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지하철 승무원

아침 일곱 시, 지하철 역사는 물밀듯 몰려드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나 이준호는 제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중간 차량 출입문 옆에 서 있었다. 여자친구 없는 남자,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않는 남자, 특별히 두드러지는 점 하나 없는 남자. 누군가는 나를 스쳐지나가고, 누군가는 나를 보지도 않는다.

저녁 열 시, 차량 정비를 마친 후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박민지가 말했다.

"요즘 자주 멍때리는데, 괜찮아? 뭔가 빠뜨린 게 있는 거 아니야?"

그녀는 나보다 삼 년을 더 근무한 선배였다. 관찰력이 예리했다.

"아, 아니야. 그냥 피곤한 것 같아."

"피곤한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다른 생각을 자주 하는 거처럼 보여."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다른 생각.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밤 열 시 반, 나는 마지막 열차의 승무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천장에서 미약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열차는 저녁 열 시 오십 분에 출발해 자정까지 운행된다. 이 시간에는 야근을 마친 직장인들, 술에 취한 사람들, 혼자 밤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탄다. 하지만 그들도 내게는 목소리 없는 배경음악일 뿐이었다.

"준호, 출발할 시간이야."

기관사 박준석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일어섰다.

마지막 열차는 강남역에서 출발했다. 승객들이 탔다. 대여섯 명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밤이었다. 나는 중간 차량에 선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휴대폰을 들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공기 중 한 점으로 존재했다.

밤 열 시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형광등이 은은해졌다. 순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밝기를 줄인 것처럼. 그리고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열차의 진동이 부드러워졌고, 창밖의 야경이 천천히 흘러갔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때였다.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없었다. 나는 분명히 세었다. 대여섯 명. 그런데 그는 맨 뒤 좌석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갈색 구제 재킷, 구겨진 와이셔츠, 눈 아래 검은 그림자. 그의 얼굴은 어딘가 부서져 있었다.

나는 안내를 위해 그쪽으로 걸어갔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몸. 기계처럼.

"안녕하세요, 다음 역이 어디로 가시나요?"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든 상관없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내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접촉은 전기였다.

내 안에 뭔가가 터져나왔다. 그의 눈빛을 통해 느껴지는 것들. 절박함, 외로움, 그리고 깊은 절망.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표면적 감정 아래에 숨겨진 진정한 바람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의 영혼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가 말했다.

"돈이 필요해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그의 진짜 소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그의 눈빛에서 전달된 메시지였다.

나는 그를 봤다. 정말로 봤다. 투명한 존재인 나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절실한 갈망이 솟아올랐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미친 말이었다. 나는 지하철 승무원일 뿐이다. 누군가를 도울 만한 능력도, 돈도, 권력도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차가 계속 달렸다. 강남역을 지났다. 강남역 이후로는 사람이 적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듯한 감각.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오직 충만함만 있었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차가 강남역 플랫폼을 지나가려는 순간, 나는 창밖을 봤다.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남자가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중년의 여자와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이 뛰어오는 남자를 안았다. 아버지를 안는 아들. 그 순간의 기적이 내 눈앞에 스쳐갔다.

그것은 정확히 내 옆에 앉은 그 남성이었다.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처음으로 그는 나를 봤다. 고마움이 가득 찬 눈으로.

"감사합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열차는 계속 달렸다. 그 남자는 내려갔다.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있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일어난 걸까?

나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열차 운행을 마친 후,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응, 준호야. 뭐 해?"

"엄마...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침묵이 흘렀다.

"넌 이미 충분히 중요한 사람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가 나를 채우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공허했다.

"고마워, 엄마."

통화를 끝냈다.

거울을 봤다. 사무실 벽에 붙은 작은 거울. 내 얼굴이 비쳤다.

그것은 내 얼굴이 맞나?

어딘가 낯설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얼굴이 거울에 비쳐 있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내 얼굴인데,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 보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자장가를 생각해봤다. 어머니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부르던 그 노래. 그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웠다. 나는 그 목소리 속에서 자랐다.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목소리가 왜곡되어 들렸다. 마치 물 속에 잠긴 음성처럼. 혹은 오래된 테이프가 헐어진 것처럼. 내가 방금 들은 따뜻한 목소리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그 특별한 톤, 그 사랑이 담긴 음절들이 하나둘 소멸하고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내 손이 떨렸다. 거울 앞에서 한 발 물러섰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직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려는 순간, 꿈의 내용을 놓쳐버리는 것처럼.

내 휴대폰이 울렸다.

김도현이었다. 역무실의 CCTV를 담당하는 직원. 그는 내게 말했다.

"승무원님, 혹시 오늘 마지막 열차에서 뭔가 이상한 거 봤어?"

내 심장이 철렁했다.

"뭔가... 이상한 게 뭐죠?"

"열차 탑승 영상을 보는데, 분명히 강남역에서 탄 승객이 여섯 명인데, 어딘가에서는 일곱 명으로 보여. 화면이 떨리는 것처럼 왜곡되는 부분이 있어. 혹시 너 본 거 있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일곱 번째 승객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도우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니... 아무것도 본 게 없습니다."

거짓말이 나왔다. 내 목소리가 떨렸다. 어떤 거짓말을 할 때의 그 미묘한 떨림.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김도현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 너머에서 그의 침묵이 길어졌다. 그것은 의심이었다.

"알겠어. 그럼 괜찮아."

김도현이 끊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뭔가가 남아 있었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에 관한 거짓말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계속 파고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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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다른 승객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제복을 벗은 나는 그저 도시의 투명한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누군가의 어깨가 내 어깨를 스쳤지만,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익숙했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어머니와의 통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오늘 오후 8시 47분. 통화 시간 3분 22초. 그것이 증거였다. 우리는 분명히 말을 나눴다. 하지만 그 대화의 온기는 이미 식어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섭다면 무섭고, 외롭다면 외로웠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도 뭔가 멀리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서 나는 신발을 벗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회사 알람이 울렸다. 6시 30분. 나는 일어났다. 샤워를 했다. 제복을 입었다. 거울 앞에 섰다.

어제의 낯선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제는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그 빈 자리가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뇌는 거짓을 만들어낸다. 빠진 것을 빠진 것이라고 느끼지 않기 위해.

출근길에 박민지를 만났다. 같은 노선의 승무원.

"아, 준호. 요즘 자주 멍때리는데 괜찮아?"

같은 질문이었다. 어제도 물었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네, 괜찮습니다. 그냥 피곤한 것 같아요."

"그래? 너 요즘 진짜 이상한데. 뭐 있어?"

그녀의 눈이 진지했다. 그것은 걱정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한다는 것. 평소 같으면 기뻤을 텐데, 오늘은 그 걱정마저 투명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습니다."

나는 웃었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역무실에서 아침 회의를 했다. 안전 교육, 승객 안내 방법, 오늘의 특이사항 확인. 모든 것이 반복이었다. 나는 이미 수천 번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반복이 더 깊게 들렸다. 마치 내가 이미 죽어 있고, 이것은 죽음 이후의 일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낮 시간 운행은 평범했다. 강남역에서 승객을 태웠다. 사무직 여성들, 학생들, 노인들. 나는 그들을 안내했다.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제복은 투명한 소속을 나타냈다.

저녁이 되자 박민지가 다시 나타났다. 역무실에서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표정은 불안했다.

"준호, 너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얼굴이..."

"뭐가요?"

"모르겠는데, 뭔가 빠진 것 같아. 네가 누군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이야."

나는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아요."

"피곤? 준호, 난 너를 모르겠어. 요즘 넌..."

그녀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밤 11시가 다가왔다.

마지막 열차 운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차량 안을 점검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승객들은 천천히 탑승했다. 강남역에서 여섯 명. 을지로에서 세 명.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두 명. 평범한 저녁이었다.

하지만 밤 11시를 넘어서면서 무언가 변했다.

형광등이 은은해졌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꼈다. 시간이 느려지는 듯했다. 열차의 움직임도, 승객들의 호흡도, 그리고 나의 생각도. 모든 것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내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나는 처음에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느껴졌다. 그 존재감. 밀도 있는 무게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였다. 서른 중반 정도의 나이. 하지만 그 얼굴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통해 누군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세계가 울렸다.

그녀의 소원이 나에게 밀려왔다. 말이 아니었다. 이미지였다. 감정이었다. 영혼의 절규였다.

그녀는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섯 살 딸. 교통사고. 작년 겨울. 그 이후로 그녀는 살아가지 않았다. 다만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진짜 소원은 돈도, 행운도 아니었다.

그것은 딸의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결심했다.

순간, 세계가 흔들렸다.

나는 도시 어딘가를 봤다. 한 아파트의 거실. 그 여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죽은 딸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액자 속의 웃는 얼굴. 여섯 살의 순수한 미소. 그 여자의 손가락이 사진을 쓸어내렸다.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치 그 얼굴을 만질 수 있다면, 딸이 돌아올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그때였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 노래 프로그램.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사랑해."

그것은 녹음된 음성이었다. 작년에 라디오 청취자 참여 코너에 보낸 것. 딸이 마이크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말했던 그 목소리. 그 여자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매일 밤 그 음성을 찾아 들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비명 같은 울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절규.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한 해를 넘게 참아온 모든 것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라디오 스피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그 목소리를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마치 딸이 그 음파 속에 살아 있을 것처럼.

"우리 딸... 우리 딸..."

그녀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눈을 떴다.

그 여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내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열차는 계속 달렸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 가슴팍에 공허함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어제와는 다른 공허함이었다. 어제는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그것이 확실한 손실로 변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떨어져 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내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니의 연락처를 눌렀다. 벨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호였다. 정보였다. 단순한 음파였다. 그 안에 담긴 온기, 그 안에 담긴 나를 향한 사랑, 그 안에 담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졌다.

"엄마?"

내가 물었다.

"응, 준호야. 뭐 해?"

같은 대사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이전에는 따뜻했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낯선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뭐 힘든 일 있어? 목소리가 이상한데."

"아니에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밥 잘 챙겨 먹고."

"네."

나는 통화를 끝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그 목소리가 내게서 의미를 잃었다는 것을. 그것은 더 이상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라, 단순한 음성 정보가 되어버렸다.

내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펼쳤다. 반복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김도현이었다. 역무실의 CCTV를 담당하는 직원. 그의 목소리는 긴장해 있었다.

"승무원님, 오늘도 이상한 거 봤어? 열차 영상을 다시 봤는데..."

"뭐죠?"

"오늘도 승객 수가 맞지 않아. 강남역에서 여섯 명이 탔는데, 을지로에서는 열 명으로 보여. 화면이 왜곡되는 부분도 있고. 근데 이상한 게, 그 왜곡 패턴이 어제와 똑같아. 시간대도 일치해. 혹시 넌 이상한 승객 본 거 없어?"

내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단순히 영상 왜곡만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패턴을 찾고 있었다.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하려고 했다. 내 거짓말의 떨림을 포착하려고 했다.

"...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거짓말 속에서 내 목소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혹시 너 지금 사무실에 있어? 표정 한번 봐도 되지?"

"네, 있습니다."

"좋아. 그럼 CCTV로 봐야겠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는 이미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도 이상한 사람은 없었어요."

또 거짓말이었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준호, 너 왜 그렇게 떨려? 목소리가 자꾸 떨려."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내 목소리 속의 떨림을 감지했다. 그것은 거짓말의 신호였다.

"그냥... 피곤해서요."

"피곤? 이 시간에?"

"네."

"알겠어. 그럼 내일 한번 봐. 그리고 준호, 혹시 열차 CCTV 영상에 시간 불일치 같은 거 본 거 없어? 승객이 탈 때랑 내릴 때 시간이 안 맞는 거?"

그의 질문은 점점 구체적이 되고 있었다.

"아니... 본 게 없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영상에는 분명히 뭔가 있는데."

김도현이 끊었다.

하지만 나는 느껴졌다. 그가 뭔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의심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것을. 내 거짓말, 내 떨림, 내 표정의 변화. 그 모든 것이 증거가 되고 있었다.

사무실 모니터에 CCTV 화면이 켜졌다. 김도현이 원격으로 접속한 것이었다. 나는 화면을 봤다. 어제 마지막 열차의 영상이었다. 강남역에서 탑승하는 승객들. 여섯 명. 그리고 그 중간에 한 프레임. 화면이 일렁이는 부분. 그 안에서 일곱 번째 승객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오늘 영상도 같은 패턴이었다. 을지로에서 화면이 왜곡되고, 그 안에서 여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준호, 이거 뭐 같아?"

김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나는 뭔가 의도적인 거 같은데. 마치 누군가 열차 안에 있는데, 카메라에만 안 보이도록 하는 거 같아. 가능할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내일 한번 더 봐. 그리고 준호,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거 있으면 말해. 난 너를 도와줄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끝났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모니터의 화면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 왜곡된 부분. 그 안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들. 그리고 나.

내일은 어떤 손님이 탈까?

그리고 나는 또 무언가를 잃을까?

김도현의 추적은 계속될 것이다. 영상 속 패턴을 따라, 시간 불일치를 따라, 그리고 결국 나를 따라. 그가 발견할 것은 단순한 CCTV 오류가 아니었다. 무언가 세상의 법칙 밖에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것.

내 손이 떨렸다.

거울을 다시 봤다. 내 얼굴이 더 이상 내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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