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의 대가

거울 앞에서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마, 눈, 코, 입.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누군가 내 얼굴을 정밀하게 복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 충분히 오래 봤다. 충분히 오래 보니 낯선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다.

밤새 어머니의 목소리를 복원하려 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통화 기록에 '엄마'라고 적힌 항목을 누르고, 신호음을 세며 기다렸다. 그녀가 받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성만 들으면 뭔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나를 낳은 손의 온기가, 밤새워 기다려준 마음이 튀어나올 거라고.

"준호? 뭐 하는 거야?"

그건 그냥 음성이었다. 낮고 부드럽고 친숙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잃어버린 음성과 다른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음성이었고 내가 잃어버린 것도 음성이었는데, 둘이 같은 존재인지 다른 존재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응, 안녕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일상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밥은 먹었냐고, 요즘 날씨가 좋다고, 주말에 집에 오지 않냐고. 나는 응, 응, 응이라고만 대답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낮 시간은 투명했다.

지하철 전동차는 언제나처럼 승객들로 가득했다. 아침 러시아워, 낮 시간대의 한가한 흐름, 저녁의 다시 몰려드는 인파. 나는 제 역할을 했다. 다음 역은 강남역입니다, 안내 방송의 톤으로 중얼거리며 통로를 순회했다. 짐은 안전하게 보관하세요. 노약자석을 양보해주세요. 문이 닫히겠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내 목소리가 틀렸다.

"이준호."

기장실 앞에서 김도현이 나를 불렀다. 그는 검은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얼굴에는 피로가 깊게 패여 있었고, 눈빛에는 끊임없는 의심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네, 기장님."

"요즘 괜찮아? 자꾸 멍때리는 것 같은데."

그가 곁눈질로 나를 훑었다. 자세히 보지는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보는 방식이었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하려고 노력했다.

"네, 괜찮습니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봐요."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돌아서기 전에 한 번 더 나를 봤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 답답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는 나를 떠나기 전에 기장실 카메라 모니터를 한 번 더 훑었다. 지난주 CCTV 기록을 검토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녁 5시경, 박민지를 만났다.

그녀는 승무원 중에서 나와 같은 노선을 담당하는 여자였다. 3년 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3년 동안 함께 일해왔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3년이 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준호, 넌 뭔가 자꾸 멍때려. 뭐 빠뜨린 거 있어?"

그녀가 승무원 휴게실에서 물었다. 커피 머신 앞에 서서,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받으면서.

"아니야, 괜찮아."

"거짓말 마. 지난주부터 자꾸 그런 표정을 해.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박민지의 눈이 나를 꿰뚫었다. 그녀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어제 밤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그 여자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감각. 옥상에서 두 영혼이 만나는 장면. 하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 괜찮아. 그냥... 피곤한 것 같아."

"피곤?"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준호, 너 뭔가 숨기고 있지? 나한테 말해봐. 뭐라도 도와줄 수 있으면..."

"아니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진심에 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거짓뿐이었다. 그 거짓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 민지. 신경 쓰지 마."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휴게실 문이 닫히며 나는 혼자 남았다. 커피 머신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박민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상처 입혔다. 그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방식으로.

저녁 6시 반,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서준영이었다.

나는 그녀를 알았다. 사진으로. 휴대폰 사진첩에는 그녀의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카페에서, 한강 공원에서, 영화관 앞에서. 그녀의 얼굴은 명확했다. 검은 머리, 맑은 눈, 옅은 웃음. 하지만 나는 그 사진 속의 여자를 모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기억나?"

그녀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옳은 반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차가워졌다. 마치 누군가 내 손목을 얼음으로 감싼 것처럼.

"...네. 오랜만이네요."

"뭐야, '네'라니? 뭐 하는 거야?"

그녀의 웃음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나는 정확히 무엇을 한 건지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지웠다. 내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나는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

"농담이야. 미안해."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손을 잡지 않은 채로.

"너 정말 괜찮아? 뭔가... 달라 보이는데."

"그냥 피곤해. 일이 많아서."

"그래? 그럼 다음에 봐."

그녀는 카페를 나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사진으로는 여전히 그녀를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했던 감정도 사라졌다.

밤 11시.

지하철은 다시 이상해졌다.

마지막 열차에는 평소처럼 몇 명의 승객들이 타 있었다. 회사원들, 학생들, 노인들. 그들은 모두 평범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밤 11시가 넘으면 그들 중 누군가는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녀는 강남역에서 탔다.

20대 중반의 여자였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나를 찾았다. 마치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일어났다.

그녀의 진짜 소원이 나를 관통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무언가.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갈망.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연인.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그를 보고 싶다는 영혼의 울음.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루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인지 다른 무언가에서 나온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정말요?"

그녀의 눈이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했다.

전동차는 강남역을 떠났다. 교대역을 지나갔다. 남부터미널역을 지나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멈췄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그것은 지하철이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현실이 흔들렸다. 내 의식이, 내 감각이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강남역 근처의 오피스텔. 밤 11시 반 정도의 시각. 그 건물의 옥상.

그곳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그 여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 여자의 영혼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그곳에 있으면서도 없었다. 마치 빛으로 그려진 그림처럼.

다른 한 명은 남자였다. 젊고, 따뜻한 눈을 한. 그의 얼굴에는 2년간의 아픔이 녹아 있었다.

그들이 만났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녀를 안았다. 말은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옥상의 밤하늘 아래에서, 두 영혼이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다. 1초였을 수도 있고, 1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끝났을 때,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나는 지하철로 돌아왔다.

그 여자는 더 이상 내 앞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이 있었다. 절망은 사라졌고, 희망도 남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평온만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첩을 열었다. 서준영과의 사진들이 있었다. 여러 장. 그들은 모두 선명했다. 색감도 생생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여자의 얼굴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얼굴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다. 사진이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감정이 붙어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나는 사진 속의 그 여자와 함께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강남역 카페에서 만난 날. 한강 공원에서 손을 잡던 날. 영화관 앞에서 웃던 날.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들이 내 기억에서 완전히 소거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그 얼굴이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 내 휴대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진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 시간.

그 여자는 내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아니, 내 첫사랑이었다. 그 사진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첫사랑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대신 차가운 텅 빔만 남아 있었다.

내 가슴 속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했다. 승객들이 내렸다. 새로운 승객들이 탔다. 나는 기계처럼 안내 방송을 했다. 다음 역은 을지로입니다. 문이 닫히겠습니다. 안전하게 이동해주세요.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나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나를 자극했다. 그 번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낯선 신호. 마치 내가 알아야 할 무언가가 그쪽에 있다는 신호.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호흡을 들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나를 관찰하듯 호흡하는 누군가.

"이준호?"

남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차갑고, 정확했다.

"...네?"

"나는 한승재라고 하지. 널 관찰하고 있어."

"뭐... 뭐라고?"

"넌 뭔가 하고 있잖아. 밤 11시가 지나면. 그걸 안다는 거야. 그리고 넌 이미 여러 사람을 도왔어. 어제 밤 그 여자도. 그 대가로 뭔가를 잃었고. 계속 잃어가고 있어."

내 몸이 얼었다.

"당신이... 누구세요?"

"너와 같은 사람이야."

그의 목소리에 뭔가 이상했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것처럼.

"나도 밤 11시에 누군가를 만나. 너처럼. 하지만 넌 아직 모르고 있지. 우리가 뭔지. 우리가 정말 뭘 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 대가가 뭔지."

"우리가... 뭐라고요?"

"다음 밤 11시에 넌 또 누군가를 만날 거야. 그리고 다시 뭔가를 잃을 거야. 그때까지 잘 생각해봐. 넌 정말 그 길을 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 손을 잡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지."

통화가 끊겼다.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내 몸 전체가 떨렸다. 누가 나를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사진첩을 열었다.

서준영의 사진. 박민지의 사진. 어머니와 함께한 사진. 그들이 모두 거기 있었다. 그들이 모두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있었다.

사진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감정은 느낄 수 없었다.

내 기억은 차례대로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서준영의 얼굴도, 박민지와의 시간도. 모두 사라졌다. 또는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했다. 더 많은 사진들이 나타났다. 낯선 얼굴들. 낯선 장소들.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 같은 순간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타인의 추억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였다.

나는 여전히 밤 11시 열차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밤 11시, 또 누군가가 탈 것이다.

한승재의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우리가 뭔지 아직 모른다고.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음 역은 강남역입니다. 문이 닫히겠습니다. 안전하게 이동해주세요.

기계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도 이제 낯설었다.

지하철이 강남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또 다른 손님이 탔다.

2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의 눈빛이 나를 찾았다. 그 눈빛 속에는 절망이 있었다. 누군가를 잃은 절망.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의 소원이 나를 관통했다. 그것도 내가 이루어줄 수 있는 소원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나를 향했다.

내일 밤 11시가 아니었다. 지금이었다.

나는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떨렸다. 한승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정말 그 길을 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 손을 잡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지.

내 손이 멈췄다.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은 다음 역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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