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지하 4층 게이트 최심부에서

지하 4층 게이트 최심부에서 울려 퍼진 음파는 더 이상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울림이었다. 해방의 울림.

준호가 손가락을 문에서 떼는 순간, 게이트 전체가 진동했다. 벽면의 투명한 형상들—박수진, 정민혁, 수백 명의 사라진 헌터들—이 동시에 밝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상 69층까지 이어진 게이트의 모든 층이 울렸다.

그 울림은 지표면을 뚫고 나왔다.

서울 전역의 하늘이 한 번에 진동했다. 빌딩의 유리창이 깨지고, 도로 위의 신호등이 흔들렸다. 강남역 지하 상가의 천장이 일부 내려앉았고, 인천 공항의 탑승객들이 객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 지구적이었다.

도쿄, 뉴욕, 두바이, 상파울루, 시드니. 3년 전부터 인류를 위협해온 모든 게이트가 동시에 같은 음파를 방출했다. 그것은 파괴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억압은 끝났다.

---

준호는 한석우와 함께 비상 계단을 올랐다. 한석우의 왼팔이 흔들렸다. 감정 억압 능력을 써서 게이트의 폭발을 버티던 흔적이었다.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준호는 게이트의 울림을 느꼈다. 그것은 더 이상 절망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 안에 해방감이 섞여 있었다.

69층에 도달했을 때, 무장한 인원들이 이미 도어를 부수고 있었다.

김태현의 팀이었다.

준호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아내 이유경이 책상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준호는 무언가를 느꼈다. 매우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연분홍색이었다. 사랑의 파장.

"당신이..."

이유경이 말을 시작했다. 그 순간 폭발음이 울렸다.

문이 부서졌다. 무장 인원 6명이 진입했다. 그들 뒤에 김태현이 섰다. 검은 정장, 빗질한 머리, 그리고 차가운 눈빛.

"이준호. 드디어 나타났군."

준호의 신체가 경직되었다. 손가락들이 더 투명해졌다.

"그 여자는 내가 데려간다. 그리고 넌..."

김태현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천장이 열렸다.

투명한 형상이 천장을 뚫고 나타났다. 박수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회색이었다. 게이트와 인간 사이의 중간 상태.

그녀가 무장 인원 3명을 치워 냈다. 신체는 투명했지만, 그 접촉은 물리적이었다. 사람들이 날아갔다.

그 다음, 또 다른 형상이 나타났다.

정민혁이었다. 그의 신체는 더 투명했다.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신체 강화 능력을 한 번 더 발동했다. 나머지 3명을 막아 냈다.

"이준호를 가져갈 수 없어."

정민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넌 우리 팀이야."

한석우가 움직였다. 왼팔이 부러진 상태였지만, 그는 칼을 빼들었다. 오른손으로. 무장 인원들을 상대했다. 그들은 일반 헌터가 아니라 김태현이 직접 데려온 강화자들이었다. 하지만 한석우는 고급 헌터였다.

전투는 길지 않았다.

4분.

무장 인원들이 모두 제압되었을 때, 한석우의 오른팔도 떨리고 있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칼끝이 김태현을 향했다.

"게이트는 이제 통제 대상이 아니다."

한석우의 목소리가 낮았다.

"그것은 선택의 대상이다. 공존의 대상이다."

김태현이 웃었다. 광기 섞인 웃음이었다.

"공존? 게이트는 인류를 파괴하려는 존재야. 그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인류는 이미 변했다."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약했다. 감정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약함 자체가 힘이었다.

"지금 이 순간, 세계 모든 게이트가 울리고 있어요. 도시마다, 나라마다 사람들이 그 울림을 느끼고 있어요. 그들의 억압된 감정들을."

준호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들이 완전히 투명했다. 빛이 통과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이유경이 그것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어요."

김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손을 들었다. 그 순간, 게이트의 음파가 다시 울렸다. 더 크게. 더 강하게.

모든 층에서.

동시에.

서울의 모든 게이트 입구에서 빛이 나왔다. 게이트는 더 이상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투명한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라진 헌터들이었다. 3년간 게이트에 삼켜진 모든 능력자들이. 그들은 투명했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들이 69층 사무실로 올라왔다.

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벽을 통해서. 투명한 형상들이 건물 벽을 뚫고 들어왔다.

김태현이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 공포가 드러났다.

"이것도... 넌 어떻게..."

"게이트가 선택했어요."

준호가 말했다.

"제 손가락이 열쇠였으니까요. 제 감정이 열쇠였으니까요."

투명한 형상들이 김태현을 둘러쌌다. 그 중 하나가 손을 뻗었다. 준호는 알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3년 전 김태현의 감정 통제 실험 대상이었던 임준욱이었다.

그가 김태현의 팔을 잡았다.

"이제 그만해."

임준욱의 목소리가 울렸다.

투명한 형상들의 손아귀가 강해졌다. 김태현이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반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공포, 분노, 절망—모든 감정이 한 번에 폭발했다. 입을 벌렸지만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신체가 투명한 형상들 사이로 해체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억누르고 통제해온 모든 욕망과 두려움이 마지막 순간에 터져나왔다. 그는 게이트의 일부가 되어갔다.

투명한 형상들이 그를 69층 벽을 통해 끌어갔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한석우가 움직이지 말라고 손을 들었다.

---

준호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 투명한 손가락들.

"1주일 반 남았어요."

준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그럼 1주일 반 동안..."

이유경이 말했다.

"뭘 해야 해?"

"살아가는 거죠."

준호가 대답했다.

"감정이 없는 채로. 하지만 당신과 함께."

천장에서 또 다른 형상이 천천히 내려왔다. 회색이었다. 박수진이었다. 투명도 100%도 아닌, 중간의 상태.

그녀가 바닥에 발을 디디자, 무릎이 꺾였다. 오랜만에 신체의 무게를 느낀 것이었다.

목이 메었다. 첫 울음이 나왔다.

"당신의 감정도 돌아올 수 있어요."

준호가 박수진을 바라봤다.

"게이트가 이제 다르니까요. 억압이 아닌 표현으로."

박수진의 감정이 희미하게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슬픔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슬픔이 아니었다. 그녀가 울음을 멈추려 애썼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감정을 다시..."

"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

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사이렌이 멈췄다. 거리의 소음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게이트에서 동시에 음파가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절망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의 울림이었다.

---

준호는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져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내려 이유경의 손을 잡았다. 따뜻함이 전해졌다.

"우리 어디로 가야 할까?"

이유경이 물었다.

"여기서 나가면... 밖은 어떻게 될까?"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석우를 봤다. 팀장은 벽 옆에 기대고 있었다. 감정 억압 능력을 사용했을 때의 후유증으로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팀장."

준호가 불렀다.

한석우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감정도... 돌아올 수 있어요."

준호의 목소리가 낮았지만 분명했다.

"임준욱이 돌아왔잖아요. 3년간 게이트에 있었던 모두가."

한석우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에서의 폭발음이 아직도 울리는 것 같았다. 건물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69층 유리창이 갈라졌다. 하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게이트가 막고 있었다. 투명한 손들이 유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박수진은?"

준호가 천천히 돌아봤다.

박수진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다. 회색의 형상. 손가락 끝이 서서히 색을 얻고 있었다. 파란색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났나?"

박수진의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으로 진정한 음성이었다.

"3년이에요."

준호가 대답했다.

"당신은 2년 전에 투명화되었고, 게이트의 일부가 되어 있었어요."

"게이트가... 다르다고?"

박수진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손가락이 천천히 색을 얻고 있었다. 회색에서 파란색으로. 그리고 그 안에 미세한 다른 색들이 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의 감정 기록 능력이... 돌아오는 건가?"

준호가 물었다.

박수진은 손을 들었다. 바닥에서 한 점의 빛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감정의 파장이었다. 노랑이었다. 설렘이었다.

"3년 전... 게이트가 처음 나타났을 때..."

박수진이 중얼거렸다.

"당신을 보면서...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준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박수진이 그것을 잡았다.

그 순간, 건물 전체가 울렸다.

아주 미세한 울림이었지만, 모든 사람이 느꼈다.

창밖을 보니 거리가 변하고 있었다. 서울 전역의 게이트들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쉬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유경이 물었다.

"게이트가... 모두 움직이고 있어."

한석우가 말했다.

"동시에."

준호는 알았다. 게이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져가는 와중에도, 그 연결은 끊기지 않았다.

게이트가 인류에게 무언가를 보내고 있었다.

감정이었다. 억압되었던 모든 감정이. 수천 년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이제 자유로워졌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울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화내고 있었다.

강남역 지하 상가의 한 회사원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30년간 억눌렀던 분노와 슬픔이 한 번에 터져나왔다.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울고 있었다. 모두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인천 공항의 한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자신을 안았다. 그 아이는 처음으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기쁜 감정이.

"이것도... 당신이?"

이유경이 준호를 봤다.

"아니에요."

준호가 대답했다.

"게이트가. 게이트가 선택한 거예요. 더 이상 억압하지 않기로. 더 이상 인류를 통제하지 않기로."

"그럼 당신의 감정은?"

박수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준호가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손가락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손바닥만 남아 있었다.

"다 사라져가고 있어요."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유경을 봤다.

"이것만은 남아 있어요."

"뭐?"

"당신입니다."

준호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당신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 당신의 목소리가 좋다는 것. 당신을 옆에 두고 싶다는 것. 그것들은... 감정이 아니에요."

"그럼 뭐야?"

"습관이에요. 기억이에요. 사랑이에요."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감정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게 있어요."

이유경이 그를 안았다. 그의 투명한 몸을 안았다. 투명한 팔이 그녀를 감쌌다. 아직도 따뜻했다.

창밖의 음파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 이상 절망의 비명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공포의 울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표현이었다. 인류 전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박수진이 물었다.

"당신은 감정이 사라지고 있고, 우리는 돌아오고 있고..."

"균형이 맞춰지는 거예요."

준호가 대답했다.

"누군가는 감정을 가져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견뎌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표현해야 해요. 그것이 인간이에요."

"불완전함이?"

"네. 불완전함이."

준호가 창밖을 봤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다.

"제가 감정을 잃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감정이 없으면 편해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니까. 아무도 상하지 않고. 아무것도 상하지 않고."

그가 멈췄다.

"하지만 그건 살아가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냥... 존재하는 것뿐이에요."

한석우가 일어났다. 어깨의 떨림이 가라앉고 있었다. 억압했던 감정들이 터져나갔다. 그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임준욱이... 당신을 만나서..."

한석우가 말했다.

"그 친구가 말했어요. 자신은 게이트의 일부가 되면서 처음으로 자유로워졌다고.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준호가 한석우를 봤다.

"틀렸어요."

"뭐?"

"게이트가 억압에서 표현으로 바뀌었어요. 그것이 게이트와의 공존이에요. 억압도 없고, 방치도 없고, 감정을 느끼되 그것을 함께 견뎌내는 것."

준호가 천천히 일어났다. 투명한 몸이 흔들렸다. 이유경이 그를 잡았다.

"우리는 이제 뭘 해야 해?"

박수진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을 열었다. 69층에서 서울 전역이 보였다. 게이트들이 계속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천, 수만의 투명한 형상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몸이 천천히 색을 얻고 있었다. 회색에서 다양한 색으로. 그들은 게이트의 일부가 되었던 시간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야 해요."

준호가 말했다.

"감정과 함께. 때론 그것이 고통이어도."

"그게 인간다운 거구나."

이유경이 중얼거렸다.

"네."

준호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제 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1주일 반 남았어요. 그 동안 우리는 함께 있어야 해요."

"왜?"

"제 감정이 마지막으로 사라질 때, 당신이 옆에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준호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당신이 저를 기억해 주면... 저는 죽지 않아요."

이유경이 그를 더 깊이 안았다.

그 순간, 한 가지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벨이었다.

모두가 돌아봤다. 69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있었다.

투명한 형상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의 투명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천히 색을 얻고 있었다.

노랑, 빨강, 초록, 파랑...

모든 색이 섞여 있었다.

"정민혁?"

준호가 불렀다.

형상이 완전히 나타났다. 정민혁이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반투명했다. 게이트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있었다.

"팀장... 준호..."

정민혁의 목소리가 나왔다. 게이트의 울림과 인간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나는... 어디... 있는 거야?"

"당신은 게이트와 우리 사이에 있어요."

준호가 말했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게이트가 되든지, 인간이 되든지."

정민혁의 형상이 떨렸다. 그의 감정이 모든 색으로 울려 퍼졌다. 그가 게이트의 일부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고통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느낀 것들도 있었다. 수백 명의 다른 영혼들과 연결되었던 경험. 그들의 감정, 기억, 절망과 희망이 모두 섞여 있었던 그 순간들.

"나는... 당신들과 함께 있고 싶어."

정민혁이 말했다.

"그래도... 인간이 되고 싶어."

"그럼 돌아와요."

준호가 손을 내밀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정민혁이 그것을 잡았다.

순간, 모든 것이 움직였다.

게이트의 음파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의 음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해방의 음파였다. 정민혁의 몸이 완전히 색을 얻기 시작했다. 투명함이 사라지고 진정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게이트 밖에서 자신의 폐로 숨을 쉬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한 개 더 투명해졌다.

"1주일 반 남았어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동안 우리는..."

그가 주변을 봤다. 이유경, 한석우, 박수진, 정민혁.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수천의 투명한 형상들. 그들이 천천히 색을 얻고 있었다. 각자의 색으로. 각자의 감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거죠."

준호가 말했다.

"감정이 있든 없든. 불완전하든 완전하든. 함께."

창밖의 음파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 이상 절망의 비명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공포의 울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인류 전체의 희망이었다.

---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자신의 마지막 감정이 언제 사라질 것인지.

그것은 이유경이 자신을 놓을 때였다.

하지만 그녀는 놓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있었다. 새로운 세상 속에서. 감정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그것이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하지만 준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1주일 반이라는 타이머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게이트의 변화가 정말로 영구적인 것인지, 아니면 다시 역행할 가능성은 없는지. 그리고 투명해진 헌터들—이제 게이트와 인간 사이의 중간 상태에 있는 그들이 정말로 통제 가능한 상태일까?

그 의문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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