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의 사이렌이 귀를 뚫었다. 백미러에 파란 불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운전대를 쥔 손가락이 약지부터 구부러지고 있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차를 세웠다. 경찰차가 내 뒤에 멈췄다. 제복을 입은 수사관이 내려왔다. 경찰청 휘장이 있는 차였다. 특수수사팀 소속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이... 이준호 경사?"
내 이름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이 존경과 당혹감으로 뒤섞여 있었다.
"사건 현장 가는 길인가?"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렇습니다."
그는 경례를 했다.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엔진을 켜는 손이 멈췄다. 손가락이 또 다시 약지부터 구부러졌다.
강동구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박철수 부서장이 서 있었다.
"기억복원 능력을 쓸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었다. 할 수 없었다. 피해자의 기억에 진입했다가 거울 속에서 다른 얼굴을 본 이후로, 능력을 쓸 때마다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복원 능력은 단순하다. 피해자나 목격자의 뇌파에 진입하면, 그들이 본 것을 내가 본다. 대가로 내 기억이 1시간씩 사라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뭔가 달랐다. 기억이 역순으로 지워지는 것 같았다.
피해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았다.
기억 속 현장이 펼쳐졌다. 서초구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 오후 6시경. 피해자 박인턴이 문을 열었다. 그곳에 서 있는 남자를 봤다.
그의 얼굴은 나였다.
하지만 나가 아니었다.
표정이 다르고, 눈빛이 다르고, 손의 움직임이 다르다. 그가 피해자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음성도 다르다. 내 목소리인데 다르다. 내가 절대 낼 수 없는 톤이다.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현장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박철수가 나를 일으켰다.
"뭐가 보였나?"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준호? 괜찮나?"
괜찮지 않았다. 기억이 흐려지고 있었다. 방금 본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 기억이 지워지고 있었다.
어제는? 어제 내가 뭘 했더라?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갔고... 박철수와 뭔가 얘기했고... 한지은이 뭔가 말했고...
생각이 끊겼다. 어제의 점심시간이 없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가 없다. 휴대폰 갤러리를 확인해 봤을 때도 그 시간대의 사진이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그 시간이 검은색이다.
"진짜 괜찮냐?"
박철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거짓이었다. 나는 일어섰다. 비틀거렸다. 누군가가 팔을 잡았다. 한지은이었다. 그녀의 눈이 나를 찌르고 있었다. 의심의 눈이 아니라 연민의 눈이었다. 더 무서웠다.
"준호, 병원 갈래?"
"아니요."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경찰청으로 돌아온 것은 새벽 2시였다.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나는 나의 책상으로 갔다. 서랍을 열었다. 3년간 해결한 사건 파일들이 있었다. 20건.
첫 번째 사건은 3년 전 강남역 인근 살인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이은영. 나이 24세. 목 졸림으로 사망. 나는 목격자의 기억을 통해 범인을 특정했고, 48시간 내에 범인을 체포했다. 그 사건을 해결하던 날, 내 손가락이 처음으로 떨렸다. 그때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파일을 다시 펼쳤다. 범인의 얼굴 사진. 김석준, 당시 28세.
그의 얼굴을 본다. 낯선 얼굴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아니다. 내 얼굴도 아니다. 그럼 뭔가?
기억이 떠오르려 한다. 그 사건을 해결하던 날... 피해자의 기억 속에서 본 범인의 모습... 하지만 그 기억도 이미 흐릿하다. 마치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사진을 지우듯이.
두 번째 사건. 세 번째 사건. 네 번째 사건...
파일을 넘기다가 멈췄다.
15번째 사건.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 침입 살인 사건. 피해자 정민정, 21세. 극단적 선택으로 위장된 살인. 그 사건을 해결했을 때 내 기억이 처음으로 3시간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더 길어졌다. 4시간, 5시간, 그리고 지금은...
파일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내 이름이 어딘가에 있다. 이 20건의 사건 어딘가에 내 이름이 있다는 생각이 지우개처럼 뇌를 갉아먹고 있었다. 범인으로서의 내 이름이.
휴대폰을 들었다. 갤러리를 열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사진들이 쌓여 있었다. 현장 사진들. 피해자들의 얼굴 사진들. 그들이 죽기 전의 마지막 표정.
한 장씩 넘겼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뭔가 깨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기억이 역순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비디오 테이프를 거꾸로 감는 것처럼.
어제의 기억이 빠져나간다. 그제의 기억이 빠져나간다. 엊그제의 기억이 빠져나간다.
3주 전에 내가 뭘 했더라?
생각이 안 난다.
1개월 전에는?
생각이 안 난다.
3개월 전에는?
생각이... 안 난다...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약지부터 구부러진 손가락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손가락처럼.
사무실 화장실로 갔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나를 봤다. 하지만 그것은 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닌, 나의 얼굴을 한 누군가가.
그것이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는데 거울 속의 입이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거울 속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소리인데 내가 낼 수 없는 톤이었다.
"날 알아?"
내가 물었다.
"당신이 날 모르니까... 날 봤으니까... 나는 항상 여기 있었어."
거울 속의 것이 대답했다.
나는 거울을 때렸다. 손이 깨졌다. 거울도 깨졌다. 거울 속의 웃음이 갈라진 유리 조각마다 반사되었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정신과 의사 윤태희였다.
"준호. 지금 어디니?"
"사무실입니다."
"나와. 지금."
그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뭔가 있습니까?"
"진단 기록을 다시 봤어. 뇌 스캔 결과를 보니... 당신의 뇌에는 비정상적인 활동 패턴이 있어. 해리성 정체감 장애의 전형적인 신경학적 특징이야. 두 개의 분리된 의식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개의 의식? 그럴 리가. 나는 하나였다. 하나인 줄 알았다.
"당신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어. 하나는 경찰관이고, 다른 하나는..."
통화가 끝났다. 아니, 내가 끊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윤태희를 만나러 가야 했다. 하지만 내 발이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병원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집. 내 집으로 가야 했다.
차를 운전하며 백미러를 봤다. 거울 속에서 누군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사라지자 나는 핸들을 놓아버렸다. 차가 중앙선을 넘었다. 뒤따르던 택시가 경적을 울렸다. 나는 기계적으로 핸들을 다시 잡았다.
집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 신호등을 몇 개 지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약지부터 구부러지는 손가락들. 그것이 내 손이 맞나?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서 피 냄새가 났다. 아니다. 향수 냄새다. 그 향수. 피해자들이 흘리던 그 향수.
거실 조명을 켰다.
침대 아래 박스는 이미 없었다. 경찰이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옷장은 그대로였다.
옷장 문을 열었다. 검은 장갑들이 쌓여 있었다. 한 켤레가 아니라 여러 켤레. 그 아래에 노트북. 파란 표지의 노트북.
손으로 집어 들 수 없었다.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발로 밀어서 꺼냈다.
첫 페이지를 봤을 때 손이 떨렸다.
"이은영. 24세. 강남역 인근. 2021년 8월 15일."
내가 3년 전에 해결했던 첫 번째 사건. 그 사건을 기억복원 능력으로 풀었을 때, 내 기억이 처음 사라졌던 사건이다.
두 번째 페이지.
"박수진. 26세. 강남역 근처 모텔. 2021년 8월 22일."
그 여자도 기억난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을 해결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한 후 내 기억이 또 사라졌다.
세 번째 페이지.
"임수현. 25세. 서초구 오피스텔. 2021년 9월 3일."
네 번째 페이지부터는 날짜가 3년 전이 아니었다.
"김선희. 23세. 강남 구청역 근처. 2024년 6월 18일."
이건... 내가 해결한 사건이 아니다.
"박인턴. 24세. 강동구. 2024년 6월 25일."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이건... 오늘 사건이다.
"최유라. 25세. 서초구. 2024년 7월 2일."
손이 저절로 떨렸다. 발로 밀어낸 노트북 속 글씨는 내 필체였다. 하지만 내가 쓴 것이 아니었다.
거울이 있었다. 거실 벽에 붙은 거울.
거울 속에서 나를 봤다. 내 얼굴이 아니었다. 내 눈이 아니었다. 그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알았지?"
거울 속의 입이 움직였다.
"넌 날 기억하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항상 너였어. 넌 날 없애려고 했어. 기억을 지워서. 능력을 써서. 하지만 나는... 계속 돌아왔어. 넌 나를 없앨 수 없어. 우리는 하나니까."
나는 거울을 돌려 누웠다. 거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깨졌다. 거울 속의 웃음이 갈라진 유리 조각마다 반사되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철수였다.
"준호. 어디야? 사무실에 없더라. 응급 상황이 발생했어."
"네... 부서장님."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한지은 팀원이 자살 시도를 했어. 휴대폰에서 나온 사진들을 봤거든. 그 사진 속 인물이 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자살을 시도한 거야. 지금 병원이야. 의식이 없어."
내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구나. 한지은이 진실을 알았다. 그래서 절망했다.
"그리고... 넌 어디야?"
"제가... 지금 집에..."
"집? 넌 왜 집에 있어? 지금 한지은이 깨어났대. 의식이 돌아왔어."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그 애가... 뭔가 봤대. 너의 휴대폰에서 나온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들 속에 있는 사람이... 너가 아니라고 했어. 그 사진 속 웃음이 너의 웃음이 아니라고."
침대 옆 책장에서 사진이 떨어져 나왔다. 대학 시절 내 사진. 그런데 그 사진 속에는 한 명의 사람만 있었다. 내 얼굴. 하지만 내 표정이 아니었다. 그 표정은... 사악했다.
뒷면에 글씨가 쓰여 있었다.
"우리는 하나야. 항상. 영원히."
"준호! 대답해!"
"네... 부서장님."
"지금 병원으로 와. 한지은이 너를 만나고 싶대. 그리고 포렌식 팀이 분석 중인 사진들이... 준호, 그 사진들이 모두 범죄 현장이야. 그리고 그 현장들이 너가 해결했던 사건들과 겹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준호? 준호!"
나는 휴대폰을 내렸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약지부터 구부러진 손가락들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병원으로 가야 했다. 한지은을 만나야 했다. 그녀가 본 사진 속 인물. 그 웃음. 내가 아니라는 그 확신.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그 손이 정말 내 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움직였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아파트를 나섰다. 계단을 내려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박철수가 내린 체포 영장일 것이다.
나는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백미러에서 거울 속의 웃음이 보였다.
"이제 끝내자."
그것이 말했다.
"우리의 게임."
차가 움직였다.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경찰차들이 쫓아왔다. 하지만 나는 달렸다. 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내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내가 정말 누구인지 알기 전에.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해졌다. 마치 지워지는 사진처럼.