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거리의 심화

밤 11시 7분.

지하철은 멈춰 있지 않았다. 움직였다. 하지만 준호는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 객실의 형광등이 흐릿하게 떨렸고, 유리창 너머로는 검은 터널만 보였다. 아무도 탔다가 내렸다가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여덟 번째 손님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성이었다. 스물여섯쯤. 손가락에 밴드가 감겨 있었고, 눈에는 강렬한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준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알았다. 그녀의 진짜 소원이 무엇인지.

'날 봐줘.'

표면적인 말은 다른 것이었다.

"유류비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제 차 수리비가..."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진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온전히 보고, 인정해주는 것. 자신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준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끝에서 따뜻함이 흘렀다. 그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객실이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여성의 얼굴이 안도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준호의 뇌 어딘가가 무너졌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임성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음성 파일처럼 재생 불가 상태였다. 준호는 임성호의 얼굴을 알았다. 친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 친구가 "준호야, 너 정신 차려"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의 온도,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의 질감—모든 것이 끊겨 있었다.

여성이 내렸다. 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객실 바닥에 손을 짚고, 숨을 고르려 했다. 하지만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밤 11시 19분.

준호는 다른 자리에서 앉아 있었다. 손을 닦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손가락 끝에 뭔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홉 번째 손님이 탔다.

이번엔 남자였다. 육십 대 후반.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깊은 주름이 새겨진 얼굴, 침몰한 눈빛. 그는 준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울먹였다.

"제 딸이..."

목소리가 떨렸다.

"제 딸이 돌아오게 할 수 있나요?"

준호는 감정 없이 바라봤다. 딸?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은 명확했다. 헤어진 딸을 다시 보고 싶다는 갈망. 딸의 용서를 받고 싶다는 절실함. 죽기 전에 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영혼의 울음.

준호는 손을 내밀었다.

노인이 그 손을 잡았다. 온도가 전이됐다. 객실이 빛났다. 그리고 준호의 뇌가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이번엔 더 깊은 곳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아버지가 강변공원에서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우리 준호 크네"라고 말했던 그 순간. 그 시간대 전체가 사라졌다. 사진으로는 기억할 수 있지만, 그 시간의 감정은 영구히 끊겨 있었다. 아버지의 손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톤을 상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랑의 온기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노인이 내렸다. 객실이 텅 빴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 손이 자신의 손인가? 이 손이 뭘 했는가? 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밤 11시 35분.

지하철이 역에 정차했다. 홍대입구역.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승객은 없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박민지였다.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울음이 계속됐다. 울음이 끝났다. 문자가 왔다.

'준호, 제발. 한 번만 만나자.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내가 뭘 했길래 넌 날 이렇게 외면해? 우리 진짜 친구였는데...'

준호는 글자를 읽었다. 하지만 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박민지? 누구? 연락처에는 '박민지'라고 저장되어 있다. 자신은 이 사람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반응하지 않았다.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글자였다. 화면 위의 글자.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밤 11시 38분.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 없이. 시간표 없이. 준호는 객실 창밖을 바라봤다. 터널이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다른 번호였다. 어머니 최지은. 준호는 화면을 봤지만 받지 않았다. 울음이 여섯 번 반복됐다. 그 사이 문자가 도착했다.

'준호야, 엄마다. 너 요즘 뭐 해? 밥은 먹고 있어? 내일 저녁에 만나자. 엄마가 너 좋아하는 국밥 끓어줄게. 준호?'

글자들이 화면에 떠 있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준호는 알았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밤 11시 42분.

지하철역 승강장 위.

지하철이 정차했다. 문이 열렸다. 준호는 내렸다. 왜 내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하철이 출발했다. 준호는 승강장에 서 있었다.

그 위에 세 명이 있었다.

어머니 최지은. 박민지. 서준영.

어머니가 준호를 보자마자 입을 벌렸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준호를 알고 있었다. 아들이 변했다는 것을. 아들이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눈이 준호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공포가 있었다.

"준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을 어머니의 목소리로 인식하지 못했다. 음성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뭔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렸다. 그 울음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나오고 있었다.

박민지는 준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울었다. 그 침묵은 더 크게 울리는 울음이었다. 박민지는 핸드폰에 문자를 보낸 사람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알았다.

서준영은 준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등을 돌렸다. 준호는 그 등을 바라봤다. 그 등이 누구의 등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세 명이 동시에 준호를 바라봤다.

"저... 저 뭐 도와드릴 게 있으신가요?"

어머니의 얼굴이 무너졌다. 박민지는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서준영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

"준호, 나야. 엄마야."

어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준호는 그 손을 보았다. 낯선 손이었다. 누군가가 내미는 손이었다. 친절해 보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 손이 자신을 위해 내밀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 게 없으면..."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지하철역의 다른 쪽을 바라봤다. 어머니의 손이 내려갔다. 어머니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들이 눈 앞에 서 있지만, 그는 이미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간 것이다.

밤 11시 49분.

지하철 객실 내.

준호는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움직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기에 있었다.

한승재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넌 이제 다 왔어."

한승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열 번 도왔지? 열 번이면 충분해. 더 이상 도울 필요 없어."

준호는 한승재를 바라봤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이 만난 적이 있는가?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한승재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넌 이대로 가면 자신을 완전히 잃을 거야. 난 너처럼 된 사람을 알아. 그 사람은 지금 누구인지 몰라. 거울을 봐도 자신을 모르고, 사진을 봐도 누구인지 모르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들어도 남의 일처럼 느껴. 그렇게 되는 거야. 지금 바로."

한승재의 눈빛이 변했다. 차분함이 사라지고, 뭔가 다른 감정이 흘러나왔다. 동정? 아니면 절망?

"나도 그랬어. 처음엔 도움이 좋았어.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결국..."

한승재가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다음 손님이 올 거야. 열 번째. 그 손님의 소원을 이루지 말. 그럼 넌 남은 기억이라도 지킬 수 있어. 그게 너의 유일한 길이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승재가 내렸다. 객실이 비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남아 있었다. '나도 그랬어.' 그 말이 계속 울렸다.

밤 11시 55분.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객실 끝에 있는 작은 거울. 거울 속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는 누구인가?

얼굴이 있었다. 눈이 있었다. 코가 있었다. 입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누구를 구성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준호는 손을 들었다. 거울 속 남자도 손을 들었다.

"누구세요?"

준호가 물었다.

거울 속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준호의 손이 떨렸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호흡이 얕아졌다. 가슴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런데 그 모든 신체 반응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공포를 느껴야 하는데 공포는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모든 감정이 한 겹의 유리판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밤 11시 59분.

객실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 지하철이 서서히 멈췄다. 다음 역이 아니었다. 준호는 알았다. 시간이 정지된 것이다. 밤 11시 59분에서.

객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 번째 손님이 탔다.

준호는 그 손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멈췄다.

그것은 자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눈빛이었다. 준호가 지난 밤들 동안 계속 봐왔던 자신의 눈빛.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하고 탑승했다.

그 존재가 준호 앞에 앉았다.

"안녕, 준호."

그것이 준호의 목소리였다.

"난 너의 아홉 번째 날 이후의 너야. 더 정확히는, 넌 이미 아홉 번째 날에 죽었어. 그리고 난 그 죽음 이후에 남겨진 것. 너의 그림자. 너의 거울상. 너의 끝."

준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넌 이미 알고 있어. 내 소원이 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그것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야."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목이 메었다. 아니, 목이 메어야 하는데 메지 않았다. 감정이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일정한 온도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넌 원래부터 자신을 잃고 싶었다고."

자신을 한 모습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처음부터 넌 투명했어. 지하철에서. 승객들 사이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정작 넌 아무도에게 필요하지 않았어. 어머니는 자신을 모르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고, 친구들은 넌 없다고 생각하고, 사랑했던 사람도 이제 넌 봐도 울어. 넌 남겨진 게 없어. 그런데도 계속 도와주려고 했어. 왜 알아? 자신을 잃는 게 편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넌 지금 그 선택의 끝에 도달했어."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동으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멈춰."

자신을 한 모습이 손을 들었다.

준호의 몸이 멈췄다.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넌 지금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어. 첫 번째, 나의 소원을 이루어줘. 그럼 넌 완전히 사라져. 자신의 이름도, 얼굴도, 모든 것이 사라져. 그리고 넌 자유로워져. 더 이상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강박에서. 더 이상 자신을 잃어간다는 공포에서. 왜냐하면 잃을 게 없으니까."

자신을 한 모습이 몸을 일으켰다.

"두 번째, 거부해. 그럼 나는 너를 데려가. 우리는 함께 남겨진 기억들을 더듬으며 살아가. 누가 너였는지 영원히 모르면서. 그것도 나쁘지 않아. 왜냐하면 넌 혼자가 아니니까. 너처럼 된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지하철 밤 11시에서 계속 만나."

객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그 순간, 객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섰다.

김도현이 먼저 들어섰다. 그 뒤로 박민지가 따라왔다. 그 뒤로 어머니가 따라왔다. 그 뒤로 서준영이 따라왔다. 그 뒤로 한승재가 따라왔다.

그들은 모두 준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다 달랐다. 김도현은 절망의 눈빛. 박민지는 울음의 눈빛. 어머니는 간절함의 눈빛. 서준영은 후회의 눈빛. 한승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빛.

자신을 한 모습이 웃었다.

"이제 선택해. 나는 준호다. 그리고 넌 아무도 아니야."

객실이 다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준호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의 얼굴이 흐릿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준호는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만은 알았다. 기억할 수 없는 모든 것들 속에서, 그 눈물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준호는 박민지를 바라봤다. 박민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준호는 이 사람의 이름도, 목소리도, 기억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박민지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 울음이 자신을 지우려는 이 존재의 거짓말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

준호는 서준영을 바라봤다. 서준영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 등은 낯선 등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알았다. 서준영이 자신을 위해 돌아섰다는 것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선택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알았다.

준호는 한승재를 바라봤다. 한승재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넌 선택할 수 있어.'

준호는 다시 자신을 한 모습을 봤다.

"넌 나가 아니야."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넌 나가 되고 싶은 거지. 나를 지우고, 나의 자리를 가져가고 싶은 거지. 하지만 나는 잃었어. 모든 걸. 하지만 그래도 남은 게 있어."

준호는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움직였다.

"어머니의 눈물. 친구의 울음. 누군가의 선택. 누군가의 후회. 그것들이 나를 증명해. 내가 아무도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나를 남겨둔다."

자신을 한 모습이 일어섰다. 얼굴이 뒤틀렸다.

"그럼 넌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거야. 그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닐 것 같아."

준호는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그 손을 잡았다.

자신을 한 모습이 비명을 질렀다. 객실이 흔들렸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객실이 회전했다. 그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태양 아래 녹아가는 얼음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넌 나와 함께 있어야 해... 넌 혼자야... 넌..."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다.

밤 12시 03분.

객실은 다시 평온했다. 형광등은 깜빡이지 않았다. 객실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준호와 어머니만 남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았다. 준호는 어머니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안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 준호..."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돌아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 12시 05분.

준호는 객실에서 내렸다. 플랫폼은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도 함께 내렸다.

준호는 한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세어봤다.

열 손가락이 모두 있었다.

준호는 다른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세어봤다.

열 손가락이 모두 있었다.

준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눈, 코, 입이 모두 있었다.

그리고 이마.

이마 한가운데.

거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마치 낙인이 새겨지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표식이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다는 표식.

어머니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내일은 어떻게 하니?"

어머니가 물었다.

준호는 생각했다. 내일 밤 11시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시간이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승재의 말처럼, 새로운 손님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손님의 뒤에는 또 다른 손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뭔데?"

"한승재를 찾아야 해요. 그리고... 그에게 물어봐야 해요."

준호는 어머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엄마, 내일 밤 11시에 다시 만나야 해요. 그리고 그 뒤로도."

"알았어. 함께 있을게."

어머니가 말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역을 나갔다. 밤이 깊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일 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

한승재를 찾는 것. 그리고 그에게 묻는 것.

너는 왜 나를 선택했는가.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정해진 각본을 따르는 배우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내일을 만드는 사람처럼.

밤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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