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새벽 3시

새벽 3시, 손가락 끝이 저렸다.

문을 열지 않았다. 손잡이에 닿은 손가락만 계속 저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나도 혼자였으니까."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어냈을 때, 아무도 없었다. 바깥은 어두웠고, 아스팔트만 반질거렸다. 누군가 있었던 자리에 물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골든핑거를 사용할 때마다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손가락 저림이 팔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치 누군가 내 신경을 하나씩 끊어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아침이 되자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준호가 먼저 들어왔다. 후드 티셔츠를 벗지 않은 채 카운터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 리듬을 들으며 나는 왼손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요즘 꿈을 꿔요," 이준호가 말했다. "자꾸 떨어지는 꿈."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정확히는, 그 말 아래 깔려 있는 것을 들었다. 절망. 자신이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공포.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잡아줄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

"너 내 후배 맞아?"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혹시 넌 대학교... 4년 전쯤?"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 뭔가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인식. 기억. 하지만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그는 웃음처럼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는데요?"

그 말이 나를 죽였다.

내가 그를 버렸다. 그 깨달음이 몸에 들어오는 순간, 왼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비된 것처럼. 손가락이 반응하지 않았다. 골든핑거의 대가였다. 누군가를 외면할 때마다 내 몸은 조금씩 굳어 갔다.

"괜찮으세요?" 이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멀었다. 아주 멀었다. 마치 누군가 나를 물 속에 밀어 넣은 것 같았다.

오후 1시, 유미라가 들어왔다. 검은 원피스가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항상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래를 봤다. 그 웃음 아래 있는 것. 자신을 숨기려는 절박함. 누군가가 자신의 진실을 알아챌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요즘 밤에 자꾸 깨요," 그녀가 말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꿈이 있어서."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비된 손. 떨리는 다른 손. 그것마저도 감각이 없었다. 내가 그녀를 외면했다. 또 다른 누군가를 버렸다.

오후 3시, 정석진이 들어왔다. 조용히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그의 침묵이 나를 짓눌렀다. 그 침묵 속에 있는 것들—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후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 죽기 전에 그들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은 소망.

내가 알았다. 내가 그의 자식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 아니, 내가 이미 그의 자식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석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너는 괜찮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혀가 무거웠다. 목이 메었다. 내 신체는 이미 붕괴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손가락 저림에서 시작된 마비가 이제 목까지 올라왔다. 누군가를 외면할 때마다 내 몸이 굳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절망을 받아내지 못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었다.

오후 5시, 박할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항상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가 나를 봤을 때, 그녀의 웃음이 녹아내렸다.

"넌 뭐해? 왜 이런 얼굴이고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카페의 바닥이 약해 보였다. 마치 종이처럼. 나는 무릎을 꿇었다. 카운터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들이 바닥을 쓸었다. 차갑고 딱딱한 바닥. 그 감촉이 유일하게 현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목소리가 나왔다. 내 목소리였지만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왜 자꾸 눈물이 나?"

그 순간, 따뜻한 손들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준호의 손. 유미라의 손. 정석진의 손. 박할머니의 손. 한 손, 또 한 손. 나는 안겨 있었다. 여러 사람의 팔 안에. 그들의 몸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느껴본 적 없는 온기가 나를 덮었다.

나는 울었다. 목이 터질 것 같이.

"우리가 여기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박할머니가 말했다.

"형, 우린 같은 거 같아." 이준호가 말했다.

"내가 너를 받아줄 수 있듯이, 넌 나를 받아줄 수 있어." 유미라가 말했다.

"고마워. 내가 뭔가를 배웠어. 너한테서." 정석진이 말했다.

나는 그들 안에서 울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완전히 기대는 경험을 했다. 내 감정을 남에게 맡기는 경험. 도시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것. 혼자라고 생각했던 모든 밤들이 거짓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다 우연이 아니라면?

그 생각이 나를 스쳤을 때, 그들의 팔이 천천히 물러났다. 할머니가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이 초점을 맞췄다.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의 손이 내 뺨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따뜻했다. 따뜻하고도 떨리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뭔가 말해야 할 게 있어."

나는 그녀를 봤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눈물인지 그녀의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뭐?"

내가 물었다.

박할머니의 입이 열렸다 다시 닫혔다. 마치 물고기처럼. 그녀가 다시 말했다.

"넌... 정말 모르니?"

그녀가 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10년 전, 이 자리에서... 누군가가 날 만났어. 나는 혼자였어. 남편과 헤어지고, 자식들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어.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 정말로."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양손으로.

"그 사람이 나한테 물었어. '할머니, 누구한테 밥을 지어주고 싶으세요?' 그리고 나는...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 울었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날 살렸어. 이 카페에서. 이 자리에서."

내 숨이 얕아졌다. 할머니가 말하는 '이 자리'는 현재의 카페였다. 그렇다면 이 카페는 10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어. '내 조카가 있어. 언젠가는 이 자리에 올 거야. 그때까지 여기를 잘 지켜줄래요?'"

내 심장이 멈췄다.

"그게... 너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너한테 인사하고 싶었어. 10년 전부터. 하지만 넌 안 왔어. 계속 안 왔어. 그래서 나는 매일 이 카페에 와서 기다렸어. 혹시 너를 모를까봐, 혹시 날 잊었을까봐."

"할머니..."

내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넌 왔어. 드디어 왔어. 그리고 넌 똑같았어. 그 사람처럼. 누군가를 돌보는 방식이, 침묵이, 그 눈빛이... 다 똑같았어."

할머니의 손이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손에서 10년의 기다림이 전해졌다.

"그 사람은 이 동네에 와서 이 자리를 만들었어. 낡은 건물을 사서. 그리고 나한테 물었어. 여기서 함께 있어 달라고. 그러면 언젠가 너도 여기 올 거라고."

내 뇌가 작동을 멈췄다. 그렇다면 이 카페는 원래 그 사람의 소유였다는 뜻인가? 그런데 내가 왜 이 카페를 인수했을까? 내가 이 카페를 사게 된 경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사람의 친구야. 정말 오래된. 그 사람이 이 동네에 왔을 때부터의 친구야. 그리고 너는... 너는 내가 10년을 기다린 사람이야."

내 등 뒤에서 정석진이 움직였다.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말없이. 하지만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준호가 앞으로 나섰다. "형, 들어봐."

유미라가 카운터 아래를 가리켰다. "그 상자 봤어?"

내가 고개를 돌렸다. 6화에서 내가 발견했던 그 낡은 상자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이번엔 손이 움직였다. 떨렸지만, 움직였다.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편지들이 가득 있었다. 수십 장. 백장이 넘는 편지들. 모두 같은 필체로 쓰여 있었다. 나는 그 필체를 알았다. 엄마의 필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필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새벽 3시에 문 너머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의 주인. 물웅덩이 남은 자리에 서 있던 그 남자의 필체였다.

"내가 읽어줄까?" 할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막혔다. 한 장의 편지를 집어 들었다.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민준에게, 만약 넌 이 카페를 찾는다면.'

내 이름이었다. 그 필체로 쓰인 내 이름이었다.

"그 사람은 널 절대 잊지 않았어." 할머니가 말했다. "매일 너한테 편지를 썼어. 넌 오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계속 썼어. 10년을."

카페가 회전했다. 천장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천장이 되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니, 앉아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

"넌 혼자가 아니었어." 할머니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절대로."

이준호가 물었다. "형이 만난 사람, 기억나? 새벽 3시에?"

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이 왜 나타났는지 알아?"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내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빛이 달라 보였다. 마치 누군가를 알아보는 눈빛.

"그 사람이... 형을 찾아온 거야. 10년 만에. 형이 이 카페에 왔다는 걸 알고."

정석진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 사람을 알아." 유미라가 천천히 말했다. "형을 제외하고."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형은 이제 알아야 해."

이준호가 계속했다. "형의 삼촌이야. 그 사람이. 이 카페를 만든 사람이야. 그리고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야."

내 손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바닥에 흩어지는 편지들. 10년의 기다림. 10년의 침묵. 10년의 사랑.

그리고 나는 지금 깨달았다.

내가 왜 이 카페에 왔는지. 왜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는지. 왜 내 손이 떨렸는지. 왜 내가 그들을 돌봤을 때 눈물이 나왔는지.

이준호는 내 후배였다. 그 사람이 내가 버렸던 후배를 찾아 돌봤던 사람. 유미라는 그 사람이 구했던 누군가였다. 정석진은 그 사람이 바라봤던 또 다른 아버지였다. 할머니는 그 사람이 구했던 친구였다.

모두 필연이었다. 모두 그 사람의 손길이었다. 내가 외면했던 손님들, 그들도 모두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이 이 카페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나를 돌봐줄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렸다. 새벽 6시였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들어온 것은 손님이 아니었다.

문 너머에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를 알았다. 새벽 3시에 봤던 그 남자였다. 하지만 이번엔 얼굴이 보였다. 명확하게. 물웅덩이가 아닌 현실 속에서.

그 얼굴은 거울 속의 내 얼굴과 같았다.

"민준아,"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오래 기다렸어."

내 심장이 멈췄다.

"삼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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