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새벽 3시 45분

새벽 3시 45분, 카페의 천장 선풍기가 천천히 돌았다. 민준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피로와 각성 사이에서 흔들렸다. 왼손 끝이 따끔거렸다. 어제는 오른손이었고, 그저께는 왼발이었다. 신체가 조각조각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만난 이후 몸이 이상해졌다. 10년 만의 재회는 마치 오랫동안 잠든 신경이 깨어나는 과정 같았다. 그 깨어남이 고통스러웠다.

어제 밤, 그 고통이 극에 달했다.

카페 문이 닫혀도 벽이 자꾸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고, 천장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폐쇄공포증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도시에서 느꼈던 그 감각. 숨이 막혀오는 그 감각. 몇 년 만에 느끼는 그것이 민준을 짓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양손이 떨렸다. 시각이 흔들렸다. 사물의 윤곽이 자꾸 흐릿해졌다.

이 공간을 잃는다면. 손님들을 잃는다면. 자신이 다시 혼자가 된다면.

민준은 카운터를 붙잡고 몸을 구부렸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귀에서는 맥박음이 울렸다. 자신의 심장이 내는 소리가 세상의 모든 음을 집어삼켰다.

# 아침 7시

아침 7시, 첫 손님이 들어섰다.

이준호였다. 늘 입고 다니는 회색 후드티 위에 검은 바람막이를 걸쳤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민준은 에스프레소 잔을 준비했다. 이준호가 좋아하는 것을 이제 알았다. 설탕은 한 스푼, 우유는 없이.

"형, 요즘 어때?"

이준호가 카운터에 앉으며 물었다. 늘 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괜찮아."

민준이 대답했다. 거짓이었다. 이준호는 거짓을 알아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형이 나한테서 뭘 원하는 거야?"

물음이 떨렸다.

"뭘?"

"나 말이야. 왜 자꾸 나 얘기를 들어주고, 밥도 챙겨주고... 혹시 형도 날 이용하는 건 아닐까?"

민준의 손이 멈췄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증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날 동정하는 거야? 아니면..."

"아니야."

민준이 말했다. 하지만 이어질 말이 없었다. 왜 이준호를 돌보는가. 왜 그 청년의 말을 들을 때 자신의 가슴까지 아픈가.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형, 대답이 안 되면 그냥 말해. 나 혼자인 게 맞으면 그냥 혼자인 대로..."

이준호가 일어섰다. 카페를 나가려 했다. 민준은 손을 들었다.

"기억해. 내가 첫 날 뭐라고 했어?"

이준호가 멈췄다.

"실패가 끝이 아니야. 너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

"그건... 형이 날 모르면서 하는 말인 걸 알아."

이준호가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과 항변이 동시에 떠 있었다.

"형도 나처럼 여기 혼자 와서 혼자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 둘 다 혼자인 거잖아. 왜 자꾸 날 구원하려고 해?"

민준이 대답할 수 없었다. 이준호는 카페를 나갔다. 유리문이 닫혔을 때 방울이 울렸다.

카운터에 남겨진 에스프레소는 식어가고 있었다.

# 오전 10시 30분

오전 10시 30분, 유미라가 들어섰다. 검은 원피스 대신 오늘은 밝은 회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진짜 미소인지 가면인지 민준은 여전히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으면 자신의 가슴이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안전해지는 것처럼.

"어제 못 왔어. 미안해."

유미라가 말했다.

"일이 있었어?"

"응. 그런데..."

그녀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민준의 왼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 있으면 괜찮아. 그것만으로도."

유미라가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은 민준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말인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는 주문처럼.

민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옆에 앉아 시간을 함께했다. 30분, 1시간, 1시간 30분. 그 침묵 속에서 유미라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왔다.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풀림이 마치 자신의 긴장도 함께 풀어주는 것 같았다. 호흡이 깊어졌다.

유미라가 나갈 때 민준의 손을 잠깐 잡았다. 아무 말도 없이.

# 오후 1시

오후 1시, 박순례 할머니가 들어섰다. 늘 그렇듯이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오늘은 도시락 통이었다.

"점심 먹어야지. 밥만 먹고 있으면 안 돼."

할머니는 카운터 위에 도시락을 놓았다. 열어보니 밥 위에 계란말이, 시금치나물, 소시지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할머니 손의 온도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 매일..."

"그래, 매일이지. 뭐. 혼자 밥 먹는 거 싫거든."

할머니가 민준 맞은편에 앉았다. 창밖으로 시골 읍내의 오후 햇빛이 들어왔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었다.

"너 요즘 밤을 못 자는 것 같아. 눈 밑이 까매졌어."

"괜찮아요."

"괜찮을 리 없지. 누군가 너 옆에 있어주면 밤도 덜 무서워. 알아?"

민준이 밥을 떠먹었다. 밥알이 혀에 닿았다. 온기가 있었다. 할머니가 이 밥을 어느 시간에 준비했을까. 새벽일까. 아침일까. 그 손길이 느껴졌다.

"할머니, 왜 매일..."

"너한테 필요하니까지. 그리고..."

할머니가 말을 멈췄다. 그 침묵 속에는 할머니의 또 다른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할머니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사실. 그걸 민준이 이제 느낄 수 있었다.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그게 전부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의 눈에 물이 맺혀 있었다.

"너 혼자가 아니야."

그 한 마디가 민준의 가슴을 쳤다. 뭔가가 녹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것이. 도시에서 느꼈던 폐쇄공포증의 벽이 한 점, 한 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

"응. 여기 있어. 여기만 있어."

할머니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가 가슴까지 전달되었다. 민준은 처음으로 타인과의 연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손과 손이 맞닿는 것. 그것이 치유였다.

할머니가 나간 후, 민준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손이 여전히 따뜻했다. 할머니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온기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깨달았다. 도시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만지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의 손을 잡지 않았다. 모두가 거리를 유지했고, 자신도 그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 오후 3시

오후 3시, 정석진이 들어섰다. 아버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냥 손님이었다. 한 명의 손님.

"안녕하세요."

정석진이 인사했다. 10년 전 버릇이 여전했다. 자식 앞에서도 존댓말을 하는 아버지.

"안녕하세요."

민준도 존댓말로 대답했다. 어떻게 편해야 할지 몰랐다.

정석진이 카운터에 앉았다. 손가락을 맞잡고 풀었다 반복했다.

"너... 잘 지내고 있어?"

"네."

침묵이 길었다. 아버지의 어깨가 굽어 보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아버지를 많이 변화시켰다.

"그 날...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야 했을까."

민준이 에스프레소를 준비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

정석진이 천천히 말했다. 그 말 속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

민준이 에스프레소를 내밀었다. 아버지의 손이 잔을 받았다. 손이 떨렸다.

"너 여기서... 행복해?"

"모르겠어요."

민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가 도시보다는..."

"응."

정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오후 5시

오후 5시, 민준은 카페 앞에 서 있었다. 가을 해가 읍내의 지붕들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손님들이 간 후 카페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고독하지 않았다. 손님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너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 유미라의 침묵, 이준호의 질문, 아버지의 눈물.

그들의 돌봄이 자신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민준은 이제 알았다.

이준호가 한 달 전 건넸던 책.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민준을 위해 선택한 책이었으니까.

유미라의 미소. 그 미소가 점점 진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자신의 변화와 함께했다.

할머니의 밑반찬. 매일 손으로 준비한 음식. 그것이 자신을 살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침묵. 그 침묵 속에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고통이 있었고, 그 고통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치유되었다.

민준은 깨달았다. 자신이 손님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손님들이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골든핑거로 그들을 위로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신을 위로했다. 일방적 돌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다.

그 순간이었다.

# 김효선의 등장

카페 문이 갑자기 열렸다.

파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들어섰다. 김효선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즈니스 스마일이 있었다.

"서민준 사장님, 만나니 반가워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카페, 정말 특별한 곳이더라고요. 이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해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변한다고."

김효선이 카페를 둘러봤다. 낡은 목재, 녹슨 간판, 어딘가 불완전한 공간. 하지만 지금 민준에게는 이 공간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인수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민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폐쇄공포증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이 공간을 잃는다면. 손님들을 잃는다면. 자신이 다시 혼자가 된다면.

"아니면 함께 운영하는 건 어때요? 효율성을 높이면..."

김효선의 말이 멀게 들렸다. 민준의 귀에는 다만 하나의 음향만 남았다. 위협음. 자신의 안전한 공간을 빼앗아가려는 위협음.

그 순간, 민준의 왼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손도. 양손이 동시에 떨렸다. 손가락 끝이 마비되는 느낌. 혈액이 역류하는 듯한 감각.

카페 문이 닫혔다. 또는 닫힌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가 갑자기 탁해졌고, 벽이 한 발씩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폐쇄공포증은 이렇게 시작된다.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그 다음은 급속도로.

"사장님?"

김효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민준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손님 테이블의 의자 등받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구석진 곳이 자꾸 시선을 잡아당겼다. 도시의 사무실 같은 이 감각. 몇 년 만에 느끼는 이 감각. 그리고 이번엔 더 심했다.

"저... 물을 마실래요?"

김효선이 물을 따라 권했다. 손 떨림이 심했다. 민준은 카운터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네... 잠깐만요."

민준이 화장실로 향했다.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찬 공기가 폐에 들어왔다. 몇 번 숨을 쉬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이번엔 손가락뿐 아니라 팔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

이 공간이 빼앗긴다는 게. 이 손님들이 사라진다는 게. 자신이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게.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김효선의 눈빛에서 민준은 뭔가를 감지했다. 호의가 아닌 뭔가. 조사하는 눈빛. 자신을 낱낱이 파헤치려는 눈빛. 그 눈빛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낼 것 같았다.

"넌 누구야?"

민준이 중얼거렸다.

뒷문이 열렸다.

# 반전

박순례 할머니가 들어섰다. 손에는 여느 날처럼 밑반찬이 담긴 용기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뭔가도 들고 있었다. 낡은 봉투였다.

"민준아."

할머니가 봉투를 펼쳤다. 사진이 나왔다.

검은색 사진. 낡은 카페. 그리고 한 남자. 그 남자의 얼굴이 민준의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할머니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할머니의 입 모양. 할머니의 눈빛.

"이 분이 내 손자야."

할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너의 삼촌이야. 아버지의 형."

민준이 사진을 보는 손이 떨렸다. 그것은 삼촌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삼촌. 아버지가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그 삼촌.

"이 분이 이 카페를 만들었어. 10년 전."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파하는 사람들을 돌보려고."

민준이 사진을 내려놨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시각이 흔들렸다. 사진의 윤곽이 자꾸 흐릿해졌다.

"왜... 왜 지금 이 얘기를..."

"Because she's looking for him."

할머니 뒤에서 김효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어였다. 정확한 발음. 도시 사람의 영어였다.

뒷문이 닫혔다. 김효선이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즈니스 스마일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 깊은 슬픔이 흐르고 있었다. 조사하는 눈빛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오빠를 그리워하는 눈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넌 누구야?"

민준이 물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지금 드러나려고 했다.

"내가 물고 싶은 것도 그거야."

김효선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움직임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만 간절했다. 민준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떨렸다.

"내 오빠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이 카페에 오는 모든 손님은 우연이 아니라고 했어. 그들은 다 너와 연결되어 있다고."

"뭐라고..."

"박순례 할머니. 이준호. 유미라. 정석진."

김효선이 하나씩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 오빠가 죽기 전에 돌봤던 사람들이야."

민준의 양손이 멈췄다. 떨림이 멈추고 무언가 깊은 것이 흔들렸다.

"그리고 너는..."

김효선이 민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조사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의 돌봄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사람이야."

침묵이 내려앉았다. 할머니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이제 그 온기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내 오빠는 이 카페를 남기면서 말했어. 만약 너—이 가게의 새로운 주인—가 여기에 온다면, 그 사람은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그럼... 내가..."

"너는 그 분의 손자가 맞아."

할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넌 모르지만, 이 모든 게 필연이야. 너의 아버지가 그 형을 잃은 후로, 넌 계속 그 형의 길을 따라왔어."

"할머니..."

"이 카페를 돌보는 것도 그 길이야. 손님들을 돌보는 것도. 넌 무의식 중에 그 형이 했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어."

민준이 사진을 다시 들었다. 삼촌의 얼굴. 그 얼굴에서 자신을 봤다. 아버지를 봤다. 할머니를 봤다. 그들 모두가 이 얼굴 안에 있었다.

"그럼... 김효선 씨는..."

"내 오빠의 제자야."

김효선이 말했다.

"그 분이 죽기 전에, 내게 너를 찾아달라고 했어. 그래서 난 이 동네로 왔어. 처음엔 조사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여기 와서 본 건..."

김효선이 카페를 둘러봤다.

"너가 이미 그 분의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

김효선이 민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 손은 비즈니스 스마일을 하지 않았다. 오빠를 잃은 여자의 손이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카페 문이 다시 열렸다.

# 모두의 재결집

이준호가 들어섰다. 그 뒤로는 유미라였다. 그리고 정석진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셋은 동시에 이곳으로 향했다.

이준호는 카페를 나간 후 민준의 말을 계속 생각했다. '실패가 끝이 아니야.'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형도 자신을 필요로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라는 오후 내내 창밖만 봤다. 카페에 있을 때 느꼈던 그 안전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정석진은 카페를 나온 후 자신의 형을 생각했다. 형이 남긴 카페. 형이 돌봤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자신의 아들.

"민준이..."

정석진이 말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떨림이 없었다. 대신 결연함이 있었다.

"나... 너한테 얘기해야 할 게 있어."

민준이 아버지를 봤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손님들이 왜 자꾸 자신의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

왜 자신의 침묵이 그들을 위로했는지.

왜 그들의 돌봄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필연이었다. 이 카페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남이.

"형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야?"

민준이 김효선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형은 일을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어. 형은 단지 너를 찾아달라고 했어."

김효선이 잠시 멈췄다. 그녀의 눈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넌 그들을 돌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돌봐져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한다고. 그게 형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거야."

민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돌봄은 일방이 아니야. 넌 그걸 이제 알았지?"

정석진이 말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너를 버렸을 때, 난 그걸 몰랐어.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돌봄을 받는 것도, 모두가 필요하다는 걸."

정석진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유미라가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정한 미소가 떠 있었다. 가면 같은 미소가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미소였다.

"우린 다 같은 사람들이구나."

유미라가 천천히 말했다.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누군가가 나한테 손을 내밀어주기를."

이준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도 젖어 있었다.

"형. 난 이제 알겠어. 넌 날 이용하지 않았어. 넌 날 필요했어. 내가 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박순례 할머니가 모두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깊은 주름이 있었고, 그 주름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었구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내 손자가 이 자리에 모두를 모았구나."

민준은 그들을 바라봤다. 할머니의 눈물, 정석진의 뻗어진 손, 유미라의 진정한 미소, 이준호의 절절한 눈빛, 그리고 김효선의 오빠를 그리워하는 표정.

그들 모두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버려짐과 구원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그 거리를 채우는 것은 손과 손이 맞닿을 때의 온기였다.

민준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 손은 놓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 온기가 전해졌다. 천천히, 유미라의 손을 잡았다.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김효선의 손을 잡았다.

카페의 불이 따뜻하게 들어왔다. 가을 저녁이 창밖에서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밝았다. 손과 손이 만나는 그곳에서 나오는 온기로.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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