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이 깊었다

후궁의 귀한 약재실, 청록색 창호지를 통해 달빛이 스며들었다.

한청은 약재 자루를 하나씩 정리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그런 표정.

"궁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나."

"한 달을 조금 넘겼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을 깨달았는가."

나는 침묵했다. 한청의 질문은 순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내가 무엇을 알았는지 알고 있었다.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것이었다.

"선황후의 의료 기록을 봤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답하지 않아도 된다. 넌 이미 읽었다. 그리고 무언가 보였을 거다."

한청은 약탕기에서 끓어오르는 검은 액체를 천천히 떠냈다. 김이 피어올랐다.

"민경 황후는 행복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한청 선생님—"

"삼 개월 전 황제 폐하는 새벽 사냥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한청의 손이 떨렸다. 약숟가락이 유리잔에 부딪혔다.

"선황후는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다. 과다한 수면제. 누군가 준 게 아니라, 스스로."

내 귀가 울렸다. 스스로. 그 단어가 계속 울렸다.

"황제 폐하는 그것을 급병으로 위장했다. 기록도 지웠다. 나는... 나도 그것을 도왔다."

한청의 얼굴이 무너졌다. 침착한 의녀 한청의 얼굴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넌 그 사실 위에 황후가 되었다. 선황후가 죽은 자리에 넌 앉아 있다. 이것이 궁중이다, 서화.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내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쥔 것 같았다.

"선황후는 그렇게 죽었어. 혼자."

---

그 밤, 나는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후궁의 정원을 헤맸다. 달은 너무 밝았다. 이런 밝은 달 아래서 어떻게 누군가는 죽어가는가. 어떻게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

황제 침실 옆 비밀 통로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침실은 조용했다. 황제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민경을 죽였다."

나는 묻지 않았다. 선언했다.

황제의 몸이 경직됐다.

"아니다—"

"민경을 죽였습니다. 당신이."

나는 침대 앞에 섰다. 황후의 우아함도, 의녀의 조심스러움도 벗어던졌다. 오직 서화로서만 말했다.

"새벽 사냥을 떠났고, 그녀는 혼자 남겨졌고, 그래서 죽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당신의 무심함이 그녀를 죽였습니다."

황제가 일어났다. 어두운 침실에서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부서졌다.

"그것이 죄인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죄인가."

"당신이 그녀를 보았다면,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보았다면—"

"본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는가!"

황제가 외쳤다. 후궁에 울렸다.

"나도 그녀를 사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나의 죄다! 내 안의 공허함이 그녀를 죽인 거다!"

침실이 조용해졌다.

황제는 침대에 무너져 앉았다.

"나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너를 보는 순간. 하지만 그것도 죄가 될 것 같았다. 민경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너를 밀어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나는 모른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 때문인지, 아니면 내 죄를 씻기 위한 건지. 너는 내 구원인가, 아니면 내 심판인가."

황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처음 본다. 절대 권력자의 눈물.

나는 무릎을 꿇었다. 침실의 차가운 돌 위에.

"우리는 모두 민경의 죽음의 공범자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무심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죄 위에 황후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나를 끌어안았다. 강하게.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용서해 줄 수 있는가."

"용서받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밤새 울었다. 두 사람 모두. 황제도, 황후도, 그 누구도 아닌 두 죄인처럼.

---

아침이 오자 민아가 찾아왔다.

"언니,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요."

그녀는 내 얼굴을 자세히 봤다. 붓고 창백한 얼굴. 밤새 울었다는 증거.

"민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 민경 언니는 정말 병으로 죽은 걸까요?"

가슴이 철렁했다.

"왜 그런 말을..."

"저는 알아요. 언니는 혼자였어요. 아무도 언니를 보지 않았어요. 황제 형님도."

민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저는 알았어요. 언니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 마음이요."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용서합니다."

민아가 내 손을 잡았다.

"황제 형님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언니... 지금의 언니도 용서합니다. 언니는 황제 형님이 보지 못했던 것을 봐줄 수 있어요. 언니는 그럴 수 있어요."

그 순간, 나는 더욱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이 순수한 아이의 용서가 나를 더욱 짓눌렀다.

---

그날 오후, 기록관의 어두운 복도에서 나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유비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떠 있었다.

"황후께서 혼자 나오셨군요."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기록관은 외진 곳이었다. 아무도 이곳에서의 일을 모를 것이다.

"뭐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비밀을 알았어요."

유비가 한 발 가까워졌다.

"선황후의 죽음, 그리고 황제 폐하의 죄. 모든 것."

나의 피가 언 것 같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기록관의 어둠이 더욱 짙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또 다른 비밀을 말씀드릴 시간이 되었어요."

유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그 소리에 몸이 경직되었다.

"당신은 평민 의녀입니다. 그 계약서도 찾았어요. 보세요."

유비가 손을 펼쳤다. 그곳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힌 계약서의 일부가 있었다. 내 이름이 명확히 보였다. 평민 신분으로.

내 손이 떨렸다. 계약서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모든 증거는 안전한 곳에 있어요. 이것은 단지 증명일 뿐이에요."

"계약서를..."

"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저를 거스르거나, 아들의 황태자 지위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궁중에 모두 공개하겠어요. 평민 대역 황후, 그리고 죽은 황후의 진실 말이에요."

유비가 한 발 더 다가섰다. 나는 벽에 등을 맞혔다. 도망칠 길이 없었다.

"당신은 의녀였으니까 알겠지요. 수면제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호흡 곤란, 그로 인한 피부 변색. 시신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자살이라는 걸."

유비의 말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민경의 의료 기록을 떠올렸다. 폐 기능의 급격한 저하, 혈액 내 약물 농도. 모두 자살을 가리키는 증거였다.

"당신이 그것을 아는 한, 당신의 입은 닫혀 있어야 해요."

유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황제 폐하의 명성도 함께 무너지니까요. 그리고 당신도."

나는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손이 떨렸다.

"당신은 왜..."

"다음 달 황태자 책봉식 때 뵙겠어요, 황후님."

유비가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록관의 어둠 속에서. 손이 떨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

나는 기록관을 빠져나가 후궁의 뒷길로 향했다. 발걸음이 불규칙했다. 유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평민 대역 황후. 죽은 황후의 진실. 황제의 명성.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황제에게 알려야 한다. 지금 당장.

하지만 황제는 외궁의 조회 중이었다. 절대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침실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아니, 정리할 수 없었다.

유비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계약서를 찾았다는 것.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침실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빛이 너무 밝았다. 나는 창문을 닫고 어둠 속에 앉았다.

침착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한청에게 배운 것이 아닌가.

첫째, 유비가 정말로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계약서는 기록관에 있었다. 하지만 기록관은 황제의 인장을 관리하는 곳이고, 관리자는 황제가 신뢰하는 신료다. 유비가 그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록관의 관리자가 유비와 내통했거나, 아니면 유비가 계약서의 일부만 입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민경의 죽음에 대해 유비가 정말로 알고 있는가?

유비는 수면제의 과다 복용과 그로 인한 신체 변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살을 증명할 수 없다. 의료 기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료 기록을 읽고 분석하려면 의술 지식이 필요하다. 유비는 귀부인이지만, 그렇게까지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의료 기록에서 본 수치들을 떠올렸다. 폐 기능 지표, 혈액 내 약물 농도, 사망 시간 추정. 이것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상당한 의술 지식이 필요했다.

유비가 혼자 이것을 분석했을 리 없다. 누군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셋째, 연림과 유비의 관계는?

내가 우연히 들었던 대화. 연림은 6개월 내 내 몸을 망가뜨릴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비가 나를 협박한다면, 그것은 계획을 바꾼 것이다. 더 빠르고 더 직접적인 방법.

연림은 내 정체를 이용하려고 한다. 황제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고, 자신의 반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일어섰다.

유비와 연림이 이미 합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 정체를 공개하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황태자 책봉식 전에.

황제는 이 위기를 모른다.

내가 황제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알린다면, 황제는 어떻게 할까? 유비를 체포할까? 그렇다면 연림도 함께 적으로 돌릴 것이다. 황제는 두 명의 황족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만약 내가 침묵한다면?

유비는 황태자 책봉식 때 모든 것을 공개할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더욱 절박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둘 다 절망적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한청이 들어왔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눈치챘다.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빠르게 유비와의 만남을 설명했다. 협박의 내용, 계약서의 일부를 보여준 것, 민경의 죽음에 대한 언급, 황태자 책봉식까지의 시간 제한.

한청은 차분히 들었다. 그녀는 절대 놀라지 않는 사람이었다.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가?"

"계약서의 일부를 직접 봤어요. 하지만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추측일 가능성이 높다."

한청이 앉았다.

"유비가 정말로 계약서 전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황제에게 알렸을 것이다. 협박은 나중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증거를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민경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것도 추측일 가능성이 높다."

한청이 내 손을 잡았다.

"서화, 너는 지금 공포에 빠져 있다. 공포는 판단력을 흐린다. 유비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협박을 한 것이다. 너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황제에게 알려라. 하지만 공포로가 아니라, 전략으로."

한청이 일어섰다.

"유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디서 알았는지, 누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지. 모든 것을 황제에게 알려라. 그리고 황제와 함께 대응 방안을 세워라."

"만약 황제가..."

"황제는 너를 보호할 것이다. 그것이 황제가 너를 대하는 방식이다."

한청이 침실을 나가려 하다가 멈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유비는 절대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증거는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제 안에?"

"너의 의술 지식. 너는 민경의 의료 기록을 읽었고, 그것이 자살임을 알고 있다. 폐 기능 저하, 혈액 내 약물 농도, 사망 시간 추정. 모든 것이 자살을 가리킨다. 그것이 증거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증거다. 왜냐하면 그것은 황제의 죄를 증명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청이 나를 바라봤다.

"유비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를 협박하는 것이다. 너의 입을 막기 위해."

나는 한청의 말을 이해했다.

유비가 원하는 것은 나의 침묵이었다. 나의 정체를 공개하는 것도, 황제를 협박하는 것도, 결국은 나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

황제를 만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황제는 외궁에서의 조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유비가 나를 협박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했다. 황제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무엇을?"

내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유비와의 만남, 그녀가 보여준 계약서의 일부, 협박의 내용. 민경의 죽음에 대한 언급, 그리고 황태자 책봉식까지의 시간 제한.

황제는 침실을 걸었다. 창문을 열고 닫았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모두 그의 분노의 신호였다.

"계약서를 가져갔다고?"

"네, 일부를 직접 봤어요."

"그리고 민경의 의료 기록도 어디서 알았는지..."

황제는 한 발 물러섰다. 생각에 빠진 표정이었다.

"유비가 혼자 했을 리 없다. 누군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연림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비와 연림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연림은 제 정체를 이용해서 황제 폐하의 정통성을 훼손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는..."

"유비는 내 아들의 황태자 지위를 보장받으려고 한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 너를 통해."

나는 침묵했다.

"황제 폐하,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비는 황태자 책봉식 때 모든 것을 공개하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 전에 대응해야 합니다."

황제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위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두려움이었다.

"만약 모든 것이 공개되면, 너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저는 죽을 겁니다. 신분을 속인 대역으로서."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황제가 침실의 한쪽 모서리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비밀 통로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외궁의 신료들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였다.

"상서 이경을 불러라."

황제가 명했다.

"그리고 근위군의 총사령관도."

나는 황제의 의도를 이해했다. 황제는 이제 움직이기로 결단했다.

이경과 근위군 총사령관이 들어왔다. 황제는 그들에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유비와 연림의 음모, 나의 정체, 그리고 황태자 책봉식까지의 시간.

이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황제 폐하, 만약 이 사실이 궁중에 알려진다면..."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황제가 말했다.

"유비를 조용히 처단하고, 연림에게는 반란을 일으킬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기록관의 계약서를 회수한다."

근위군 총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폐하, 연림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변방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약 황제 폐하께서 명령하신다면, 언제든 그를 체포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다."

황제가 말했다.

"먼저 유비를 처단하고, 그 다음에 연림을 움직인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연림은 이미 반란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움직임이 그의 신호가 되지 않도록."

이경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복잡했다.

"황후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오늘 오후에 유비로부터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 직후 황제 폐하께 알렸어요."

이경의 눈이 더욱 복잡해졌다. 의심, 충격,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

"황후께서 평민 의녀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나는 직시했다.

"저는 계약서로 황제 폐하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신분을 속인 것입니다."

침실이 조용해졌다.

이경이 황제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충격, 의심, 그리고 무언가 더.

"황제 폐하, 이 사실이 궁중에 알려진다면, 황제 폐하의 정통성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경의 목소리가 낮았다.

"신은... 이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황제가 이경을 바라봤다.

"상서, 나는 너에게 하나의 선택을 제시한다."

황제가 말했다.

"나와 함께 이 일을 처리하거나, 아니면 지금 이 침실을 나가고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경은 오래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서 갈등이 읽혔다. 황제에 대한 충성, 제국의 정통성, 도덕의 무게가 그의 얼굴에 그려졌다.

마침내 그는 무릎을 꿇었다.

"황제 폐하, 신은... 황제 폐하를 따르겠습니다."

이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은 황제 폐하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하지만 신은 황제 폐하를 믿습니다. 신은 황제 폐하의 결단이 제국을 위한 것임을 압니다."

황제가 이경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맙다, 상서. 그렇다면 계획을 세워라. 유비를 조용히 처단하되, 그것이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보이게 하라. 그리고 연림의 움직임을 감시하되,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 기록관의 관리자를 확인해라. 유비가 정말로 계약서를 가져갔는지, 아니면 단순한 협박인지."

이경과 근위군 총사령관이 침실을 나갔다.

나는 황제와 둘이 남겨졌다.

"황제 폐하, 위험할 수도..."

"나는 너를 지킬 것이다. 설령 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황제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너는 나의 황후다. 그것이 진실이다. 신분이 무엇이든, 계약서가 무엇이든, 너는 나의 황후다."

"황제 폐하..."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

황제가 내 손을 놓았다.

"너는 여기 있어라. 그리고 누구도 만나지 마.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할 것이다."

황제가 침실을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어둠 속에서. 혼자.

외부에서는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황제의 명령이 외궁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근위군이 움직이고, 신료들이 급히 오가고,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횃불의 빛이 급해 보였다. 황제의 근위군이 궁중 곳곳에 배치되고 있었다. 경비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멀리서, 매우 멀리서, 반란의 신호인 북소리가 들렸다.

변방에서.

연림이 반란을 일으켰다.

내 손이 떨렸다.

황제는 이미 게임의 판을 뒤엎었다. 유비의 협박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더 큰 위기가 닥쳤다.

나는 침실의 문을 열려고 했다. 황제를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밖에서는 근위군이 나를 막아섰다.

"황후께서는 침실에 머물러야 합니다.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다."

근위군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변방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출정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나는 침실로 돌아갔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궁중은 전쟁 준비 중이었다. 근위군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외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그들의 중심에 있었다.

절대 권력자는 이제 절대 전사가 되어 있었다.

이제 더 큰 것이 시작되었다.

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

그 중심에는 나와 황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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