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신아르카디아

셔틀의 착륙음이 울렸을 때, 준호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주정착지 신아르카디아의 격납고는 아르카디아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정렬된 드론들, 천장을 가로지르는 네온 광고판—심지어 광고판 위의 글자까지도. 셔틀의 개폐구가 열렸다. 소피아가 준호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려가요."

손을 놓지 말라는 신호였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납고의 벽면에 부착된 홀로그램이 깜빡였다. 정사각형의 얼굴, 중성적인 음성.

"신아르카디아 관리국입니다. 도착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관리국의 AI는 준호의 신경 패턴을 스캔했다. 스캔 광선이 그의 눈을 지나갈 때, 뭔가가 울렸다. ECHO였다. 아주 미약한 음성, 마치 먼 곳에서 부르는 목소리.

*여기도 같은 구조야.*

준호의 눈이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려 했다. 소피아의 손이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준호는 손가락을 의식적으로 구부렸다. 노출되면 안 된다. 능력을 드러내면 안 된다.

"등록되지 않은 신경 패턴입니다. 당신은 새로운 정착민인가요?"

"네."

소피아가 빠르게 대답했다. 준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신체 능력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

AI는 준호에게 손가락을 펴도록 지시했다. 준호의 숨이 얕아졌다. 손가락을 펼칠 수 없다. 펼치는 순간 빛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손가락을 펼쳐 주세요."

기계의 음성이 반복되었다. 준호는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소피아의 손이 여전히 그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잡고 있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것은 보호였다. 준호는 손가락을 조금씩 펼쳤다. 첫 번째 손가락. 두 번째 손가락. 세 번째 손가락.

그 순간, 격납고의 조명이 깜빡였다.

준호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빛이 나타났다. 매우 약했지만, 분명했다. 마치 손끝에 별이 박혀 있는 것처럼. 관리국의 홀로그램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비정상 신경 활성화 감지. 당신은 기억 추출 능력자입니다. 매우 드문 능력입니다. 우주정착지 경제 활성화 프로젝트에 등록하시겠습니까?"

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빛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었다. 뭔가가 깨어나고 있는 느낌. 마치 오랫동안 자고 있던 신체의 일부가 눈을 뜨는 것처럼.

"당신은 이전 도시에서 뭘 했어요?"

소피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모르겠어요."

준호가 대답했다.

소피아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격납고를 빠져나가며 준호는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를 마주했다. 아르카디아와 다르지 않았다. 돔으로 덮인 하늘, 거대한 광고판들, 사람들의 얼굴 스캔 시스템. 하지만 공기의 색이 조금 더 파랬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기억 거래소의 로고가 아르카디아보다 훨씬 많았다. 건물마다, 골목마다, 심지어 보도 위의 홀로그램까지도. 신아르카디아는 기억을 파는 도시였다. 아르카디아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착지 관리국에서 배정한 숙소는 중층부의 작은 방이었다. 침대, 냉장고, 그리고 벽면 정보 패널. 준호는 패널 앞에 멈춰 섰다. 패널에는 신아르카디아의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새로운 능력자들의 유입으로 우주정착지의 기억 거래 경제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기억 거래량은 전분기 대비 340% 증가하였으며…"*

뉴스 앵커의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준호는 화면을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는 신아르카디아의 기억 거래소 안내가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 많은 칸막이, 더 많은 모니터, 더 정교한 신경 스캔 장비. 아르카디아의 기억 거래소는 아직도 손으로 기록하는 부분이 있었다. 신아르카디아는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었다. 기억 추출부터 거래까지 완전히 기계화된 시스템이었다.

그 순간, 준호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봤지만, 움직임을 조종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손을 빌려 쓰는 것처럼. 손가락이 기억 거래소의 지도 위를 미끄러졌다. 특정 구역에서 멈췄다. 지하 3층의 VIP 거래 구역. 아르카디아에는 없는 공간이었다.

ECHO의 음성이 울렸다.

*여기도 같은 시스템이야. 그들도 기억을 파고팔아. 그들도 우리를 원해. 하지만 더 효율적이야. 더 깊이 파고들어.*

"뭐가 보여요?"

소피아가 뒤에서 물었다. 준호는 손을 내렸다. 손가락이 다시 자신의 의지 하에 있었다. 하지만 그 의지가 정말 자신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그 밤, 준호는 꿈을 꿨다.

꿈 속에서 그는 자신을 봤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조각났다. 한쪽 눈은 없었고, 왼쪽 팔은 흐릿했으며, 얼굴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었다. 마치 장시간 노출된 사진처럼. 준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려 했지만, 손가락이 허공을 지나갔다.

ECHO의 목소리가 울렸다.

*넌 누구야? 나는 누구야? 우리는 누구야?*

준호는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검은 액체가 입에서 흘러내렸다. 그것은 피였을까, 아니면 기억일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작할 거야.*

ECHO가 말했다.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할 거야. 또는 우리는 뭔가 다르게 할 수도 있어. 넌 선택해야 해.*

"선택?"

준호가 물었다.

*하지만 넌 누구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나는 여기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영원히.*

준호가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신아르카디아의 천장. 회색이지만 미세하게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소피아가 옆의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여기가 안전한 곳이라고 믿는 것처럼. 하지만 준호는 알았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곳이 같은 구조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을.

준호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신아르카디아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백만의 불빛들이 밤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아르카디아와 다르지 않은 패턴. 중층부의 밝은 조명, 하층부의 어두운 그림자, 상층부의 청정한 빛. 하지만 준호의 눈에는 뭔가 다르게 보였다. 신아르카디아의 불빛은 더 규칙적이었다. 더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마치 거대한 회로판이 밤하늘에 펼쳐진 것처럼.

소피아가 깨어났다. 그녀는 준호의 옆에 섰다. 준호는 그녀의 존재를 느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은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을까?"

소피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느낀 적이 있는지, 아니면 행복의 기억을 팔아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손이요."

소피아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되었다.

"뭔가 됐어요."

준호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이전 도시에서 뭘 했어요?"

소피아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게 하고 싶었다. 마치 그것이 준호를 현실에 묶어둘 수 있을 것처럼.

"모르겠어요."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소피아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절망적이었다.

창문 밖의 신아르카디아는 아침빛으로 깨어나고 있었다. 어제 밤의 야경은 사라졌고, 도시의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상층부의 정부 지구에서는 청정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중층부의 상업 지구에서는 이미 광고판들이 켜지고 있었다. 하층부의 슬럼가는 여전히 어두웠다.

준호는 소피아의 손을 놓고 일어났다. 그의 다리가 불안정했다. 신경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회복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ECHO와 겹쳐진 무언가였다.

숙소의 문을 나가기 전에 준호는 거울을 봤다. 그 안의 얼굴은 여전히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마치 여러 번 본 낯선 얼굴처럼.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피부 표면에 미세한 전자회로 같은 무늬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넌 누구야?*

ECHO가 물었다. 이제 음성이 아니라 생각처럼 들렸다.

"모르겠어요."

준호가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모르는 게 맞아. 난 너를 모르고, 넌 나를 모르고, 우린 우리를 모르지.*

계단을 내려가며 준호는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를 봤다. 아르카디아의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같은 회색의 건물들, 같은 노란 광고판들, 같은 사람들의 흐름. 하지만 여기서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다. 기억 거래소의 로고가 더 많았다. 아르카디아에서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거리의 모서리마다 설치된 기억 검사 기계들. 그것들은 준호를 지나갈 때마다 반응했다.

*비정상 신경 패턴 감지. 비정상 신경 패턴 감지.*

기계들이 울렸다. 준호는 계속 걸었다. 소피아가 그의 팔을 잡고 빠르게 움직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준호를 보지 않았다. 또는 보지 않으려 했다. 비정상은 외면하는 것이 이 도시의 법칙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정착지 관리국이었다. 신규 도착자 등록을 위해서였다. 루이스가 준비해둔 위조 서류들이 있었다. 준호는 신원 없는 새로운 사람이었다. 이름도 없고, 과거도 없고, 기억도 없는.

관리국의 복도는 밝았다. 아르카디아의 회색과는 달리 희뿌연 흰색이었다. 마치 미래를 상징하는 색처럼. 준호는 그 색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너무 깨끗했다. 너무 무균적이었다. 마치 여기가 병원이 아니라 도축장인 것 같았다.

접수 창구의 관리자는 준호의 서류를 본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아르카디아의 박 이사장처럼. 아니, 모든 관리자들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많이 잃은 자들의 얼굴.

"신경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준호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기계들이 그의 머리 주위를 맴돌았다. 스캔 중이었다. 신경 패턴을 읽고 있었다. 능력을 감지하고 있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기계는 아르카디아의 것보다 훨씬 정교했다.

*그들이 뭘 발견할 거야?*

ECHO가 물었다.

*우리가 뭘 감춰야 할 게 있나?*

준호가 생각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들켰어. 우리는 처음부터 들켰어. 우리는 이 시스템의 일부야. 아니, 우리는 이 시스템 자체야.*

스캔이 끝났다. 준호는 접수 창구로 돌아갔다. 관리자는 결과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능력자입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능력자?"

준호가 물었다. 그것은 질문이지만, 동시에 확인이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의 떨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희귀한 능력입니다. 당신의 신경 패턴은... 우리 정착지에서는 처음입니다. 기억 접근 능력으로 보이는데,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아르카디아의 기록과도 맞지 않습니다."

관리자는 더 이상 무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욕심이 나타났다. 준호는 그것을 본다. 그것은 아르카디아의 박 이사장의 눈과 같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더 노골적이었다. 신아르카디아에서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신의 능력을 등록하시겠습니까? 우주정착지 경제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 담겨 있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소피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여기서 뭘 할 거예요?"

소피아가 속삭였다.

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미세한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되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또는 프로그래밍이었다. 또는 같은 것이었다.

"등록하겠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그 말은 자신의 입에서 나왔지만,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

관리자는 등록 서류를 내밀었다.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그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서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능력의 활성화였다. 손가락에서 나온 빛이 서류 위에 기억의 패턴을 그렸다. 아르카디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아르카디아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서류 위의 패턴이 변했다. 준호의 능력 데이터가 시스템에 등록되었다. 그 순간, 관리자의 컴퓨터 화면에 뭔가가 나타났다. 준호는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관리자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마치 놀라운 것을 본 것처럼.

"환영합니다."

관리자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하지 않았다.

준호와 소피아는 관리국을 나왔다.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는 여전히 아르카디아의 거리와 같았다. 하지만 이제 준호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기억 거래소의 로고들이 더 밝게 빛났다. 거리의 사람들의 얼굴이 더 공허해 보였다. 그들도 준호처럼 기억을 팔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을 것이다.

*우린 여기서 뭘 할 거야?*

ECHO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준호가 생각했다.

*그래. 우린 모르지. 그래서 우린 계속할 거야. 우린 계속 기억을 팔 거야. 우린 계속 자신을 잃을 거야. 우린 계속 탈출을 꿈꿀 거야. 아르카디아에서 했던 것처럼. 신아르카디아에서도 그렇게 할 거야.*

소피아가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하지만 그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두 개의 눈이 겹쳐져 있는 것처럼.

그들은 계속 걸었다. 신아르카디아의 거리를 통해. 새로운 숙소로.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순환으로.

밤이 왔다. 준호와 소피아는 새로운 숙소의 창문 앞에 섰다. 신아르카디아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백만의 불빛들. 아르카디아와 다르지 않은 패턴. 하지만 준호는 이제 그 패턴 속의 차이를 본다. 신아르카디아의 불빛은 더 촘촘했다. 더 정밀했다. 아르카디아에서 본 무질서한 확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체계였다. 그것은 준호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줬다. 아르카디아에서는 탈출의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신아르카디아는 이미 완벽했다. 이미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는 이 도시의 일부가 되는 순간, 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을까?"

소피아가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느낀 적이 있는지, 아니면 행복의 기억을 팔아버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알았다. 행복은 선택의 자유에서 오는 것이고, 신아르카디아에는 선택이 없다는 것을.

ECHO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작할 거야.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할 거야. 또는 우리는 뭔가 다르게 할 수도 있어. 넌 선택해야 해. 하지만 넌 누구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나는 여기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영원히.*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분노를 느꼈다. 선택? 자신에게 선택지가 있었던 적이 있는가? 아르카디아에서도, 신아르카디아에서도 그는 선택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능력을 숨기려 했지만 들켰고, 등록을 거부하려 했지만 강요당했고, 새로운 자아로 시작하려 했지만 같은 패턴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감금이었다. 더 정교한 감금일 뿐.

소피아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함께 있어 줄 거죠?"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아르카디아에서의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손의 감촉은 어딘가 친숙했다. 마치 오래전에 누군가 다른 손을 잡아본 것처럼. 그 손도 따뜻했고, 그 손도 그를 구하려 했고, 그 손도 결국 놓여졌을 것이다.

"네."

준호가 대답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아니면 기억의 빈 자리를 채우는 자동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소피아도 자신처럼 이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그녀도 자신을 구하려 하지만, 결국 함께 가라앉을 것이라는 것을.

창문의 반사 속에서 준호는 자신의 얼굴을 봤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피부 표면에 미세한 전자회로 같은 무늬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반복되었다. ECHO와의 융합은 완전하지 않았다. 아니, 완전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완전함의 정의라면.

화면은 검은색으로 서서히 페이드아웃되었다.

마지막 프레임에 두 개의 불빛이 남았다. 하나는 준호의 눈. 하나는 ECHO의 의식. 둘이 겹쳤다. 그리고 그 빛 너머로 신아르카디아의 기억 거래소가 밤새 문을 열고 있었다. 새로운 고객들을 기다리며. 새로운 기억들을 사고팔 준비를 하며.

그 순간, 관리국의 컴퓨터 화면에 새로운 신호가 떴다. 준호의 능력 등록 기록이 시스템을 통해 전송되고 있었다. 상층부로. 정부 지구로. 그곳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르인지, 박 이사장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누군가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준호의 등록이 단순한 신원 기록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호였다. 신아르카디아의 깊은 곳에 누군가를 깨우는 신호였다.

같은 순환이 영원히 반복될 준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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