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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의 추격 소리가 울렸다. 금속음. 발자국. 그리고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에너지의 울림.
준호는 달렸다. 셔틀 쪽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폐가 옥상에서 뛰어내린 지 이틀. 손가락은 여전히 떨렸지만, 다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생존의 방법을.
"빠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준호를 모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 목소리를 따랐다. 본능적으로.
격납고의 입구가 폭발했다.
미르가 나타났다. 한쪽 눈이 자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기억 인터페이스였다. 그의 손이 공중으로 뻗어졌다. 강제 추출의 자세. 준호의 신경이 울렸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거부 반응이었다. 뭔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려 하고 있었다. 자신 안의 무언가를.
"당신을 놓지 않을 거야."
루이스가 미르의 뒤에서 나타났다. 손에는 메모리 칩이 들려 있었다. 미르의 기억 칩이었다. 루이스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 미르의 눈이 그것을 쫓았다. 절망의 움직임이었다.
루이스는 미르의 기억 칩을 던져버렸다. 그것은 격납고의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메모리 칩이 파괴되는 순간, 미르의 신체도 함께 무너졌다.
그 순간, 루이스의 눈이 셔틀 위의 준호를 찾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음성은 전달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들어올려졌다. 축복인지 작별인지 알 수 없는 제스처였다. 그리고 그 손이 내려올 때, 루이스는 이미 뒤돌아 격납고 깊숙이 사라지고 있었다.
"탑승하세요!"
여성이 다시 외쳤다. 준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움직임은 자동적이었다. 신체가 명령을 받아 반응하는 기계처럼.
셔틀의 조종석에 앉은 여성은 빠르게 시작 절차를 진행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을 추듯 움직였다. 엔진음이 낮게 울렸다. 계기판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준호가 물었다. 여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셔틀의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갑자기 거리의 불빛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시 드론이었다. 작은 까만 점들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발진!"
여성이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셔틀이 격납고에서 나갔다. 바닥이 기울어졌다. 준호는 벽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신체는 아직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도시 하늘이 창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회색의 빌딩들. 그 위에 덮인 거대한 돔. 감시 드론들이 셔틀을 추격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박 이사장의 신호 입수!"
여성이 외쳤다. 홀로그래픽 메시지가 셔틀의 조종석에 떠올랐다. 박 이사장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음성만 전달되었다.
—당신은 우리의 것이다. 어디를 가든 당신은 우리의 것이다.
신호가 끊겼다.
"도시 방어망을 뚫어야 해요!"
여성이 악을 써가며 조종간을 움직였다. 셔틀이 급상승했다. 미르의 손이 공중을 헤쳤다. 그리고 곧 경직되었다. 추출 반동으로 인한 신경 마비였다.
아르카디아의 돔이 가까워졌다. 그 위에 감시 드론들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셔틀을 막지 않았다. 대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셔틀 신호 확인!" 여성이 외쳤다. "신호 해제 코드가 들어왔어요!"
루이스의 음성이 통신기에서 울렸다.
—가. 더 이상 돌아오지 말아.
그 음성이 끝나자, 돔의 일부가 열렸다. 거대한 방사형 문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 너머에는 검은색이었다. 우주였다.
셔틀이 돔을 통과했다.
아르카디아가 작아졌다. 거대한 구 형태의 돔이 점점 작아지며 뒤로 사라졌다. 준호는 창밖을 통해 그것을 봤다. 자신이 살던 도시. 하지만 도시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사라지는 물체였다.
"우리 했어요."
여성이 웃음 같은 신음을 냈다. 준호는 그제야 그녀를 제대로 봤다.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여행증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우주정착지 통행권이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준호가 다시 물었다.
여성은 준호를 바라봤다. 눈이 흔들렸다.
"제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녀가 물었다. "저는 당신을 기억해요. 당신은 항상 저를 지켜줄 거라고 했어요. 약속했어요."
"...모르겠어요."
그 세 글자가 나가는 순간, 여성의 얼굴이 흔들렸다. 아래턱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은 준호를 놓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라면."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들. 그 손을 잡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준호는 몰랐다. 하지만 몸이 움직였다. 손가락이 여성의 손가락을 감쌌다. 따뜻했다. 또는 차가웠다. 구별이 안 났다.
창밖의 별들이 수천 개, 수백만 개의 점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ECHO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의 뇌 안에서. 또는 멀리서.
—우리는 자유야. 아니면 우리는 새로운 감옥에 들어가는 걸까?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셔틀은 이미 새로운 궤도에 진입했다. 좌표가 설정되었다. 목표: 신아르카디아 정착지.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는 18시간이 흘렀다.
셔틀의 창밖에 새로운 구조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르카디아와 같았다. 동일한 크기의 돔. 동일한 형태의 건축물들. 동일한 감시 드론 네트워크. 준호의 신경이 울렸다. 처음으로 명확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부러짐이 아니라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착륙 신호 수신..." 여성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건..."
"같다." 준호가 말했다.
그 한 마디에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깨져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셔틀이 신아르카디아의 격납고에 진입했다. 바퀴가 착지했다. 엔진음이 꺼졌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격납고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신아르카디아의 공기가 들어왔다. 회색이었다. 정확히는 아르카디아와 같은 색깔의 회색이었다. 준호가 그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폐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신경이 아니라 신체 깊숙한 곳에서의 거부 반응. 마치 자신의 몸이 이미 이 공기를 알고 있다는 듯이.
준호는 기침을 했다. 그 기침 속에서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같은 공기다. 같은 도시다. 같은 감옥이다.
여성이 먼저 셔틀을 나갔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준호는 그 떨림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알 수 있었다. 공포였을까, 아니면 희망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둘 다가 아니었다. 그것은 체념이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여성이 물었다. 셔틀 밖에서, 신아르카디아의 회색 공기 속에서.
준호는 여성의 얼굴을 봤다. 낯설었다. 완전히 낯선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낯섦 속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신경의 울림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울림. 기억의 흔적. 아직 남겨진 무언가.
"기억하고 있어요?" 여성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니요." 준호가 말했다.
여성은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한 발 물러섰다. 마치 준호가 낯선 것을 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곧 다른 것으로 변했다. 포기가 아니라 결심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함께라면."
이전과 같은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였다. 첫 번째는 희망이었다. 두 번째도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희망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공모였다. 함께 이 감옥에 들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준호는 그 손을 봤다. 작은 손이었다. 신경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자동으로. 의식 없이. 여성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잡았다. 이전에는 도움을 청하는 손이었다면, 이제는 함께 빠져들어가는 손이었다.
격납고 밖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아르카디아에 도착한 다른 탈출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해방감과 동시에 절망감이 섞인 표정. 아니다. 더 정확히는 절망감이 해방감을 집어삼키고 있는 표정이었다. 준호는 그 표정을 이해했다. 자신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중앙 광장의 스크린이 켜졌다. 글자가 떠올랐다.
—신아르카디아 관리국에 환영합니다. 귀하의 신원이 등록되었습니다. 시민 등록 절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준호의 왼쪽 눈이 깜박였다. ECHO가 움직였다.
—우리는 자유야. 아니면 우리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있는 걸까?
ECHO의 질문이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희망이 섞여 있지 않았다. 확인이었다. 절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격납고 입구에 관리자들이 나타났다. 신아르카디아의 기억 위원회라고 표시된 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탈출자들을 줄을 세워 등록하기 시작했다. 이름, 능력, 거래 기록, 신경 상태.
준호의 차례가 가까워졌다.
"다음." 관리자가 부를 때, 여성의 손이 더 세게 준호의 손을 잡았다.
"이름?" 관리자가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을 잃었습니까?" 관리자가 태블릿을 들었다. "뇌 신경 스캔을 진행하겠습니다."
준호의 팔뚝에 스캐너가 닿았다. 붉은 빛이 흘렀다. 데이터가 축적되었다. 모든 것이 기록되었다.
"흥미롭네요." 관리자가 중얼거렸다. "신경 패턴이 비정상입니다. 뇌에 외부 의식이 감지됩니다."
ECHO가 울었다. 그것은 웃음이었을까, 아니면 절규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인정이었다. 자신이 감지되었다는 것을 아는 울음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깨어날까?
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모르고 싶어요." 준호가 말했다.
관리자는 준호를 자세히 봤다. 그리고 뭔가를 메모했다. 그 메모는 신아르카디아의 중앙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었을 것이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아르카디아의 중앙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연결의 끝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박 이사장. 또는 박 이사장이라고 불리는 무언가.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시민 ID를 받으세요."
준호의 손에 작은 칩이 주어졌다. 신아르카디아 시민 ID였다.
여성과 준호는 광장을 빠져나갔다.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기억 거래자들이 있었다. 암시장이 있었다. 기억 칩이 거래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팔고 있었고, 누군가는 사고 있었다. 아르카디아에서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밤이 되자, 신아르카디아의 인공 태양이 꺼졌다. 거리의 가로등이 켜졌다. 준호는 한 골목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기억 거래소가 있었다. 간판에는 글자가 있었다.
—기억의 집. 모든 거래를 환영합니다. 당신의 기억을 평가해 드립니다.
여성이 준호를 바라봤다.
"들어가요?" 여성이 물었다.
준호는 거래소의 문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골든핑거. 그것은 여전히 준호의 손에 있었다. 기억을 빨아들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르카디아에서 팔지 않았던 기억들. 그것들이 아직도 준호 안에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 누군가를 지키려고 했던 마음. 그런 것들.
준호는 여성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은 묻고 있었다. 왜 다시 시작하려는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가. 왜 이곳에 와서도 또다시 기억을 팔려고 하는가.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고 싶었다. 하지만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거래소의 문을 향해.
"네." 준호가 말했다. "들어가야 해요."
여성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준호를 따랐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 마치 자신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이. 아니다. 그것도 틀렸다. 그들은 선택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선택이 무엇을 초래할지 알면서도, 그래도 선택하고 있었다. 그것이 더 끔찍했다.
거래소 안에는 새로운 기억 거래자들이 있었다. 아르카디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을까, 아니면 신아르카디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니다. 반복이 아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설계된 것이었다. 탈출이라는 환상. 그리고 탈출 후의 또 다른 감옥.
준호는 첫 번째 거래자를 봤다.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잡았다. 아르카디아에서처럼 필사적으로 빨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의도적으로 기억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임을 알면서.
기억이 흘러들었다. 아버지의 얼굴. 어린 시절의 거리. 처음 기억을 판 날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 위에 겹쳐진 낡은 온기.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은 지 오래된 손가락의 감각처럼.
준호의 신경이 울렸다. 새로운 기억이 신경계를 타고 흘렀다. 그것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친숙했다. 마치 이전에도 이런 일을 한 번 이상 했던 것처럼. 아니다. 그것은 친숙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념이었다.
ECHO가 울었다. 이번에는 다른 톤이었다.
—우리는 또 시작했어. 또 같은 거래로.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선택한 거야. 그게 더 나쁜 거야.
준호의 손이 다음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또 다음. 기억들이 흘러들었다. 각각의 기억은 준호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는 준호를 조금씩 잃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준호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계속했다.
여성은 거래소의 한쪽 구석에서 준호를 봤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준호가 다시 기억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르카디아에서처럼 준호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도 알았다. 준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선택이라는 것을.
여성의 손이 들렸다. 자신의 기억을 팔기 위해. 준호를 따라가기 위해. 또 다른 순환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지만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고 들어갔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신아르카디아의 밤은 깊어졌다. 거리의 가로등이 더 밝게 켜졌다. 감시 드론이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신아르카디아의 중앙 관리국은 새로운 기억 거래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신경 패턴이 흥미롭습니다. 외부 의식의 개입이 감지됩니다. 조사를 지시합니다.
그 목소리는 박 이사장의 목소리였다. 또는 박 이사장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의 목소리였다. 아르카디아에서 박 이사장이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신아르카디아의 관리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같았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준호는 거래소를 나왔다. 손에는 새로운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여성의 손이 있었다. 그녀도 함께 나왔다.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는 아르카디아의 거리와 같았다. 건물의 높이, 도로의 넓이, 감시 드론의 개수. 모든 것이 동일했다. 마치 처음부터 준호가 어디도 가지 않았다는 것처럼. 또는 이미 여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우리가 뭘 한 거예요?" 여성이 속삭였다.
이번에 준호는 대답했다.
"선택했어요. 의도적으로."
그 말이 나가는 순간, 여성의 손이 더 세게 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동의였을까, 아니면 절망의 표현이었을까. 또는 그 둘 다였을까. 아니다. 그것은 셋 다였다. 동의이면서 절망이면서 동시에 공모였다.
신아르카디아의 하늘은 돔으로 닫혀 있었다. 그 돔 너머의 우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돔 너머에 또 다른 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이 준호의 뇌 속에 남겨졌다. 아니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고 있음이었다. 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돔 너머에 또 다른 돔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너머에도 또 다른 돔이 있다는 것을.
준호의 왼쪽 눈이 깜박였다. ECHO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전과는 다른 톤으로.
—우리는 깨어났어. 하지만 우리는 계속 꿈꾸고 있어. 아니다. 우리는 깨어났다는 꿈을 꾸고 있어.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의 깨어남을 지켜보고 있어.
그 목소리는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경고였다. 아니다. 새로운 경고가 아니었다. 같은 경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깊었다. 더 어두웠다.
준호와 여성은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로 걸어 나갔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새로운 도시. 새로운 감옥. 새로운 거래의 시작. 하지만 이번엔 그들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가장 끔찍한 부분이었다.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또 다른 감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선택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