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오자 길드
밤 11시 정각.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의 검은 자국을 바라본다. 신체 감도 64%. 리셋 카운터는 6/100.
이제 알겠다. 매번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
류준혁은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르고, 민준이는 경고만 반복하고, 소연은... 소연은 항상 같은 대사만 한다. "준호,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건 이상하다. 왜 그녀만 계속 사과할까? 다른 길드원들은 준호를 버릴 때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류준혁은 냉정하고, 민준이는 불안해하고, 지은이는 침묵한다. 오직 소연만.
내일을 다시 시작하자. 이번엔 소연을 따로 불러내야겠다.
눈을 감는 순간, 또 다른 리셋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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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30분. 길드 홀의 카페 구역. 준호는 소연을 마주했다.
"소연, 시간 있어? 좀 얘기할 게 있어."
소연의 얼굴이 경직됐다. 그 표정은 6번 전과 정확히 같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연이 무엇을 할지, 무엇을 말할지.
"앉아."
소연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은 자꾸 준호를 피했다.
"솔직하게 말해 줄래? 넌 왜 날 버렸어?"
"...그건 정말 미안해. 난 너한테 미안해."
같은 대사다. 정확히 같은 어조.
준호는 숨을 내쉬고 다시 묻었다.
"그게 아니라, 왜 그 순간에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는 거야. 넌 날 버리고 싶지 않았잖아. 충분히 느껴진다고."
소연의 어깨가 떨렸다. 하지만 입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진짜 미안해, 준호. 난... 난 너한테 정말..."
"소연."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애초에 그녀가 게임 로직상 답변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넌 뭘 두려워하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소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게임상의 그래픽이 아니라, 정말로 눈물이. 캐릭터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크림슨을 떠날 수 없어."
목이 메어 있었다.
"만약에 내가 길드를 떠나면... 이그니스가 나를 타겟으로 삼아. 약한 플레이어는 어딜 가나 사냥감이야. 날 봐. 난... 난 충분히 약해."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치유 마법사인 소연의 손. 팀을 살리는 손.
"그래서... 그래서 나는 류준혁의 말을 들어야 해. 아니면 죽어."
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게임 내 최상위 길드의 압박에 못 이겨 동료를 버리는 것. 그것도 살기 위해. 순수하게 생존을 위해.
이게 게임의 구조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약한 자는 더 약한 자를 버린다. 그 악순환 속에서 소연도, 민준이도, 모두가 피해자였다.
"미안해."
준호가 처음 말했다. 사과가 아니라 진짜 미안함으로.
"그리고... 고마워. 넌 날 버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연의 눈물이 더 흘렀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리셋 전과는 다른 표정이 나타났다. 경계가 풀린 듯한.
"준호, 너... 뭔가 달라졌어. 왜?"
준호는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넌 날 믿을 수 있어?"
소연은 한참을 망설였다.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또 한 번. 마치 뭔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다시 입술이 움직였다.
"응."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했다.
"어떻게 모르겠지만... 난 너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준호는 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믿었다. 진짜로.
"그럼 물어도 돼? 이그니스가 날 버리라고 한 건 왜야? 정확하게 뭐라고 했어?"
소연은 다시 한 번 망설였다. 마치 무언가 금지된 것을 말하려는 듯.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말했다.
"류준혁은 직접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 길드에서 약한 링크를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고. 그게 상위 길드와의 거래라고. 그래야만 크림슨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 다음은?"
"넌 그다음 타겟이 아니야. 지은이가 다음이야. 그 다음은... 글쎄. 아무도 모르지만, 약한 사람들을 계속 제거하는 것 같아."
준호의 머리가 맑아졌다. 게임의 구조가 더 명확해졌다. 상위 길드는 중위 길드를 압박하고, 중위 길드는 약한 플레이어들을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소연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황폐한 광산에 가봐. 거기서 뭔가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난... 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것은 명확한 조언이었다. 리셋 전과는 다른, 진정한 도움의 손짓.
"소연, 고마워. 정말로."
준호는 소연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소연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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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준호는 혼자 황폐한 광산에 진입했다.
던전의 입구는 어두웠다. 회색 돌과 녹슨 광산 도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준호는 천천히 걸어갔다. 보스를 피하면서,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그곳에서 그는 발견했다.
먼저 눈에 띈 건 낡은 장비들이었다. 누군가 벗어던진 것처럼 보이는 갑옷과 검. 게임 내에서 이런 유품을 발견하는 건 드물었다. 보통 플레이어들이 죽으면 드롭되는 아이템은 자동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의도적으로 남겨진 것 같았다.
준호는 갑옷을 집어 들었다. 닉네임 태그가 새겨져 있었다. '하진'. 그 아래엔 날짜—2개월 전.
2개월 전에 누군가 여기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이건 단순한 던전 탐색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벽면에 뭔가 새겨진 글자가 보였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 글자들. 손가락으로 조각낸 흔적이 선명했다.
준호는 손을 뻗어 글자를 더듬었다. 매끈한 돌 위의 거친 흔적. 누군가 얼마나 절실했을까?
"약한 플레이어를 버리는 게 일상인 이 게임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남는다."
그 아래에는 더 많은 글자들이 있었다.
"낙오자 길드 - 게임 커뮤니티 접속 코드: [RISE]"
준호의 심장이 빨라졌다. 낙오자 길드? 게임 공식 길드도 아니고, 비공식 커뮤니티? 이게 게임 내에서 가능한 건가?
손가락이 떨렸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소연이 자신을 여기로 보낸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열었다. 커뮤니티 탭에서 [RISE] 코드를 입력했다.
화면이 깜박였고, 새로운 창이 떴다.
"낙오자 길드 - 비공식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수십 개의 글이 있었다. 모두 같은 주제였다. 버려진 플레이어들의 증언.
"내 길드에서 나를 던졌다. 약하다는 이유로."
"나도 같은 일을 당했다. 약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우린 여기 있다."
마지막 글의 작성자는 '미희'였다.
"우리는 약한 게 아니라, 혼자여서 약했다. 함께라면 강해질 수 있다. 혹시 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우리와 함께하자. 준호, 너도."
준호는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었다. 자신의 이름이 여기 있었다. 이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속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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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침대에 누운 준호는 천장을 바라봤다. 신체 감도 58%. 리셋 카운터는 7/100.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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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리셋.
준호는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바로 커뮤니티를 열었다. 낙오자 길드의 대화 창을 검색했다. 미희라는 닉네임을 찾았다.
메시지를 보냈다.
"넌 나를 알고 있나?"
응답은 30초 후에 왔다.
"알고 있지. 준호. 넌 다음 타겟이 될 거야."
손가락이 멈췄다. 어떻게 알았지? 이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크림슨의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우리와 함께하자."
준호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려고 했다. 게임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몇 명이야? 너희?"
화면이 멈췄다. 응답이 없었다. 1분이 흘렀다. 2분이 흘렀다. 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 저쪽에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건가?
한참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은 47명. 모두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야. 우린 약하지 않아. 다만 함께하지 않았을 뿐."
47명.
준호는 그 숫자를 중얼거렸다. 47명의 버려진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다. 비공식이지만, 진정한 무언가를.
"너희는 어떻게 나를 알았어?"
응답이 빨랐다.
"커뮤니티에 올린 글들이 있었어. 크림슨에서 버려진 플레이어들이 남긴 흔적들. 그 중에 넌 특이했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데도 계속 나타나는 유일한 플레이어였어."
준호의 머리가 복잡했다. 리셋을 하지 않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리셋 패턴을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혹시 너희도... 리셋을 경험한 거야?"
한참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정말 길었다. 5분. 10분. 준호는 화면을 바라만 봤다.
"아니. 우린 리셋이 없어. 한 번 버려지면 그냥 끝이야. 하지만 넌 다르더라. 우린 그걸 봤어. 같은 던전에서 계속 나타나는 너를.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너를. 그게 리셋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진 오래 걸렸지만."
준호는 숨을 쉬었다. 천천히, 깊게.
"내가 너희를 찾아갈 수 있어?"
"가능해. 황폐한 광산의 가장 깊숙한 곳. 보스가 있는 방의 뒤편. 거기 숨겨진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지금?"
"지금 가. 준호. 이번엔 함께 살아남자. 우린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화면이 자동으로 닫혔다. 메시지는 전송됐지만, 상대방의 응답이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 없었다. 게임의 로직상 비공식 커뮤니티는 실시간 채팅을 지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준호는 곧바로 움직였다. 황폐한 광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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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준호는 보스 방에 도착했다.
드래곤 킹—게임 초반 보스 중 하나. 하지만 준호는 보스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옆으로 돌아 벽을 탐색했다.
미희가 말했던 '숨겨진 길'.
벽면을 손으로 더듬었다. 거친 돌의 질감. 그리고 약간 다른 느낌의 지점. 준호는 그곳을 밀었다.
벽이 움직였다.
통로가 열렸다.
어둠이 펼쳐졌다. 준호는 손에 들고 있던 토치를 켰다. 약한 불빛이 통로를 비췄다.
걸음을 옮겼다. 한 발, 또 한 발.
통로는 좁았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좁게 만든 것 같았다. 한 명씩만 지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 준호는 도착했다.
큰 동굴.
준호의 눈이 커졌다.
거기엔 사람들이 있었다. 게임 캐릭터로 표현된 플레이어들. 수십 명. 아니, 정확히 센다면 47명이 맞을 것 같았다. 그들은 모닥불 주변에 앉아 있었다. 진짜 장작이 타고 있었다. 게임이 이런 것까지 구현했나?
한 명이 일어섰다. 여성 캐릭터. 닉네임은 '미희'.
"처음 뵙네요, 준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너희는... 정말 47명이 맞나?"
"47명입니다. 모두 다른 길드에서 버려진 플레이어들이에요. 크림슨, 이그니스, 블루문, 사이렌... 이 게임의 거의 모든 주요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이죠."
준호는 불을 바라봤다. 게임 내에서 구현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것들이 여기선 가능했다.
"이 공간은?"
"게임 관리자도 모르는 공간입니다. 혹은 알지만 무시하는 공간. 이 게임의 개발자들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곳일 수도 있어요. 약한 자들의 피난처로."
미희가 준호에게 더 가까이 왔다.
"우리는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닙니다. 우리는 길드입니다. 비공식이지만, 진짜 길드. 우리는 함께 던전을 탐험하고, 함께 살아남아요."
"그럼 너희는 뭘 하려고 했어?"
미희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준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 게임의 구조를 바꾸고 싶어요."
"구조를 바꾼다는 게?"
"약한 플레이어를 버리는 게 당연한 이 게임. 강자만 생존하는 이 체계. 우리는 그걸 바꾸고 싶어요."
미희의 옆에 또 다른 플레이어가 섰다. 남성 캐릭터. 닉네임은 '지훈'.
"준호, 넌 특별해. 리셋이라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플레이어야. 우리는 너를 필요로 해. 그리고 넌 우리를 필요로 할 거야."
준호는 불을 바라봤다. 그 불에 비친 얼굴들. 모두 다른 표정이었다. 누군가는 희망을 담고 있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상처받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함께.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야?"
미희가 웃음을 지었다.
"먼저, 크림슨을 탈출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와 함께 새로운 길드를 만드는 거. 우리는 이미 준비했어요. 이름도. '라이즈'.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에요."
라이즈.
준호는 그 이름을 반복했다. 입 안에서 굴려봤다. 무언가가 가슴 속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이 게임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거예요. 왜 약한 플레이어들이 버려져야 하는지. 누가 그런 구조를 만들었는지."
지훈이 앞으로 나왔다.
"크림슨의 길드장 류준혁은 이그니스의 현우의 지시를 받고 있어. 그리고 현우는 또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을 거야. 우리는 그 체인을 끊고 싶어."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현우. 상위 길드 이그니스의 길드장. 자신을 '약한 링크'로 지목한 바로 그 인물.
"어떻게?"
"리셋을 이용해서. 넌 리셋할 때마다 정보를 얻어. 누가 뭘 했는지, 어떤 음모가 있는지. 그 정보를 우리가 수집해. 그리고 나중에 한 번에 폭로하는 거야."
미희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게임 캐릭터지만, 그 감촉은 실제였다.
"너 혼자가 아니야, 준호. 우린 여기 있어. 그리고 우리는 강해. 약하지 않아. 다만 함께하지 않았을 뿐이야."
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정말로 들었다.
47명의 얼굴들이 준호를 바라봤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47명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라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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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30분. 침대에 누운 준호는 천장을 바라봤다.
신체 감도 54%. 리셋 카운터는 8/100.
42회의 리셋이 남았다.
그리고 47명의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 모닥불 주변의 얼굴들을 다시 봤다. 그들의 이름들. 그들의 이야기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준호가 할 일은 명확했다.
다음 리셋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 라이즈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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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리셋.
준호는 크림슨 길드 홀에 도착했을 때 곧바로 류준혁을 찾아갔다.
길드장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와 같은 표정으로.
"오늘 황폐한 광산 던전, 가지 말아."
준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난 탈퇴합니다."
류준혁이 일어섰다. 얼굴이 굳었다.
"뭐?"
"라이즈라는 새 길드를 만들겠습니다. 민준이와 소연이, 지은이도 함께."
"미쳤나? 넌 지금 뭘 하는 거야?"
류준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길드 홀의 다른 길드원들이 준호를 바라봤다. 민준이는 눈을 크게 떴다. 소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은이는 천천히 일어섰다.
"준호, 잠깐. 넌 뭘 하려고 하는 거야?"
류준혁이 준호의 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준호는 돌아섰다.
"처음으로, 제 선택을 하는 거예요."
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실했다. 그 순간, 준호는 47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닥불 주변에 앉아 있던 그들의 얼굴. 미희의 떨리는 목소리. 지훈의 결연한 눈빛.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던 자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민준이, 소연, 지은이. 너희도 함께하자."
민준이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그는 준호에게 다가왔다.
"알겠어. 난 따라갈게."
소연도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눈빛은 결연했다.
"나도."
지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일어나서 준호의 옆에 섰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류준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배신자들! 넌 뭘 알고 있는 거야? 이그니스가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준호는 돌아섰다. 그의 눈은 류준혁을 직시했다.
"하지만 우린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47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류준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47명? 뭐... 뭐라고?"
"낙오자 길드. 라이즈. 이 게임의 모든 약한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든 길드. 우리는 이제 함께 이 게임의 구조를 바꿀 거예요."
준호는 길드 홀의 문을 열었다. 그 뒤로 47명의 플레이어들이 한 명씩 들어섰다. 미희가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지훈과 나머지 45명이 따랐다. 그들의 눈빛은 모두 같았다. 결연함과 희망이 섞인.
길드 홀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류준혁은 그들을 바라만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준호는 민준이, 소연, 지은이와 함께 길드 홀을 빠져나갔다. 47명의 라이즈 길드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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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5분. 침대에 누운 준호는 천장을 바라봤다.
신체 감도 50%.
리셋 카운터는 9/100.
41회의 리셋이 남았다.
게임은 이제 진짜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