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거울 속 창백한 얼굴. 손이 떨린다. 아버지를 만난 후 이상이 심해졌다. 손님의 슬픔을 듣고, 위로하고, 돌아오는 감정의 파도. 누구의 감정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너한테 얘기해야 할 게 많아.
나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밤이 밝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오전 9시. 문을 열고 나오니 햇살이 따뜻했다. 카페 앞 간판 '온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낡은 목재지만, 누군가 정성껏 닦은 흔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손길일까. 아니면 삼촌의 기억이 묻어 있는 것일까.
생각을 거기서 끊었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숨이 차오른다.
정오가 넘어서자 첫 손님이 들어왔다. 이준호였다. 얼굴이 어두웠다.
"어제 그 여자, 누군데?"
나는 커피를 내렸다. 답하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오더니 자기가 여기 사주겠다고? 뭐 하는 사람이야?"
"손님이야."
"손님? 그 여자가?" 이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해. 어제 분위기 이상했어. 할머니도 가버리고, 아버지도 뭔가 말이 많았고, 그 여자는 또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잠을 자지 못했던 눈으로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왼손이 저렸다. 이준호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곳이 변할까 봐. 자신이 다시 혼자가 될까 봐.
"변하지 않아. 여기는 변하지 않아."
거짓말이었다. 나도 모르겠었다. 이미 변하고 있었다. 내가 거짓을 말하는 순간, 나는 스스로 모순을 인식했다. 이곳을 지키려고 하면서도,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오후 1시. 박할머니가 들어왔다. 손에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어제 많이 힘들었겠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도시락을 받았다. 할머니는 카운터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여자, 이전 주인이 아는 사람이야?"
"모르겠어."
"진짜?"
나는 할머니의 눈을 마주쳤다. 할머니의 눈에는 뭔가 담겨 있었다. 결정해야 할 것 같은 눈빛이.
"진짜야."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조심해야겠네. 저 여자 눈빛이 보통이 아니야."
오후 2시 30분. 김효선이 들어왔다. 파란 정장을 입었다. 어제와 같은 옷이었다. 그녀는 카페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벽을 만지고, 창밖을 봤다.
"이 카페가 특별한 이유를 알아야 인수할 수 있어."
나는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손이 떨렸다.
"팔 수 없어."
"아직은 그렇겠지. 하지만 결국 팔게 될 거야. 모든 것을 소유하려다 보면 결국 잃어버리니까."
나는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여기 전 주인이 누구였어?"
"모르겠어."
"정말?" 김효선이 미소지었다. "여기서 자고 있었잖아. 저 계단 위에서. 어제 아버지분도 봤잖아. 그런데 전 주인은 모른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호는 학원 다니다 포기한 아이고, 유미라는 어딘가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고, 박순례 할머니는 가족과 단절된 상태고, 정석진은 아들을 10년 만에 만났어. 이 모든 게 우연일까?"
나는 거기서 눈을 들었다. 김효선의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이준호의 불안한 목소리, 유미라의 눈물이 떠올랐다.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너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야. 누군가가 너를 돌봐줘야 할 사람이야. 그런데 넌 자신이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있어."
김효선이 커피를 마셨다. "이 카페의 전 주인은 누구였고,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고, 왜 너는 여기 있는 거야? 그걸 알면, 이 카페를 팔지 말아야 할 이유도, 또는 팔아야 할 이유도 분명해질 거야. 그리고 그 전 주인의 이름은 민준이야. 너와 같은 이름이야."
오후 3시. 유미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김효선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내일 올게."
"잠깐."
유미라는 나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나는 카운터에서 내려왔다. 문을 열고 거리를 봤다. 유미라는 이미 골목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김효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른다.
오후 4시. 정석진 아버지가 들어왔다. 어제의 눈물은 사라지고, 얼굴이 딱딱했다. 김효선을 보더니 일어나려고 했다.
"아버지."
정석진은 멈췄다.
"날 데려가지 말아."
아버지는 오래도록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 결정된 것 같았다. 슬픔과 포기가 섞인 눈빛. 그다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아버지가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뒷모습.
"아버지!"
나는 외쳤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5시. 이준호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창가에 서서 거리를 봤다. 이준호가 자주 앉던 창가 자리. 그곳은 비어 있었다. 학원을 포기한 아이. 이곳이 유일한 피난처였던 아이. 그 아이가 오지 않았다.
오후 6시. 카페는 텅 비어 있었다. 나와 김효선 둘이 남았다.
"이 공간이 너를 구원한 거야. 그런데 너는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공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는 게 웃겨."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 다시 올게. 그때까지 생각해봐. 너는 정말 이 카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그림자만 따라가는 사람인지."
김효선이 나갔다. 카페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아니, 내가 껐다. 한 번에 모든 불을 끌 수 없었다. 하나씩 끄면서 손님들이 앉던 자리가 어둠에 잠기는 모습을 봤다.
오후 6시 30분.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손님이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오직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렸다.
내가 또 혼자가 되나?
중얼거림이 나왔다.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손님들이 없으면 나는 누구인가? 카페의 주인? 아니면 단지 여기 있는 누군가?
왼손이 저렸다. 오른손이 떨렸다. 양쪽 손이 동시에 반응했다. 그건 처음이었다. 손을 주먹으로 쥐어봤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폐쇄공포증이 돌아올 것 같았다. 벽이 가까워지는 느낌. 천장이 내려오는 느낌. 숨이 막혀왔다.
그때였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박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들어왔다. 옷이 젖어 있었다. 빗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비가 왔는지 나는 몰랐다.
"날씨가 안 좋아서 못 왔어. 너 혼자였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무너졌다. 할머니를 보고 안기듯 몸을 굽혔다. 할머니는 젖은 우산을 들고 나를 받았다. 할머니의 어깨가 작았다. 할머니가 몸을 굽혔다.
"혼자가 아니야. 넌 혼자가 아니야."
빗소리가 계속됐다. 카페 창밖으로 비가 줄줄 내렸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에서 얼굴을 들었다. 할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건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었다. 할머니 자신의 눈물이었다. 이혼 후 혼자가 되었던 할머니, 자식들과 단절된 할머니가 흘리는 눈물.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내가... 너무 약했어."
목이 메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약한 게 아니야. 너는 견디고 있었어. 혼자 견디고 있었지."
할머니가 나를 카운터 의자로 이끌었다. 앉혔다. 할머니는 젖은 우산을 옆에 세우고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들었다. 주름진 손이었다. 따뜻했다.
"이 자리에서 너를 봤을 때, 나는 알았어. 이 아이는 누군가가 필요한 아이라고. 그런데 넌 그걸 모르고 있었어. 남을 돌봐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어."
나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난 이 카페에 왜 오는 줄 알아? 너한테 돌봄을 주기 위해. 너는 주는 것만 알았는데, 받는 것도 배워야 해. 그게 사람이 사는 거야."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왼손이 저렸던 손이다. 할머니의 손이 닿자 저림이 멈췄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손을 놓는 순간 다시 혼자가 될 것 같았다. 손가락을 더 깊이 맞물렸다. 할머니는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말을 멈췄다.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더 컸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침묵. 그걸 나한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침묵.
"뭐예요, 할머니?"
"...나중에 얘기해줄게. 지금은 아직..."
할머니가 다시 나를 안았다. 이번엔 내가 할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할머니의 옷에서 빗내음이 났다. 그리고 또 다른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항상 입던 옷에서 나는 그 따뜻한 냄새.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냄새.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가 일어나 앉았다.
"커피 좀 마시자. 너는 내 커피를 좋아하잖아."
"할머니께서 마신 적이 없는데요."
"그건 내가 마실 때고, 이번엔 너를 위해 만드는 거야."
할머니가 카운터 뒤로 들어갔다. 이건 처음이었다. 손님이 우리 카페의 주방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할머니의 손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커피 원두를 갈 때 할머니의 얼굴이 진지했다. 물을 끓일 때 할머니는 정신을 모았다. 드립백을 만들 때, 잔을 닦을 때, 모든 동작에 할머니의 집중력이 담겨 있었다.
그게 돌봄이구나. 누군가를 위해 집중하는 것.
할머니가 잔을 내밀었다. 김향기가 폴폴 올라왔다. 나는 마셨다. 쓰지 않았다. 달지도 않았다. 정확한 맛이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맛이었다.
"좋아?"
"네."
"그럼 됐어. 넌 혼자가 아니야. 여기 내가 있잖아."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채로 빗소리를 들었다. 카페의 창밖으로는 시골 읍내의 밤거리가 빗속에 흐릿해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누군가는 저 가로등 아래를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저 불이 켜진 창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있다.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
"응?"
"그 사진... 그 전 주인의 사진을 다시 보여줄 수 있어요?"
할머니가 나를 바라봤다. 잠시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준비가 뭔데요?"
"그 사람이 왜 이 카페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넌 왜 여기 있는지를 받아들일 준비 말이야."
할머니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너는 지금 받고 있어. 날 받고, 이준호를 받고, 유미라를 받고, 너의 아버지도 받고 있어. 그게 첫 번째 단계야. 이제 다음 단계가 남았어. 그건 네가 왜 이 모든 걸 받아야 하는지 아는 거야."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박하지도 않았다. 할머니의 손이 따뜻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오후 7시. 할머니가 일어났다.
"날씨가 좀 나아졌으니 집에 가야겠다. 내일도 올게."
할머니가 우산을 집어 들었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민준아, 너는 누구를 위해 이 카페를 지키고 싶은 거야?"
"누구를 위해?"
"응. 손님들을 위해? 아니면 너 자신을 위해?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할머니의 눈이 나를 기다렸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울리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생각해봐. 내일 봐."
할머니가 나가간 후,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혼자가 이전의 혼자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손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할머니가 마신 커피 잔이 카운터에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발자국이 바닥에 남아 있었다.
나는 커피 잔을 집어 들고 닦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누군가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 누군가가 나를 돌봤다는 증거.
오후 7시 30분.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민준아. 내일 점심 괜찮을까?"
"네."
"그리고... 미안해."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뭐가요?"
"널 혼자 두고... 그리고 지금까지 널 돌봐주지 못하고. 너를 이해하지 못했고. 너는 여기서 혼자 견디고 있었구나."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내일 봐. 그때 다 얘기할게."
전화가 끝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너를 혼자 두고..." 그 말이 반복됐다.
혼자가 아니야. 할머니가 그랬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런데 왜 가슴이 자꾸 철렁거릴까. 왜 할머니의 그 질문이 계속 떠오를까. 왜 김효선의 말이 자꾸 맴돌까.
"너는 누구를 위해 이 카페를 지키고 싶은 거야?"
누구를 위해? 손님들을 위해? 내 자신을 위해?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오후 8시. 나는 카페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이 앉던 자리를 보고 있었다. 이준호가 항상 앉던 창가 자리. 유미라가 좋아하던 모서리 테이블. 할머니가 앉던 카운터 의자. 아버지가 앉던 테이블.
그리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앉던 자리도 있을 것이다. 10년 전 이 카페를 만든 누군가. 이 모든 손님들을 돌봤던 누군가. 그 사람의 흔적이 이 공간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카운터 아래를 찾아봤다. 낡은 상자가 있었다. 낡은 노트가 있었다. 누군가의 필기가 남아 있었다. 손님들과의 대화 내용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준호의 학원 포기, 유미라의 눈물, 할머니의 외로움. 모든 것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필체를 따라가다 보니 뒤쪽에 다른 글씨가 섞여 있었다. 내가 쓴 글씨와 닮은 필체였다. 아니, 거의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글씨를 따라 써놓은 것처럼.
그 순간, 손이 떨렸다.
왼손이 저렸다. 오른손이 떨렸다. 양쪽 손이 동시에 반응했다.
노트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10년 전. 그리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준'. 나와 같은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노트를 닫았다. 상자를 닫았다. 아직 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처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오후 9시. 나는 카페의 불을 껐다. 모든 불을 다 껐다. 카페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함만 있었다.
할머니가 내일도 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내일 점심을 제안했다. 이준호는? 유미라는? 김효선은?
그들이 정말 다시 올까? 아니면 김효선 때문에 모두 사라져버린 걸까?
그리고 이 카페의 전 주인은 누구일까? 왜 나는 이 사람을 알아야 할까? 왜 할머니는 그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을까? 그리고 왜 그 사람의 필체가 내 필체와 닮았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르는 것들이 모두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새벽 1시. 나는 깬다.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혼자 카페에 있었다. 손님들은 모두 사라졌고, 벽이 자꾸 가까워졌다. 천장이 내려왔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내가 알아야 할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소리가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다.
"잠깐! 누세요?"
나는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오직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가 카페를 떠나가는 발자국. 점점 멀어지는 발자국.
나는 눈을 떴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에 식은 땀이 흘렀다.
새벽 2시.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할머니의 손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이준호의 자조적 웃음을 생각했다. 유미라의 눈물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나를 위해 자꾸만 돌아오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김효선의 말이 맞다면, 나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중일 것이다. 그 카페를 만든 사람의. 그 사람이 만든 길을 따라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길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그 사람의 길이기만 할까? 아니면 이건 나 자신의 길일까?
새벽 3시. 나는 다시 깬다. 이번엔 꿈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카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노킹 소리. 규칙적인 리듬. 누군가가 정해진 신호처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봤다. 밤은 아직 깊었다. 거리는 조용했다.
노킹 소리가 계속됐다.
나는 내려갔다.
카페의 문 너머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실루엣만 보였다.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키가 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세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물었다. 손이 떨렸다. 이 순간이 올 줄 알면서도, 정말 오는 순간은 두려웠다.
"민준아. 나야. 이제 너를 봐도 될 것 같아."
목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르게 들렸다. 더 부드러웠다. 더 슬펐다.
"누... 누세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문을 열 수도, 닫을 수도 없었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날 모르니? 내가 이 카페를 만들었고, 너는 그 길을 따라왔어. 그리고 이제... 이제 넌 준비가 됐어."
내 손이 멈췄다. 문 너머의 실루엣이 움직였다. 손을 들었다. 문을 두드렸다. 같은 리듬으로.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나도 알아. 왜냐하면 나도... 나도 혼자였으니까."
그 말이 끝났을 때, 나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과 닫아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대와 공포가 뒤섞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과 만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손잡이를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문 너머의 실루엣이 다시 움직였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 때까지.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