왔어."
셀린이 루엔의 손을 잡았다. 형의 손은 따뜻했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따뜻함.
루엔과 셀린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침묵의 방의 어둠은 점점 걷혀 갔다. 위로 향한 계단이 보였다. 그 위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빛의 방."
셀린이 읽었다.
루엔은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형의 손을 잡은 채로.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형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루엔이 문 앞에 섰을 때였다.
탑의 벽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였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탑 자체의 목소리. 마치 별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동시에 심연처럼 깊었다.
"빛의 방에서 만난다. 여기서 넌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것이다."
탑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안에는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빛은 루엔을 태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빛이 루엔을 부르고 있었다.
셀린이 루엔을 바라봤다.
"가. 난 여기서 기다릴게."
루엔은 형의 손을 놓고,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세상이 다시 바뀌었다.
루엔의 몸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빛의 방 안에서 그는 자신의 손을 볼 수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느껴졌다. 손가락 끝에서 맥박이 뛰는 것. 가슴에서 숨이 차오르는 것. 자신이 아직 여기 있다는 증거들.
방은 끝없이 넓었다. 어떤 벽도 없었다. 어떤 천장도 없었다. 단지 빛뿐이었다. 하얀 빛. 노란 빛. 파란 빛. 모든 색의 빛이 섞여, 마치 별 전체가 루엔 안에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루엔은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발은 저절로 움직였다. 빛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장면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이 보였다. 어린 루엔이 부모님 앞에 서 있다. 재능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표정. 셀린은 이미 합격했다. 루엔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모두가 안다. 루엔은 떨어질 것이라고. 루엔의 숨이 멎었다.
거짓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장면이 바뀌었다.
학교다. 루나가 루엔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루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루엔은 그 웃음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고 거짓말했다. 루나는 타고난 재능이 많은 소녀였고, 루엔은 그런 루나에게 다가갈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루엔의 목이 조여 왔다. 그래서 거리를 뒀다. 거짓으로 마음을 숨겼다. 루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루엔을 믿었는데, 루엔은 그 믿음을 배신했다.
장면이 또 바뀌었다.
미라가 있다. 미라는 루엔의 거짓을 지적했다. 루엔의 약함을 꿰뚫어봤다. 루엔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루엔은 미라의 약함을 외면했다. 미라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엔은 자신의 거짓을 지키기 위해 미라를 거부했다.
루엔이 무릎을 꿇었다.
투명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얼굴도 없는 몸이 흐느꼈다.
"내가... 너무 많은 거짓을 지었어."
루엔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루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루엔이 여러 개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빛이 더 밝아졌다.
루엔은 눈을 감았지만 빛은 그것도 뚫고 들어왔다. 눈꺼풀을 뚫고, 뇌를 뚫고, 심장을 뚫고. 빛이 루엔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숨길 수 없었다. 거짓도 없었다. 단지 투명함만 있었다.
"여섯 개의 별을 되살렸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타원형 울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마치 모든 인간의 목소리를 합친 것 같은 음성.
"여섯 번의 거짓을 고백했지."
루엔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어. 가장 깊은 거짓이."
"무엇... 무엇인가요?"
루엔이 물었다.
"그건 넌 안다. 넌 이미 안다. 하지만 아직 고백하지 않았어. 일곱 번째 거짓. 모든 거짓의 근원. 너 자신에게 한 거짓."
빛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루엔 앞에, 일곱 번째 별의 조각이 떠 있었다. 하지만 이 별은 다섯 개의 별과 달랐다. 이 별은 검은색이었다. 완전한 검은색.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검은 별.
루엔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 별을 되살리려면?"
"진실을 말해야 해. 너 자신에게 한 가장 깊은 거짓. 모든 것의 시작. 모든 것의 끝."
루엔의 손이 떨렸다. 투명한 손가락이 검은 별의 표면에 닿았다.
그 순간, 기억이 밀려왔다.
세상의 빛이 사라진 지 3년 전. 루엔은 아직 여덟 살이었다.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다. 어떤 선택이 있었다.
지워야 했다. 지워야만 했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서 그 기억이 튀어나온다.
루엔은 그때 누군가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하지 않았다.
루엔은 혼자 살기로 선택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리안이었다. 루엔의 이웃. 루엔보다 나이가 많은 소년. 루엔을 항상 챙겨주던 사람.
그날 밤, 광장에서 불이 났다. 루엔과 이리안은 함께 있었다. 루엔은 이리안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루엔은 놓았다.
두려움 때문에. 혼자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신이 특별해야 한다는 거짓 때문에.
그리고 이리안은 불 속에서 죽었다.
루엔은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루엔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거짓을 만들었다. 평범하다는 거짓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짓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선택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은 가혹했다.
거짓은 루엔을 짓누르고, 루엔을 가두고, 루엔을 죽였다.
루엔이 입을 열었다.
"난... 누군가를 버렸어."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람은 이리안이었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난... 난 도와주지 않았어. 그냥... 혼자가 되고 싶었어."
루엔은 계속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자신이 무능하다고 거짓말했어. 그래야 내 선택이 정당해질 것 같았어. 그래야 내가 도와주지 않은 그 사람의 죽음이... 내 잘못이 아닐 것 같았어."
검은 별이 루엔의 손 안에서 떨렸다.
"하지만 이제 알겠어. 그건... 거짓이었어. 나약한 거짓이었어."
루엔의 몸이 투명한 상태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투명한 눈물이 빛 속으로 떨어졌다.
"난 이리안을 버렸어. 그리고 평생 그 거짓 안에 갇혀 있었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자격이 없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을 지어야 한다고."
루엔이 검은 별을 가슴에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을 되살리는 것뿐이야. 내가 버린 것을 되살리는 것뿐이야. 그래야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검은 별이 루엔의 손 안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검은색에서 빨간색으로. 빨간색에서 주황색으로. 주황색에서 노란색으로. 색이 계속 변했다. 모든 색의 빛이 그 안에 담겼다.
일곱 번째 별.
루엔이 그것을 하늘로 날렸다.
빛의 방의 천장을 뚫고, 침묵의 방을 뚫고, 모든 층을 뚫고 계속 위로. 여섯 번째 별이 이미 밝힌 하늘 위로 일곱 번째 별이 떠올랐다.
그 순간, 루엔의 몸이 다시 나타났다.
투명함이 천천히 걷혀갔다. 손가락이 선명해졌다. 팔이 실체를 되찾았다. 얼굴이 빛 속에서 드러났다. 루엔은 다시 한 명의 사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루엔의 눈빛이 달랐다.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더 이상 거짓의 무게가 눌러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결연함.
빛의 방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루엔은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문이 나타났다. 루엔이 그 문으로 나왔을 때, 셀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은 루엔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넌 완전히 달라졌어."
"응. 난... 이제 알겠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루엔이 대답했다.
셀린과 루엔은 함께 8층 입구로 향했다. 그 위에는 또 다른 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높은 곳에는 또 다른 거짓이, 또 다른 진실이 있었다.
하지만 루엔은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루엔은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8층 입구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르투르일 것이다. 셀린의 말처럼.
그때였다.
탑의 벽이 울렸다. 이번에는 탑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루엔!"
루나의 목소리였다.
루엔이 뒤를 돌았다. 5층에서 루나와 미라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일곱 번째 별을 보고 있었다.
루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루엔을 본 순간, 루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루엔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루나가 미라를 바라봤다. 미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느꼈다.
루나가 루엔을 향해 손을 모아 가슴에 모으는 제스처를 취했다. 신호였다. 응원의 신호.
미라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 V자를 만들었다. 승리의 신호.
루엔이 같은 제스처를 돌려보냈다.
아래에서 보이는 루나와 미라의 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루엔과 셀린이 위로 올라갈수록.
8층 입구가 앞에 있었다. 그 문 위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시험의 방."
루엔이 그 글씨를 읽었을 때, 문 앞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나타났다. 냉정한 눈빛을 가진 얼굴. 카이였다. 루엔의 어두운 자아. 그 아이가 8층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넌 이제 8층에 올 수 없어."
카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예리했다.
"넌 이미 충분히 거짓을 벗겼어. 더 이상 거짓이 없는 너는 힘이 없어. 난 너를 막을 거야. 여기서."
루엔이 한 발을 내디뎠다. 카이가 움직였다. 검은 기운이 소년의 손에 모였다.
루엔이 계단을 오르려 했다. 카이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의 몸이 부딪혔다. 루엔은 뒤로 밀렸다.
"넌 진짜 생각이 없네."
카이가 웃었다.
"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아르투르가 왜 날 보냈는지? 루이스가 왜 날 만들었는지?"
카이가 다시 공격했다. 검은 기운이 루엔을 향해 날아왔다.
셀린이 검을 뽑았다.
"거짓을 벗긴 루엔도 충분히 강하다."
셀린이 카이의 공격을 막아냈다.
루엔은 형의 옆에 섰다. 손에는 진주색 빛이 모였다. 더 이상 투명한 빛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힘이었다.
카이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루엔을 바라봤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카이가 검은 기운을 모았다. 루엔과 셀린도 자신들의 빛을 모았다.
시험의 방의 문이 열렸고, 세 소년의 그림자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