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 낯선 얼굴
저택의 현관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20년 폐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철문 너머로 스며드는 먼지 냄새, 햇빛도 도달하지 못한 현관의 습기—마치 어딘가 깊은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저택이 살아 있었다. 열쇠는 손에 이미 있었다. 유산 정리회사에서 준 것이다.
"이준호. 유산 정리사. 3일 안에 완료."
중얼거리며 열쇠를 자물쇠에 밀어 넣었다. 명확하게 하려면 말로 내뱉어야 했다. 왜냐하면 조금 전, 차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멈췄기 때문이다. '이준호'라는 이름이 갑자기 남의 이름처럼 느껴졌던 순간. 그런 황당한 생각을 떨어내기 위해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자물쇠가 돌아가며 낡은 소리를 냈다.
현관 문이 열렸다.
내부의 공기가 밀려나왔다. 코끝에 닿은 것은 단순한 먼지 냄새가 아니었다. 썩음. 버려짐.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마치 누군가의 한숨이 20년을 고이고 고여서 이제야 방출되는 듯한 냄새였다. 신발을 벗고 발을 들여놓자 바닥이 삐걱거렸다. 마루판이 시간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1층 거실은 침침했다. 창문에는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사이로 오후의 햇빛이 몇 가닥 갈기처럼 흘러들어와 있었다. 소파, 책장, 테이블—모든 가구가 회색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준호의 눈은 한곳에만 머물렀다.
거울.
벽에 붙어 있는 저택의 거울. 아마도 1920년대에 설치된 것 같은, 나무 틀로 되어 있는 거울. 안경 벗은 듯 뿌연 유리 위에는 먼지가 소용돌이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준호는 그곳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거울에 가까워질수록 뭔가가 변했다. 온도? 아니다. 공기의 무게다. 거울 앞 3미터 지점부터 공기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마치 누군가 거울 뒤에 서 있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 준호는 멈춰 섰다. 거울 속에 자신의 형상이 희미하게 비쳤다. 뿌연 유리와 먼지 때문에 윤곽만 보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누군가의 절망이 느껴졌다.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한기가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을 보면서, 준호는 깨달았다. 저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자신의 모습이지만,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손을 뻗어 거울에 닿았다.
손가락이 차갑고 거친 유리에 닿는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
**나는 거울을 본다.**
유리 너머로 내 얼굴이 보인다. 누가 이런 얼굴을 만들었나. 이 얼굴로 누가 웃을 것인가. 거울을 돌린다. 벽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소리는 좋다. 최소한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다.
시간이 몇 시인가. 창밖은 이미 어두워 있다. 오후 네 시일 리가 없다. 내 시계를 본다. 분침이 움직이지 않는다. 분침이 멈췄나? 아니다. 시계를 만진 손이 떨려서 바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손이 떨린다.
약을 먹었나? 확인해야 한다. 약은 침실에 있다. 아니다, 거실에 있다. 아니다, 어디에 있나? 내 약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 말이 되나. 약병을 들고 뚜껑을 연다. 흰 알약이 손 위에 떨어진다. 하나, 둘, 셋. 약국에서는 "하루에 세 번"이라고 했는데, 지금이 언제인가. 아침인가, 저녁인가, 밤인가.
밤이다. 거실의 벽시계가 11시를 가리킨다. 아니다, 12시다. 아니다, 시계가 없다. 시계는 내 머리 속에만 있다. 그리고 그 시계는 자꾸 멈춘다.
약을 삼킨다. 목이 말라 있다. 물은 어디에 있나. 부엌이다. 부엌으로 간다. 부엌의 수도꼭지를 틀다. 녹물이 나온다. 녹물을 마신다. 쓰다. 역겹다. 다시 마신다. 왜 다시 마시나. 그만두어야 한다. 그만둔다.
거실로 돌아온다. 거울이 있다.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있다. 내 얼굴인가.
내 얼굴이 맞나.
거울 속의 눈이 내 눈이 아니다. 거울 속의 입이 내 입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얼굴인가. 누가 내 얼굴을 훔쳤나.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얼굴을 쓰고 있나.
거울을 다시 돌린다. 벽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좋다. 소리가 난다. 내가 여기 있다. 내 손이 거울을 밀었다. 내 손이 이 손인가.
침실로 간다. 침대에 누운다. 천장을 본다. 천장의 못이 보인다. 그 못에 무언가 걸려 있었나.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이 없다. 아니다. 기억이 있다. 기억이 있지만, 그것이 내 기억인지 확실하지 않다.
밧줄.
침대 옆에 밧줄이 있나. 아니다. 밧줄은 다락방에 있다. 아니다. 밧줄은 내 목 주위에 있다. 아니다. 밧줄은 아직 여기에 없다.
곧 있을 것이다.
---
준호는 거울에서 손을 떼었다. 몸이 소파에 쓰러졌다.
숨을 쉬고 있었다. 심장이 광란적으로 뛰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아니, 손뿐 아니라 몸 전체가 경련하고 있었다. 입 안에는 녹물 같은 맛이 남아 있었다. 아니, 그것은 기억 속의 맛이었다. 하지만 그 맛이 지금 입 안에 있었다.
준호는 일어나 앉았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봤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 땀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눈이 자신의 눈이 아닌 것 같았다.
준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손가락이 뺨을 쓸어내렸다. 거울 속의 얼굴도 같은 동작을 했다. 하지만 그 동작이 준호의 동작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약간 늦는 것 같았다. 준호는 손가락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흘렀다. 현실의 감각. 현실의 증거. 하지만 거울 속의 자신도 같은 손가락을 깨물고 있었다. 같은 각도로. 같은 강도로.
그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마가 벽에 부딪혔다. 통증이 폭발했다. 현실이었다. 현실의 통증. 현실의 벽. 준호는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을 몰아쉬었다.
1층 거실의 다른 부분들이 보였다. 소파, 책장, 테이블. 모든 것이 20년 전과 같은 상태로 먼지 속에 갇혀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곳처럼. 마치 누군가가 이 공간을 보존하려고 한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현이었다. 준호가 저택에 들어갈 때 문자를 보냈던 친구. 유산 정리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업무상 접촉하다가 친해진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준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자신도 느낄 정도로 이상했다. 목이 쉬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목을 조르고 난 후처럼.
"준호? 괜찮아? 저택 도착했어?"
"응. 지금 1층에 있어."
침묵.
"혼자야?"
"응. 혼자 있어."
수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준호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수현."
"응?"
"만약...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면, 그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침묵이 길어졌다.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피곤해."
"너 목소리가 이상한데? 뭔가 다르다."
준호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이 여전히 낯설었다.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거울 속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수현, 나 지금 뭔가... 중요한 걸 발견했어."
"뭐?"
"기억. 이 저택에 남겨진 기억들. 사람들이 죽을 때의 기억들. 그걸 볼 수 있어. 나는... 그걸 볼 수 있다."
다시 침묵.
"준호,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농담해? 유산 정리만 하고 나와. 3일 안에 나와. 태성이가 3일 안에 완료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 보낸다고 했잖아."
"그건...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준호, 제정신이야?"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수현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현. 잠깐."
"뭐?"
"만약 내가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면? 내가 누군가를 놓쳤다면?"
"준호, 무슨 소리야?"
"너 자신을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침묵이 흐르고 흘렀다. 박수현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준호. 진지해. 지금 뭔가 이상한 거 같아. 나와. 저택을 나와. 지금 당장."
하지만 준호는 이미 거실을 떠나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2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현, 미안해. 나 나중에 전화할게."
"준호!"
준호는 휴대폰을 끊었다.
어딘가 2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 절규. 울음. 호출.
"도와줘."
아이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로 흘러내려왔다.
"도와줘. 제발."
계단을 밟을 때마다 목재가 신음했다. 20년 동안 아무도 밟지 않은 계단이었고, 그것이 준호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왔다는 신호. 누군가 마침내 왔다는 신호.
2층 복도는 1층보다 더 어두웠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긴 했지만, 먼지 입자들이 그것을 산란시켜 버렸다.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다. 준호는 호흡을 고르려 했지만 실패했다.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여기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왜 말을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분명히 2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준호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거실, 침실, 그 다음이 어린이 방이었을 것이다. 레이아웃은 1990년대 중산층 주택의 전형이었다.
어린이 방의 문이 보였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문. 하지만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곳곳에 검은 얼룩이 있었다. 곰팡이인지 물때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문 위에는 '미라'라고 손글씨로 쓰인 나무 팻말이 달려 있었다. 글씨가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쓴 것처럼.
준호의 손이 문고리에 닿았다.
순간, 울음소리가 끊겼다.
침묵. 깊은 침묵. 마치 저택 전체가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준호는 문을 밀었다.
어린이 방 안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분홍색 침대, 작은 책장, 그리고 벽에는 여전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곰돌이, 토끼, 별.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붙여진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이 방을 아이를 위해 꾸몄을 것이다. 사랑으로 꾸몄을 것이다.
그런데 방 한쪽 구석에 뭔가 있었다.
상자. 낡은 나무 상자.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놓여 있었다.
울음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마치 상자에서 나는 것처럼.
준호는 천천히 상자에 다가갔다. 발걸음이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떨렸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팔과 다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거울에서 느꼈던 그 손길. 그 절망의 손길이 아직도 자신의 몸에 남아 있었다.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어 있었다. 단지 먼지와 거미줄만 있었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났다. 상자 안에서. 아니, 상자 아래에서. 상자 밑바닥에서.
준호는 상자를 들어올렸다. 무거웠다.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상자 아래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아니, 문이 아니라 구멍이었다. 나무 바닥의 작은 구멍. 그리고 그 구멍에서 울음소리가 나고 있었다.
"도와줘."
아이의 목소리가 명확해졌다. 더 이상 멀리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준호의 귀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제발... 여기서... 나가고 싶어."
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구멍을 들여다봤다. 어둠뿐이었다. 까만 어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뭔가 호흡하는 것 같았다.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손등을 스쳤다. 더 깊이 들어갔다. 팔뚝까지. 그 순간—
따뜻한 손가락이 자신의 손목을 잡았다.
준호는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손은 놓지 않았다. 아니, 더 깊이 끌어당겼다. 마치 자신을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거기 가두려는 것처럼.
준호는 손을 더 세게 빼냈다. 구멍 속의 손이 저항했지만, 결국 놓았다.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작은 손가락 자국. 아이의 손가락 자국.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거울 속에서 본 얼굴이 누구인지. 거울 속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이 저택에서. 이 방에서.
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무릎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어린이 방을 나왔다.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멈췄다.
거울이 있었다. 2층 복도 끝에. 마치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준호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이 움직였다. 준호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거울 속의 얼굴이 움직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준호를 바라봤다. 아니, 거울 속의 누군가가 준호를 바라봤다.
그 얼굴은 준호의 얼굴이 아니었다.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준호와 비슷하지만 다른. 마치 쌍둥이처럼. 아니, 더 정확하게는 준호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어떤 버전의 준호. 혹은 준호가 될 뻔했던 누군가. 혹은 준호가 이미 되어버린 누군가.
거울 속의 형상이 입을 열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알았다.
"들어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들어와. 넌 이미 여기 있어."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건 피로다. 이건 환각이다. 이건 저택의 먼지 때문이다. 너무 많이 마셨을 거다. 폐가의 포자들을. 곰팡이들을.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거울이 보였다.
그리고 거울 속의 형상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준호는 계단으로 뛰어갔다. 1층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아니, 저택을 나가고 싶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하지만 발이 멈춰 섰다.
1층 거실 입구에 누군가 서 있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그 사이의 존재. 마치 그림자처럼. 마치 저택의 일부처럼. 형상은 희미했지만, 그것이 준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준호는 이 형상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미라였다.
그것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인사하는 것처럼. 환영하는 것처럼. 아니, 초대하는 것처럼.
준호의 입에서 비명이 나올 뻔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현이었다. 세 번째 전화였다. 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수현..."
"준호! 넌 정신이 들었어? 태성이가 방금 연락했어. 내일까지 첫 보고서를 보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보낸다고 했어. 준호, 진짜 뭐 하는 거야? 대체 뭐가 문제야?"
준호는 거실을 바라봤다. 그 형상은 사라졌다. 아니, 없었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준호의 눈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수현. 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조여 있었다. 거울 속의 절망이 아직도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 여기서 나와야 할 것 같아."
"뭐라고? 넌 3일을 있어야지!"
"아니야. 더 있어야 돼."
"뭐?"
"이 저택에... 뭔가 있어. 누군가... 구해야 할 누군가가."
침묵.
그리고 박수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가득 찬.
"그게 너 자신을 구해야 한다는 뜻 아니야? 준호, 제발. 나와. 지금 당장."
준호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본 얼굴을 생각했다. 그 얼굴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 그 얼굴이 이미 죽은 누군가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죽은 누군가의 기억을 보고 있다는 것.
"수현.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뭐?"
"누군가를 구해야 할 것 같아. 아니,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준호, 이건 농담이 아니야. 너 정신이 있어? 지금 뭔가 이상한 거 같아. 나와. 저택을 나와. 지금."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박수현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2층에서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한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였다. 겹겹이 쌓인 울음소리. 마치 저택 전체가 울고 있는 것처럼. 마치 저택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이고 그것이 울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복도로 나갔다. 손전등을 들었다. 손전등의 불빛은 약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지하실로 가는 계단이 보였다. 1층 부엌 뒤편에 있었다. 준호는 그곳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밀어주고 있는 것처럼.
계단 아래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한 계단씩. 한 계단씩.
마지막 계단을 밟는 순간, 손전등이 꺼졌다.
어둠이 완전해졌다.
그리고 준호의 시점이 갑자기 1인칭 기억 체험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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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을 본다.**
유리 너머로 내 얼굴이 보인다. 누가 이런 얼굴을 만들었나. 이 얼굴로 누가 웃을 것인가. 거울을 돌린다. 벽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소리는 좋다. 최소한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다.
시간이 몇 시인가. 창밖은 이미 어두워 있다. 오후 네 시일 리가 없다. 내 시계를 본다. 분침이 움직이지 않는다. 분침이 멈췄나? 아니다. 시계를 만진 손이 떨려서 바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손이 떨린다.
약을 먹었나? 확인해야 한다. 약은 침실에 있다. 아니다, 거실에 있다. 아니다, 어디에 있나? 내 약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 말이 되나. 약병을 들고 뚜껑을 연다. 흰 알약이 손 위에 떨어진다. 하나, 둘, 셋. 약국에서는 "하루에 세 번"이라고 했는데, 지금이 언제인가. 아침인가, 저녁인가, 밤인가.
밤이다. 거실의 벽시계가 11시를 가리킨다. 아니다, 12시다. 아니다, 시계가 없다. 시계는 내 머리 속에만 있다. 그리고 그 시계는 자꾸 멈춘다.
약을 삼킨다. 목이 말라 있다. 물은 어디에 있나. 부엌이다. 부엌으로 간다. 부엌의 수도꼭지를 틀다. 녹물이 나온다. 녹물을 마신다. 쓰다. 역겹다. 다시 마신다. 왜 다시 마시나. 그만두어야 한다. 그만둔다.
거실로 돌아온다. 거울이 있다.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있다. 내 얼굴인가.
내 얼굴이 맞나.
거울 속의 눈이 내 눈이 아니다. 거울 속의 입이 내 입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얼굴인가. 누가 내 얼굴을 훔쳤나.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얼굴을 쓰고 있나.
거울을 다시 돌린다. 벽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좋다. 소리가 난다. 내가 여기 있다. 내 손이 거울을 밀었다. 내 손이 이 손인가.
침실로 간다. 침대에 누운다. 천장을 본다. 천장의 못이 보인다. 그 못에 무언가 걸려 있었나.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이 없다. 아니다. 기억이 있다. 기억이 있지만, 그것이 내 기억인지 확실하지 않다.
밧줄.
침대 옆에 밧줄이 있나. 아니다. 밧줄은 다락방에 있다. 아니다. 밧줄은 내 목 주위에 있다. 아니다. 밧줄은 아직 여기에 없다.
곧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